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935
[불교신화기행 4] 제1부 1. 붓다는 과연 비슈누의 아홉번째 화신일까?
차창룡    

1. 붓다는 과연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일까?

 

 

 

 

 

보드가야에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자신이 보드가야를 안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꼬마에게 “너의 종교는 무엇이냐?” 물었더니, 부디스트라고 대답했다. 그 꼬마와 부모들은 사실 힌두교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교와 힌두교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부디스트라고 대답한 친구에게 다시 “너 힌두교인 아니냐?”라고 물으면, “힌두교인이기도 하다”라고 대답한다.

그들이 힌두교와 불교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신화 때문이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이 바로 붓다이다. 흡수력이 강한 힌두교의 속성이 잘 나타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힌두교의 붓다 신화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붓다를 교묘하게 비판하고 있다.

비슈누의 화신이 활약하게 된 배경에는 언제나 악마의 준동이 있었다. 악마들이 신들보다 힘이 세지면, 세상은 위험해진다. 세상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신인 비슈누가 해결사로 나설 수밖에 없다.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 붓다가 활약하기 전에도 악마들의 힘이 대단히 강했다. 악마들이 강해진 이유도 특이했다. 악마들은 신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베다를 암송하고 희생제를 지냈으며 철저하게 고행했다. 그렇다면 그 악마들은 이미 악마가 아닌 듯한데,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

게을러빠진 신들은 악마들의 힘에 밀려 자신의 영토를 조금씩 빼앗겼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진 신들은 유지의 신 비슈누를 찾아갔다.

“위대한 신이시여! 악마들이 점점 힘이 세져서 우리의 영토를 넘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악마들의 세상이 되겠습니다.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사 위대한 신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악마들이 차라리 못된 짓을 한다면 쉽게 물리치겠지만, 저렇게 철저하게 고행하고 베다를 찬양하고 희생제를 정성껏 지내니 저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쉽지 않구나. 물론 방법이 있다. 악마들로 하여금 베다를 무시하게 하고 희생제도 지내지 않으며 고행도 하지 않게 하면 그들은 급속도로 힘이 빠질 것이다. 그때 물리치면 될 것이다. 내가 악마들을 속일 붓다로 태어나 저들로 하여금 베다를 무시하게 하겠다.”

인간 세상에 태어난 비슈누의 화신 붓다는 악마들이 고행하고 있는 고행림을 찾았다. 붓다는 베다를 암송하고 있는 악마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소?”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베다를 찬송하고 있소이다. 베다를 찬송하면 큰 공덕이 생겨서 마침내 해탈하게 되는 법이오. 찬송을 방해하지 말고 저리 물러서시오.”

“허허, 이 양반들 참으로 어리석기가 자기 자식도 몰라보는 지빠귀 같구려. 베다가 무슨 공덕이 있단 말이오. 그럴 시간 있으면 밭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 게 낫겠구려. 그래, 베다가 뭘 말하고 있소이까?”

“태초에 황금의 태아가 생겨났으니/태어나자마자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한 분뿐인 지배자였도다./그는 대지와 이 하늘을 세웠느니/우리가 제물 바쳐 받들어야 할 신은 바로 그분이다.”

“허허, 참으로 우습소이다. 누가 대지와 하늘을 세웠다구요. 대지와 하늘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소멸했다 했소이다. 우주에 절대적은 것은 없소. 베다는 모두 바라문들이 백성들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허위 문서일 뿐이오.”

악마들은 단순하고 순진했다. 그들은 위엄 있는 성자의 말에 금세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한단 말이오.”

“베다를 믿지 말고 내 말을 믿으시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란 없소.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곧 이 세상을 알게 되고, 세상을 알게 되면 무서운 것이 없는 무적이 될 것이오. 그것이 바로 해탈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좋습니다. 그럼, 당신을 믿어보기로 하지요. 앞으로 가르침을 구하겠습니다.”

붓다는 이어서 바위 위에서 머리를 땅에 대고 물구나무 서 있는 고행자를 보았다. 그 고행자에게 걸어가자 그 뒤에는 수많은 고행자가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채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입지도 않고 한 발로 서 있는 고행자, 한 팔로 서 있는 고행자, 두 손가락으로 걸어다니는 고행자 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대들은 무엇을 위해 그리도 고통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오.”

“우리들은 고행을 통해 강력한 힘을 얻고 있소. 브라흐마 신은 철저하게 고행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지요.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외다.”

“허허, 참으로 어리석구려. 몸에 무리를 가하면 몸만 약해지는 것이지,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이오. 더욱이 그대들 같은 악마들에게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힘을 준단 말이오. 소가 웃을 일이외다. 브라흐마도 그대들의 적이란 걸 모르오?”

악마들은 성자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란 없소. 당연히 절대자도 없소. 절대자가 없는데 누가 힘을 준단 말이오. 오직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만 자신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뿐이오. 이 세상엔 절대자도 없고 나 자신도 영원한 존재가 아니오. 잠시 동안 이 세상에 머무를 뿐인 무상한 존재요. 이러한 진리를 바로 보는 자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하여 큰 힘을 갖게 될 것이오.”

악마들은 붓다의 말에 혼란스러워서 수군거렸다.

“저분은 분명 대단한 성자임에 틀림없어. 어쩜 저렇게 조리있게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인도신화를 보다보면 악마들의 순진함에 피식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이때의 악마들도 마찬가지였다. 붓다는 희생제를 올리고 있는 악마들을 향해서 말했다.

“그대들이 진정 힘을 갖기를 원한다면 죄없는 짐승들을 잡아서 바치는 희생제부터 삼가야 할 것이오. 짐승들을 잡아서 피를 내면 그 짐승들은 그대들에게 원한을 품을 것이오. 그 짐승들의 가족들도 그대들에게 원한을 품을 것이오. 그런데 어찌 희생제가 공덕이 되겠소. 베다를 숭배하는 사제들은 희생제에 희생된 짐승들은 하늘나라로 올라간다고들 말하는데, 그게 될 법한 말이오? 그렇다면 차라리 그대들의 아버지를 희생제에 바치면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갈 것 아니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힘은 오직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힘밖에 없소.”

악마들은 붓다의 조리 있는 설명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그들은 베다를 읽지도 않았고, 희생제를 올리지도 않았으며, 고행을 멈추었다. 악마들의 힘도 하루하루 약화되었다.

신들은 악마들이 베다를 무시하고 희생제도 지내지 않고 고행도 하지 않자 환호했다. 그들은 악마들을 무찌를 날을 차분하게 기다렸다. 악마들이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어졌을 때 신들은 군대를 일으켰다.

“악마들은 한때 우리보다 베다를 더 섬김으로써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베다의 갑옷을 벗고, 그들을 보호해주던 제사의식도 버리고, 고행마저도 하지 않으니 모두 허수아비가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악마들을 소탕할 때이다.”

신들의 군대는 약화된 악마의 군대를 무찌르고 자신들의 세계를 지킬 수 있었다. 악마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행하는 성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비슈누의 화신 붓다는 임무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힌두 신화의 붓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신화는 불교를 우대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교묘하게 비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이 붓다이기 때문에 불교와 힌두교는 한 집안이라 하면 어이없는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은 흔히 그렇게 말한다. 그들은 붓다가 왜 비슈누의 화신이 되었는지는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불교 사원에 와서도 붓다에게 예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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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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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940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996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896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997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110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39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972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006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03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08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020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104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110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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