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758
[불교신화기행 32] 제7부 3. 살인자 앙굴리말라의 스투파에서
차창룡    

3. 살인자 앙굴리말라의 스투파에서

 

 

 

 

기원정사(오늘날 ‘마헤트’라 부른다)에서 나와 조금 더 가면 사위성(사헤트)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옛 스라바스티의 성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이곳에 갈 때는 자전거를 가지고 가면 좋다. 나는 천축선원에 있는 스님의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면서 오솔길을 달렸다. 성문 유적지를 지나면 오른쪽에 소브나트라는 자이나교 사원 유적지가 나온다. 이곳을 앙굴리말라 스투파라 착각하기 쉽다. 거기서 약간만 더 가면 앙굴리말라 스투파가 나온다.

어느 바라문의 제자 중에 신심이 깊고 용모가 훤칠한 아힘사카라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이 왕의 초대를 받아 집을 비웠을 때, 오늘 따라 요염하게 차려입은 스승의 부인이 아힘사카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아힘사카, 그대는 참으로 아름다운 청년이에요.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가슴, 탄력 있는 허벅지,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어요. 그대 품에 푹 안기고 싶어요. 우리 나이도 비슷하니 서로 사랑하면 어떨까요?”

의리를 중시하는 아힘사카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승은 아버지와 같고 사모님은 어머니와 같은데,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아힘사카는 얼른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에 스승의 부인은 아힘사카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가 통곡하면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 연유를 묻자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제자 아힘사카가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내 몸을 덮쳤어요. 피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워낙 건장한 젊은이라 꼼짝할 수 없었어요. 이 치욕을 어찌 갚아야 하겠습니까?”

스승은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장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당한 것이 너무도 분했다. 스승은 아힘사카를 아예 파멸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힘사카를 불러서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고 말했다.

“아힘사카야, 너는 나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이제 오직 하나의 비술만 체득하면 된다. 지금부터 오후가 되기 전에 백 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그 사람들 손가락 하나씩을 베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면 비술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가르쳐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아힘사카는 그 길로 만나는 사람마다 죽여서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었다. 오후가 되기 전에 백 명을 채우려면 무척이나 바빴다. 숨가쁘게 달려 그는 정오 직전 99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이제 한 명만 채우면 그는 스승이 말한 비술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아힘사카를 손가락(앙굴리)으로 만든 목걸이(말라)를 하고 다닌다는 뜻에서 ‘앙굴리말라’라 불렀다. 앙굴리말라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소문이 쫙 퍼졌기 때문에 거리에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아들의 소식을 듣고 아들을 찾아 거리로 나왔다. 어머니를 발견한 앙굴리말라는 어머니라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비술만 터득할 수 있다면 죽은 어머니도 살릴 수 있을 거야.”

어머니를 쫓아가려는 순간 부처님이 그 사이에 나타나셨다. 앙굴리말라는 너무도 반가웠다. 어머니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쫓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쫓아가도 부처님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에게 소리쳤다.

“사문이여, 멈추시오.”

이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어 있는데, 그대는 멈추지 못하는구려.”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당신을 죽여서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공부가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신이 앞에서 빠르게 걸어가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이 멈추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여래의 마음은 언제나 스스로 머물러 있거늘, 그대는 스스로 살생의 마음을 내어 악행조차도 멈추지 못하고 있도다.”

이 말을 들은 앙굴리말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앙굴리말라는 눈물로 부처님께 절하였다.

“부처님이시여, 미혹한 마음으로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저 같은 죄인도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다. 스스로 뉘우치면 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총명하고 신심이 깊은 그는 금세 참된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살인의 죄까지 면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가 만든 카르마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앙굴리말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의해 당국에 고발되었고, 마침내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앙굴리말라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의 칼날 앞에 미운 마음도 괴로운 마음도 일으키지 않을뿐더러, 그 죽이려는 사람을 향해 ‘네가 바로 부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말로 보살의 마음이니라.”

이렇게 하여 앙굴리말라는 스라바스티 역사상 가장 큰 죄인이었지만, 가장 추앙받는 성인이 되어 그를 기리는 스투파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2001년 12월 1일(토)

오전에는 사위성과 앙굴리말라 스투파, 수다타 장자 스투파를 다녀와서, 오후에는 아차르 바티 강에 다녀왔다.

기원정사로부터 10분쯤 걸어가니 하나의 스투파가 나왔다. 우리는 이 스투파가 앙굴리말라 스투파라 생각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더 가서 보니 새로운 스투파가 나왔고, 그것이 바로 앙굴리말라 스투파였다. 폐허가 되어서 그 실체를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그 뜻만은 생생하게 전해왔다. 선량한 사람도 엄청난 죄를 지을 수 있고,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도 불법에 귀의할 수 있다는 대승정신이 살아 숨쉬는 탑이었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항상 베풀기를 좋아했던 수닷타. 그는 부처님께 바칠 절을 짓기 위해 제타 태자의 동산에 황금을 까는 정성으로 태자를 감동시켰다. 이러한 신심과 무주상보시를 바르게 실천했던 그분의 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탑이 급고독장자탑이다. 이 탑 역시 폐허가 되었다. 폐허의 탑 위에서 나는 금강경을 읽었다. 수다타 장자의 뜻이 영원히 살아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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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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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948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841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866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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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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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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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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