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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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화기행 9] 제2부 3. 붓다의 진정한 고향 카필라바스투
차창룡    

3. 붓다의 진정한 고향 카필라바스투

 

 

 

 

2001년 3월, 룸비니의 대성석가사에서 일주일째 한가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오후 산책을 나갔다 오니 절의 온 식구들이 꽃다발을 들고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오늘이 바로 한국에서 도문 스님과 신도들이 오는 날이었다. 나도 그 대열에 서서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환영할 준비를 했다. 본래 다섯시쯤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여섯시쯤에야 도문 스님과 신도들이 도착했다. 드디어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공손하게 인사하고 꽃목걸이를 걸어드렸다. 스님은 도열해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천천히 법당으로 들어가셨다.

사람들도 도문 스님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가 좌정했다. 바로 예불을 하고 도문 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보살님들이 나서서 네팔 사람들에게 보시금 봉투와 쌀 한 가마, 티셔츠 한 개, 과일과 빵을 나눠주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보시금을 나눠주고 있을 때 법신 스님께서 우리 배낭 여행자들에게도 나눠주라고 신호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졸지에 보시금 1000루피씩을 받게 되었다.

다음날 우리는 도문 스님 일행을 따라 카필라바스투를 구경했다. 도문 스님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셨다. 도문 스님은 이야기를 마치신 후에는 그것을 다시 판소리로 들려주셨다. 우리는 같은 내용을 두 번 듣게 된 셈인데, 참으로 흥미로워서 귀에 쏙 들어왔다.

 

맨 먼저 간 곳은 쿠단이었다. 쿠단은 부처님이 고향을 방문할 때 처음으로 머물렀던 곳으로 그곳에 슛도다나 왕이 사원을 지어주었다. 경전에 나오는 니그로다 숲이 그곳이었다. 폐허가 된 스투파와 옛 사원의 흔적이 뚜렷했다. 나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붓다와 어머니를 만나는 붓다를 떠올렸다.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도 이곳에서 출가했다고 전해진다.

부처님은 출가하신 후 얼마 만에 고향을 찾은 것일까? 부처님의 고향 방문에는 두 가지 설이 공존한다. 죽림정사 시절에 방문했다는 설과 기원정사 시절에 방문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죽림정사 시절에 방문했다면 성도 후 대략 2년 만이고, 기원정사 시절에 방문했다면 성도 후 6년 만이다. 나는 부처님이 성도 후 금방 가시진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하고, 성도 후 2년은 금세 지나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6년 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6년이 긴 세월이지만,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당시를 생각해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을 것이다.

고향이란 내가 가는 길의 시작임과 동시에 가야 할 길의 걸림돌이다. 부처님도 다른 지역보다도 고향에 가시는 데는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했을 것이다. 타향에서 충분한 실험을 거치신 후에야 부처님은 고향에 가실 생각을 했다.

부처님이 출가하신 후 긴 세월이 흘러서야 고향에 오시자 슛도다나 왕은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고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처님이 궁궐로 오시기를 기다렸다. 부처님은 왕궁으로 바로 가지 않고 쿠단의 니그로다 숲에 머물렀다.

슛도다나 왕이 아들을 만나기 위해 펼친 노력은 눈물겹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할 때부터 슛도다나 왕은 항상 아들의 거취를 확인하고는 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부처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붓다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승가에 귀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슛도다나 왕은 아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 사신을 보내어 부처님을 초청했다. 그러나 부처님을 뵙는 순간 사신은 자신이 그곳에 온 이유를 망각하고 승가에 출가하였다. 벌써 몇 명의 사신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슛도다나 왕은 생각 끝에 사신에게 천 명의 백성을 이끌고 가서 부처님을 모셔오라고 지시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출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슛도다나 왕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신과 천 명의 백성들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순간 깨달음을 얻고 출가하였다. 이런 식으로 모두 9천 명의 백성과 아홉 명의 사신을 보냈으나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슛도다나 왕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부처님이 내 청을 거절한 것일까, 아니면 사신들이 나의 청도 말씀드리지 못한 것일까?

이를 어찌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슛도다나 왕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슛도다나 왕의 신하였다면 여성을 사신으로 보내보라고 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은 승가에 출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슛도다나 왕은 당시 사회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여성을 사신으로 보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슛도다나 왕은 가장 충직한 신하이자 싯다르타 태자의 친구였던 우다이를 떠올렸다. 우다이라면 최소한 부처님의 의중은 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슛도다나 왕은 대신 우다이를 불렀다.

“우다이, 싯다르타 태자가 참으로 그립구나. 너는 내 마음 알지? 나는 이미 연로했다.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번이라도 부처님을 뵙고 죽고 싶구나. 지금까지 많은 사신들과 백성들이 부처님을 모시러 갔지만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네 차례가 온 것 같다. 네가 나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우다이는 부처님을 뵙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정이 몹시 가여웠다. 그는 반드시 슛도다나 왕이 부처님을 뵐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우다이는 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저의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출가를 허락하시면 부처님을 기꺼이 모셔오겠습니다.”

“출가하는 거야 너의 자유다. 부처님을 만나게만 해다오.”

우다이는 라지기르의 죽림정사로 갔다. 그때 부처님은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고 계셨는데, 우다이는 그 설법을 들으면서 환희심을 일으켜 출가할 결심을 했다. 우다이는 부처님께 절하고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저를 기억하십니까? 부처님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우다이입니다. 저도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하고 싶습니다.”

“어서 오라, 친구여. 참으로 반갑구나. 그래 이게 얼마 만인가?”

이렇게 해서 우다이도 부처님의 출가 제자가 되었다. 그때 부처님의 제자 중에 우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 그는 칼루다이라고 불렸다. 피부가 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석가족의 출가자들이 슛도다나 왕의 바람을 잊어버린 반면에 칼루다이는 부처님께 슛도다나 왕의 소원을 말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수확철이 되자 백성들의 살림이 풍족해졌다. 마침 대풍이었다. 칼루다이는 먹을거리가 넉넉할 때 부처님과 제자들이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칼루다이는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이제는 부처님의 고향 사람들에게도 법을 나누어주실 때입니다. 특히 부처님의 부모가 부처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법은을 내려주십시오.”

“칼루다이여, 참으로 효심이 지극하구나. 당연히 그래야겠지. 나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부처님도 고향이 몹시 그리웠지만, 고향이 그만큼 교화하기 어려운 곳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칼루다이의 권유로 부처님은 고향 방문과 전법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칼루다이는 비구들에게 부처님이 고향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알렸다.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비구 1만 명과 카필라국 출신의 비구 9천과 카샤파 형제와 함께 출가한 1천의 비구 등 2만 명의 아라한을 데리고 카필라국을 향헤 길을 떠났다. 그들은 2개월을 여행하여 카필라국에 도착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지금의 쿠단이다. 부처님이 왕궁으로 바로 오지 않자 슛도다나 왕과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니그로다 숲에 와서 부처님을 친견하였다. 그들의 상봉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부처님은 피를 나눈 혈족이라 해서 특별히 차별하지 않으셨다. 이곳의 스투파 중 하나는 마하파자파티가 부처님께 가사를 공양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스투파라는 설도 있다.

마하파자파티는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손수 가사를 짰다. 황금을 입혀서 참으로 아름다운 그 가사를 마하파자파티는 부처님께 드리고 싶었다. 왕비는 누구의 손길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옷감을 짜고 바느질하여 가사를 만들었다. 가사를 곱게 접어 가지고 온 왕비는 부처님께 가사를 바쳤다.

“부처님이시여, 이 어미가 정성을 다해 금란가사를 만들었습니다. 부디 이 옷을 입으시고 만백성에게 큰 은혜를 베푸십시오.”

“어머니, 이 가사를 우리 승가에 공양하시지요.”

“오직 부처님을 생각하고 지은 가사입니다. 부디 부처님께서 입으시옵소서.”

“아닙니다. 승가에 공양하시는 것이 공덕이 더 큽니다.”

그렇게 해서 금란가사는 승가에 바쳐졌다. 나는 부처님의 손길을 생각하며 스투파를 돌고 또 돌았다. 스투파 꼭대기에는 짤막한 시바의 링가가 모셔져 있었다. 한때 불교가 자취를 감추었다가 오늘에야 복원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징표이다.

 

이어서 간 고티하와는 과거7불 중 네 번째 부처님이시고 현겁 첫 번째 부처님이신 구류손불의 탄생지이다. 텃밭과 같이 생긴 유적지가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낯선 사람들을 구경했다. 도문 스님이 사탕봉지를 들고 나오자 어린아이들이 빙 둘러쌌다. 스님은 어린아이들에게 몇 개씩의 사탕을 나누어주셨다. 구류손불은 쉬리습 나무 아래서 나이 4만 세 때 성불했다. 키는 13.2미터나 되었다 하니 참 상상하기 힘들지만, 우리의 세계에 아무런 흔적도 보여주지 않는 머나먼 과거에는 인간이 그렇게 키가 컸는지도 모르겠다.

고티하와에 이어서 카필라바스투에 갔다. 카필라바스투는 좀더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되었으면 하지만, 아직은 인가도 드문 오지에 있다. 궁궐의 성터로 보이는 벽돌의 흔적이 뚜렷하다. 성터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동서남북에 있는 저 문으로 싯다르타는 성밖을 나갔다. 성안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싯다르타였지만, 그는 본래 붓다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구도에 대한 열망이 솟아오를 것은 당연했다.

슛도다나 왕은 싯다르타가 출가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오직 아름답고 편안하고 즐거운 것들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출가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무래도 세상의 아픔을 확인했을 때 솟아오를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이란 살아 있음으로써 생기는 것, 생명이 있는 곳에서 어찌 아픔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설에 따르면, 싯다르타는 동문으로 나가서 노인을 만나 늙음의 고통을 보았고, 남문으로 가서 병든 사람을 보았으며, 서문으로 가서 죽은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북쪽으로 가서 출가 사문을 만난 후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연회가 끝난 후 채 정리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잠이 들었다. 잠을 자지 않은 사람은 싯다르타밖에 없었다. 그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따라 별이 유난히 가까웠고 눈물을 머금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이제 이 성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 29세이니, 참으로 오랜 세월을 본분을 망각하고 산 셈이다. 이제는 아들 라훌라도 낳았으니, 자신이 궁궐을 떠난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라훌라가 출가의 길을 방해한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그 길을 가는 정당성을 라훌라가 제공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태자비 야소다라의 방에 가서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발길을 돌려 마부 찬나카를 조용히 깨웠다. 찬나카는 깜짝 놀라서 태자의 얼굴을 보았다.

“태자님, 이 밤중에 어인 일이십니까?”

“조용히 하라. 어서 나가서 칸타카에게 앉장을 얹어라. 함께 갈 곳이 있다.”

찬나카가 태자의 애마 칸타카를 데리고 오자 태자는 말에 올랐다. 그들은 조용히 밤길을 갔다. 동쪽 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돌 무렵 그들은 국경 근처에 왔다. 앞에 있는 강을 넘으면 말라 족의 땅이었다. 말에서 내린 싯다르타는 찬나카와 칸타카에게 말했다.

“이제 너희들과 작별 인사를 해야겠구나.”

싯다르타는 몸과 옷을 치장한 장신구를 모두 풀었다. 그것들을 찬나카에게 건넸다.

“이것들을 부왕과 왕비, 태자비에게 전해라.”

싯다르타는 화려한 옷을 벗고 낡은 옷으로 갈아입은 후 마지막으로 황금신발을 벗어서 찬나카에게 주었다.

“이제 나는 태자가 아니다. 출가 사문이 되어 진리를 찾도록 하겠다. 반드시 생로병사를 여읜 붓다가 되겠다.”

“태자님, 제가 이대로 궁궐로 돌아간들 태자님을 막지 못한 죄로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태자님을 따르겠습니다.”

“아니다. 부왕께서는 너를 이해해주실 거다. 나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불과 이레 만에 이별했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단다. 부디 이 말을 궁궐에 가서 전해다오.”

싯다르타는 찬나카와 칸타카를 한번씩 껴안고는 발길을 돌렸다. 기원전 595년 음력 2월 8일의 일이었다고 전한다.

싯다르타의 어린 시절과 출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카필라 성은 외로웠다. 이곳이야말로 내게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결국 부처님의 출가 정신이 싹튼 것이 아닌가? 근처에 슛도다나 왕과 마야 왕비, 마하파자파티 왕비의 스투파가 있고, 싯다르타 태자의 애마 칸타카의 스투파도 있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한 후 칸타카는 음식을 먹지 않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훗날 사람들은 칸타카의 충성심을 높이 사 스투파를 만들었다고 한다.

싯다르타가 남기고 간 야소다라 태자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야말로 남편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싯다르타가 출가한 후 야소다라는 화려한 옷을 벗고 장신구도 하지 않았으며, 기름진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녀 또한 출가한 사람처럼 검소한 생활을 했다.

슛도다나 왕이 식사 공양을 위해 부처님을 궁으로 초대했을 때 야소다라는 옛 남편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야소다라는 부처님을 원망했을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원망하는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녀는 남편이 진정으로 옳은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야소다라는 아들 라훌라에게 말했다.

“라훌라야, 네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이 추앙하는 부처님이시란다. 너는 그분의 아들이다. 따라서 너는 그분에게 큰 재산을 상속받아야 할 것이다. 아버지에게 가서 재산을 물려주시라고 청하거라.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된다.”

라훌라는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다.

“아버지, 제게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주십시오.”

“아들아, 내게 무슨 재산이 있다고 그러느냐? 궁궐에 있으면 더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것이다.”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고 싶사옵니다. 어머니가 물러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니그로다 숲에 와서 사리풋타에게 말했다.

“사리풋타, 이 아이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달라는구나. 머리를 깎아주도록 해라.”

이렇게 해서 사리풋타는 라훌라의 은사스님이 되었고, 라훌라는 최초의 사미승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어린 소년이 한 명도 출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필라바스투 일대를 도는 것은 기나긴 세월을 한꺼번에 사는 것과 같았다. 그곳에는 석가족의 역사가 있었다. 사가르하와는 특히 슬픈 곳이다. 코살라국의 국왕 비루다카가 카필라바스투를 공격하여 석가족은 멸망하게 된다. 많은 석가족 백성들이 사가르하와의 호수에서 몰살당하였다.

석가족의 마지막 왕 마하나마는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비루다카에게 간청했다.

“이보시오!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소. 내가 물 속에 들어가 있겠소. 물 속에서 숨을 참는 동안만 백성들을 죽이는 것을 멈춰주시오.”

“좋소! 그렇게 해보시오. 얼마나 참는지 두고 보리다.”

마하나마 왕은 물 속에 들어가 버드나무 뿌리에 몸을 묶었다. 비루다카 왕은 마하나마 왕이 올라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마하나마 왕은 물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비루다카 왕이 부하를 시켜 물 속에 들어가보게 하니, 부하는 마하나마 왕이 버드나무 뿌리에 다리를 묶고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석가족의 멸망이 부처님이 살아 계신 동안이었으니 부처님의 슬픔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석가족의 멸망에는 무서운 카르마가 있었다. 코살라국의 국왕 파세나디는 석가족의 공주와 혼인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석가족은 용모가 뛰어난 하녀의 딸 아사밧캇티야를 공주라 하고 혼인시켰다. 파세나디 왕과 아사밧캇티야 사이에 난 아들이 비루다카 왕이었다. 비루다카가 왕자 시절 외가에 온 적이 있었다. 이웃 나라의 왕자로 크게 대접받을 줄 알았는데, 석가족 사람들은 자신을 노예의 아들이라고 멸시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비루다카는 왕이 되면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왕이 된 비루다카는 군사를 일으켜 석가족에게 진군했다. 가는 길에 가지도 없고 이파리도 없는 고목나무 아래 부처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비루다카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왜 나뭇가지도 없고 이파리도 없는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 덥지 않으십니까?저 옆에는 잎이 무성하여 그늘이 시원한 나무도 많은데요?”

“친족이 없다면, 나뭇가지나 이파리가 없는 나무 밑에 있는 것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오늘 친족들이 위험에 처했기에 가지도 없고 이파리도 없는 고목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비루다카와 그의 군대는 발길을 돌렸지만, 비루다카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군사를 일으켰고, 그때도 역시 부처님을 보고 회군했다. 그러나 비루다카는 끝내 카르마의 무서운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석가족을 멸망시킨 비루다카는 오래 살지 못했다.

석가족의 멸망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비루다카 왕은 앞으로 이레 후에 불에 타 죽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 소식을 들은 비루다카 왕은 몹시 두려워졌다. 7일째가 되자 그는 불이 붙을 염려가 없는 물 위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궁녀들에게 명령하여 연못에 배를 띄우고 연회를 벌였다. 연못 한가운데에 불이 날 염려는 전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배 안에는 불을 붙이는 도구는 일체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나 인근 풀밭에 불길이 일더니 바람이 불씨를 가져와 배에 불을 붙였다. 비루다카 왕은 무간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부처님의 신통력이라면 석가족을 구원하고 비루다카 왕을 물리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슨 뜻일까? 부처님은 석가족의 후예임에 분명하지만, 그는 인류를 구원할 붓다로 온 것이지 석가족을 구원할 붓다로 온 것이 아니었다. 만약 붓다가 석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비루다카 왕을 물리쳤더라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자신의 교의조차 설득력이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부처님의 태도가 불교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종교임을 선포해준다. 종교간・국가간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붓다의 생애가 주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상기해볼 일이다.

석가족의 죽음을 담은 사가르하와의 연못은 조용했다. 연못 주위에는 버드나무가 머리를 풀고 울고 있었지만, 울음 소리는 없었다. 풀꽃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아남은 석가족들은 카트만두와 상카샤 등지로 가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사가르하와가 너무도 슬픈 전설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착 가라앉았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도문스님의 재미있는 법문을 들으니, 오늘 하루는 참 즐거웠다고 생각했다. 그분들과 함께했던 카필라바스투 순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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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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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2011.01.09.
[내가 본 인도영화 12]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리틱 로샨 주연 영화 <연 Kites>(2010) [3]
1045
99
2011.01.04.
[내가 본 인도영화 11]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패션>(2008) [3]
773
98
2011.01.03.
[내가 본 인도영화 10]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영웅이 여기 있다, <세 얼간이(3 Idiots)> *강추 [2]
855
97
2011.01.03.
[내가 본 인도영화 9] 약속은 죽음으로써 지킨다, 전사 중의 전사 이야기, <Veer>(2010)
779
96
2011.01.02.
[내가 본 인도영화 8] [9.11 소재영화 1] 21세기 인간 선언, <My name is Khan> *절대강추 [7]
863
95
2011.01.02.
[내가본 인도영화 7] 인과응보 사필귀정의 미스터리, <13B>
837
94
2011.01.01.
[내가 본 인도영화 6] 진실한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거야, <신이 맺어준 커플> [1]
765
93
2010.12.30.
[내가 본 인도영화 5]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에서 죽다, <데브다스> [3]
861
92
2010.12.29.
[내가 본 인도영화 4] 그래도 그들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파나Fanaa(사랑의 파멸)> *강추 [2]
782
91
2010.12.27.
[내가 본 인도영화 3] 4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은 사랑, <마가디라>(Magadheera, 2009) [1]
1012
90
2010.12.19.
[내가 본 인도영화 2]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지켜라, <드로나>(Drona, 2008)
794
89
2010.12.18.
[내가 본 인도영화 1] 슬픈 해피엔딩, <옴 샨티 옴> *강추 [8]
1025
88
2010.03.13.
[불교신화기행 45(끝)] 제10부 3. 길위에서 생을 마감하리라 [10]
1217
87
2010.03.10.
[불교신화기행 44] 제10부 2. 2009년 다람살라 여행을 마치면서 [7]
1190
86
2010.03.10.
[불교신화기행 43] 제10부 1. 2008년 불교성지순례를 마치면서
844
85
2010.03.10.
[불교신화기행 42] 제10부 여행의 끝자락에서 (여는 글)
723
84
2010.03.10.
[불교신화기행 41] 제9부 3. 다시 쿠쉬나가르 가는 길
1115
83
2010.03.10.
[불교신화기행 40] 제9부 2. 붓다의 화장터 라마바르 스투파에 오르다
1098
82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9] 제9부 1. 잊을 수 없는 사람과 잊을 수 없는 마을
1168
81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8] 제9부 붓다의 열반지 쿠쉬나가르 (여는 글)
700
80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7] 제8부 2. 상카샤에서 보낸 편지
1012
79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6] 제8부 1. 붓다는 왜 상카샤로 내려오셨을까?
1019
78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5] 제8부 하늘로 통한 도시 상카샤 (여는 글)
682
77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4] 제7부 5. 스라바스티에서 먹은 절밥
909
76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3] 제7부 4. 천불화현과 데바다타의 지옥행
964
75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2] 제7부 3. 살인자 앙굴리말라의 스투파에서
791
74
2010.03.09.
[불교신화기행 31] 제7부 2. 기적의 땅 스라바스티와 기원정사
903
73
2010.03.09.
[불교신화기행 30] 제7부 1. 스라바스티 가는 길
935
72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9] 제7부 기원정사의 땅 스라바스티 (여는 글)
682
71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8] 제6부 4.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851
70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7] 제6부 3. 원숭이의 꿀 공양을 받은 부처님
1041
69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6] 제6부 2. 유마거사를 생각하다
921
68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5] 제6부 1. 암라팔리의 육탄 공격
923
67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4] 제6부 유마거사의 고향 바이샬리 (여는 글)
873
66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2] 제5부 4. 영취산에 올라
859
65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3] 제5부 5. 칠엽굴과 아난다
821
64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1] 제5부 3. 빔비사라 왕의 비극
866
63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0] 제5부 2. 데바다타와의 악연
884
62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9] 제5부 1. 죽림정사에 오다
863
61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8] 제5부 법화경의 설법지 라지기르 (여는 글)
761
60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7] 제4부 2. 최초의 승가 탄생
799
59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6] 제4부 1. 사슴동산의 기적 [2]
978
58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5] 제4부 최초의 설법지 사르나트 (여는 글)
739
57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4] 제3부 4. 보리수 나무 아래서 - 보드가야 대첩
1020
56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3] 제3부 3. 수자타 마을 [2]
982
55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2] 제3부 2. 깨달음을 얻기 전에 오른 산, 전정각산과 가야산
919
54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1] 제3부 1. 보드가야 오는 길
1022
53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0] 제3부 깨달음의 땅 보드가야 (여는 글)
650
2010.03.08.
[불교신화기행 9] 제2부 3. 붓다의 진정한 고향 카필라바스투
1054
51
2010.03.08.
[불교신화기행 8] 제2부 2. 부처님의 어머니
1048
50
2010.03.08.
[불교신화기행 7] 제2부 1. 부처님이 길에서 태어난 까닭은?
1002
49
2010.03.08.
[불교신화기행 6] 제2부 붓다의 고향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 (여는 글)
733
48
2010.03.08.
[불교신화기행 5] 제1부 2. 과거에도 부처님이 있었나?
857
47
2010.03.08.
[불교신화기행 4] 제1부 1. 붓다는 과연 비슈누의 아홉번째 화신일까?
1010
46
2010.03.08.
[불교신화기행 3] 1부 붓다가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고? (여는 글)
692
45
2010.03.08.
[불교신화기행 2] 차례
705
44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 머리말 - 또 떠날 때가 되었다 [3]
724
43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8(끝)] 힌두교 시대의 신 25. 죽음의 여신 야마와 갠지스 [10]
977
42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7] 힌두교 시대의 신 24.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2)
703
41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6] 힌두교 시대의 신 23.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1)
788
40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5] 힌두교 시대의 신 22. 참혹할 정도로 무서운 여신, 검은 피부의 칼리
789
39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4] 힌두교 시대의 신 21. 악마 마히샤를 무찌른 용감한 여신 두르가
749
38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3] 힌두교 시대의 신 20. 코끼리 머리를 한 귀여운 신 가네샤
1010
37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2] 힌두교 시대의 신 19.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의 탄생
749
36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1] 힌두교 시대의 신 18. 쉬바와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2]
938
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290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1009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53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979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1008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1070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914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1066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231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58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995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027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21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28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147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175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191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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