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나의 "chit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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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나는 이렇게 만났다 >> - 빨강 스쿠터와 팔찌
금빛나  

 

                                                                                                                                  <금빛나의 인도 생활>

 

 

 

인도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일 년 즈음 되었을 때 스쿠터 한 대를 장만했다. 처음에는 오토 릭샤(삼륜 자동차)를 길거리에서 잡아타고 다녔고, 그 다음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하지만 자전거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기에는 도시가 너무 넓었으므로 보다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스쿠터를 마련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부버네슈어러는 델리나 뭄바이 같은 대도시가 아니어서, 사륜 자동차보다는 이륜 자동차인 오토바이와 스쿠터가 거리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그 일원이 된다는 것에 괜스레 야릇하고 즐거워하며, 이곳에서 구입 가능한 회사들의 모든 스쿠터를 시간을 들여 꼼꼼히 알아본 후, 한 인도 회사의 모델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빨간색으로 결정했다.

 

그 무렵 나는 요가 공동체에서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60세 남짓의 남자 스승이 중심이 되어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마다 공동체에서 요가와 뿌자(제사-기도)를 드린 후, 그 구루(스승)에게 깊은 존경의 인사를 올리고는 일터로 떠났다. 인도에는 오만 가지 형태의 뿌자가 있는데 그 중 자전거 뿌자, 오토 뿌자, 스쿠터 뿌자와 같은 교통 매체를 가지고 지내는 제사가 있다. 이런 뿌자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별 희한한 걸 다 가지고 제사를 올리는구만…’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제사, 기도, 의례라는 것이 하나의 상징적 시간을 거치면서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행위라 본다면,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해당될 수 있지 않는가. 스쿠터를 새로 장만했다면, 수많은 스쿠터와 수많은 주인 중 서로 선택되어 만난 우리의 인연에 감사하고, 나를 태우고 다닐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아무런 사고 없기를 기원하며 뿌자를 올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 또한 스쿠터 뿌자를 준비하였다. 춤 수업이 없는 일요일 아침, 힌두 사제 한 명과 구루, 나, 세 명이 모여 작지만 정성된 뿌자를 드렸다. 사제가 그려준 뿌자의 흔적을 이마에 지니고 선 새 빨강 스쿠터는 더욱 반짝거리는 듯 했다.

 

며칠 후 아침 요가를 마치고 뜰에서 구루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초면의 한 남자가 와서 구루에게 인사를 드렸다. 구루와 몇 마디 주고받던 중 한쪽 켠에 세워둔 빨강 스쿠터가 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모델이 좋나요?”

“그렇지, 괜찮아. 저 회사 제품은 믿을 수 있지.”

“빨간색이 아주 이쁘네요. 선생님이 정해주신 거에요?”

“아니야, 미리 말했더라면 정해줬을 텐데 스스로 다 결정해서 산 다음에 가져왔어. 뿌자는 여기서 올렸고”

“어… 그래도 괜찮은 거에요? 저 색상 괜찮은 거에요?”

“그래. 다행히도 본인한테 아주 잘 맞아. 잘 어울린다네. 괜찮아, 괜찮아”

“뿌자 날짜는요”

“그것도, 일요일이 좋다기에 지난 일요일에 지냈지”

“아차 아차(achha achha)… 처음 타는 날짜는요?”

“뿌자 후 곧바로 타기 시작했다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건 무슨 말인가. 비록 일 년 밖에 되지 않은 인도어 실력이지만 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무슨 뜻인가. 대화의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회사의 기종을 살 것이며, 무슨 색으로 할 것인지, 뿌자 날과 처음 타는 날까지 그것을 왜 그 구루에게 묻는단 말인가. 어느 제품이 좋은지는 하나하나 따져보면 곧 알 수 있고, 색상은 내가 선호하는 색으로 고르면 되는 것이며, 바쁜 일이 없는 여유로운 날 뿌자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스쿠터를 샀으면 곧바로 타고 다닐 수 있지 않은가. 그 손님이 떠난 후 구루에게 물었다. 스쿠터를 사는 데 무슨 색의 스쿠터를 사면 되는지 내가 결정하면 아니 되는 것이냐고. 구루는, 여기서는 내가 모두 알려준다네 하며 허허 웃었다. 이상했다. 왜? 도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과 당연한 듯 답(?)을 내놓는 구루 모두가 이상하게 보였다.

 

그 후에도 요가를 하러 다녔으나 풀어지지 않는 의문은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루가 나를 불렀다. 팔에 팔찌를 차지 않느냐고 했다. 춤을 출 때 거슬리기 때문에 아무 것도 차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루는, 양팔에 팔찌를 차면 아버지에게 그리고 (미래의) 남편에게 좋으니 팔찌를 차고 다니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의지하며, 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한다는 인도 여성에 대한 옛말이 떠올랐다. 팔찌를 차면 누구의 신변이 좋아진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팔찌를 차서 내가 좋아야지 왜 아버지와 남편이 좋아진담? 인도의 전형적인 '남성주의적 사고'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동안 마음속에 숨겨놓았던 '미신…'이란 단어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며 올라왔다. 그 모두가 점점 더 이상하게 여겨졌다.

 

요가라는 것이 극히 정신적인 수련이기에 그것을 이끄는 구루는 올곧아야 하고 구루와 제자의 관계 또한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두 가지 모두 해당하는 것 같지 않았다. 구루는 나를 각별하게 아꼈으나 그것에 혹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했다. 요가를 하러 그곳에 가는 날들은 점점 줄었고 끝내는 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몇 년이 좀 더 지나 돌아보건데, 그때의 나의 느낌은 충분히 존중하지만, 시각과 경험의 차이로 인해 생긴 오해가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인도의 매력은 열 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 없지만, 근대화 이전의 사고와 체제를 일상생활 속에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근대 교육 제도인 중·고등·대학교 이외에도 제자가 스승의 대를 이어가는 도제 제도가 살아있다. 각기 떨어져나간 소가족 또는 개인주의 대신 모두가 함께 한자리에서 여전히 살아가거나 또는 영향을 크게 주고받는 대가족 제도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또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필요한 정보를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 결정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대로 스스로 결정하는 대신 지혜롭고 경험이 많은 주변 어르신에게 여쭙고 하던 우리의 옛 모습도 그대로 남아있다. 스쿠터의 색을 고르는 것도, 뿌자 날을 고르는 것도 모두 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인도의 경우 고대서부터 특히 천문학적인 지식이 제사-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고 이러한 지식을 대대로 이어받고 공부하여 익히 잘 알고 있는 자는 전문 종교인이었다. 일반인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상담, 의뢰하여 대소사를 결정했다. 색상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천문적 기운과 관련된, 종교적으로 매우 중시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상담의 건이 되었다. 그것은 ·미신이 아닌, 근대 이전의, 자연에 기댄 학문이었다. 별과 태양과 달이라는 대우주와 인간이라는 소우주의 더 좋은 궁합을 살펴보는 아름다운 지혜의 학문이었다. 다름 아니라, 그곳의 요가 구루 또한 정신적 수행을 지도하면서 당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사람들의 일상다반사에 대한 상담을 해주었고, 사람들은 그를 믿고 경의를 표했던 것이다.

 

팔찌에 관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새내기 일본인 여학생과 수업을 함께 했다. 춤 선생님이 그 학생에게 양팔에 팔찌를 차는 건 오리사의 전통이니 하나 마련하라고 권했다. 수업 후 요가 구루에게서 들었던 아버지-남편에 관한 말을 전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머나, 그러면 당장 가서 하나 사야겠네!”라고 했다. 별다른 편견 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에 순간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래… 여성주의라는 시선이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참으로 필요하지만 난 어느 정도 그것에 갇혀있었구나. 팔찌 덕으로 내 아버지와 남편에게 득이 된다면 좋은 것 아닌가?’

 

그 후에도 요가 수업을 위해 다시 그곳에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무엇을 대했을 때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을 더욱 미뤄야겠다는 생각, 당장 알 수 없다면 차차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인도에 대해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 같아 기뻤다. 몇 년 후에는, 지금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또 이해할 수 있겠지?

 

난 오늘도 양팔에 찰랑찰랑 팔찌를 차고

나의 사랑스런 빨강 스쿠터를 달린다

 

 

 

 


                       

은기사 2009.10.04. 12:10 am 

저도 찰랑찰랑 팔찌 차고 빨강 스쿠터 타고 싶어요. 담에 빛나 씨가 태워주세요.

차창룡 2009.10.25. 4:50 pm 

잘 읽었습니다. 금빛나씨의 산문은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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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나 - 인도고전무용가. 2005년 오리사주(Orissa)의 꼬나르꺼(Konark)에서 오디시에 입문했다. 현재 인도에서 오디시의 거장 뻐드머스리 구루 겅가더러 쁘러던(Padmashree Guru Gangadhar Pradhan)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꼬나르꺼 댄스 앤 뮤직 페스티발(2006, 그룹 공연), 미쯔비시-인디아(2007, 트리오 공연) 오디시 공연(2009, 솔로 공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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