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141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차창룡    

 

그 많던 베다의 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늘날 인도에는 베다의 자연신들이 없다. 자연 자체가 신이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인도인의 정신세계 속에 깊이 박힌 베다의 자연신은 거의 없어진 것이다. 한때는 그들의 최고 신이었던 인드라와 수리야와 바유와 바루나는 힌두교의 쉬바와 비쉬누를 보좌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왜일까?

베다의 의식이 복잡한 반면 베다의 신화는 대체로 소박하다. 위협적인 자연과 자연현상을 신으로 모시고 그들의 선처를 바라는 것이 베다 신화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위대한 자연신에게 바라는 것도 자손의 번창, 가족의 안전, 가축의 증가, 즉 재산의 축적, 그리고 건강과 장수 등 현실적인 문제가 주류를 이룬다. 그것은 베다 신화가 유목민인 아리안의 신화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안 이전에 인도에는 드라비다 족이 살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헨조다로와 하랍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더스 문명이 곧 드라비다 족이 구축한 세계이다. 청동기를 쓰는 드라비다 족은 철기를 쓰는 유목민족 아리안에게 정복당했고, 결국 인도의 주류 신화는 아리안 신화가 되었다. 유목민족은 늘 이동하면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유지해야 했지만, 한편으로 순식간에 운명이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대체로 현세 지향적인 경향이 강하다. 반면 안정적인 농경 민족은 현세에 운명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내세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믿으며, 금욕과 고행을 통해 고달픈 현실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에 비해 유목 민족은 기도나 제사를 통해 (자연)신의 빠른 응답을 바란다.

이상하게도 과거의 신화를 보면 신은 유목민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벌을 받아 아기를 낳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 카인은 농사를 지었고, 둘째아들 아벨은 양을 쳤다. 두 아들은 모두 유일신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 이상하게도 신은 카인이 주는 곡물은 받지 않고 아벨이 바치는 기름만 좋아했다. 카인은 동생을 질투한 나머지 돌로 쳐서 죽이고 만다. 카인은 결국 추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신들이 유목민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참으로 순진한 해석일 것이다. 대체로 힘세고 활동적인 유목민이 완력으로 농경민을 눌렀던 역사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목민인 아리안이 구축한 베다 신화는 그러다보니 현세적인 신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베다의 신들을 믿는 사람들은 번개로 번쩍이는가 하면 천둥소리와 함께 사나운 비를 뿌리는 인드라 신을 무서워하면서 공경했으며, 파괴력의 정도에 따라 신들의 서열을 결정하였다. 그 신들이 파괴적인 힘을 휘두르지만 않아도 고마운 것이고, 또 비나 햇살이나 불이나 물을 제공하면 더욱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 은혜를 받기 위해 브라흐만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낸다. 브라흐만들은 신들의 파괴적인 힘을 악마를 물리치는 데 사용하는 상상을 하게 되고,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과 연결되면서 재미있는 신화로 발전하기도 한다.

무서운 신들을 달랠 수 있는 것이 제사라고 믿었기 때문에 브라흐만교의 제사와 의식은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했다. 자연스럽게 제사를 집행하는 브라흐만 계급에 권력과 재력이 집중되게 되었다. 권력과 재력이 집중되다보면 부패하게 마련이고, 부패한 세력은 결국 힘을 잃게 마련이다.

브라흐만 계급의 부패를 틈타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가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부족 국가가 더 힘센 부족에게 복속되면서 점차 큰 세력을 가진 왕조의 모습이 윤곽을 잡아나갔다. 당연히 왕족의 권한이 강화되어 차츰 브라흐만 계급의 권력을 능가하기도 한다. 전쟁이 잦아지면서 다양한 물자를 제공할 상인 계급도 강력하게 부상한다. 이제 바야흐로 브라흐만의 맹목적인 자연신앙만으로는 신흥 계급들을 복속할 수 없었다. 브라흐마니즘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답이 사라진 인도 땅에 새로운 깨달음을 구하러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그들을 슈라만(沙門)이라고 불렀다. 곳곳의 척박한 땅에서 슈라만들은 온갖 고행으로 깨달음을 구했다. 슈라만 중에서 돋보이는 인물이 두 사람 있었으니, 한 사람은 고타마 싯다르타요, 다른 한 사람은 마하비라(Mahāvīra)였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사람들이 고행이나 쾌락을 통해 해탈을 구하나 그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고, 고행도 아니고 쾌락도 아닌 중도(中道)를 실천할 때에 깨달음을 구한다고 설한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되어 최초로 설한 이 설법은 서양으로 전해지면서 이른바 ‘불의 설교’가 되어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에도 등장한다. 녹야원에서 설한 중도 사상이 어떻게 ‘불의 설교’가 되었는지, 참 재미있는 일이다. 엘리어트에게 중도 사상이야말로 욕망의 불을 끄는, 또는 욕망을 불태워버리는 요긴한 방법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석가모니에 비해 마하비라는 극단적이고 철저한 고행을 통해 과거의 업을 제거하는 것이 또 다른 업의 유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그럴 수 있을 때 해탈에 이른다고 말한다. 또한 자아에 대한 집착을 거부함으로써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불교의 입장과는 달리, 이 우주에는 생명체의 수만큼이나 많은 자아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아가 있는 곳에는 카르마(Karma, 業)가 존재하므로, 그 카르마를 고행을 통해 제거함으로써 완전한 해탈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불교와 자이나교의 중요한 특징이자 공통점은 베다의 권위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인도철학을 크게 분류할 때 정통과 비정통으로 나눈다면, 정통은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철학이요, 비정통은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는 철학이다. 불교와 자이나교가 비정통의 대표적인 학파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베다의 권위를 부정한다 함은 인도의 정통적인 계급 제도, 즉 카스트를 부정함을 뜻한다. 카스트의 억압에 시달린 서민층을 통해 불교와 자이나교는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특히 불교는 아쇼카 왕과 카니시카 왕의 국교 채택으로 거의 인도 전역으로 퍼져가게 된다.

 

 

하나가 된 신, 한번도 만나지 못한 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오늘날 소수가 믿는 종교에 불과하며, 불교보다는 교세가 세지만 자이나교도 힌두교나 이슬람교에 비하면 소수종교이다. 그것은 왜일까?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정통파 세력이 잠시 주춤했을 뿐 다시 인도인의 정신을 지배했음을 뜻할 것이다. 그러니까 불교와 자이나교가 탄생하고 세력을 얻어갈 즈음인 기원전 6세기경부터 정통파 내에서도 브라흐마니즘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생겨서 자체적으로 정화해나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중세 기독교가 부패하자 종교개혁이 일어났듯이, 브라흐만교의 근본적인 반성을 부르짖는 젊은 브라흐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경전이 바로 우파니샤드이다.

우파니샤드에 오면 베다 시대의 수많은 자연신은 하나로 모아진다. 그 하나는 결코 명명될 수 없는 것이어서, 우파니샤드의 작자들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neti neti)"라고 부정함으로써 브라흐만에 도달하려 하였다. 물질과 정신 세계의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난 다음에도 끝까지 홀로 남아 있는 ‘그 무엇’이 바로 브라흐만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파니샤드 사상은 모든 자연신들의 개념 위에 브라흐만이라는 개념을 올려놓는다.

여기서 우리는 우파니샤드에서 브라흐만과 함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아트만(Atman)’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브라흐만이 가지고 있는, 즉 생명이 있는 존재이든 없는 존재이든 모든 존재 속에 현존하고 있는 보편적인 실재를 신성(神性)이라고 부른다면, 만물 속에는 신성이 현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각 개체 속에 현존하는 신성이 곧 아트만(참자아)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궁극 원리가 하나하나 발현된 것이 아트만이고, 브라흐만은 곧 아트만과 같은 것이다. 한자성어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로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은 하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내가 당신이자 당신이 나인 브라흐만의 왕궁”(김백겸의 시 「비밀방」)은 곧 범아일여의 공간이고, 그곳은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다름아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업을 짓고, 그 업에 따라 “이예 저예 떠딜 입다히”(월명사, 「제망매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파니샤드 시대에 오면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되고, 그중에서도 아트만을 포함하고 있는 브라흐만이 유일신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흐만 신은 없다. 그것은 어떻게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히 있다.

 

먼저 이 브라흐만이 있었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해 ‘나는 브라흐만이다’라고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이 되었다. 신들 중에 그를 안 신들은 모두 그 안 것만큼의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성자들과 인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성자 바마데바가 그 진리가 아트만인 것을 깨닫게 되자 ‘나는 마누였고 태양이기도 했다’라고 했도다. 누구든 지금도 ‘나는 브라흐만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지혜로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제1장 제4편 10절(이재숙 역)

 

이 아트만이란 것은 아들보다 소중한 것이다. 재산보다 소중한 것이요, 세상의 그 어떤 다른 것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아트만은 모든 것에 비해서 ‘나’와 가장 가깝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트만을 소중하게 보는 자요, 아트만이 아닌 다른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에게 이렇게 말하라. ‘그대가 소중히 여기는 그것은 결국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 말대로 될 것이다. 그러니 이와 같은 말을 해도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트만이라는 가장 소중한 것을 숭배하라. 그처럼 아트만을 가장 소중한 자로 숭배하면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절대로 파멸하지 않을 것이다.

-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제1장 제4편 8절(이재숙 역)

 

이렇게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브라흐마니즘이 철학화함을 알 수 있으며, 이로부터 힌두교가 비로소 다신교라기보다는 ‘유일신교’의 성격을 띠게 된다. 지나치게 철학화하여 브라흐만이라는 근본적인 ‘신성’을 믿는다는 것이 민중에게는 실감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그 신성은 다시 신격화 또는 인격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쉬누, 파괴의 신 쉬바가 탄생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인도 땅에서 만나는 수많은 신전은 대부분 이 세 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비쉬누와 쉬바는 인도의 도처에서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요가를 하는 자세로 우리를 맞이한다. 인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인도를 신의 땅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앞에서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한때 전 인도를 풍미했던 불교와 자이나교가 지금은 왜 소수종교로 전락했을까?

일반적으로 힌두교도는 삶의 세 가지 중요한 목표를 설정하여 일생을 매진한다. 첫째는 아르타(Artha), 아르타는 ‘유익’이란 뜻으로 정치나 전쟁, 가정과 국가의 번영을 의미한다. 인도인은 일생에서 이 아르타를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둘째는 카마(Kama), 즉 에로스, 사랑을 추구한다. 사랑은 후손을 낳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삶의 윤활유가 된다. 그러기에 인도의 사원에는 성행위를 형상화한 미투나(mithuna, 성행위를 묘사한 인도의 조각이나 회화)가 노골적으로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모크샤(Mokṣa), 즉 해탈(解脫)을 추구한다. 윤회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의 경지에 진입하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목표를 향해 인도인은 다르마(Dharma, 法)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다르마는 두 가지 차원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이 그것인데, 개인적인 차원은 아슈라마(Āśrama) 이론, 즉 인생의 단계설로 정리되고, 사회적인 차원은 바르나(Varṇa), 즉 카스트 이론으로 정리된다.

아슈라마는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네 가지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첫째가 범행기(梵行期, Brahmacarya, 훈련기)인데, 심신의 훈련과 단련의 시기이다. 어린 시절 배움의 시기를 생각하면 되겠다. 두 번째 단계는 가주기(家住期, Gārhastya)이다. 이 시기는 가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시기로, 혼인하여 자식을 낳고, 또 그 자식을 출가시킬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세 번째 단계는 임서기(林棲期, Vānaprasthya)이다. 이때부터는 영적인 훈련을 하는 시기로 고행과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해야 하는 시기이다. 마지막 단계는 유행기(流行期, Samnyāsa)로서, 삶을 정리하면서 해탈의 길을 걷는 시기이다.

이렇게 보면 힌두교는 불교나 자이나교에 비해 현세 지향적임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해탈을 지향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적으로 여론을 주도하는 장년기의 시기까지는 지극히 현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나 자이나교 등 비교적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부정하는 종교가 인도인의 의식을 끝내 붙잡지 못했던 이유는 아닐까?

어쨌든 브라흐만교는 쇠퇴했지만, 베다의 권위가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인도인들에게 비정통 학파가 들어서기는 쉽지 않았다. 마우리아 왕조 시절에도 남부 지방에서는 브라흐만교의 뒤를 이은 힌두교 세력이 줄기차게 명맥을 유지했고, 굽타 왕조가 들어서면서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가 된다. 우파니샤드의 다음 문헌을 보면 우리는 그들이 왜 그 당시 격동하는 현실에 적응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신화까지도 수정하는 자유로운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오로지 브라흐만 혼자만이 있었다. 혼자였으므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훌륭한 모습을 만들었으니 그것은 사람들 중에 크샤트리아, 신들 중에 인드라, 바루나, 찬드라(달의 신), 루드라, 파르자냐(비의 신), 야마, 죽음(질병), 그리고 이샤나(빛) 등이다. 그러므로 크샤트리아보다 높은 자는 없으며, 브라흐만(사제)이 크샤트리아보다 낮은 위치에 서서 라자수야 제례를 수행한다. 그는 그 영광을 크샤트리아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브라흐만(사제)은 크샤트리아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비록 왕이 제례에서 최고의 위치를 점하더라도 그 제례 마지막은 그의 원천인 브라흐만에게 의지한다. 브라흐만을 낮춰보는 사람은 그 자신의 근원을 해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상위존재를 해하면 더욱 죄악을 키우게 될지라.

-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제1장 제4편 11절(이재숙 역)

 

이 부분을 통해 우리는 베다의 푸루샤 신화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확인한다. 신들이 거인 푸루샤를 인간으로 분할할 때, <리그베다>는 “브라흐만이 그의 입이었으며/그의 두 팔은 라자냐(크샤트리아)가 되었고/그의 두 넓적다리는 바이샤가 되었으며/그의 발에서는 수드라가 생겨났도다”(X.90.12)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사제계급인 브라흐만이 최고의 지위를 누렸으며, 부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왕족인 크샤트리아가 지존의 자리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자리는 당연히 사제계급이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크샤트리아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사제계급이 왕족의 원천임을 강조한다. 이런 배려를 통해 왕족들이 불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도의 초대 대통령이자 철학자인 라다크리슈난(Sarvepalli Radhakrishnan, 1888~1977)은 카스트 제도가 관용의 제도였다고 주장한다. 즉 인도는 수많은 이민족과의 쟁투의 역사를 거듭해왔는데, 그때마다 이민족이 한 나라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 이민족은 당연히 새로운 카스트로 자리매김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이민족을 관용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뗏목으로 강을 건넜다 하여 육지에서도 뗏목을 짊어지고 갈 수는 없는 법, 인도의 카스트는 변하고 있고 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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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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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79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6] 제8부 1. 붓다는 왜 상카샤로 내려오셨을까?
1069
78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5] 제8부 하늘로 통한 도시 상카샤 (여는 글)
713
77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4] 제7부 5. 스라바스티에서 먹은 절밥
938
76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3] 제7부 4. 천불화현과 데바다타의 지옥행
1010
75
2010.03.10.
[불교신화기행 32] 제7부 3. 살인자 앙굴리말라의 스투파에서
812
74
2010.03.09.
[불교신화기행 31] 제7부 2. 기적의 땅 스라바스티와 기원정사
953
73
2010.03.09.
[불교신화기행 30] 제7부 1. 스라바스티 가는 길
991
72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9] 제7부 기원정사의 땅 스라바스티 (여는 글)
716
71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8] 제6부 4.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907
70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7] 제6부 3. 원숭이의 꿀 공양을 받은 부처님
1091
69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6] 제6부 2. 유마거사를 생각하다
946
68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5] 제6부 1. 암라팔리의 육탄 공격
969
67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4] 제6부 유마거사의 고향 바이샬리 (여는 글)
905
66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2] 제5부 4. 영취산에 올라
907
65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3] 제5부 5. 칠엽굴과 아난다
850
64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1] 제5부 3. 빔비사라 왕의 비극
976
63
2010.03.09.
[불교신화기행 20] 제5부 2. 데바다타와의 악연
986
62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9] 제5부 1. 죽림정사에 오다
888
61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8] 제5부 법화경의 설법지 라지기르 (여는 글)
797
60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7] 제4부 2. 최초의 승가 탄생
828
59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6] 제4부 1. 사슴동산의 기적 [2]
1030
58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5] 제4부 최초의 설법지 사르나트 (여는 글)
854
57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4] 제3부 4. 보리수 나무 아래서 - 보드가야 대첩
1130
56
2010.03.09.
[불교신화기행 13] 제3부 3. 수자타 마을 [2]
1027
55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2] 제3부 2. 깨달음을 얻기 전에 오른 산, 전정각산과 가야산
944
54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1] 제3부 1. 보드가야 오는 길
1067
53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0] 제3부 깨달음의 땅 보드가야 (여는 글)
681
52
2010.03.08.
[불교신화기행 9] 제2부 3. 붓다의 진정한 고향 카필라바스투
1097
51
2010.03.08.
[불교신화기행 8] 제2부 2. 부처님의 어머니
1095
50
2010.03.08.
[불교신화기행 7] 제2부 1. 부처님이 길에서 태어난 까닭은?
1103
49
2010.03.08.
[불교신화기행 6] 제2부 붓다의 고향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 (여는 글)
770
48
2010.03.08.
[불교신화기행 5] 제1부 2. 과거에도 부처님이 있었나?
969
47
2010.03.08.
[불교신화기행 4] 제1부 1. 붓다는 과연 비슈누의 아홉번째 화신일까?
1062
46
2010.03.08.
[불교신화기행 3] 1부 붓다가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고? (여는 글)
730
45
2010.03.08.
[불교신화기행 2] 차례
741
44
2010.03.08.
[불교신화기행 1] 머리말 - 또 떠날 때가 되었다 [3]
763
43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8(끝)] 힌두교 시대의 신 25. 죽음의 여신 야마와 갠지스 [10]
1155
42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7] 힌두교 시대의 신 24.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2)
743
41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6] 힌두교 시대의 신 23.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1)
878
40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5] 힌두교 시대의 신 22. 참혹할 정도로 무서운 여신, 검은 피부의 칼리
821
39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4] 힌두교 시대의 신 21. 악마 마히샤를 무찌른 용감한 여신 두르가
780
38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3] 힌두교 시대의 신 20. 코끼리 머리를 한 귀여운 신 가네샤
1083
37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2] 힌두교 시대의 신 19.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의 탄생
778
36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1] 힌두교 시대의 신 18. 쉬바와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2]
994
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413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1058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84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1029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1062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1119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1006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1113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365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86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1020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122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50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58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220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225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97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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