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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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화기행 12] 제3부 2. 깨달음을 얻기 전에 오른 산, 전정각산과 가야산
차창룡    

2. 깨달음을 얻기 전에 오른 산, 전정각산과 가야산

 

 

 

 

2008년 1월 27일(일)

아침 일찍 둥게스와리로 출발했다. 오토릭샤를 250루피 주고 가기로 했다. 둥게스와리는 지난 여행 때 가지 못했기 때문에 오랜 동안의 숙원이 되었다. 숙소나 수자타 마을에서도 둥게스와리가 보이는데, 그것은 머나먼 전설 같은 흰 빛깔이었을 뿐, 도대체 현실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역경전에 나오는 싯다르타가 수도했다는 설산(雪山),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 팔상도(八相圖) 중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의 설산이 바로 이 산이라고 생각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오른 산이라 해서 전정각산(前正覺山)이라 불리는 둥게스와리는 몇 개의 봉우리를 가진 척박한 돌산이다. 위에 있는 봉우리들을 잘 보면 그것들이 스투파임을 알 수 있다. 이 스투파들은 아쇼카 왕이 세웠다고 한다.

싯다르타가 강에서 목욕하고 처녀 수자타의 공양을 받아들이는 것을 본 다섯 비구가 바라나시로 떠나버린 후 싯다르타는 최후의 깨달음의 장소로 이 산을 선택했다. 싯다르타는 동북쪽 언덕을 올라 정상에 올랐다. 그때 천지가 진동하면서 산이 크게 흔들렸다. 깜짝 놀란 산신이 주위를 살펴보니 곧 깨달음을 성취할 성자가 올라오고 있었다. 산신은 싯다르타에게 말했다.

“이 산은 깨달음을 여는 데 적당한 곳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깨달음의 삼매에 드시면 내륙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고 바닷가에서는 해일이 일어나는 등 재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깨달음을 얻는 순간 그 장소는 최고로 아름다운 곳이 되는 것 아닌가? 자신의 판단을 믿은 싯다르타는 서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보았다. 중턱의 벼랑 밑에 바위굴이 있었다. “옳지, 바로 여기가 안성맞춤이로구나!” 그는 어두운 석실을 헤치고 천천히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그때 또다시 대지가 뒤흔들리고 우박이 내리고 엄청난 굉음이 세상을 부서뜨릴 것 같았다. 그때 브라흐마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자시여, 보드가야의 보리수 밑 금강좌로 자리를 옮기십시오. 그곳이 부처님이 성도하실 곳입니다.”

브라흐마 신은 붓다가 가는 길의 중요한 지점에서 항상 나타난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브라흐마 신은 부처님이 깨달음의 삼매에 들 장소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과거불들의 생애를 보면 모든 부처님들이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나무 밑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었을 것이다.

싯다르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굴 속에 살고 있는 용이 “제발 이곳에서 깨달음을 열어주시어 제게도 법은을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간청했다. 싯다르타는 용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그림자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리하여 이 굴을 부처님의 그림자가 머물렀다 하여 유영굴(留影窟)이라 불리게 되었다.

 

보드가야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니 9시쯤 둥게스와리에 도착했다. 릭샤에서 내리자마자 동전꾸러미를 파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동전을 100루피에 사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었다. 거지들이 전정각산을 오르는 길 끝까지 도열해 있었다. 제법 장관이었다. 저 동전을 산다 하더라도 골고루 나눠주기에는 애시당초 틀린 일이었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사탕 파는 사람들이 달겨들었다. 멀쩡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거지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거지들 중에는 어른들도 많았다.

둥게스와리는 척박한 산이었다. 돌멩이가 많고 나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산은 시체를 버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옛날 화장을 할 돈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이곳에 버렸다. 마지막 가는 길이었던 만큼 금색 천으로 덮었다. 싯다르타는 시체를 덮던 금색 천을 주워서 옷을 해입고 수행했다.

이 봉우리 저 봉우리를 옮겨다니며 나는 주위를 골고루 돌아보았다. 네란자라 강줄기를 따라 군데군데 마을이 있었다. 작은 산이지만 바위가 많아 제법 험했다. 이윽고 유영굴로 갔다. 그곳에는 두네스리 템플이라는 이름의 티베트 사원이 있었다. 티베트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절을 올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수많은 촛불을 켜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이곳이 바로 부처님께서 좌정하신 곳이다. 나의 눈에는 부처님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불상이 있으니, 그 불상이 곧 부처님의 그림자 아닌가. 수자타 마을과 보드가야 대탑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굴 속에서 살고 있는 용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돌아보느라 목이 말라 물을 하나 사먹었다.

무려 세 시간을 둥게스와리에 머물렀다. 전정각산 바로 밑에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는데, 그곳을 들를 시간이 없어졌다. 정토원에서 가난한 인도인들을 위해 만든 학교이다. 가난한 인도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일깨워주고 있는 신심 돈독한 그곳 관계자들에게 그저 응원의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다음에는 꼭 수자타 아카데미에 들를 생각이다.

 

여행하다보면 뒤늦게야 중요한 곳을 빼먹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전정각산 못지않게 중요한 산이 가야산 또는 코끼리 머리처럼 평평한 바위가 있다 해서 상두산(象頭山)이라 불리는 바로 그 산이다. 현지인들은 힌두교식 이름을 붙여 브라흐마주니라 부른다. 바위에 비슈누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어 힌두교의 성지이기도 한 곳이다. 지금은 천 개의 계단을 오르면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라지기르를 떠나 가야로 온 싯다르타가 맨 처음 수도한 산이다. 그렇다면 이 산이야말로 싯다르타가 오랫동안 고행했던 바로 그 설산(雪山)이다. 전정각산에서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있지만 그곳에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다만 전정각산에서 먼 곳에 있는 산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깨달음의 길이 도대체 보이지 않았던 싯다르타는 가야산 꼭대기에 올라 나무 아래 풀을 깔고 앉았다. 자, 이제, 이곳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고통의 원인인 번뇌와 속박을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앉으나 서나 걸으나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해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야산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싯다르타는 고통의 원인과 그 제거를 위해 더욱더 극심한 고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르빌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

불이 탄다 탄다 탄다 탄다

오 주여 당신이 저를 건지시나이다

오 주여 당신이 건지시나이다

탄다

- T. 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에서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의 제3부 불의 설교를 우리는 기억한다. 이 불의 설교의 무대가 바로 가야산이다. 서양에서는 붓다의 불의 설교를 예수의 산상수훈에 비견한다. 붓다는 그때 배화교에서 개종한 1천 명의 비구를 데리고 라지기르로 가고 있었다. 가야산을 넘어가다가 잠시 쉬던 때였다. 아래를 굽어보던 붓다가 말씀하셨다.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

불이라면 배화교도였던 카샤파 삼형제가 그야말로 전공자가 아니던가. 맏형인 우루빌라카샤파가 붓다에게 합장하고 여쭈었다.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 눈에는 불이 보이지 않습니다.”

붓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계종 교육원에서 펴낸 󰡔부처님의 생애󰡕에 붓다의 말씀이 멋지게 재현되어 있다.

“온갖 망상이 부싯돌을 쳐 어리석음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지 않느냐? 너희들 스스로를 잘 관찰해보아라,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타고 있다. 눈이 타오르고 있고 눈에 비치는 형상이 타오르고 있고, 형상을 인식하는 생각도 타오르고 있고, 눈으로 보아 생기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타오르고 있다. 그렇게 타오르는 불은 곧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이다. 잘 보이지 않느냐?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인해 늙음의 불, 질병의 불, 죽음의 불, 걱정의 불, 슬픔의 불, 고통의 불, 번뇌의 불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불길이 귀에서도 코에서도 혀에서도 몸에서도 나아가 마음에서도 훨훨 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관할 수 있는 비구는 눈에 대해서도, 눈으로 보는 빛깔과 형상에 대해서도, 눈과 대상에 대해서도, 그 접촉에서 생기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착을 벗어나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에서 벗어나 마음이 해탈한 이는 ‘나는 이미 해탈했다’고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그는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 청정한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는 더 이상 윤회의 굴레에 속박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의 위험성을 불에 비유하여 명쾌하게 설파한 설법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이 설법이 행해진 가야산에 대해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보드가야에 또 갈 구실이 생겼으니 오히려 행복하다. 이 위대한 불의 설교(불교식으로 말하면 ‘불의 설법’이 더 적당할 것 같다)를 다음에는 꼭 가야산에서 명상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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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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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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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신화개관 34] 힌두교 시대의 신 21. 악마 마히샤를 무찌른 용감한 여신 두르가
730
38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3] 힌두교 시대의 신 20. 코끼리 머리를 한 귀여운 신 가네샤
992
37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2] 힌두교 시대의 신 19.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의 탄생
731
36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1] 힌두교 시대의 신 18. 쉬바와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2]
866
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218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932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27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912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936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992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895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990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103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35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970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000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895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02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013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100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105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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