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1159
[불교신화기행 40] 제9부 2. 붓다의 화장터 라마바르 스투파에 오르다
차창룡    

2. 붓다의 화장터 라마바르 스투파에 오르다

 

 

 

 

편안하게 숨을 거둔 석가모니의 임종은 아름다웠다. 그날을 북전(北傳)에서는 2월 15일, 남전(南傳)에서는 베사카 달의 보름이라 한다. 베사카 달은 인도의 달력으로는 둘째 달이고 보름은 15일이므로 실제로는 같은 날이다. 한국에서는 음력 2월 8일을 열반절로 기린다.

일주일 후 그의 시신은 쿠쉬나가르에서 살고 있는 말라 족에 의해 화장되었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포함한 유물을 놓고서 말라 족과 마가다・베살리・카필라바스투와 같은 몇몇 왕국 지도자들의 사절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은 도나(Dona)라는 늙은 사제에 의해서 해결되었다. 서로 사리를 많이 확보하려는 여러 왕국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도나는 평화를 설파했던 분의 유물을 놓고 싸워서는 안 된다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합의를 통해 석가모니의 사리는 여덟 부분으로 나뉘었다. 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그 유물을 안치하고서 석가모니의 유덕을 경모하는 구조물을 세웠는데, 이것이 스투파(stupa), 즉 불탑(佛塔)이다.

우리는 최초의 불탑인 라마바르 스투파를 구경했다. 스투파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르피타와 베네주엘라 아가씨와 아내,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걸어서 갔다. 곳곳에 사탕수수밭이 있었고, 가끔 사탕수수를 잔뜩 실은 수레가 지나갔다.

한적한 길가에 있는 차이(tea) 가게에서 차 한잔씩을 마시고 뙤약볕을 다시 걸었다. 한참을 가니 설탕을 만드는 공장이 나왔다. 사탕수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불을 때고 설탕 덩어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이 게으른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매우 부지런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하고 신에게 예배한 후 새벽부터 일을 한다. 섭씨 40도 이상 오르는 시간에 잠깐 오수를 취한 후 다시 일을 시작한다.

한참을 더 가니 거대한 소똥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의 탑이 보였다. 붉은 벽돌을 쌓아서 만든 탑이었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만든 소박한 형태의 탑이었다. 이곳에서 석가모니의 다비식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열반 소식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행하던 수제자 마하카샤파에게 전해졌다. 마하카샤파는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그래도 며칠이 흘렀다. 다비식 준비가 끝나자 사제들은 나무에 불을 지피려 했다. 그러나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았다. 쏘시개를 철저하게 준비해서 불을 붙여도 소용없었다. 사제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마하카샤파가 도착했다. 스승을 떠나보낸 마하카샤파의 표정은 비감했으나, 그는 슬픈 표정을 짓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신 그의 얼굴은 굳센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스승이시여, 진정 이렇게 가시렵니까?”

“사랑하는 제자야, 지금이야말로 내가 가야 할 때이니라. 참으로 아름다운 한때였다. 이제는 네가 세상의 가르침이 되거라.”

“스승이시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 비구들은 스승의 말씀대로 수행을 완성하겠습니다. 스승의 말씀을 널리 전하겠습니다.”

마하카샤파는 스승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관에서 석가모니의 두 발이 불쑥 나왔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합장했다. 석가모니가 다시 발을 집어넣자, 나무에 불이 붙었다. 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타올랐다. 세상의 모든 별빛이 다비식에 참여한 나무와 함께 타올랐다.

라마바르 스투파는 소박했다. 소박하고 소박하여 정겨웠다. 아르피타가 탑에 올랐다. 탑은 어린 소녀의 장난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나는 합장하고 스투파를 세 바퀴 돌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르피타가 다녔다는 학교를 보았다. 학교는 학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초등학교를 마친 아르피타는 지금 학교를 쉬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수닐 쿠마르에게는 큰일이라고 했다. 수닐은 카페를 키워서 PC방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컴퓨터가 너무 비싸다고 했다.

나는 붓다 카페 아이들에게 노트 몇 권을 비롯하여 학용품을 사주었다.

다음날 쿠쉬나가르 동쪽의 제법 큰 마을인 카시아에 갔다. 너무도 조용했던 쿠쉬나가르에서 카시아로 나오자, 생기가 느껴졌다. 돌아오는 릭샤에서 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가 자연스럽게 반야심경을 암송했다.

구경할 곳은 쿠쉬나가르 박물관만 남았다. 일본인이 만든 깔끔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박물관 내부에는 모조품만 있었다.

쿠쉬나가르에 온 지 9일째 되는 날 우리는 라마의 고향 아요디야로 가기 위해 페자바드로 떠났다.

멀리서 아르피타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로부터 약 넉 달 후 나는 인도를 떠나면서 쿠쉬나가르를 생각했다. 쿠쉬나가르는 석가모니의 열반상 외에는 특별히 구경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곳에는 여느 곳과는 다른 기가 흐르고 있었다. 쿠쉬나가르를 지나가는 바람이 달랐고, 곳곳에 뿌리를 내린 풀과 나무도 달랐고, 풀밭을 기어다니는 민달팽이도 달랐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랐다. 그것은 근본적인 슬픔을 담고 있는 눈빛인 듯하면서도 한없는 평화를 담은 눈빛이자 꿈꾸는 눈빛이었고, 커다란 호수와 높은 산과 깊은 바다와 드넓은 하늘을 담은 눈빛이었다. 그 눈빛들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목욕하고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는 사탕수수 밭이나 사탕수수 공장으로 간다. 흰소가 길을 따라 나선다.

이곳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왜 석가모니는 이곳이 먼훗날 세계와 통하리라고 했을까?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이곳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뜻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랫동안 평화로운 도시이기만 했던 쿠쉬나가르에 일본 사람들을 필두로 하여 동양의 불교신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 사람들이 모여 한없는 평화와 한없는 사랑을 구경하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한없는 슬픔을 발견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석가모니의 뜻을 보기 위해 눈을 크게 뜨거나 눈을 감는다.

나는 눈을 감고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었던 그 살라 나무 밑을 생각하고는, 눈을 떠 마지막으로 쿠쉬나가르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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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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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123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50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59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220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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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98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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