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1103
[불교신화기행 7] 제2부 1. 부처님이 길에서 태어난 까닭은?
차창룡    

1. 부처님이 길에서 태어난 까닭은?

 

 

 

 

“세윤아, 네 고향은 어디야?”

“모태산부인과야!”

조카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조카는 장난스럽게 산부인과 병원이라고 대답한다. 어이없으면서도 난 참 기발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아이들이 태어난 곳은 물론 산부인과 병원이지만, 고향을 산부인과라고 하면 소가 웃을 일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곳은 룸비니 동산이고, 부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카필라바스투이다. 요즘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 산부인과일지라도 산부인과보다는 자신의 집과 집이 있는 동네가 중요하듯이, 붓다에게도 룸비니 동산보다는 성장기를 보낸 카필라바스투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룸비니 동산을 카필라바스투보다 더 중시하고, 4대 성지로 추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룸비니를 부처님의 고향이라고도 말한다. 그것은 바로 신화 때문이다. 붓다의 탄생과 관련된 룸비니의 신화는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붓다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부처로 태어나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고, 도솔천에서 머물다가 마야부인의 몸을 통해 지상으로 왔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훨씬 편안한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올 수도 있었으나 붓다의 탄생은 그렇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탄생은 세상을 구원할 위대한 직무를 갖고 태어난 영웅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예수의 부모는 분만할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남의 집 마구간에서 신의 아들을 낳게 된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태어날 때부터 편안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신의 뜻에 따라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면, 붓다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길위에서 태어났다.

붓다는 무수한 생애를 거쳐오면서 끝없이 자기 희생의 공덕을 쌓아 보살이 되었고, 그 결과 도솔천에 올라가 신들을 가르치면서 지상에 내려올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붓다의 전생인 보살은 도솔천의 눈부신 꽃들과 아름다운 새들의 미묘한 지저귐 속에서 천상의 신들과 다른 보살들에게 설법하곤 했다. 보살은 세상에 태어날 시기와 대륙, 나라와 집안을 살펴보았다. 세상을 구원할 가장 적절한 시점을 찾아야 했고, 너무 잘살지도 너무 못살지도 않은 나라를 골라야 했으며, 훌륭한 인품을 소유한 가족을 찾아야 했다.

보살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인 인도 대륙을 선택하였고, 그중 강대국도 약소국도 아닌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를 선택하였으며, 슛도다나 왕과 마야 왕비를 붓다의 부모로 선택하였다. 보살은 겨울이 지나고 자연의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계절에 여섯 개의 황금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가 되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를 거쳐 자궁으로 들어갔다. 마야 왕비는 꿈속에서 이 광경을 보게 된다. 잠에서 깬 왕비는 왕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왕은 꿈을 해석하기 위해 바라문들을 불렀다.

“지혜로운 바라문들이여, 왕비가 간밤에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답니다. 참으로 기이한 꿈입니다.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문들은 한결같이 태몽이라고 해석했다. 한 바라문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지고, 일곱 부위가 땅에 닿는 흰 코끼리는 세상을 통일할 전륜성왕만이 가질 수 있는 보배입니다. 왕비께서 전륜성왕이 되실 왕자를 잉태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마야 왕비는 아이가 태어날 달이 되자 친정의 풍습에 따라 고향 데바다하에 가서 아기를 낳기를 원한다. 물론 슛도다나 왕은 만삭의 몸으로 먼길을 가는 아내를 말렸다.

“당신의 집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어요. 이 궁궐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훨씬 안전하지 않겠소?”

“그렇기는 하지만, 이 귀한 자식은 제가 교육받은 대로 낳고 싶습니다. 모든 정성을 다하여 아이를 영접할 것입니다.”

시녀들을 데리고 왕비는 여행을 떠난다. 긴 여행이었지만 그토록 고대하던 아이를 낳기 위한 길이라 왕비의 마음은 한없이 설레었다. 끝없는 벌판이 계속되어도 여행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동산이 나오자 왕비는 시녀들에게 잠깐 쉬었다 가자고 했다. 때는 한창 햇살이 좋은 때라 벌과 나비가 활짝 핀 꽃 사이에서 매우 분주했다. 다양한 새들이 천상에서 내려온 것 같은 노래를 불렀다.

갑자기 산기를 느낀 왕비는 분만 준비를 하였다. 친정집에 가서 아기를 낳으면 좋겠지만, 이곳도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니, 주위에 나무그늘도 있고 물도 있어서 분만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왕비는 꽃향기가 가득한 동산에서 아쇼카(無憂樹) 나뭇가지를 붙잡고 서서 아기를 낳았다.

이때 비와 번개의 신이자 신들의 왕인 인드라와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마야 왕비의 분만을 도왔다. 천상의 보석을 흩어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빛깔의 꽃 이파리가 휘날리는 가운데, 많은 신들이 내려와 천상의 음악을 연주했다. 인드라와 브라흐마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운 비단으로 아기를 감싸안았다.

󰡔대전기경󰡕에서 말한 부처님들이 탄생할 때의 과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에 나왔건만 아기는 아주 깨끗했다. 양수도 묻지 않고 점액도 묻지 않고 피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깨끗하기 때문에 목욕할 필요가 없겠지만, 목욕이란 의식이기도 하다. 그때 하늘에서 두 개의 물줄기가 내려왔다. 한 줄기는 차가운 물줄기이고, 한 줄기는 따뜻한 물줄기이다. 그 물에 아기와 어머니가 목욕을 했다.

목욕을 마친 아기는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기리키고는, 북쪽을 향해 일곱 발짝을 걸었다. 이때 하얀 일산이 펴지면서 따가운 햇살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주었다. 일곱 발짝을 걸어간 후 아기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나니

고통에 휩싸인 이 세상을

마땅히 안온하게 하리라

 

천상천하에 홀로 존귀하다는 외침은 붓다의 이후 행보를 암시하고 있다. 인도신화를 보면 극심한 고행을 행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신의 은총이 내려지게 된다. 그러나 붓다가 우루빌라에서 극심한 고행을 행했지만, 신의 은총은 없었다. 그것은 붓다의 깨달음은 너무도 신묘하여서 신들조차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붓다는 신들보다도 월등한 존재였던 것이다.

아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레바퀴만큼 큰 연꽃이 땅에서 솟아올라 아기 발을 받들었으며, 천지가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가 밝게 빛났다. 이렇게 붓다는 태어났다. 이토록 장엄한 신화가 감싸주고 있는데, 룸비니가 어찌 최고의 성지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붓다의 탄생은 더없는 환희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상 룸비니 동산의 나무 밑은 오늘날의 산부인과는커녕 민가의 안방보다도 더 훌륭한 분만 장소는 아니다. 그런 곳에서 붓다가 태어났다는 것은 특별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집과 길은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집을 떠나는 통로가 바로 길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통로 또한 길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집을 향하고 있다. 집은 안과 밖의 구별이 있는 공간이지만, 길이 있음으로 해서 밖으로 열린다. 집은 또 길이 있으므로 안에서 닫힌다. 길은 끝이 없지만, 끝이 있다. 그 끝이 바로 집이다. 길은 열려 있지만, 모든 집 앞에서 닫힌다. 집과 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결합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길위에서의 붓다의 탄생은 집이라는 해탈의 고향으로 가는 길목임을 암시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체리 향기>나 <올리브 나무 사이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떠올려도 좋다)에 나오는 지그재그형의 길을 떠올려보자. 주인공 소년은 친구의 노트를 들고 친구의 집을 찾기 위해 지그재그형의 길을 열심히 올라간다. 그리하여 윗마을에 도달하고, 거기서 친구의 집을 찾는다. 친구의 집은 끝내 찾을 수 없다. 찾았다고 생각하면 거기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데로 가보라고 한다. ‘집’은 마치 유토피아처럼, 피안처럼, 신기루처럼, 율도국처럼, 파라다이스처럼, 깨달음처럼 나타날 듯하다가 사라져버린다. 영화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진 않지만 친구의 집은 이런 상징으로 읽어도 좋으리라. 이 경우 길은 유토피아나 깨달음을 찾는 과정을 상징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서 친구의 집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었듯이, 붓다 또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진정한 집이 없었음을 붓다의 탄생은 말해준다.

이렇게 우리는 길을 떠나면서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오는 것이 바로 그 길일 것이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혼자서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그 길일 것이다. 길을 통해서 우리는 안온한 안식처를 벗어나게 된다. 안온한 안식처를 벗어나면 툭 트인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떠나온 집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집을 꿈꾸며, 그 결과 혼인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다.

길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공동소유이거나 아예 소유자가 없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면서 모두의 소유이기도 한 길이야말로 뭇 생명의 구원을 목표로 온 붓다가 태어나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붓다가 노상에서 태어난 것은 붓다의 깨달음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자,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길위에서 잠을 자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숙자가 불행의 상징이지만, 인도에서는 노숙이 자연스런 일이다. 붓다의 탄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노숙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안온한 공간을 찾아서도 안 될 것이다. 길위에서 잠을 자더라도, 길위에서 아기를 낳아야 하더라도 용기를 가질 일이다. 길위에서 잠을 자던 이 붓다였으며, 길위에서 태어난 아기 곧 붓다였으므로.

집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길을 떠난다. 죽음이라는 집까지 가는 과정이 곧 길일 것이다. 그 길에서 붓다의 탄생지를 만났다는 것은 참으로 큰 환희이다. 환희에 젖어 나는 그곳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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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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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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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9.
[인도신화개관 38(끝)] 힌두교 시대의 신 25. 죽음의 여신 야마와 갠지스 [10]
1156
42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7] 힌두교 시대의 신 24.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2)
743
41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6] 힌두교 시대의 신 23.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1)
879
40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5] 힌두교 시대의 신 22. 참혹할 정도로 무서운 여신, 검은 피부의 칼리
821
39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4] 힌두교 시대의 신 21. 악마 마히샤를 무찌른 용감한 여신 두르가
781
38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3] 힌두교 시대의 신 20. 코끼리 머리를 한 귀여운 신 가네샤
1084
37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2] 힌두교 시대의 신 19.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의 탄생
779
36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1] 힌두교 시대의 신 18. 쉬바와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2]
994
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413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1059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85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1029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1063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1119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1007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1113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366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87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1021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123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50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59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220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225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98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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