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1218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차창룡    

 

 

진짜 신은 보이지 않는다

 

인도는 신의 나라이다. 사람들이 인도라는 나라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들의 운영 원리는 근본적으로 신의 원리이다. 그리고 그 신의 원리는 원칙적으로 인간의 원리이다. 인도는 신의 원리로 운영되는 인간의 나라이고, 인간의 원리로 운영되는 신의 나라이다.

인도가 처음부터 신의 나라였던 것은 아닌 듯하다. 베다 시대에도 신을 섬기기는 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신을 위한 섬김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베다 시대의 신앙행위는 기복신앙적인 것이었다. 기복신앙의 경우 제식행위를 집행하는 무당이나 사제는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단한 권력을 쥐게 된다.

인간의 운명이란 묘한 것이다. 시인 김지하가 담시 「똥바다」에서 풍자적으로 이야기했듯이, 인간이란 자신의 특별한 장점, 재주 등에 의해 망하게 된다. 돈 많은 놈은 돈으로 망하고, 칼 잘 쓰는 놈은 칼로 망하고, 글 잘 쓰는 놈은 필화를 겪게 되고, 권력 있는 놈은 권력으로 망하게 되는 법이다. 돈과 권력을 한꺼번에 거머쥔 브라흐만 계급에게는 그것이 곧 독이었던 것이어서 부패하게 되고, 부패하게 되자 당연히 힘을 잃게 되었다. 결국 그들의 완력을 능가하는 크샤트리아 계급이 권력을 쥐게 되고, 그들은 커다란 왕조를 형성하여 브라흐만 계급을 복속하게 되고, 그곳에서 불교와 자이나교가 싹트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브라흐마나의 권위를 인정하는 온건한 세력도 있었다. 브라흐마나의 권위는 곧 베다의 권위이다. 그러니까 이 온건한 세력은 곧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온건파이자 정통파인 셈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인도신화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추상개념의 신격화이다. 그것이 서서히 발전하여 결국에는 추상개념이 유일신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우주의 궁극적인 원리, 핵(核), 아니 뭐라고 번역할 수 없는 ‘그것’이 바로 브라흐만이다. 세상 모든 것은 이 브라흐만으로부터 비롯되니, 그것이 수만 가지로 분화되어 신도 되고 인간도 되는 것이다. 브라흐만은 개별 존재 내에 있는 브라흐만인 아트만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철학적인 원리이자 신이다. 그 신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근본적인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있는 신, 실체가 없지만 반드시 있는 신, 그것이 바로 브라흐만이다.

 

 

진짜 신의 모습을 몇 가지로 보여줘

 

민중은 신의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보이지 않는 신에게 경배하는 것이 지식인들에게는 자연스러웠지만 보통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을 경배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에게 베단타는 신앙이 아니라 철학일 뿐이었다.

결국 철학의 측면이 강한 불교가 널리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해 부처를 장엄화하고 보살을 신격화하듯이, 베단타 철학이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신을 모실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그리고 신화와 전설을 모은 푸라나 문헌은 브라흐만이라는 추상적인 신을 인격화하기에 이른다.

브라흐만이라는 추상적인 신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쉬누, 그리고 파괴의 신 쉬바라는 구체적인 신으로 인격화한 것이다. 이 세 신은 서로의 역할을 따로 맡고 있지만, 또한 궁극적으로는 하나이다. 인도에는 세 신을 함께 모시는 사원이 있으며, 때로는 세 신이 하나의 형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세 신을 하나로 합친 삼위일체신을 트리무르티(Trimurtti)라 한다.

마하발리푸람의 암벽조각 아르주나의 고행에서 북쪽 40m 되는 곳에 트리무르티 석굴이 있다. 이 암실들의 입구에는 고푸라(또는 고푸람, 탑으로 된 문을 말한다)에 나타나 있는 일반적인 장식이 있고, 각 암실 입구 좌우에는 2개의 기둥이 있으며, 그곳에는 수문장이 입구 앞쪽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좌측부터 첫 번째 암실 안쪽에는 브라흐마, 두 번째 암실에는 쉬바, 세 번째 암실에는 비쉬누가 조각되어 있다. 신상들 앞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신도의 모습과 하늘을 나는 쉬바의 군대 가나(ganas)가 조각되어 있다. 브라흐마는 염주알들이 교차한 화환을 두르고 있으며, 쉬바는 도끼와 삼지창을 갖고 있다. 비쉬누는 조개껍질과 원반을 갖고 있다.

삼신(三神) 체계를 갖춤으로써 비로소 인도의 종교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힌두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세 신과 관계되는 무수한 신이 파생됨으로써 인도는 또 더욱 많은 신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세 신이 궁극적으로 하나임은 앞에서 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그 역할도 나뉘다보니, 힌두교인들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비쉬누를 더 신봉하는 바이슈나비즘(Vishunavism)과, 쉬바를 더 신봉하는 쉐이비즘(Shavism)이 그것이다. 브라흐마의 역할은 창조의 임무를 다하는 순간 실질적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의 지위는 쉬바나 비쉬누에 비해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여행 중 만나는 주요 신은 주로 쉬바와 비쉬누를 비롯하여 그들과 관계 있는 신이다.

  

브라흐마 × 사라스바티(사비트리, 가야트리)

브라흐마가 만든 최초의 인간이 사라스바티(샤타루파)이므로, 사라스바티는 브라흐마의 딸이다. 그러나 자신의 딸의 미모에 반한 브라흐마가 딸을 아내로 삼게 된다. 최초의 근친상간이 이루어진 셈이다. 혹자는 이러한 도덕적인 결함 때문에 브라흐마가 숭배받지 못하고 있다 말하지만, 생각해보면 브라흐마는 창조의 신이기 때문에 그의 자식 아닌 존재는 없는 셈이다. 브라흐마의 근친상간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비쉬누 × 락쉬미(Lakṣmī)

비쉬누와 락쉬미는 자식이 없다. 대신 그들은 인간이나 동물의 몸으로, 즉 화신(아바타)으로 다시 태어난다. 비쉬누가 화신으로 태어날 때마다 락쉬미도 같이 태어난다. 따라서 라마의 아내 시타나 크리슈나의 아내 라다는 락쉬미의 화신이다. 비쉬누의 화신은 다음과 같다.

① 물고기 마츠야

② 거북이 쿠르마

③ 멧돼지 바라하

④ 반인반사자 나라싱하

⑤ 난쟁이 바마나

⑥ 파라슈라마

⑦ 라마 × 시타

⑧ 크리슈나 × 라다

⑨ 붓다

⑩ 칼키

 

쉬바 × 파르바티(우마, 시타, 칼리, 두르가, 미나크시)

쉬바와 파르바티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다. 가네샤와 카르티케야(스칸다)가 그들이다. 쉬바와 파르바티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칼리나 두르가는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이다. 쉬바의 가족이야말로 인도 가정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네샤는 부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통하면서 학문의 신이기도 하다.


                       

명협도인 2009.12.04. 12:48 pm 

차시인, 벌써 여러 편 썼군요. 쉽게 플어나가는 게 좋네요. 그래요, 계속 따라 읽어볼랍니다. 화이팅!

차창룡 2009.12.07. 12:35 pm 

부끄럽습니다. '인도신화개관'은 <인도신화기행>을 줄여서 올리는 것입니다. 이 겨울에 선생님,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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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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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1097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278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66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1001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040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30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34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197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202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19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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