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1116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차창룡    
 


크리슈나의 피리 소리


크리슈나가 칸샤를 죽인 곳으로 알려져 있는 야무나 강의 비쉬람 가트에 갔다. 선신과 악신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곳이다. 강물은 시퍼런 멍이 든 채로 조용하게 흘러갔다. 단정한 옷차림의 노부부가 보트에 올라타고는 우리도 함께 탈 것을 권유한다. 우리도 배에 올라탔다. 부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성지 순례차 왔는데, 라자스탄 출신이란다. 강 건너편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겉옷을 벗고 물속에 푹 잠겼다. 제법 쌀쌀한 날씨이지만, 이곳에 몸을 담그기 위해 비쉬누 신처럼 커다란 독수리(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온 이들이 아닌가? 할아버지도 물속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는 노인들의 몸을 야무나의 바람이 서서히 말려주고 있었다. 그 바람 속에 보이지 않는 크리슈나의 손이 있을 터, 크리슈나의 애무를 받으며 사람들은 생의 의지를 키운다.

 

돌아오는 길에 사티 부르지(Sati Burj)를 구경했다. 파괴의 신 쉬바의 아내 사티가 남편의 명예를 위해 불속에 뛰어든 것을 모범으로 삼아, 죽은 남편과 함께 아내를 화장하는 ‘사티 의식’을 기념하기 위한 탑이다. 이 탑은 1570년 자이푸르의 한 귀족이 어머니의 사티 의식을 기념하여 지은 것이란다. 우리나라의 열녀문처럼 서글프다. 남편을 따라 죽은 인도의 여인도, 죽은 남편을 평생 동안 섬긴 한국의 여인도 크리슈나의 피리 소리를 들어야 했다. 크리슈나의 사랑은 그의 피리 소리와 함께 온다. 인도의 전통 회화에는 크리슈나가 피리를 불면서 소 치는 소녀들과 놀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피리 소리는 사랑의 선율을 담고 있다. 사랑은 얼마나 큰 힘을 보유하고 있는가? 크리슈나의 갖가지 무용담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크리슈나의 무용담을 더 들어보자. 크리슈나의 양어머니가 그가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커다란 나무에다 줄로 묶어둔 적이 있다. 크리슈나는 그 거대한 나무를 아예 뽑아버리고는 넘어진 나무 사이에서 태평하게 놀았다. 또 어느 날은 야무나 강에서 수영하다가 커다란 뱀의 공격을 받았다. 강에는 이미 뱀의 독이 가득 퍼져 있었다. 목동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누구도 독이 퍼진 강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발라라마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크리슈나에게 소리쳤다.

“너는 불멸의 신임을 잊지 말아라. 용기를 내어 싸워라.”

온몸에 독이 퍼져 힘을 잃어가던 크리슈나는 그 말을 듣고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신의 힘으로 뱀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뱀의 아내들이 크리슈나에게 간절히 빌자, 크리슈나는 뱀의 머리를 다시 돌려주고 멀리 떠나가서 살게 했다.

 

크리슈나의 신성을 결정적으로 확인시킨 이야기가 또 있다. 우기가 끝나자 목동들은 번개와 비(雷雨)의 신 인드라에게 희생제를 올리고자 하였다. 크리슈나가 이를 보고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비를 내려주는 신인 인드라의 은덕은 커다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축을 기르는 목동이다.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풀과 나무를 제공해주는 산이다. 우리가 모셔야 할 신은 인드라가 아니라 나무와 산의 신이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고베르단 산에 경배드리고 동물 희생제를 올릴 것을 제안했다. 목동들은 크리슈나의 뜻에 따랐다.

 

이 소식을 들은 인드라가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당장 하늘에 있는 구름들을 불러모아 번개를 치고 엄청난 비를 내리도록 했다. 비는 7일 밤낮을 잠시도 쉬지 않고 내렸다. 크리슈나는 이때 놀라운 괴력을 발휘한다. 그는 고베르단 산을 뒤집어 자신의 왼쪽 손으로 들어올린 뒤 목동들에게 그 위에 올라가 있도록 했다.

 

8일째가 되자 인드라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폐허가 되었으리라 생각한 브린다반은 그러나 평화롭기만 했다. 크리슈나는 연인들에 둘러싸여 피리를 불고 있었다. 인드라는 비쉬누 신의 탈것인 가루다(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독수리인 새)가 크리슈나의 머리 위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화가 잔뜩 났던 인드라는 자신이 크리슈나를 상대할 수 없음을 알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마투라에서 서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고베르단이 있다. 고베르단에도 가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그런데 저 남쪽 타밀 나두 주의 도시 마말라푸람에서 고베르단 산을 만났다. 마말라푸람의 조그만 뒷동산에 있는 바위벽에 크리슈나가 왼손으로 고베르단 산을 힘차게 들어올리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신화와는 달리 여인들과 목동들, 그리고 동물들은 산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크리슈나가 우산처럼 들어올린 산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자 신이 씌어주는 우산 속에서 모든 생물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용감한 무사의 ‘난폭한’, 아니 '아름다운' 사랑


크리슈나와 발라라마가 칸샤를 물리친 후, 크리슈나의 아버지 바수데바는 크리슈나와 발라라마를 산디파니라는 성자에게 보내어 교육을 시켰다. 이 두 형제는 모든 교육과정을 64일 만에 마무리했다.

 

언제까지나 평화로울 것 같은 마투라에 그러나 다시 전운이 감돌았다. 칸샤의 두 부인은 마가다 왕국의 왕 자라산다의 딸이었는데, 그 두 부인이 자라산다 왕에게 가서 남편의 복수를 호소했던 것이다. 자라산다는 대군을 이끌고 마투라를 습격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크리슈나와 발라라마는 적들을 모두 격퇴했다. 그러나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을 싫어한 크리슈나는 마투라의 야다브족을 이끌고 해안으로 이주했다.

 

이때 크리슈나가 세운 도시국가가 드와르카이다. 이 나라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구자라트 지역에 드와르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투라에서 크리슈나는 무수히 많은 연인들을 거느렸다고 전해진다. 그 연인들 중에서도 아야나고쉬의 아내 라다라는 여인과의 사랑은 각별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크리슈나와 라다의 사랑은 시로도 씌어졌고, 그림으로도 수없이 그려졌다. 일반적인 관념으로 보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둘의 관계가 오히려 ‘사랑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드와르카에서 크리슈나는 정식 부인을 얻게 된다. 위다르바 왕국의 왕 비쉬마카의 딸 루크미니는 크리슈나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크미니의 오빠인 루크민은 크리슈나를 싫어하여 채디 왕국의 왕 시슈파라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다.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할 수 없었던 루크미니는 크리슈나에게 편지를 썼다. 소식을 들은 크리슈나는 하룻밤 만에 위다르바에 도착하여 루크미니를 데리고 드와르카로 돌아왔다. 루크민의 추격을 받았지만, 크리슈나는 루크민을 붙잡아 머리와 수염을 잘라버렸다. 루크민은 수치스러워 자신의 왕국에 돌아가지 않고 보자카마라는 마을에 살면서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크리슈나와 루크미니는 드와르카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루크민은 뒤에 발라라마에게 죽고, 루크미니와 결혼하려고 했던 시슈파라도 크리슈나에게 죽게 된다. 크리슈나의 방법은 상당히 난폭하지만 이러한 약탈혼은 크샤트리아 계급 사이에서는 인정되었다. 그러나 박티[信愛] 사상을 상징하는 크리슈나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크리슈나의 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바가바드 기타󰡕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크리슈나의 갖가지 일화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을 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계속해서 형상화되었다. 어느 곳에 가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크리슈나의 무용담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델리의 공예 박물관(Crafts Museum)에서 나는 크리슈나와 관련된 수많은 그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서 파는 사람도 몇 있다. 전통 화가들이 가장 자주 그리는 그림의 소재에는 크리슈나의 생애에 대한 것이 월등히 많다.

 

내가 인도에서 맨 처음 들어간 숙소는 뉴델리의 파하르간지에 있는 ‘하레 크리슈나 게스트하우스’(Hare Krishna Guest House)였다. 처음으로 만난 인도의 신이 바로 크리슈나였던 것이다. 나도 전생에 크리슈나와 함께 소를 치던 목동은 아니었을까? 크리슈나가 받쳐주는 산(山)으로 만든 거대한 우산 밑에서 비를 피한 소나 말이었는지도 몰라.


                       

차창룡 2010.02.09. 6:29 pm 

크리슈나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브린다반이란 곳입니다. 이화경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 기억나시죠? 과부들이 남편을 여의고 나서 간다는 곳, 크리슈나가 유부녀 라다와 사랑에 빠졌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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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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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400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1056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981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1026
31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106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1117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1003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1111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355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83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1017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1114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947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957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1215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223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290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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