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986
[불교신화기행 30] 제7부 1. 스라바스티 가는 길
차창룡    

1. 스라바스티 가는 길

 

 

 

 

2008년 2월 4일(월)

13:30. 고락푸르에서 곤다행 9038번 기차를 탔다. 이 기차는 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렇게 기특한 기차도 있구나. 아침 10시 30분쯤에 쿠쉬나가르에서 합승 택시(1인 30루피)를 타고 고락푸르 역에 도착, 역 앞에 있는 Sip n Dip Restaurant(Bar를 겸하고 있다)에서 최창근씨가 쉬는 동안 나는 옆에서 탈리를 먹었다.

15:40. 오늘 기차는 신났다. 바스티를 지나 이제 곤다가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16:10. 곤다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 차가 어느 역엔가 정차해 있다. 인도에서는 여기가 어디인지를 알기 힘들다. 힌디를 알면 쉬운데 알파벳도 잊어버렸다. 힌디 공부할 책을 가져올걸, 이미 늦었다. 차이 장사들이 줄기차게 지나간다.

16:23. 무슨 역인지 모르겠는데, 상당히 오래 정차해 있다. 오늘도 일찍 들어가긴 그른 것 같다. 나야 괜찮지만, 몸이 아픈 최창근씨를 위해서는 일찍 스라바스티에 도착하면 좋겠는데,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가지 않는 차에 타고 마음은 일찌감치 스라바스티에 도착했다.

16:38. 재출발. 과거를 잊고 과거로 간다.

16:45. 마나카푸르 역에 도착했다. 출발은 아주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차는 늦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부처님이 이 길을 맨발로 걸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편하게 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다시 쿠쉬나가르를 생각한다. 부처님은 쿠쉬나가르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커다란 도시가 될 것이라 했는데, 지금 세계 사람이 오고는 있지만, 큰 도시는 되지 않았다. 그날이 오긴 올 것인가?

16:48. 열차 다시 출발. 동작이 좀 빨라졌다. 멈추어 있는 바깥 풍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떠나가는 기차를 보내고 있다.

16:55. 질라이 역에 도착했다. 기차가 정말 너무 자주 선다. 가는 해를 잡기 힘들고, 천천히 가는 기차에 채찍질하기도 힘들다. 기차가 시간과 함께 멈춰 있다.

부처님은 이 길을 가실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 먼 길을 걸어걸어 가시는 동안 늘 평안하기만 하셨을까? 생각하면 아득하고 또 아득하다.

틈만 나면 쿠쉬나가르를 생각한다. 쿠쉬나가르의 티베트 절에서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티베트 사람들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과연 유목민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여장을 풀면 그곳을 집으로 만들 수 있는 이가 유목민이 아닌가. 부처님이 그랬다. 어느 곳에서나 여장을 풀고 숙소로 삼을 수 있는 진정 길 위의 성자가 부처님이었다. 여행자도 마찬가지여야 하는 것이다. 밤이 되면 길이 곧 집이 되는 것이 여행자의 삶일 것이다.

걱정하지 말자. 세상 모든 길이 나의 집이니, 집 없음을 설워하지 말자.

17:00. 차는 다시 움직인다. 코끼리가 발걸음을 옮기듯이 천천히 간다. 어디를 보나 사탕수수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유채밭이 자주 보인다. 노란 꽃을 보세요. 노란 꽃을 보세요.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유채꽃줄기를 먹고 싶다. 참 달콤한 곳, 참 기름진 곳이다.

스라바스티의 대인스님과 적조행 보살님은 어떻게 달라지셨을까? 생각이 등불을 켜고 과거의 어둠을 비추어준다.

17:07. 기적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또 새로운 역에 도착하는 것일까? 기차역이 아니다. 17:10. 그냥 정차하고 있다. 엔진이 다시 울리다 그친다. 기차도 작동을 멈추었다. 차가 엇갈려 비켜주느라 정차하는 것 같다. 17:11. 기차가 서서히 미끄러진다. 창밖에는 사탕수수가 사탕 사려 하고 바람의 힘을 빌려 외치고 있다. 우리가 먹는 설탕이 이 사탕수수로부터 나왔다니, 갑자기 온몸이 달다. 사탕수수 천지인 곳을 달리고 있으니, 내가 설탕에 절여진 기분이다. 작은 마을이 뒤로 지나간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대체로 한가하다.

17:15. 무티간지 역에 도착했다. 또 한참을 정차하다 가겠지? 어떻게 하나? 이제는 창밖 풍경도 기차도 멈춰 있다. 아무런 생각도 행동도 멈춘 채 삼매에 든 것 같다. 사람들의 입만 부지런히 움직여 서로 얘기하거나 뭔가를 주워먹고 있다.

창밖에 커다란 굴뚝이 보이는데, 무슨 굴뚝인지 모르겠다. 부처님도 이 길을 가실 때 이런 모든 풍경을 보셨으리라. 인간의 간난을 보셨으리라. 그러니 어찌 생을 고통의 바다라 하지 않았겠는가. 고통의 숨결을 도처에서 느끼며 나는 이번 여행을 아픔으로 간직할 것이다. 자기가 고통스러운지도 모르는 고통스런 사람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17:25. 여전히 차가 가지 않는다. 17:27. 차가 낙타처럼 여유있게 움직인다. 마음만 또 스라바스티로 달려간다. 마음은 여러 번 스라바스티에 도착했다. 아, 블록 공장이구나. 블록 공장이 들어서면 이곳도 언젠가는 도시화된다는 얘기다.

17:40. 사탕수수밭 옆에서 또 정차했다. 부처님도 기원정사를 가실 때 바로 가시진 않았을 터이니, 이 기차가 부처님 흉내를 내는 것도 자연스런 일인지 모른다. 아무래도 곤다에서 하룻밤 묵어가야 할 듯싶다.

사탕수수 밭에서 즙을 짜낸 사탕수숫대를 태우고 있다. 야채 커틀렛을 파는 사람, 서모사를 파는 사람, 차이를 파는 사람들로 기차는 풍성하다. 정차시간이 길어질수록 장사치들은 신이 난다. 창밖이 시간을 잡고 있다가 기차가 창밖을 끌고 가면, 또 새로운 역이다. 정말로 작고 조용한 역이다. 이렇게 기차는 느릿느릿 구렁이 담 넘듯 가고 있다.

모기 한 마리 창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창밖에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적소리가 오래, 오래 울렸다. 바부아차크 역이었다. 기차는 여전히 천천히 움직인다. 조금씩 발걸음을 빨리한다. 기적을 길게 다시 울리며 속력을 낼까말까 망설인다. 망설이고 있다. 망설이면서 서서히 걸어간다. 다시 기적소리 길게, 길게, 길게, 길게, 길게, 쉬 멈추지 않는다.

5루피짜리 차이 한 잔 마시고, 거지에게 8루피를 주었다.

나스타 파는 사람도 왔다. 나스타가 뭔지 모르겠다.

18:00. 제법 큰 역에 도착. 아, 이 역이 곤다 정션 역이다. 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스라바스티까지 가기에는 무리다. 곤다에서 하룻밤 자는 것도 좋다. 여행자는 서두를 필요 없다.

두 명의 릭샤왈라가 서로 자기 릭샤 타라고 하는 걸 본 한 신사분이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 난 스라바스티로 가고 있지만, 친구가 몸이 아파 여기서 쉬었다 가야겠다고 말하고 호텔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지금(21:29) 사로나 여관에 와 있다. 최창근씨는 뜨거운 물로 손발과 얼굴을 씻고 곤히 잠들어 있다. 코일로 바케스에 물을 데우니 방이 많이 온화해졌다. 그러나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절대로 피할 수가 없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소음을 견디는 것일까? 소음을 견디는 데는 세계 최고 수준인 듯하다.

크게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힌두교의 찬송가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쿠쉬나가르에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스라바스티에서는 분명 만날 수 있으리라.

모두가 그립다.

 

2009년 2월 5일(화)

곤다는 소음의 도시이다. 어젯밤 웨딩 세레모니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울려대는 기차의 기적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셔터 내리고 올리는 소리, 물건 파는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 아침에는 새소리까지 온갖 소음의 집합장소인 듯하다.

경적소리를 왜 이리 오래 울리는지? 이곳에 도착하는 기차마다 30초 이상을 울려대니, 사람들에게 경적은 삶의 조건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한창이다. 소음이 심하다보니 새의 목청도 많이 커져 있다. 이것들이 모두 살아 있음으로써 생기는 소리이다. 모든 소리가 곧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일 것이다. 셔터 내리는, 셔터 올리는 소리는 천둥소리를 닮았다.

6:46. 기차의 경적이 30초 동안 울리다 서서히 여운을 남기려다가 다시 시작된다.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거칠어 보인다. 아무래도 뜨내기들이 지나다니는 곳이기 때문인 듯하다. 모기 한 마리를 잡았다. 새벽잠을 방해하던 녀석일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서서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셔터 올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훨씬 잦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까마귀의 목소리가 묻힌다. 이 시각에 부처님도, 아니 그 이전에 잠에서 깨셨으리라.

7:00. 최창근씨가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 눈을 감는다. 얼굴이 한결 나아 보인다. 오늘 무사히 스라바스티에 갈 수 있으리라.

8:40. 발람푸르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는 쉽사리 오지 않을 조짐이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스라바스티로 가고 있다. 오긴 올 것이다. 오리라고 믿으면 반드시 온다. 인도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거나 기다림의 훈련이다. 기다리는 법을 잘 배워서 돌아간다면 그것 또한 인도여행의 수확이리라.

11:30. 드디어 스라바스티의 한국절 천축선원에 들어왔다. 한창 공사중인 일주문 지나 들어가니 스님이 나오시는 것이 보였다. 너무도 반가웠다. 스님과는 확실히 보통 인연이 아니다. 법당에 들어가니 적조행 보살님이 불상을 닦고 계셨다. 와, 이렇게 편안할 수가! 오후 내내 스님과 보살님과 방담을 나누었다.

스님은 많이 야위셨으나 건강해 보이셨고, 보살님도 건강하셨다. 확실히 이곳 스라바스티와 나의 인연은 각별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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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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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7] 힌두교 시대의 신 24.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2)
740
41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6] 힌두교 시대의 신 23.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1)
878
40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5] 힌두교 시대의 신 22. 참혹할 정도로 무서운 여신, 검은 피부의 칼리
819
39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4] 힌두교 시대의 신 21. 악마 마히샤를 무찌른 용감한 여신 두르가
777
38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3] 힌두교 시대의 신 20. 코끼리 머리를 한 귀여운 신 가네샤
1072
37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2] 힌두교 시대의 신 19.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의 탄생
772
36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1] 힌두교 시대의 신 18. 쉬바와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2]
990
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398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1056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81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1025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1060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1115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1002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1111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352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82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1017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112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46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57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215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222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88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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