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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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차창룡    

 

이 세상은 어떻게 하여 생겨난 것일까? 그 답은 수천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누구도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신화․종교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면 세상의 기원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창조설과 이 세상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파괴되는 것이라는 윤회설이 그것이다. 또 조물주에 의한 창조가 있긴 하지만, 세상은 생성과 파괴를 반복한다는 주장도 있다.

 

창조설 중에서 가장 명료한 것은 기독교의 구약성서에 나오는 천지창조일 것이다. 여기서 신이 창조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기계를 발명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궁극적인 수단은 ‘말’(言)이었다. 신이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생겼고, 풀과 나무가 있으라 하면 풀과 나무가 생겼고, 새와 짐승이 생기라 하면 또 그대로 되었다. 전지전능한 신은 오직 말만으로도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 세상과 세상의 만물이 마치 공작 시간에 학생들이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빚어졌다고 말한다. 기독교의 천지창조가 신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탄생한 것이라면, 그리스 신화의 창조설은 훨씬 인간적이다(인간적인 것이 선인 것은 아니다).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러나 인간을 만든 주체는 기독교의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인간과 가장 가까운 신이었던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다. 이처럼 인간적이기에 그리스 신화의 창조설은 재미있는 신화일 뿐 오늘날 종교적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인도 신화에서 세상은 어떻게 창조되었을까? 인도 신화가 복잡다단한 만큼 인도 신화의 천지창조 또한 단순할 리가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마다 조금씩은 다르다. 조물주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프라자파티가 창조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다소 추상적인 존재(개념)인 거인 푸루샤로부터 우주가 생겨났다는 신화도 있다. 특히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푸루샤(Puruṣa, 原人)의 신화는 그로부터 인도의 사성계급이 탄생했다 하여 인구에 회자되어왔다.

거인 푸루샤는 천 개의 머리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발을 가졌다. 그는 모든 방면에서 온 우주를 감싸고 서 있었다. 그만큼 그는 거대한 존재였으니, 그러고도 아직 열 손가락의 너비가 남았다. 아니 더 과장하여 일체만물은 푸루샤의 사분의 일이고, 천상의 불사계(不死界)는 푸루샤의 사분의 삼이다. 그리하여 리그베다는 이미 있었던 것과 앞으로 있을 모든 것을 푸루샤라고 한다. 이는 브라흐만의 개념과 상통한다. 푸루샤는 또 불사(不死)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이다.

사분의 삼을 갖고 푸루샤는 천상으로 올라갔으나, 사분의 일은 이 세계에 머물러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의 온갖 방향으로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비라즈(원시의 푸루샤로 구체적인 세계를 형성하는 여성적인 원리)가 태어났고, 비라즈로부터 다시 푸루샤가 태어났다. 푸루샤는 태어나자마자 대지의 이 끝과 저 끝 너머에까지 퍼져나갔다.

이 푸루샤를 제물로 삼아 신들은 제사를 지냈다. 이때 신화는 다시 기교를 부려 시간을 비유적으로 활용한다. 봄은 제사의 기름이었고, 여름은 땔나무였으며, 가을은 제물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사를 지내니, 기름이 떨어져서 그로부터 공중의 짐승과 숲의 짐승과 집짐승이 나왔다. 그 제사에서 또 리그베다(찬송가)와 사마베다(제사음악)와 야주르베다(제사의 주문)가 탄생했고, 또한 그로부터 말(馬)과 양과 염소가 태어났다.

또한 신들은 푸루샤를 몇 개로 분할하여 사람을 만들었는데, 입은 브라흐만이 되었으며, 두 팔은 라자냐(크샤트리아)가 되었고, 두 넓적다리는 바이샤가 되었으며, 발은 수드라가 되었다. 이를 인도 사성계급(카스트)의 기원으로 삼는 이가 많다. 이 신화는 거인해체를 주제로 한 창조신화의 일종인데, 제사와 연관짓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리그베다의 창조설도 힌두교 신화의 창조설도 마찬가지로, 인도신화의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창조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씨앗을 다른 형태로 분화시켜 내놓은 것일 뿐이다.

태초에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흐만(梵)이 있었다. 브라흐만은 세상을 창조하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우주의 물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 속에 종자 하나를 심어두었다. 그리하여 인도인들의 관념 속에는 물이 우주의 근원이라는 신화적 진리가 자리하게 되었고, 그들은 물을 신성시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브라흐만이 원칙적으로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구체적인 행위자가 될 수 없는데도 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러나 신화의 논리를 어떻게 인간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브라흐만은 구체적인 행위를 위해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쉬누, 파괴의 신 쉬바를 인격신으로 두었다. 세 신이 하나가 되어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흐만을 이루므로, 이를 삼신일체(트리무르티)라 부른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모시는 것의 원천도 어쩌면 힌두교의 트리무르티일지도 모른다.

브라흐만이 심은 종자는 황금알이 되었고, 그 속에서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태어났다. 브라흐마는 오랫동안 황금알 속에 그대로 머물렀다. 좁은(아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황금알 속에서의 생활은 명상이었다. 브라흐마 신이 깊은 명상에서 깨어나 두 눈을 뜨자 명상의 힘으로 강한 힘을 갖게 된 두 눈에서 강렬한 빛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빛이 생기자마자 어둠은 멀리 물러가고, 세상에 불을 밝힌 브라흐마는 만물을 하나하나 창조하기 시작했다. 먼저 황금알을 위로 높이 쳐들어 둘로 쪼개었다. 동아시아의 많은 신화들도 난생설화를 간직하고 있지만, 알 자체가 분화되어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에 있는 산인 메루 산처럼 거대한 황금알은 반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나머지 반은 아래로 내려가 땅을 이루었다. 둘로 구분된 세계 속에 그 알은 계속해서 바다와 산들과 별들을 내놓았고, 거기서 신들과 악마들과 인간들이 탄생했다.

그때 브라흐마는 육지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스스로 멧돼지가 되어 물 속으로 들어가 육지를 물어서 물 밖으로 가져왔다. 히말라야가 바다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신화적으로도 증명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창조는 일단락된 것 같다. 신과 악마와 인간이 탄생했고 자연 또한 생겨났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인도 신화의 창조는 기독교의 창조와는 사뭇 다르다. 기독교의 신은 시간부터 창조했으나, 인도 신화에서는 시간이 이미 있는 것이어서 희한하게도 창조주를 창조했다. 그리고 창조주가 탄생하자마자 사실은 대부분의 창조행위가 마무리되었다.

브라흐마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욕망은 거작을 발표한 예술가가 이후에도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몰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에는 자신의 몸에서 사라스바티라 불리는 아름다운 여인을 창조했다. 이미 인간이 탄생했으므로 신으로서는 더 이상의 인간은 창조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여인을 창조했으니,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인간이란 여자는 아니었다는 말이 되고, 브라흐마의 여인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딸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자마자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느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딸은 우선 아버지의 오른쪽을 돌아 그의 시선을 피하려 하였다. 브라흐마는 계속해서 그녀를 쳐다보려고 하였다. 브라흐마의 몸에서 머리가 하나 더 솟아올랐다. 딸이 다시 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왼편으로 도니, 브라흐마의 몸에서 두 개의 다른 머리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솟아나왔다. 그녀가 할 수 없이 하늘로 피신하자, 브라흐마의 욕정은 다섯 번째 머리를 창조했다. 얼마나 끈질긴 욕망인가? 인도인은 실제로 창조의 신 브라흐마처럼 자신의 욕망에 대해 솔직하고 열정적이다. 브라흐마는 하늘에 있는 딸을 향해 간곡하게 외쳤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로서의 사랑이다. 너와 나의 결합만이 세상의 만물을 제대로 창조할 수 있다. 자 이제 내려와 나와 함께 세상의 모든 생물과 신들, 악마와 인간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도록 하자.”

더 이상 브라흐마의 추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라스바티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브라흐마는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신들의 시간으로 일백 년(신들의 1년은 인간에게는 360년이라 전한다) 동안 살면서 인류의 조상인 마누를 낳았다. 인류의 조상 마누는 <마누 법전>을 만든 것으로 전해지며, 그는 또 물고기를 구해준 대가로 대홍수로 인해 세상이 온통 잠겼을 때 물고기가 제공한 배를 타고 구출될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대홍수 때 살아남은 인류는 마누의 가족뿐이었다.

이러한 신화를 살펴보면 결국 인간은 브라흐마 신의 아들이며, 인간의 어머니는 브라흐마 신의 부인인 사라스바티인데, 그녀는 인간의 누이이기도 하다. 또한 브라흐마의 창조적 에너지는 어떤 거룩한 신의 정신이라기보다는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신의 정욕이었다. 아니면 정욕을 에너지로 하여 거룩한 신의 정신이 구현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인간의 아버지 신은 브라흐마이므로 인도 신화에서 가장 떠받들어야 할 신은 브라흐마가 되어야 옳다. 그러나 인도에 가보면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딸과 결합했다는 도덕적 결함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비쉬누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브라흐마가 비쉬누의 배꼽에서 생겨난 연꽃에서 탄생했다고 말한다. 쉬바를 믿는 사람들은 쉬바가 브라흐마를 창조했고, 브라흐마에게 창조의 임무를 맡겼다고 주장한다. 창조주 브라흐마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창조 행위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이 우주는 생성과 파괴가 계속될 것이므로 오로지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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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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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신화개관 38(끝)] 힌두교 시대의 신 25. 죽음의 여신 야마와 갠지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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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7] 힌두교 시대의 신 24.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2)
681
41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6] 힌두교 시대의 신 23. 하늘에서 내려온 강 갠지스(1)
762
40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5] 힌두교 시대의 신 22. 참혹할 정도로 무서운 여신, 검은 피부의 칼리
769
39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4] 힌두교 시대의 신 21. 악마 마히샤를 무찌른 용감한 여신 두르가
729
38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3] 힌두교 시대의 신 20. 코끼리 머리를 한 귀여운 신 가네샤
991
37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2] 힌두교 시대의 신 19.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의 탄생
729
36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1] 힌두교 시대의 신 18. 쉬바와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2]
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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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214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928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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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909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933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990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895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986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099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32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966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995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892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898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008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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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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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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