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나의 "chit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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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나는 이렇게 만났다 >> - 울음과 수음
금빛나  

 

                                                                                                                                    < 금빛나의 인도생활 >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스스로 선택해서 들어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의 불교학 공부였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해놓고 보니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나의 길’에 대답하지 못한 채 흘러온 그때까지의 수년의 세월은 이제 지나치게 익고 익어 물러터지기에 이르렀다.

 

그런 생각으로 답답해질 때마다 내 마음은 인도를 찾았다.

갖은 복잡함, 번잡함, 화려함, 극도의 다양성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그곳, 제사를 위한 아리따운 꽃, 향, 등불 기름의 내음과 매캐한 매연이 뒤섞여 공기를 흔들어대던 그곳은 콜롬보의 단조롭고 단아하며 무색에 가까운 생활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곳이었다. 콜롬보에 오기 약 일 년 전 배낭 하나와 가이드북 하나만을 들고 헤매던 그 넓은 대지가 난 늘 그리웠다. 그래, 다시 인도로 가는 거야…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인도의 수만 갈래 길 어딘가에 내 몫이 놓여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어떤 답이 우수수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현재의 나로서 명확히 알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사실, 자꾸만 인도로 향하는 마음을 따라가 보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난 다시 인도 땅에 섰다.

 

먼저 남인도의 첸나이Chennai로 향했다. 첸나이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곳이었기에 평상시 인도고전무용에 몹시 반해있던 나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배낭여행 때 잠시 머문 적이 있던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그곳은 미로처럼 엮인 몇 개의 건물에 편안하고 소박한 마흔 개 정도의 방이 있는 숙소이다. 소문에 의하면 이 커다란 집은 한 무슬림 부호의 저택이었고 각 방마다 아내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4층의 옥상에서 저쪽을 바라보면 탁 트인 너른 들판 너머에 그가 세웠다는 큰 무슬림 사원도 보인다. 해가 뜨고 질 무렵 무심히 앉아있으려면 사원으로부터 알라를 부르는 한 줄기 기도 소리 들려오고 마음도 이내 경건하고 아련하게 젖어들고는 하였다.

 

짐을 푼 후 곧바로 신문이나 여행 가이드 북 또는 현지 사람들의 추천을 통해서 고전무용 연구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버스를 갈아타고 갈아탔다. 오토 릭샤(삼륜 자동차)도 수없이 탔다. 걷고 또 걸었다. 첸나이 거리의 먼지와 매연을 뒤집어 쓴 채 이리저리 묻고 물어 여러 학원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학생들의 춤을 볼 수 있었다. 설명을 들었다. 상담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러나 모두 아니었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이, 그 '무엇'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답을 내야하는 바 아니지만, 며칠째 이어진 시도와 실망 끝에서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점점 더 헷갈렸다. 태양으로 달아오른 뜨거운 길거리에 홀로 서서 난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갔다. 당장 누군가에게 이 심정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전화 가게에 들어갔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는지 여러 번 여러 번 재차 걸어도 친구는 전화에 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두드려도 답이 없는 상태는 전화 통화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아 내 가슴은 둥둥 북을 치고 점점 숨이 막혀 몸과 머리에서 꿈틀대는 알 수 없는 역겨움, 괴로움, 허무, 초라함, 짜증, 싫음, 미움, 답답함, 미칠 것 같음, 숨이 끊어질 것 같음 등으로 폭발할 듯 했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어 동생의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통화음 끝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뭐해?”

“어… 누나? 뭐 좀 읽고 있었어. 왜, 뭐하는데? 잘 있어?”

“어… 아니, 그냥…… 나… 지금 인도에 있어”

“인도? 스리랑카 아니고?”

“어…”

“거긴, 왜?”

 

거기까지 몇 마디 이르렀을 때, 참았던 울음이 갑자기 북받쳐 터져 나왔다. 앞뒤를 설명할 사이도 없이, 왜 스리랑카를 떠나 그곳에 왔으며,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 이야기할 사이도 없이 울음이 폭발했다.

 

“나… 나…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 나, 어떻게…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

 

수화기를 두 손으로 꼭 붙든 채, 난 그 말만 수없이 수없이 반복했다. 그 많은 물줄기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지,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되어 투명한 전화박스 안에서 어깨를 꺼억꺼억 들먹이며 한참을 울부짖었다. 동생은 아무런 말없이 담담히 듣고만 있었다. 모노로그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전화가게에서 진을 주욱 뺀 후, 나는 겨우겨우 몸을 가누며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높고 너르며 평화로운 옥상에서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고 싶었다. 가장자리에 앉아 저 너머 무슬림 사원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미풍이 나의 긴 머리칼을 날렸다. 기도 시간이 다 되어 가는지 사람들은 오밀조밀 모여들고 있었다.

그때, 검은 염소 떼를 이끈 한 인도 소년이 벌판을 지나 내 쪽으로 오며 손짓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싶더니, 나더러 어서 밑으로 내려오라는 말인 것 같았다. 아- 소년아, 난 지금 인생의 문제로 매우 심각하단 말이다… 난 지금 한 바탕의 울음으로 녹초가 되어있단 말이다… 나는 짐짓 못 본 채 다시금 시선을 허공에 던졌다. 그러는 사이, 목동은 건물의 바로 아래까지 도착했다. 그곳은 황량하게 펼쳐진 들판과는 달리 나무들이 꽤나 우거져 초록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까지 가까워졌다.

목동은 계속해서 내게 손짓했다. 그러더니 그가 갑자기 바지를 밑으로 확 내렸다. 반쪽 검은 몸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어어?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당황한 난 얼른 고개를 들어 사원 쪽을 쳐다보았다. 사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무성한 수풀 속에 가려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다. 목동은 어린 소년의 맑은 웃음을 머금고 나를 바라보며 열심히, 아주 열심히 수음을 했다. 풀려난 염소들은 소년의 옆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었다. 아… 이 뭐란 말인가? 기가 막혔다. 그러나 일단 건물의 높낮이로 인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나도 호기심이 발동,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래, 석양 속에서 검은 머리 흩날리며 우수에 차 앉아 있는 외국인 아가씨가 네겐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겠지… 비록 작은 일이지만, 비록 매우 기이한 행동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확연히 알고 그것을 내 앞에서 감히 감행하고 있는 그의 용기가 가상하게 여겨졌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 채 떠돌고 있는 나로선 순간, 그런 그가 부럽기까지 했다.

 

이내 일을 마친 소년은 바로 옆 나무 가지에 손을 뻗어 녹색 잎사귀 한 장을 똑 땄다. 그리고는 아래를 닦아내고 다시 염소 떼를 이끌며 천천히 사원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실실 웃음이 나왔다. 허, 참으로… 참으로… 그 저녁, 나의 절박했던 문제와 터져 나오던 울음도 잠시 붉은 노을 아래서 스르르 녹았다.  

 

 

나는 특별한 답 없이 스리랑카로 돌아왔다. 그 후 정작 내가 찾고 있던 춤의 소식을 콜롬보의 아티스트들이 정확하게 알려주었고, 난 일주일 후 모든 짐을 꾸려 다시 인도로 떠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길은 그 모든 것이었다. 스리랑카의 불교학에서 인도의 힌두무용까지, 아니 그 이전부터 이 이후까지도 모두가 연결되고 서로 디딤돌 되어 나의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만 어떤 시기가 도달하여 날 부르는 곳으로 떠나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변주의 길이 시작되는 것일 뿐이다.

 

절절한 울음을 뱉어내게 하던 인도, 짓궂은 수음으로 미소 흘리게 하던 인도, 그 인도의 품안에서 나의 울음과 웃음은 오늘도 충만한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또 다시 펼쳐지게 될 지도 모르는 길에 내 가슴은 활짝 열려있다.

 

 

 


                       

차창룡 2009.09.14. 10:19 am 

첫번째 인도 방문이 첸나이였던가요? 캘커타인 줄 알았어요. 글 정말 맛깔나게 쓰시네요. 정말 기대되는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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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나 - 인도고전무용가. 2005년 오리사주(Orissa)의 꼬나르꺼(Konark)에서 오디시에 입문했다. 현재 인도에서 오디시의 거장 뻐드머스리 구루 겅가더러 쁘러던(Padmashree Guru Gangadhar Pradhan)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꼬나르꺼 댄스 앤 뮤직 페스티발(2006, 그룹 공연), 미쯔비시-인디아(2007, 트리오 공연) 오디시 공연(2009, 솔로 공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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