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1018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차창룡    

 

 

비쉬누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문제를 간단히 풀어내는 해결사이다. 신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비쉬누를 찾아가 해결책을 간구한다. 그때마다 비쉬누는 낮잠을 즐기고 있지만, 그가 지혜의 눈을 살짝만 떠도 문제의 해결책이 쉽게 나오게 된다.

 

옛날에는 신(Deva)이나 악마(Asura)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신과 악마는 이복형제였는데, 신과 악마의 어머니는 자매 사이였다. 두 자매가 한 남자와 혼인하여 신과 악마라는 전혀 다른, 어쩌면 매우 비슷한 아이들을 낳은 셈이다. 악마는 형이고 신은 동생이니, 큰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악마이고, 작은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신이다. 그러고 보니 신이나 악마나 우리와 너무나 친숙한 존재처럼 보인다.

 

형제들이 서로 싸우듯이 신들과 악마들은 늘 으르렁거리면서 싸웠다. 그럴 때마다 힘이 달린 신들이 밀리곤 했다. 더욱이 인드라 신이 쉬바 신의 숭배자인 두루바사스의 선물을 함부로 한 까닭에 저주를 받아 신들은 더욱 약해졌다. 이렇게 힌두교의 신들은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다가 악마의 세상이 될 것이라 생각한 신들은 쉬바 신을 찾아갔으나, 쉬바는 자신의 숭배자인 두루바사스와의 우정 때문인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브라흐마 신을 찾아갔지만, 브라흐마는 비쉬누를 찾아가 보라 했다.

비쉬누는 어김없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언제나 여유만만한 유지의 신, 그 여유만만함이 그가 세상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젖의 바다를 휘저어 거기서 나온 암리타(불사의 감로수)를 마시면 너희들은 불사의 존재가 될 것이고, 그러면 능히 악마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젖의 바다’라는 말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젖으로 이루어진 바다도 있단 말인가? 하기야 우리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금이 바닷속에 있으니, 소금의 바다가 있듯이 젖의 바다라고 없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 젖의 바다를 휘저으면 불사의 감로수인 암리타가 나온다는 것도 참으로 재미있다. 바다를 휘저으면 소금이 나오듯이 젖의 바다를 휘저으면 우유처럼 진한 생명수가 나오리라는 발상이다. 그러나 젖의 바다는 한없이 넓은 곳이어서 바다를 휘젓기 위해서는 대단히 큰 막대기가 필요했다. 야전사령관 비쉬누는 신들에게 만다라 산을 옮겨다 뒤집어 바다를 휘저으라고 충고했다.

 

신화는 대체로 구체적인 지역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젖의 바다나 만다라 산도 실제로 존재하는 바다요 산일 것이다. 젖의 바다는 아라비아해와 인도양, 그리고 벵골만이 합쳐지는 칸야쿠마리의 앞바다가 아닐까 하고, 만다라 산은 ‘만다라’가 우주를 상징하는 말이니 사람들로서는 오를 수 없는 우주처럼 거대한 산, 곧 히말라야 산맥의 한 산을 말하지 않는가 한다.

 

신들만의 힘으로 커다란 만다라 산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신들은 악마들에게 불사의 감로수를 나누어주기로 하고, 악마들의 힘을 빌렸다. 그러나 악마들까지 합세하여 산을 뽑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다시 비쉬누에게 도움을 청했고, 비쉬누는 용왕 아난타로 하여금 산을 뽑도록 했다. 그러면 그 산은 누가 옮길 것인가? 비쉬누 신은 자신의 탈것인 가루다에게 산을 옮기는 것을 돕도록 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악마들의 힘을 빌리지 말고 비쉬누의 지혜를 빌렸으면 될 텐데, 아무튼 악마들의 힘을 빌린 결과 나중에 커다란 싸움이 벌어진다.

 

만다라 산으로 젖의 바다를 젓기 위해서는 매우 긴 끈이 필요했다. 긴 끈으로 산을 묶고 저어야만 산이 바닷속에 빠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쉬누 신은 커다란 뱀인 바수키에게 그 산을 둘러 산이 물 속에 빠지지 않게 잡고 있도록 명령했으나, 뱀이 먼저 물 속에 빠져버렸다. 이번에는 비쉬누 신이 직접 쿠르마(비쉬누의 거북이 화신)가 되어 그 산을 등 위에 올려놓고 신들과 악마들로 하여금 바다를 휘젓도록 하였다. 여기서도 악마들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결국 신과 악마의 싸움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천 년이나 휘저은 끝에 젖의 바다에서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맨 처음 흘러나온 것은 불사의 감로수가 아니라 바다의 불순물이 응결된 죽음의 독약이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이 독약을 파괴의 신인 쉬바가 스스로 마셨다. 그러나 지혜로운 쉬바는 그것을 삼키지 않고 목에 저장해놓았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쉬바 신상의 목부분은 파랗게 멍들어 있다.

 

불사의 감로수를 얻기 위한 신들과 악마들의 집념은 참으로 대단했다. 이윽고 아름다운 암소 수라비가 나타났다. 그 암소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가 되었다. 다음에는 얼큰하게 취한 술의 여신 비루니가 나타났다. 악마들은 그녀를 손에 넣으려 했으나, 그녀는 신들을 더 좋아했다. 결국 술이 신을 좋아하다 보니, 신도 술을 좋아하게 되고, 그리하여 신들을 향한 제사의식에서 술을 사용하게 되었다. 곧이어 부와 행운의 여신 락쉬미가 손에 수련을 들고 연꽃 위에 앉은 채로 나타났다.

 

아름다운 여신 락쉬미가 나타나자 천상의 시인들과 성자들이 그녀를 찬양했고, 강가와 야무나와 사라스바티 등 모든 성스러운 강들도 그녀가 내려와 목욕하기를 원했다. 젖의 바다는 그녀에게 시들지 않는 꽃으로 만든 화환을 씌워주었다.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젖의 바다가 여기서 갑자기 화환을 씌워주는 행위자가 된 것은, 젖의 바다가 원래 신이었음을 말해준다. 인도의 성스러운 강과 바다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음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악마들은 또 락쉬미의 환심을 사려고 했으나, 그녀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락쉬미가 앞에서 등장했던 브라흐마의 아들이자 성자 브리구의 딸이었으니 악마들에게 눈길을 돌릴 리가 없었던 것이다. 천상에서 살고 있던 락쉬미는 저주를 받아 바다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다시 천상의 세계에 나타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락쉬미는 부와 행운의 여신이며, 아울러 여성미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여성미를 상징하는 여신으로서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연결된다. 락쉬미는 원래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 두 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또 이 여신의 상징인 연꽃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락쉬미는 남편 비쉬누 신이 인간으로 전생(轉生)할 때마다 그의 부인으로 환생함으로써, 정절의 여인상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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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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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84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1019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115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49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58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216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223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91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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