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901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차창룡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한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렸느냐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인도의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에게 가장 행복한 죽음은 싸움터에서 죽는 것이다.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크샤트리아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무사의 정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물어볼 필요 없다. 크샤트리아는 싸움에 나가면 물러서지 않아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그러기에 무엇을 위해 싸웠든 싸움터에서 죽는 것은 신의 명령에 충실한 것이므로 명예로운 일인 것이다.

 

리시케쉬의 트리베니 가트에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戰車)를 타고 가는 두 사람의 무사의 상이 있다. 마부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면서 뒤에 있는 무사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듯하고, 활통을 등에 멘 뒤의 무사 또한 앞의 무사에게 뭔가를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앞의 무사는 드와르카의 왕 크리슈나이고, 뒤의 무사는 판다바 형제 중 셋째인 아르주나이다. 아르주나는 사촌들 간의 싸움에서 전쟁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크리슈나여,/제가 어떻게 공경받아 마땅한 비슈마와 드로나/두 어른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습니까?/그 훌륭한 어른들을 죽이느니 차라리/평생을 거지처럼 빌어 먹는 편이 낫겠습니다./그분들은 저의 스승입니다./제가 제 욕심만 차려 그분들을 죽인다면,/저에게는 온통 피로 물든 즐거움을 누릴 일만 남게 될 것입니다.”(정창영 옮김, 󰡔바가바드 기타󰡕, 시공사, 2000, 27~28쪽)

그때 마부로서 전쟁에 참여한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길게 설법한다. 그 긴 설법이 바로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한 부분이자, 오늘날 인도인의 행동 지침서가 되고 있는 󰡔바가바드 기타󰡕(거룩한 분의 노래라는 뜻)이다.

 

바라타는 인도의 옛 이름이다. ‘마하’는 크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이다. 따라서 ‘마하바라타’는 대인도 제국의 노래라는 뜻이 되겠다. 옛날 바라타 왕의 자손이자 쿠르족의 왕인 샨타누는 어부의 딸 사트야바트와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큰아들은 어려서 죽고, 둘째아들 비치트라비리야는 두 아내 암비카와 암발리카가 있었는데, 암비카에게서는 큰아들 드리타라슈트라를 낳았고, 암발리카에게서는 둘째아들 판두를 낳았다. 드리타라슈트라는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판두가 왕위를 이었다.

 

판두는 크리슈나의 종족인 야다브족의 공주 쿤티를 아내로 맞이하여 유디슈티라, 비마, 아르주나를 낳았고, 둘째부인인 마드리와의 사이에는 나쿨라와 사하데브를 낳았다. 드리타라슈트라도 간다라의 공주인 간다리와 결혼하여 큰아들 두료다나를 비롯하여 자그만치 백 명의 왕자와 한 명의 공주를 얻었다. 이렇게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파괴의 신 쉬바의 은총을 입은 덕분이었다. 판두의 아이들은 ‘판다바’라 불리었고,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은 ‘카우라바’라 불렸다.

 

판두가 죽자 맹인인 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드리타라슈트라는 동생의 자식들도 거두어 학문과 무술을 가르쳤다. 다섯 왕자들은 여러 면에서 출중했기 때문에 백 명의 카우라바 형제들과 반목이 생기게 되었다. 게다가 드리타라슈트라가 자신의 후계자로 판다바 형제의 맏이인 유디슈티라를 지목하자 카우라바 형제의 맏이인 두료다나는 다섯 왕자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사촌형제들과 다투기 싫었던 다섯 왕자는 궁정을 빠져나와 세상을 방랑했다. 그들이 판차라 왕국에 도착했을 때, 마침 공주 드라우파디의 배우자를 뽑는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셋째아들인 아르주나가 시합에서 이김으로써 드라우파디는 다섯 형제의 공동의 아내가 되었다. 아르주나가 신부감을 어머니 쿤티에게 데리고 가서 오늘 얻게 된 것이 있다고 고했는데, 어머니는 그것이 먹을 것이라 짐작한 나머지 형제들과 나누어 가지라 말했다. 그리하여 드라우파디는 다섯 형제의 공동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다섯 형제가 아내를 데리고 귀국하자, 드리타라슈트라는 왕국을 반으로 나누어서 그들에게 주었다.

 

판다바 왕국이 번영하는 것을 보고 두료다나는 내기를 걸어 14년 동안 왕국을 빼앗아버린다. 14년이 지나자 판다바 형제들은 왕국을 돌려줄 것을 청한다. 그러나 두료다나는 이를 거절했다. 이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판다바 형제들은 마츠야 왕국과 판차라 왕국을 포섭하는 한편, 아르주나에게 드와르카로 크리슈나를 찾아가게 했다. 두료다나도 크리슈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크리슈나는 자신과 자신의 군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서,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여할 수는 없고 단지 마부로서만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아르주나는 크리슈나를 택했고, 두료다나는 크리슈나의 군대를 택했다. 그리하여 사촌형제간의 일대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카우라바의 총사령관은 증조할아버지인 샨타누와 강가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비슈마가 맡았고, 판다파 형제들의 스승인 드로나도 선봉에 서 있었다. 이러한 상대의 진영을 살펴본 아르주나는 심한 동요를 느끼게 된다. 존경하는 할아버지와 스승을 죽이고 얻어야 할 영광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크리슈나가 “용감하게 일어나서 적을 무찔러라”고 종용했지만, 아르주나의 동요는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향해 긴 설법을 행하게 되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모든 인도인들의 행동 지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생겨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실재가 아닌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실재는 영원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우주 만물 속에 충만하게 깃들여 있으며

결코 없어지지 않는 실재를 깨닫도록 하라.

이 영원한 실재는 어떤 힘으로도 없애버릴 수가 없다.

육체는 사라져 없어지지만

육체 속에 거하는 측량할 수 없는 이 실재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니 아르주나여,

아무 염려 말고 나가서 싸워라.

- 󰡔바가바드 기타󰡕 제2장 16~18절(정창영 역)


아르주나가 스승을 죽인다 해도 그것은 스승이 아니라 스승의 육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크리슈나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말고 행동할 것을 권한다. 어떤 행위가 오직 자신의 의무이냐 아니냐만 생각할 뿐 그 행위를 하면 내게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를 가늠하지 말라는 것이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설득하기 위해 신(神)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 아르주나는 자신이 신의 후원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싸움에 임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판다바 형제는 싸움에서 이기고 옛 왕국을 되찾는다.



바가바드 기타의 영웅


마말라푸람에는 다섯 개의 라타(수레 형태의 사원)가 있다. 7~8세기의 팔라바 왕조가 세운 것이라 한다. ‘라타’는 산차(山車)를 의미하며 힌두교 대축제 때에 신상을 모시고 행렬을 하는 포장마차를 지칭하던 것이 암석사원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라타는 수레와 흡사하여 어디론가 떠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 다섯 개의 라타는 우리로 하여금 안타깝게 한다. 거대한 하나의 바위를 쪼아서 본래 일곱 개의 사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현재 발견된 것은 다섯 개밖에 없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다섯 형제의 아내인 드라우파디, 아르주나, 둘째 비마, 그리고 나쿨라와 사하데브 라타이다. 거기에 다르마라자 라타가 포함되어 다섯 개의 라타가 된 것이다. 다르마라자 라타는 첫째 유디슈티라의 것이다.

드라우파디 라타는 밥을 수북이 쌓아놓은 것 같은 풍요로운 형태를 띠고 있으며, 여성적이고 우아하여 사랑스럽다. 다섯 형제를 남편으로 거느렸던 만큼 그녀는 품이 넓었으며, 그러기에 그가 타고 가는 수레도 넉넉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드라우파디를 호위하면서 사촌 형제들과 싸우는 판다바 형제의 슬픈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다르마(Dharma)였던 것이다.

 

이들은 크리슈나의 가르침대로, 혹은 크샤트리야에게 주어진 다르마의 법칙대로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크샤트리아답게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영웅일지라도 세월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들은 돌이 되어 오랫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다가 2백 년 전에야 이방인인 영국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영웅 크리슈나에게도 죽음이 찾아온다. 크리슈나는 신의 화신이지만, 인간의 육체로 왔기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신의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을 떠났듯이,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친 크리슈나도 떠날 때가 온 것이다. 안락한 생활에 익숙해진 야다브족의 사람들은 점점 타락하여 술을 마신 후 서로가 서로를 죽이곤 했다. 크리슈나의 형 발라라마는 한 걸음 먼저 본래의 아난타 용왕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하늘로 올라갔다. 크리슈나도 숲으로 가서 깊은 명상에 빠진다. 그때 자라라는 사냥꾼이 사슴으로 오인해 크리슈나를 쏘았는데, 화살은 발뒤꿈치에 맞았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본래의 비쉬누 신의 모습을 하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남겨진 드와르카의 사람들은 아르주나가 맡게 되었지만, 크리슈나가 사라진 뒤 드와르카는 솟아오른 바다 가운데로 빠져버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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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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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40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5] 힌두교 시대의 신 22. 참혹할 정도로 무서운 여신, 검은 피부의 칼리
759
39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4] 힌두교 시대의 신 21. 악마 마히샤를 무찌른 용감한 여신 두르가
718
38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3] 힌두교 시대의 신 20. 코끼리 머리를 한 귀여운 신 가네샤
982
37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2] 힌두교 시대의 신 19.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의 탄생
723
36
2010.02.19.
[인도신화개관 31] 힌두교 시대의 신 18. 쉬바와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2]
836
35
2010.02.13.
[인도신화개관 30] 힌두교 시대의 신 17. ‘사티 의식’(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하는 의식)의… [4]
1170
34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9] 힌두교 시대의 신 16. 가장 인기 있는 신, 파괴의 신 쉬바 [2]
903
33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8] 힌두교 시대의 신 15. 남근 모양의 링가가 신앙의 대상이 된 이유는?
898
32
2010.02.13.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884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6] 힌두교 시대의 신 13.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크리슈나
902
30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5] 힌두교 시대의 신 12. 용감한 무사의 난폭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1]
963
29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4] 힌두교 시대의 신 11.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 크리슈나와 악마 칸샤의 죽음
886
28
2010.02.09.
[인도신화개관 23] 힌두교 시대의 신 10. 인도인의 이상형 라마
940
27
2010.01.25.
[인도신화개관 22] 힌두교 시대의 신 9. 비쉬누의 화신 아바타 [5]
1057
26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1] 힌두교 시대의 신 8.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둘러싼 신과 악마의 싸움 [3]
907
25
2010.01.11.
[인도신화개관 20] 힌두교 시대의 신 7. 해결사 비쉬누와 젖의 바다
940
24
2010.01.06.
[인도신화개관 19] 힌두교 시대의 신 6.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유지의 신
차창룡 저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2007)
948
23
2010.01.03.
[인도신화개관 18] 힌두교 시대의 신 5. 브라흐마의 아내 사비트리의 저주 [1]
차창룡 지음, <인도신화기행>(북하우스)
841
22
2009.12.21.
[인도신화개관 17] 힌두교 시대의 신 4. 인류의 조상 마누와 비슈누의 첫번째 화신 물고기 마츠야 [5]
866
21
2009.12.14.
[인도신화개관 16] 힌두교 시대의 신 3.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만든 푸쉬카르의 성스러운 호수
964
20
2009.12.07.
[인도신화개관 15] 힌두교 시대의 신 2.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탄생
1073
19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4] 힌두교 시대의 신 1. 추상적인 신(브라흐만)의 인격화 [2]
1055
18
2009.11.26.
[인도신화개관 13] 유일신 브라흐만과 내 안의 신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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