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의 "인도신화기행"

861
[인도신화개관 27] 힌두교 시대의 신 14. 엘로라 16굴에서 만난 파괴의 신 쉬바
차창룡    

 

이상하게도 나는 네팔이 술이 흐르는 땅이라 여겨져, 네팔에서는 날마다 술을 마셨다. 네팔 사람들은 별로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네팔이 술이 흐르는 땅인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자연 환경과 비슷한 네팔에서 술은 향수를 이기는 데 참으로 요긴했기 때문인 듯하다. 술을 마시다보면 인도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를테면 인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딘지, 가장 싫었던 면은 무엇인지, 잊지 못할 사람은 누구인지를 서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는 엘로라 석굴을 꼽는 이가 많았다.

 

엘로라 석굴을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엘로라 석굴의 장엄함 때문인데, 그 장엄함은 사원 구축 방법 때문에 더욱 배가되었다. 동굴을 파서 방을 만든 다음에 신상을 제조하여 모시는 방법이 일반적인 것일 텐데, 엘로라 석굴은 바위를 그 자리에서 깎아내고 파내어 기둥을 만들고 신상을 만들었을 뿐, 돌을 잘라서 상을 만들어 다시 모시는 방법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물의 균형과 신상의 정교함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미련한 일을 그 옛날 사람들은 해내고야 말았던 것인데, 그 능력이 바로 신앙심에서 온 것일 터, 그들의 노력을 생각할진대 절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엘로라 16굴, 즉 카일라사 사원에 쏟은 공력은 가히 짐작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조상들에 비해,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니며 사람이 보지 않을 때에는 어두운 사원에 오줌까지 싸는 후손들은 아무래도 이 귀중한 유산을 관리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또 인도인의 일부일 터, 인도인의 상상력은 가히 헤아리기가 어렵듯이 인도인의 능력 또한 가늠하기 힘들다.

 

엘로라 동굴은 굽타 왕조 시대인 6~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아우랑가바드 북동쪽 29km 지점에 위치한 엘로라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불교․힌두교․자이나교의 사원들이 골고루 있는 것으로 보아, 굽타 왕조 시대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한가운데, 한 덩어리의 거대한 바위로 만든, 길이 50m, 높이 29m의 카일라사나타 사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벌리게 하고, 이 엄청난 공사에 바쳐졌을 피와 땀을 생각하게 하며, 그리하여 절망하게 하고, 이토록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면 인간은 참 위대한 것이라고 자기 만족에 빠지게도 하고, 그냥 망연자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조각작품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고, 지붕까지도 영락 없는 카일라사를 흉내낸 그야말로 힌두교 건축사상 최대의 역작이다. 이 사원은 힌두의 최고신 쉬바를 위해 라슈트라쿠타스 왕이 통치하던 8세기에 세운 것이다.

 

카일라사는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로서 쉬바가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쉬바가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에 히말라야는 힌두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가 되었으며, 매일 힌두교의 사두들이 히말라야를 향해서 성지 순례를 떠난다. 그러나 성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남인도에서 카일라사 산까지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그리하여 그 시대의 독실한 신자들은 꿈에도 생각하기 힘든 카일라사 산을 건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성이었다면 카일라사를 열 번도 더 갔을 것이나, 이렇게 카일라사를 건축하고 보니 카일라사 이상의 감동적인 성지가 되었으니, 이 원대한 꿈이 단지 꿈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카일라사 사원에서 만난 쉬바 신이나 리시케쉬의 갠지스 강변에서 만난 쉬바 신은 모두 육감적인 느낌을 주는 신이다. 갠지스 강 옆에서는 목에 뱀을 감은 육감적인 청년이 늘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는 거칠게 묶었는데, 흐트러진 머리에도 수많은 뱀의 머리가 혀를 내밀고 있고, 많은 구슬들이 곧 쏟아질 것처럼 선명했다. 이마 중앙에는, 바라보는 모든 것이 불타버린다는 가운뎃눈이 눈감고 있다. 한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한 손에는 작은 북을 쥔 쉬바는 또 온몸에 재를 바르고 있다. 삼지창은 곧 쉬바의 상징이며, 재를 바르는 것은 온몸을 깨끗이 하여 재생을 꾀하는 방법이며, 북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구할 때 사용한다. 이러한 쉬바의 모습을 흉내낸 요기(Yogi, 요가 수행자)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들의 운명은 쉬바 신이 책임지고 있다. 세상은 언젠가 쉬바 신에 의해 파괴되고 소멸되며, 파괴되고 소멸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싹튼다. 재생을 주관할 신 또한 쉬바이다. 그러기에 ‘쉬바’라는 이름 속에는 ‘길(吉)하다’는 뜻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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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 시인/문학평론가.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저서 『인도신화기행』 등을 펴냈으며, 1994년 첫 시집으로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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