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1018
[내가 본 인도영화 18] 인도에서 상영 금지된 퀴어 영화, <불 Fire>(1996)
차창룡    

영화 <불 Fire>(1996)

 

감독 : 디파 메타(Deepa Metha)

기본정보 드라마 | 캐나다, 인도 | 104| 개봉 1997.05.10
감독 디파 메타
출연 샤바나 아즈미(라다 역), 난디타 다스(시타 역), 쿨부샨 카르반다(아쇼크 역), 자비드 자페리(자틴 역), 란지트 초드리(문두 역)... 더보기

 

인도여행가(이런 직업도 있었네요?) 조수진씨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흔히 동양의 베니스라고 찬탄받는 호수의 도시 우다이푸르와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일컬어지는 라다크로 가는 여행길을 카메라에 담았더군요. 라다크 가는 길을 밟은 한 피디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여기 와서 보니, 내가 관념 속에서 생각한 인도는 사실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도는 넓고도 깊습니다. 단순한 일반론으로 인도를 정의할라치면 어느새 전혀 다른 인도가 보이곤 합니다.

인도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영화는 (모두) 해피엔딩이다, 권선징악이다, 판타지가 강하다, 뮤지컬을 포함하고 있다 등의 진단이 대체로 맞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 비중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게 인도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인도는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잘 팔리는 영화만 보다보면 인도영화는 거의 비슷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인도영화의 세계에 깊이 발을 디디면 전혀 다른 세계가 보입니다. 가령 디파 메타 감독의 <파이어> <어쓰 Earth>* <워터 Water> 등 이른바 '원소(elements)' 3부작만 하더라도 인도영화의 일반적인 법칙과는 거리가 먼 작품입니다. 이 영화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권선징악도 해피엔딩도 아니며, 뮤지컬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파이어>는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인도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국내 상영이 금지된 작품입니다. 주인공들의 이름은 라다와 시타입니다. 아시다시피 라다는 비슈누의 여덟번째 화신인 크리슈나의 애인이고, 시타는 일곱번째 화신인 라마의 아내입니다. 시타가 정숙한 여인을 상징한다면, 라다는 다정한 연인을 상징한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주인공들의 성격이 신화 속 시타와 라다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름이 담고 있는 신화적 인물들의 성격이 투영되었다고는 볼 수 있겠습니다.

 

<라마야나>에서 라마의 아내 시타는 악마 라바나에게 납치되어 오랜 동안 라바나의 왕국인 랑카(오늘날 스리랑카)에서 보내게 됩니다. 라마는 아내를 구출하기 위해 대대적인 작전을 펼친 결과 원숭이 하누만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라바나를 물리치고 아내를 구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아내를 구한 다음이 문제가 되지요. 아내를 구했지만, 오랫동안 적장의 집에 유배되어 있었으니 아내의 정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시타는 불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불 속으로 뛰어들어도 불의 신 아그니의 보호 아래 그녀가 무사하다면 그녀는 순결한 것이고, 순결하지 않다면 재가 되어버리는 것이었지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시타는 무사했습니다. 그녀의 순결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시타는 의심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숲으로 유배되게 된다는 이야기가 영화 속의 극에서 상연됩니다.

 

 

현실 속에서 라다와 시타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영화 속에서 라다는 아쇼크의 아내로 시증조모인 비지를 극진히 모시고 사는 효부에 해당합니다. 아쇼크는 종교인에 가까운 이로 금욕적인 삶을 사는 건실한 힌두교인입니다. 라다는 난소에 난자가 없어서 아기를 낳지 못합니다. 힌두교인들에게 아기를 낳지 못하는 아내는 소박맞아도 싸지만, 정신적인 가치를 중히 여기는 아쇼크는 그런 아내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금욕을 실천하기 위해 아내의 욕망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불찰이라면 불찰이었겠습니다. 두 사람이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남편의 금욕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실험에 불과했습니다.

 

아쇼크의 동생 잔티는 형과는 달리 성적인 욕망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아내 시타보다는 정부인 줄리를 더 사랑했습니다. 아내 시타와의 관계는 의무적인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시타는 정신적으로 의존하던 동서 라다에게 육체적인 매력까지 느끼게 됩니다. 라다와 시타는 결국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 날 아쇼크는 하인 문두의 제보로 라다와 시타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라다와 시타는 이 집에서 더이상 살 수 없음을 느끼고 함께 떠나기로 합니다. 비가 오는 밤 시타는 니자무딘 역의 사당(Shrine)에서 라다를 기다립니다. 라다는 남편 아쇼크에게 통보한 후 같은 장소에 오기로 했습니다.

 

아쇼크는 라다를 설득하려 합니다. "욕망은 신에게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것이오. 욕망은 진리에 의해 제거될 수 있소. 스와미지(아쇼크의 스승)의 도움을 받읍시다."

그러나 라다는 말합니다. "나는 이제야 나의 존재 이유를 알았어요. 욕망 없이 나는 존재할 수가 없어요. 시타를 통해서 나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어요. 그녀의 온기가 나의 삶에 어떤 원기를 불어넣어주는지 확인했어요.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였어요."

격분한 아쇼크가 라다를 밀치자, 가스불이 라다의 치마에 옮겨붙었습니다. 그렇게 불이 타오르면서,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온 유채밭 장면이 다시 나옵니다. "엄마, 바다를 보고 싶어요." "라다, 눈을 가만히 뜨고 보렴. 바다가 보일 거야." "엄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이것은 과거의 대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가면서 펼쳐지는 유채밭에서 소녀 라다는 말합니다. "나도 볼 수 있어요. 바다가 보여요. 나도 바다를 볼 수 있어요."

 

나는 라다가 불에 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라다가 불의 심판을 받는 것인가? 그러나 라다는 무사했습니다. 불의 심판에서 무사했다는 것은 라다가 죄가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기진맥진한 채로 라다는 니자무딘 역의 사당으로 갑니다. 기다림에 지쳤던 시타가 그녀를 껴안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욕망! 인간의 욕망! 그중에서도 성적 욕망!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일까요? 그 욕망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예를 들면 매춘부, 여관업, 룸살롱 등)도 많고, 그 욕망 때문에 파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인간의 성적 욕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정답은 없을 겁니다. 부처님 말씀마따나 중도가 옳지 않겠습니까? 지나친 욕망 추구는 파탄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지나친 금욕은 세상을 불모지로 만들 것입니다. 어찌됐건 정답은 없지만,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 예를 들면 부부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욕망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홍성진 영화해설(네이버 펌)

캐나다와 인도의 합작품으로, 인도 사회내의 레즈비언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디파 메흐타 감독의 3번째 작품. 인도 사회에서의 전통과 현대적 가치의 갈등을 보여줌과 동시에 가부장적 권위와 질서안에서 억압되고 침묵하는 여성의 삶을 여성 사이의 연대를 통하여 구원하고자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사회와 별 다를바 없는 사회구조와 인식이 이 영화를 더욱 공감하게 한다. 두 여인은 페미니스트 문화 속에서 그들의 독립을 주장하는 투쟁을 벌인다.

 이 영화는 레즈비언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인도내 상영이 금지되고 극장이 테러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반면, 그 해 인도에서 사상 초유의 해적판 DVD 판매 실적을 올렸다고. 이 영화로인해 감독은 회교도의 나라 인도에서 원리주의 신도들을 비롯한 우익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97 서울여성영화제 뉴커런트부분 초청작, 토론토 영화제 전망있는 캐나다작품 부분 오프닝작, 만하임 - 하이텔 베르크 영화제 심사위원장상 수상, 시카고 영화제 실버휴고 및 여우주연상, 관객상 수상.

 

 

 

*<Earth>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차창룡 2011.01.20. 7:00 am 

인도의 예술영화 보고 싶으신 분은 말씀하십시오. 파일 보내드리겠습니다.

김애리자 2011.01.31. 9:41 pm 

<불> <신부의 편견> <설탕을 조금만><용감한 자가 신부를 얻는다> 파일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것은 다 보았습니다. ㅎㅎ

차창룡 2011.02.01. 7:31 am 

알겠습니다. <불>부터 보내드리겠습니다. 즐겁게 보시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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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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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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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929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24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909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934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990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895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986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099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32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966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995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892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898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009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099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100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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