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788
[내가 본 인도영화 4] 그래도 그들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파나Fanaa(사랑의 파멸)> *강추
차창룡    

파나Fanaa(사랑의 파멸)

 

감독 : 쿠날 코흘리

주연 : 아미르 칸(레한 역), 까졸(주니 역)

 

 

<옴 샨티 옴>에서 샨티와 옴이 죽을 때 영화가 끝난 것같이 느껴지지 않으셨습니까? 왜 이리 일찍 끝나나 하고 의아해했는데, 그때부터 영화는 시작되었지요.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가지니>라는 영화에서도 그렇습니다. 왜 이리 일찍, 허무하게 끝나버리나 하고 허탈해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다시 시작됩니다. 이 영화 <파나>도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도저히 해피엔딩은 될 수 없겠다 했는데, 살펴보니 인도영화 중에서도 해피엔딩 아닌 영화도 꽤 많더군요.

 

여주인공 주니는 맹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히말라야 산맥이 가지를 뻗은 스리나가르의 산악마을에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어여쁜 처녀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맹인인지라 델리 구경을 해본 적이 없었지요. 이제 배우자를 만날 나이도 되었으니, 그녀의 부모는 딸에게 델리 여행을 보내줍니다.

 

델리 여행을 해보신 분들, 주니와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보시지요. 꾸뜹미나르, 레드포트, 후마윤의 무덤, 인디아게이트, 대통령궁, 뉴델리역의 풍경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꾸뜹미나르는 제가 인도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갔던 곳으로, 그곳을 가면서 숨을 돌려 인도를 여행할 힘을 얻게 되었던 곳입니다.

 

주니는 여행 가이드인 레한 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맹인이었기에 아마도 (부모 외에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중에 따뜻하게 대해주는 델리 청년은 시골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레한 칸은 주니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필시 신의 장난일 거요. 당신의 아름다운 눈이 사악한 것을 보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신께서 가져가버린 것이죠.”

 

시를 읊는 듯한 레한의 말은 역시 시적인 처녀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놓고 맙니다. 밀고당기는 사랑의 장난(이런 장난이 제법 재밌기도 하죠) 끝에 두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됩니다. 레한은 주니의 눈을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병원에 데려가는데, 치료 끝에 주니는 시력을 얻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주니는 레한에게 역에 가서 부모님을 마중해달라고 부탁하지요. 그것이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놓게 됩니다. 아니 그 운명은 레한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이긴 하지만요.

 

레한이 역에 간 사이 역과 대통령궁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납니다. 주니는 눈을 찾았지만, 레한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대가로 눈을 얻게 된 셈이었지요.

 

그렇게 허망하게 1부가 끝나버립니다.

지금부터 20분간 휴식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가 20분 쉬는 동안 영화에서는 7년이 흘렀습니다. 2부에서도 당연히 아미르 칸이 나오겠지요. 어떻게? 1부에서 죽지 않았나요? <옴 샨티 옴>에서 옴(샤룩 칸 분)이 환생해서 다시 나온 반면에, 레한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럼, 주니가 확인한 레한의 타다 만 목도리는 가짜였단 말입니까?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화 속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레한은 엄청난 실력의 테러리스트였습니다. 그는 카슈미르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군이었습니다. 카슈미르는 실제로 인도에도 파키스탄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국가가 되기를 원하지요.

 

레한의 임무는 가공할 폭탄의 발사기를 인도군으로부터 빼앗아 독립군에게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발사기를 획득하였으나 부상을 입은 그는 민가에 들어가는데, 하필이면 그곳이 주니의 집이었습니다.

 

주니는 레한을 잃고, 자신이 레한을 죽였다고 자책하면서 둘 사이에 낳은 아들과 함께 고향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주니의 어머니가 죽었지만, 그녀의 가정은 레한 2세와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인도군은 레한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레한을 향한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레한이 아무리 뛰어난 테러리스트라 해도 그 포위망을 뚫고 임무를 수행한 후 목숨을 온전히 부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결국 레한이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해도 이 영화는 비극이고,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이 영화는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인도인들을 이렇게 싸우게 만들고 있을까요?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도는 더 심각한 분단국가입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인디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로 분할되었으니까요. 특히 인디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면서 일어난 비극은 인도의 모순이자 세계의 모순이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서로 합치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다만 무슬림이 많은 인도의 카슈미르, 시크교도가 많은 펀잡 등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곳뿐만 아니라는 것은 2008년 뭄바이 테러에서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2002년도이던가요, 아흐메다바드에서도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 500명 이상이 사망했지요.

 

인도 곳곳이 극심한 종교분쟁으로 피비린내가 멈출 날 없습니다. 인도만이 아니죠. 오죽하면 제3차 세계대전은 종교전쟁일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탄생한 종교가 오히려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주니가 믿는 것은 오직 ‘사랑’이랍니다. 사랑이 그녀의 신입니다. 어쩌면 기독교인이 믿는 신도, 무슬림이 믿는 신도 ‘신격화된 사랑’ 아닙니까? ‘사랑’이라는 신일지라도 ‘나의 사랑’만이 진정한 신이라는 독선은 사실상 ‘악마’가 됩니다.

 

심각한 이야기는 이하 생략! 영화 보시면서 눈물 많이 흘리시고, 새해에는 눈물 흘리는 일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확인하려는 맹인 주니의 표정은 잊을 수 없습니다. 영화 <블랙>의 주인공(이름이 뭐였더라? 흔한 인도 여자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의 표정과 비교해볼 만합니다. 연기 정말 좋습니다. 청각과 촉각으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장님의 마음이 소름 끼치도록 느껴지는 표정과 몸짓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주니가 속삭이는 사랑의 밀어를 되새겨봅니다.

“그대의 마음에 나의 호흡이 쉴 곳을 만나길 / 그대의 사랑 안에서 나의 삶이 다하길.”

샨티 샨티 샨티!


                       

김태형 2010.12.30. 1:31 am 

동명 스님, 마음이 지옥인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차창룡 2010.12.30. 2:57 pm 

도대체 무엇이 인도인들을 이렇게 싸우게 만들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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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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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66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1001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040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30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34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197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203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19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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