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888
[불교신화기행 19] 제5부 1. 죽림정사에 오다
차창룡    

1. 죽림정사에 오다

 

 

 

 

2008년 1월 29일(화)

11시에 보드가야를 떠나 가야에는 12시쯤 도착, 마침 라지기르 가는 버스가 바로 와서 쉽게 가야를 떠났다. 약 2시간 반 만에 라지기르에 도착했다. 험준한 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곳이 라지기르다. 부처님이 전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카샤파 형제를 비롯한 천 명의 비구와 더불어 이 길을 갔으리라. 그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한 이틀쯤 걸렸을까?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예정대로 미얀마 사원을 찾았다. 라지기르의 미얀마 사원은 다른 사원과는 달리 일정 액수의 방값을 받는다. 숙소가 깨끗하고 틈틈이 법당에 들어갈 수 있어 참 좋다. 여장을 풀고 보니 동행하고 있는 최창근씨의 지갑이 없어졌다. 버스 안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는데, 한숨 자고 오는 동안 흘렸음에 틀림없다. 사원 지배인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잃어버렸다면 찾기 힘들다고 했다. 우리는 혹시 길에 흘렸을지 모르니 우리가 왔던 길을 거슬러 식당까지 가보았다. 식당에 혹시 흘렸나 주인에게 물어보니 역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가난한 인도인이 주웠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버스에서 잃어버렸다면, 분명 가난한 사람이 주웠을 것이다.

라지기르는 붓다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영산회상>에 친숙한 한국인에게는 꿈의 고장이기도 하다. 영산회상의 영산이 바로 영취산이요, 그 산은 바로 라지기르의 그리드라쿠타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불교사원이라 할 수 있는 죽림정사(베누바나)가 있는 곳 또한 라지기르이다. 스라바스티와 더불어 붓다의 신화가 가장 많이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신화가 많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련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화는 대체로 시련을 이기는 곳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라지기르는 부처님이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생애 마지막 여행으로 라지기르를 출발하여 바이샬리를 거쳐 케살리, 쿠쉬나가르로 떠난다. 라지기르는 석가모니의 역사성을 가장 극명하게 증명해주는 도시이다. 그런 석가모니의 40여 년 간의 흔적을 한꺼번에 돌아보며 나는 한없는 감동에 젖어 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900여 년 후에 라지기르를 방문했던 법현 스님은 이곳에서 법화경을 직접 듣지 못한 자신이 복이 없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법화경을 설한 장소가 아직도 남아 있어 우리가 방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라지기르에 오면 최초의 불교사원 죽림정사를 찾아보게 된다. 동네 청소년들이 크리켓을 하기도 하는 넓은 공터처럼 생긴 구왕사성의 북문 곁에 죽림정사가 있다. 이름 그대로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커다란 연못이 있어 조용히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나, 옛날 붓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죽림정사는 부처님의 생애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부처님은 출가한 후 줄곧 집이 없었다. 죽림정사를 지으면서 부처님께도 집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집에 안주하지 않았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길을 떠난 삶, 그것이 부처님의 삶이었다. 끊임없이 길을 떠나야만 최대한 많은 중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과 부처님의 인연은 특별했다. 부처님이 성도 전 라지기르에서 수행할 적에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으시거든 부디 이 나라에 와서 제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부탁했었다. 보드가야에서 카샤파 삼형제를 교화시킨 부처님은 라지기르의 빔비사라 왕이 생각났다.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야산을 넘어 라지기르로 향했다. 산마루를 넘은 부처님과 제자들은 서남쪽 교외의 평화롭고 한적한 숲의 사당에 머물렀다. 앙가 왕국과 마가다 왕국 백성들의 성소인 그곳에는 종파와 상관없이 수행자들이 머물 수 있도록 편의가 제공되고 있었다. 석가족의 성자가 우루빌라카샤파와 함께 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라지기르 전역에 퍼졌다.

“정말로 고타마가 부처님이 되어 우리나라를 찾아주셨구나. 부처님을 뵙게 되다니 참으로 행복하구나.”

성도 전에 싯다르타를 만난 빔비사라 왕은 그가 훌륭한 수행자임을 금방 알아보았다. 사당 입구에 도착해 수레에서 내린 왕은 맨발로 걸어들어갔다. 그는 부처님 앞에 다가가 발 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빔비사라 왕을 따라온 대신과 바라문들 역시 부처님 두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빔비사라 왕은 깊은 환희심에 젖을 수 있었다. 그는 부처님을 자주 뵐 수 있으려면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 곳을 마련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대한 빔비사라 왕은 식사를 마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이 나라에 오시면 머무실 곳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깨끗하고 많은 사람들이 설법을 들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깨끗하고 조용한 숲이 있으니, 그곳에 머무십시오.”

빔비사라 왕의 청을 수락한 부처님은 제자들과 죽림으로 향하였다. 이렇게 하여 교단 최초의 도량 죽림정사가 창건되었다. 초기에 부처님은 죽림정사에서 많은 포교활동을 하시게 되며, 세 번의 우안거를 보내게 된다.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머무는 동안 사리풋타와 마하목갈라나, 마하카샤파 등 뛰어난 제자들이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며, 체계적인 계율이 제정된다. 죽림정사는 최초의 절이자 불교 교단이 자리를 잡는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죽림정사에 터전을 둔 부처님 교단은 금세 카샤파 삼형제가 이끈 천 명의 비구와 사리풋타와 마하목갈라나가 이끈 이백오십 명의 비구가 더해져 천이백오십 명의 비구로 구성된 큰 승가로 변모하였다. 부처님에게 끊임없이 도전했던 데바다타도 이곳에서 출가하였다. 지금까지 부처님의 법을 방해한 이가 마라였다면, 이제부터는 데바다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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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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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123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50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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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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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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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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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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