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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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화기행 39] 제9부 1. 잊을 수 없는 사람과 잊을 수 없는 마을
차창룡    

1. 잊을 수 없는 사람과 잊을 수 없는 마을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 고락푸르에서 우리는 쿠쉬나가르의 수닐 쿠마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인도를 떠납니다. 인도에서 참으로 행복했어요. 특히 당신의 친절은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수닐은 쿠쉬나가르의 티베트 사원 앞에 있는 붓다 카페의 주인이다. 쿠쉬나가르에서 머무는 일주일 동안 우리는 매일 붓다 카페를 들러 한끼 식사를 해결했다. 그의 음식 솜씨는 일품이었고, 매우 친절했다. 그의 아이들도 아주 귀여웠고, 특히 둘째 아르피타는 우리에게 쿠쉬나가르의 문화와 힌디를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그래, 잘 가시오. 인도에 다시 오거든 꼭 쿠쉬나가르에 들르시오. 그때는 내가 한국음식을 해드리리다.”

2001년 11월 13일 우리는 바라나시에서 고락푸르 행 기차를 탔다. 석가모니도 이 길을 따라 쿠쉬나가르로 갔을 것이다. 45년 동안 끊임없이 전도 여행을 다녔던 석가모니는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이 생애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오후 1시 20분 기차였는데, 연착해서 3시에 기차가 왔다. 고락푸르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다. 두 달이 다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인도에 적응하지 못했다. 밤중에 배낭을 메고 나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 웨이팅 룸에서 새우잠을 잤다. 웨이팅 룸에는 많은 여행객들과 노숙자들이 잠들어 있거나 쉬고 있거나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 중에서는 석가족의 후예도 있으리라.

새벽에 일어나서 우리는 서모사(만두처럼 생긴 밀가루 음식) 몇 개를 먹고 쿠쉬나가르로 떠나는 버스를 찾았다. 버스가 다가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뛰려 했지만, 무거운 배낭이 내 몸을 잡아당겼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버스에 빨려들어갔다. 배낭을 두 개씩 짊어지고 있는 우리는 뒤뚱뒤뚱 천천히 버스에 올랐다. 인도 청년 한 명이 우리를 부르더니 자기 자리에 앉혔다. 그 옆자리도 비어 있어서 나와 아내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너도 피곤할 텐데 내가 일어서겠다 했더니, 고개를 잘래잘래 저었다. 자기는 금방 내린다는 것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대단히 외향적이고 호기심이 많다. 외국인을 보면 멀리서도 쫓아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보고, 아울러 종교를 물어본다. 그런데 이 청년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내가 오히려 그에 대해 궁금해졌다.

“너의 종교는 무엇이냐?”

“무슬림입니다.”

그 말만을 남기고 청년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이 친구는 인도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내성적인 성격인 듯했다. 속으로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무척 궁금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온 부디스트다.”

그가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는 서로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지금은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수첩에 적어두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 오랫동안 지녀오던 그 수첩을 나도 모르는 새에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친절하고 착한 얼굴은 지금도 삼삼하게 떠오른다.

쿠쉬나가르는 성지 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많아져 차츰 관광지의 풍모를 갖춰가고 있지만, 아직은 조용한 곳이었다. 사방은 풀밭이거나 사탕수수밭이었다. 풀벌레 소리가 적막을 감춰주고 있었으며, 바람이 허허벌판을 채워주었으며, 구름이 드넓은 하늘을 심심치 않게 해주었으며, 풀밭을 잘 보면 민달팽이가 맨발로 힘겨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숙소가 몇 군데 없었다. 한국 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스님이 계시지 않아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론리플래닛이 소개한 싼 숙소인 인터내셔널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전압이 불안정해 물 끓이는 코일이 고장났다. 우리는 겁이 나서 노트북을 켤 수 없었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하루 종일 죽음 같은 잠을 잤다.

다음날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붓다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는 숙소로 가서 끙끙 앓았다. 오늘은 니르바나 템플에 누워 계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고 싶었으나, 나의 몰골이 너무 처참했다. 하루 기차 여행에 하룻밤 한뎃잠을 잤는데도 이리 피곤한데, 날마다 노숙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석가모니도 늘 한뎃잠을 자지 않았던가. 한데서 자는 수행자들을 위해 절을 지으니, 그것이 라지기르의 죽림정사요, 스라바스티의 기원정사였다.

쿠쉬나가르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에야 니르바나 템플을 방문했다. 폐허의 승원 한쪽에 하얀색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를 잡았다. 사원 주위에 살라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지만, 석가모니 당시에 있었던 나무는 아니다. 사원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누워 있는 불상이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짜 육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의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토록 인간적인 부처님이었구나. 아니 부처이기 전에 인간이었구나, 부처님을 향한 나의 정은 거의 육친을 향한 것이었다.

부처님은 북쪽을 향해 머리를 두고 옆으로 편안히 누워 계셨다. 황금 담요를 두르고 계셨고, 오른손은 살짝 얼굴을 받치고 계셨다. 오른손 바로 앞에 네팔의 국화 랄리구라스 몇 송이가 화려한 색깔로 놓여 있었다. 발은 경전에 나온 대로 평발이었으며, 두 다리 인대 사이에 연꽃이 살포시 자리를 잡았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 석가모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리석은 중생들과 뛰어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 마지막 가르침이 이곳 쿠쉬나가르에서 행해졌으니, 그것이 바로 열반경이다.

라지기르의 영취산에서 묵고 있던 석가모니는 날란다를 거쳐 파트나에서 가르침을 베푼 후 코티 마을, 나디카 마을, 바이샬리를 거쳐 벨루바 마을에 갔다. 벨루바 마을에서 석가모니는 육신에 병이 들었다. 병중에도 석가모니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여러 마을을 거쳐 석가모니는 파바 마을에 도착하여 대장장이 춘다가 소유하고 있는 망고 동산에서 잠시 쉬었다. 춘다가 부리나케 달려와 말했다.

“부족하지만 제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춘다가 차린 음식 중에 스카라 맛다바(연한 돼지고기 요리라고도 하고, 전단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으로 만든 요리라고도 전한다)라는 귀한 요리가 있었다. 스카라 맛다바를 본 석가모니가 말했다.

“춘다, 그 스카라 맛다바는 모두 내게 가져오도록 해라.”

춘다는 모든 스카라 맛다바를 석가모니에게 바쳤다. 식사가 끝난 후 석가모니는 춘다에게 말했다.

“이 남은 스카라 맛다바는 구덩이를 파서 묻어라. 이 음식을 완전하게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여래 외에는 없느니라.”

그날의 스카라 맛다바에는 악마가 몰래 독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이를 알아차리고 그 음식을 본인이 소화했다. 부처에게 악마의 독은 독이 아니라 오히려 약이 될 수 있었다. 어린 크리슈나를 죽이려고 여악마 푸타나는 자신의 젖에 독을 넣은 후 크리슈나에게 젖꼭지를 물렸다. 비쉬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에게 악마의 독은 독이 아니라 약이었다. 크리슈나는 독젖을 맛있게 먹었다. 그 힘이 얼마나 셌던지 푸타나의 온몸이 젖꼭지를 통해 크리슈나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붓다에게도 악마의 독은 독이 아니었으나, 붓다가 악마의 독을 젖으로 만들 경우 그것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된다. 악마의 목표는 석가모니가 육신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악마의 독을 약으로 만들어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악마는 끊임없이 쇠약한 부처를 유혹했다.

석가모니는 스카라 맛다바의 독을 그대로 독으로 받아들였다. 춘다는 서둘러 남은 스카라 맛다바를 구덩이에 묻고는 석가모니에게 절을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석가모니는 기쁘게 춘다에게 가르침을 베풀고는 일어났다.

춘다의 집을 나온 후 석가모니는 스카라 맛다바의 독이 온몸에 퍼지면서 병이 깊어졌다. 피가 섞인 설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석가모니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아난다야, 이제 쿠쉬나가르로 가자.”

쿠쉬나가르로 가는 도중에 석가모니는 한 나무 밑에서 멈추었다.

“아난다야, 가사를 네 겹으로 깔아라. 조금 쉬어야겠다.”

아난다는 석가모니의 말씀대로 나무 아래에 가사를 깔았다. 석가모니야말로 고대의 노숙자였던 것이다. 그는 이불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 고생을 그는 사서 한 것이며, 그리고 그 고생이야말로 진정한 환희라고 가르쳤던 것이어서, 어쩌면 고생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은 목이 말랐다. 붓다의 정신으로도 육신의 목마름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부처가 신이 아니라 인간임을 보여주는 목마름이다. 석가모니가 아난다에게 부탁했다.

“아난다야, 물 좀 떠다 다오. 몹시 목이 마르구나.”

“세존이시여, 저 앞에 흐르는 시냇물은 바야흐로 오백 대의 수레가 지나갔기 때문에 흙탕물이어서 드실 수 없습니다. 다행히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카쿠타 강이 있습니다. 그 강에 가면 물도 마실 수 있고, 목욕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다시 한번 부탁했다. 아난다는 또 같은 대답을 했다.

석가모니가 세 번째로 부탁하니, 아난다가 일어나 시냇가로 갔다. 그런데 시냇물은 깨끗했다. 지금 막 5백 대의 수레가 지나간 개울이 아니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하도다.”

아난다는 합장한 후 공손히 물을 길러서 석가모니에게 드렸다. 기운을 차린 석가모니는 길을 떠나 카쿠타 강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춘다의 집에 들러 죄스러워하는 대장장이 춘다를 위로하고 입멸의 땅 쿠쉬나가르를 향했다.

“아난다야, 이제 히란야바티 강 맞은편 언덕 쿠쉬나가르 외곽의 살라 나무 숲으로 가자.”

살라 나무 숲에서 석가모니는 말했다.

“아난다야, 이 한 쌍의 살라 나무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향하도록 자리를 깔아라. 누워서 쉬고 싶구나.”

아난다가 마련한 자리에 석가모니는 오른쪽 허리를 아래로 하고 발을 겹쳐 누웠다. 석가모니는 이제 육신을 떠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이때 살라 나무에 갑자기 꽃이 피더니, 꽃잎이 한잎 한잎 날다가 석가모니의 몸 위로 떨어졌다. 꽃잎이 떨어져 스승의 몸 위로 떨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난다는 눈물을 흘렸다. 제자 아난다는 석가모니의 조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속세의 혈육은 의미가 없었다. 제자 중에는 석가모니의 아들 라훌라도 있었으나, 석가모니의 임종을 끝까지 지킨 이는 아난다였다.

“스승이시여, 어찌하여 이곳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시옵니까?”

석가모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래가 태어난 곳은 북쪽의 룸비니이고, 깨달음을 얻은 곳은 동쪽의 보드가야니라. 최초의 설법지는 서쪽의 사르나트이다. 이 세 곳의 중간에 쿠쉬나가르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여래와 인연 있는 곳을 보면 깊은 신심을 일으킬 것이요, 입멸지에서는 부처의 육신마저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세존의 은혜가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세존의 유해를 어떻게 모시면 좋겠습니까?”

“아난다야, 너희 출가자는 여래의 유해를 모실 생각은 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출가 본래의 목적을 위해 바른 마음으로 노력하면 되느니라. 신앙심 깊은 왕족이나 사제들이 여래의 유해를 모실 것이니라.”

아난다는 석가모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픔이 더욱 북받쳐올랐다. 눈물로 인해 먼 산과 하늘이 물방울로 보였다.

“세존이시여, 쿠쉬나가르 같은 작고 외진 마을에서 열반에 들지 마시고, 더 큰 도시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쿠쉬나가르는 결코 작은 마을이 아니니라. 이 마을은 먼훗날에는 전세계와 우주로 통할 것이니라.”

석가모니가 누워 있는 동안 많은 수행자들이 찾아왔다. 석가모니를 친견하기 위해 찾아온 수밧다(Subhadda)라는 이름의 고행자가 아난다에게 알현을 거절당하는 것을 알게 된 석가모니는 그 고행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석가모니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아난다는 스승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입멸하신 후에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여 가르침을 구해야 한단 말입니까?”

“아난다야, 슬퍼하지 말아라.”

석가모니는 아난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베풀었다. 석가모니 주위에는 시방세계의 수많은 신들이 모여 배알했다고 경전은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석가모니가 아난다에게 베푼 마지막 설법은 아난다뿐만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신을 비롯하여 모든 유정(有情)에게 베푼 가르침이었다.

“이별이란 우리에게 가깝고 소중한 모든 것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나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포함하고 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아난다야, 너 스스로를 너의 섬으로 삼고, 또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을 너의 의지처로 삼아서 살아라. 법을 너의 섬으로 삼고, 법을 너의 의지처로 삼아라. 그 밖의 어느 것도 너의 의지처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섬의 기원어는 ‘등(燈)’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 설법을 줄여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으로 번역했다.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뜻이다.

죽음이 한발 더 다가오자 석가모니는 비구들에게 수행하는 일에 의문난 사항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말했다. 미혹에서 벗어난 비구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석가모니는 다시 두 번을 더 물었다.

“의심이 가는 것이 있으면 물으라. 여래가 마지막으로 대답해줄 것이니라.”

사방은 여전히 침묵이었다. 꽃잎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고, 구름도 정지했고, 풀벌레도 울음을 멈추었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럼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그대들에게 말하겠다. 만들어진 모든 것은 변해간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여 너희들의 수행을 완성하라.”

 

나는 조용히 석가모니의 최후를 생각했다. 그의 신통력이라면 생명을 더 연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었고, 그리하여 그의 가르침은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니르바나 템플에서 하루를 꼬박 보낸 날 저녁 우리는 붓다 카페에서 김치를 담그고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석가모니를 만나고 이미 배부른 내가 음식을 탐하고 있었다.

수닐 쿠마르의 가족과 우리는 마치 한가족처럼 모여서 식사했다. 라면에 고춧가루를 풀었기 때문에 제법 매웠다. 아르피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춧가루를 넣은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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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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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2] 제7부 3. 살인자 앙굴리말라의 스투파에서
791
74
2010.03.09.
[불교신화기행 31] 제7부 2. 기적의 땅 스라바스티와 기원정사
903
73
2010.03.09.
[불교신화기행 30] 제7부 1. 스라바스티 가는 길
935
72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9] 제7부 기원정사의 땅 스라바스티 (여는 글)
682
71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8] 제6부 4.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852
70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7] 제6부 3. 원숭이의 꿀 공양을 받은 부처님
1041
69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6] 제6부 2. 유마거사를 생각하다
921
68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5] 제6부 1. 암라팔리의 육탄 공격
923
67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4] 제6부 유마거사의 고향 바이샬리 (여는 글)
873
66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2] 제5부 4. 영취산에 올라
859
65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3] 제5부 5. 칠엽굴과 아난다
821
64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1] 제5부 3. 빔비사라 왕의 비극
866
63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0] 제5부 2. 데바다타와의 악연
884
62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9] 제5부 1. 죽림정사에 오다
863
61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8] 제5부 법화경의 설법지 라지기르 (여는 글)
761
60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7] 제4부 2. 최초의 승가 탄생
799
59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6] 제4부 1. 사슴동산의 기적 [2]
978
58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5] 제4부 최초의 설법지 사르나트 (여는 글)
740
57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4] 제3부 4. 보리수 나무 아래서 - 보드가야 대첩
1020
56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3] 제3부 3. 수자타 마을 [2]
982
55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2] 제3부 2. 깨달음을 얻기 전에 오른 산, 전정각산과 가야산
919
54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1] 제3부 1. 보드가야 오는 길
1022
53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0] 제3부 깨달음의 땅 보드가야 (여는 글)
650
52
2010.03.08.
[불교신화기행 9] 제2부 3. 붓다의 진정한 고향 카필라바스투
1054
51
2010.03.08.
[불교신화기행 8] 제2부 2. 부처님의 어머니
1048
50
2010.03.08.
[불교신화기행 7] 제2부 1. 부처님이 길에서 태어난 까닭은?
1002
49
2010.03.08.
[불교신화기행 6] 제2부 붓다의 고향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 (여는 글)
734
48
2010.03.08.
[불교신화기행 5] 제1부 2. 과거에도 부처님이 있었나?
857
47
2010.03.08.
[불교신화기행 4] 제1부 1. 붓다는 과연 비슈누의 아홉번째 화신일까?
1010
46
2010.03.08.
[불교신화기행 3] 1부 붓다가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고? (여는 글)
692
45
2010.03.08.
[불교신화기행 2] 차례
705
44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 머리말 - 또 떠날 때가 되었다 [3]
725
43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8(끝)] 힌두교 시대의 신 25. 죽음의 여신 야마와 갠지스 [10]
977
42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7] 힌두교 시대의 신 24.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2)
703
41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6] 힌두교 시대의 신 23.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1)
788
40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5] 힌두교 시대의 신 22. 참혹할 정도로 무서운 여신, 검은 피부의 칼리
789
39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4] 힌두교 시대의 신 21. 악마 마히샤를 무찌른 용감한 여신 두르가
749
38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3] 힌두교 시대의 신 20. 코끼리 머리를 한 귀여운 신 가네샤
1010
37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2] 힌두교 시대의 신 19.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의 탄생
749
36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1] 힌두교 시대의 신 18. 쉬바와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2]
938
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290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1009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53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979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1008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1070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915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1066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231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58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995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027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21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28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147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175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192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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