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885
[불교신화기행 34] 제7부 5. 스라바스티에서 먹은 절밥
차창룡    

5. 스라바스티에서 먹은 절밥

 

 

 

 

첫 번째 인도여행에서 스라바스티는 오아시스와 같았다. 인도음식을 열심히 먹긴 했지만 인도의 향신료에 적응하지 못해 한국음식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스라바스티에 갔었다. 스라바스티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으니 활력이 생겼다. 음식보다도 소중한 것은 대인스님과 적조행 보살님의 신심이었다. 내가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은 그분들의 신심에 크게 감복했기 때문이다. 그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월간 󰡔도선󰡕에 썼던 글을 여기 올린다.

밥이란 참 슬픈 이름이다. 그것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고, 그것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밥은 그만큼 절박한 것이어서, 우리가 이곳에 있게 한 근원, 원초적 물질을 말하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크리티(prakṛiti)와 같은 것이 아닐까. 밥은 세계의 출발점이자,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또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는 에너지인 것이다. 그런 밥이 절이라는 공간에서, 절이라는 수행자들의 집에서 출현했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절은 뭇 사람들의 절박한 염원으로 지어진 수행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의 괴로움을 직접 목격하고 그 원인과 치유에 대한 심각한 고민으로 출가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이후, 그 깨달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 절이 아닌가? 석가모니 당시의 수행승들은 하루 일곱 집에서 탁발한 밥으로 식사를 했으니, 절이라는 공간에 있는 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갸륵한 뜻이 모여 이루어진 음식인가.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져서 일곱 집에서 탁발하여 식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그 정신만은 그대로 전해졌으리라. 절이라는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구축한 수행처이며, 따라서 그곳의 밥은 사람들의 알뜰살뜰한 마음을 탁발하여 지은 아름다운 음식인 것이다. 절에서 밥을 먹는 마음은 그리하여 송구하기 그지없어서 스스로 절박해지고야 만다.

인도 여행을 시작한 지 만 2개월이 되었을 즈음 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금강경을 설하셨다는 스라바스티에 가 있었다. 나름대로는 인도음식을 열심히 먹고 적응하는 훈련을 계속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식점에 들어갈 때마다 “노우 마샬라(향이 강한 인도의 조미료)”라고 목놓아 부르짖곤 했으니, 그만큼 한국음식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그때 찾은 스라바스티의 석가세존사(나중에 ‘천축선원’으로 바뀌었다)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아침마다 먹는 죽, 끼니 때마다 나오는 된장국이나 미역국, 숭늉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았다. 한국에서는 하찮았던 것들에 나의 마음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토록 절박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3주 동안이나 머물렀는데, 그것은 어머니 같은 보살님과 아버지 같은 스님, 인도인으로서 한국불교에 출가한 선재스님이 계셨기 때문이지만, 또 하나의 절박한 원인으로는 절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가세존사에서 먹은 음식 중에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느 날 향이 진한 채소가 밥상에 올라왔는데, 그것은 ‘고수’를 된장에 버무린 것이었다. 보살님께서 고수를 잘 먹게 되면 인도음식에 쉽게 적응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먹어보니 인도 마샬라를 먹을 때의 특이한 향이 입안에 가득 번졌다. 생각해보면 벌써 2개월을 여행한 터이니 이제는 인도음식에 적응해야 할 때도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드셨던 것이고, 신라 때 이곳에 온 혜초 스님도 드셨을 음식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의 절에서 스님들이 자주 드시는 이 고수라는 채소를 취식하는 것으로부터 인도음식 적응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후 자주 고수가 식탁에 올라왔고, 나는 차츰 그 독특한 향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스라바스티를 떠나 계속한 인도여행이 훨씬 힘들지 않게 된 것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에 와서도 향이 강한 다양한 채소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석가세존사에서 먹은 절밥은 절대로 잊지 못할 내 평생의 음식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음식은 그곳에서 스물세 해나 하안거를 보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련하신 것인데, 어찌 절박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고수’라는 채소를 통해 인도음식 적응훈련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다.

나는 웬만해선 절에서 밥을 먹지 않으려 한다. 절에서 밥을 얻어먹고 그만큼 절을 위해 정성을 다하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절에서(또는 불교의 가르침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천만분의 일도 갚지 못할진대, 최소한 스라바스티 석가세존사에서 절밥을 얻어먹을 때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차라리 배고픔을 참는 것을 택한다. 내가 포기한 절밥을, 절에서 고수를 맛보아야만 세상을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혹은 그로 인해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갈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절밥을 이미 먹었으니, 그들을 위해 나도 절밥을 지어서 고수를 반찬으로 올려드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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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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