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1046
[불교신화기행 11] 제3부 1. 보드가야 오는 길
차창룡    

1. 보드가야 오는 길

 

 

 

 

2008년 1월 26일(토)

보드가야야말로 진정한 성지이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라 불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곳이 이곳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장 오랫동안 정진했던 곳도 이 지역이다. 첫 교화에 성공한 후 본격적인 전법을 위해 돌아온 곳도 보드가야 인근이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까지 왔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첫 설법을 위해 걸어갔던 길을 역으로 밟고 있는 것이고, 첫 교화에 성공한 후 다시 본격적인 전법의 길을 위해 밟은 길을 따라온 것이다. 석가모니는 맨발이었을까? 혹시 마차를 얻어타기도 했을까? 가끔씩 강물에 발을 담그며 지친 발에게 감사를 표시했으리라. 그 발의 역할을 지금은 기차가 하고 있다. 그리 생각하니 기차가 한없이 고마워진다. 안개는 별로 춥지 않은 인도의 겨울을 두껍게 감싸고 있다.

안개를 뚫고 마침내 기차는 가야에 도착했다. ‘가야’,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우리의 고대 왕국 가야가 이곳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이 아요디야 왕국의 공주 허황옥이라면 인도의 가야와 우리의 가야가 아무 상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가야의 조그만 마을에서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느지막이 도착한 어두운 가야는 막막했다. 밤늦게 변변히 먹을 것을 찾기도 힘들고, 방이 남은 숙소도 거의 없었다.

가야역 근처에는 몇 개의 호텔이 있는데, 그중 아자차투르 호텔에 방이 하나 있었다. 침대가 둘밖에 없어 한 사람은 간이침대를 써야 한다고 했다. 호텔 이름도 희한하다. 아자차투르는 아버지 빔비사라 왕을 죽인 악명 높은 마가다국의 왕이었다. 나중에 뉘우치고 부처님께 귀의하긴 하지만, 그런 패륜아를 호텔 이름으로까지 사용할 건 뭐람. 어쨌든 내일이면 부처님의 보리수를 만나고 수자타 마을 앞의 아름다운 네란자라 강을 만날 수 있다.

다음날 아침 시외버스를 타고 보드가야로 갔다. 시골버스의 먼지와 향기는 정겹다. 사람들의 시선은 낯선 외국인에게 쏠려 있다. 보드가야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6년 전만 해도 시골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국제도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인도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일행을 위하여 한국음식점을 찾고 싶었다. 보드가야의 한국음식점이라면 6년 전에 몇 끼의 식사를 해결했던 ‘보드베거스’가 있었다. 어린 소녀가 만드는 미역국이 일품이었는데, 그 소녀도 지금은 20대 처녀가 되었겠다. 보드베거스를 찾으려고 경찰서 근처를 뒤졌으나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6년 전에 싼 가격으로 묵었던 샨티 게스트하우스도 없어졌다. 당시 샨티 게스트하우스는 새로 지은 건물이면서도 허술하여 방으로 쥐가 드나들었다.

이제 거의 도시의 모습을 갖춘 보드가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는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위대한 성인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모두 붓다의 깨달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오다보니 자연스럽게 대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도를 보고 헤매다가 결국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소박한 숙소에 들어갔다. 딥 게스트하우스(Deep Guest House)였다. 숙소 복도로 나오면 아름다운 네란자라 강이 보이고 저 멀리 전정각산이 보인다. 나는 화장실과 목욕탕이 밖에 있는 방을 선택했다. 방 안에 아무것도 없으니 단출하고 편안했다. 깨끗하게 청소된 방은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최소한 붓다의 성지에서만큼은 최소한 단순한 방에서 자고 싶었다.

나는 넓은 모래사장과 긴 물줄기와 강을 건너는 소와 사람들이 한가한 네란자라 강을 바라보았다. 긴 다리를 건너면 수자타 마을이다. 네란자라 강에는 많은 소들이 강물을 마시거나 편안하게 강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들과 한가족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여서 강을 건너거나 목욕하거나 꿈을 꾸거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들의 등에서는 가마우지가 빈대를 잡아먹고 있었다.

조용히 보드가야에서 만날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선정에 들었던 보리수 나무를 중심으로 만든 사원 마하보디 템플, 부처님에게 우유죽을 공양한 처녀 수자타가 살았던 수자타 마을,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밑에 오기 전에 마지막 깨달음의 장소로 선택했다 옮긴 전정각산(둥게스와리), 한국 절 고려사, 그리고 이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등을 볼 생각이다.

 

2001년 10월 28일(일)

두르가 축제가 끝나갈 시점이었다. 점심을 먹고 박물관에 갔다. 특별한 유물은 없었지만, 울타리로 사용했던 돌들에 새겨진 부조가 볼 만했다. 거기에는 당시의 생활상과 풍속을 짚어볼 수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연꽃, 코끼리,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 보리수 사이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바둑 두는 노인, 술 마시며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이 그림들을 통해 나는 당시에 도르래를 사용하여 우물에서 물을 길어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인어에 대한 전설도 있었음을 알았다. 오늘날의 인도 사람들처럼 동물들과 무척 친숙하여 개나 산양과 말과 코끼리들이 사람들과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외전시장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와서 한국 펜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경비 아저씨면 그래도 공무원인데, 외국인에게 싸구려 펜을 얻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쓰고 있는 펜 하나를 주었다. 당신은 불교에 대해 좀 아느냐 하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은 부디스트라고 말했다. 힌두스탄이자 부디스트겠지? 하고 물었더니, 역시 그렇다고 했다.

박물관을 나와서 마하보디 템플 앞에서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어두워져가는 시간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아주 단순한 형태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두르가 축제가 끝나고 두르가 상을 철거하면서 사람들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풍악을 울리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은 축제의 끝자락을 아쉬워했다. 축제를 통해 이들은 마음을 정화시키고 새로이 살아나갈 힘을 얻는 듯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들의 종교 관습과는 맞지 않지만, 어쨌든 나름의 방법으로 종교적인 엑스타시에 도달하는 것이 이들의 꿈이었다.

거지들이 또 가까이 와서 손을 내밀었다. 하체가 없는 친구가 저 멀리서부터 제법 빠른 속도로 기어와 구걸했다. 돈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한 거지에게 주면 더 많은 거지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는 못내 가슴이 아팠다. 또 한 녀석이 와서 콜라를 달라 한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던 때는 매우 조용했으리라. 그러나 부처님 덕분에 이곳은 매우 혼잡해졌다.

 

2008년 1월 28일(월)

한국 절 고려사에 갔다. 보드가야 시내에서 한 2킬로미터 걸으면 한적한 마을에 우리의 절이 있다. 이곳 도미토리에서 묵고 싶기도 했지만, 일행 중 절에서 자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어 이번에는 포기했다. 고려사의 옥상은 햇살을 즐기기에 참 좋다. 아니 마당에서도 얼마든지 한가하게 햇살을 즐길 수 있다. 물론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에 해당하는 계절에만 그렇다. 6년 전에 만났던 원만 스님이 생각났다. 이곳에서 원만 스님과 만나서 한가하게 방담하곤 했다. 부엌에서 일하는 알람이라는 친구와 함께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지배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제법 건장한 청년이 있었다. 너무 덩치가 커서인지 좀 거만하게 보였다. 그는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었다. 와, 좋은 신발 신고 있다고 감탄했더니, 녀석은 “명색이 한국 절의 지배인인데, 이 정도 신발 신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한국 절의 지배인이면 오히려 검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이없었지만 나는 화제를 돌렸다. 예전에 주방에서 일했던 알람이라는 소년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도시로 떠났다고 했다. 원만 스님은 강 건너 수자타 마을 입구에 절을 짓고 사신다고 했다.

마당에는 거사 한 분이 햇살을 담뿍 받아들이면서 단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마침내 그분이 일어나자 나는 통성명을 했다. 고진면 선생님이었다. 룸비니서부터 스라바스티, 쿠쉬나가르, 바이샬리, 라지기르 등을 거쳐 여기에 오셨다 한다. 고진면 선생님 덕분에 교통 사정이 열악한 불교성지를 가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지난 여행 때 가지 못했던 바이샬리가 특히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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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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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317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1034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60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1004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1035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1096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924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1094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275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64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1000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038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29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32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193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201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16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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