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나의 "chit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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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ntrini >> - 여자인 내가 2
금빛나  

 

 

  

                                                                             여자인 내가 2

 

 

 

미국 뉴오를리언스에서 지냈던 4개월간의 짧은 어학연수 동안의 이야기이다.

초기 3개월은 그저 학교만 왔다 갔다 했지만 마지막 한 달 동안은 마음 맞는 친구들을 사귀어 매일같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는 했다. 뉴오를리언스는 남성 동성연애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인데, 대학 남자 기숙사의 75%가 그러하다는 소문도 들었다. 어울려 다니던 세 명 모두 남자 아이들이었는데 그중 한 명도 역시 남성을 사랑하는 친구였다. 비교적 작은 체구에 세련되고 섬세한 취향을 지닌 그의 이름은 토니. 또 다른 친구는 멕시코인으로, 체격부터 마초 타입인데다 사고방식도 ‘전형적인’ 남자여서 절대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또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일종의 병에 걸린 병자라 여겼다. 매우 자상하고 깊이 있는 친구였지만 동성애에 대해서 만큼은 아주 단호한 의견을 지녔었다. 그의 이름은 구스타보.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저 싱거운 미국 녀석이었지만 언제나 우리 셋과 함께 다녔다. 이렇게 모인 우리는 뉴오를리언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버번 스트릿(Bourbon street)의 밤거리를 늦게까지 자주 서성거리고는 했다.

 

 하루는 토니가 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자신의 고향집으로 나머지 셋을 초대했다. 하룻밤을 머물기로 하고 우리는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여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나니 그닥 할 일이 없었다. 토니는 근처의 카지노에 갈 것을 제안했다. 난 영화에서만 보았을 뿐 카지노란 곳에 가 본 적이 없었으므로 신이 나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 즈음 우리들 사이에선 미세한 신경전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바로 누가 누구에게 관심이 있느냐 하는, 관심의 화살표 문제였다. 토니는 등치에서 사고까지 크고 묵직하며 깊이 있는 구스타보에게 관심이 있었다. 구스타보가 알면 기절초풍한 뒤 그와의 관계를 무조건 끊어버릴 판이었는데,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니는 내게 구스타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런지 나름대로 궁리한 작전을 매우 진지하게 상담하고는 했다. 그러나 정작 구스타보가 관심을 둔 것은 나였다. 한 번은 다른 한국 학생들에게서 한국말을 배워다가 커다란 머그컵에 영어로 SA-RANG-HAN-DEI 라고 커다랗게 써서 내게 선물을 주었다! 난 곧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지만 며칠 후 사태는 다시 진정되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정작 마음을 둔 이는 토니였다. 처음 만나는 남성 동성애 친구였지만, 아니 그래서였을까 호기심이 더욱 발동하여 관심을 쏟게된 건? 여하튼 앞서 말했듯, 그의 섬세하고 세련된 취향을 바라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아닌가. 여자인 나는 후보 선수도 될 수 없다는 사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던,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던,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던,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던, 동성애는 요즈음 부쩍 사회적-법적으로 공적화하고 있을 뿐 고대에서부터 죽 있어온 일이며, 굳이 신의 이름을 거론해가며 병이니 아니니 하지 않더라도, 두 가지 성별이 있으니 자연스레 네 가지 선택지가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진실로 고백하건데, 정신적인 면은 차치하고서 육체적 면만 두고 볼 때, 부드럽고 매끄러운 아름다운 곡선의 여성의 몸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일까, 남자의 몸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또는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여자의 몸에 과연 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카지노의 기계를 몇 번 당기고나니 이내 지루해졌다. 토니는 이번엔 카지노의 서커스 공연을 제안했다. 역시 처음 보게 되는 서커스였기에 한편 궁금하면서도 난 사실 무얼 바라는 마음 없이 자리에 앉아 서커스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화려한 멘트와 음악이 오가며 첫 번째 공연은 러시아 남자의 솔로 무대라고 알렸다. 막이 오르자 갑자기 반나체의 남자가 거대한 공연장의 한 모퉁이에서 반대 대각선 위로 휙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공연장 여러 곳에 장치된 줄을 타고 허공에서 펄럭이며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상체는 러시아의 겨울을 연상하게 하는 얼음빛 누드였고 하체는 하얀 레깅스 차림이었다.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어렸을 적 화실에서 소묘의 모델이 되었던 새하얀 조각상, 미술사 책에서 얼핏 보고 지나쳤던 그 어느 유명한 조각상, 그 서구의 신화 같은 하얀 조각상이 훨훨 살아나 내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미학적으로 완벽한 근육이 그려내는 직선인 듯 감미로움을 머금은 선, 그 어떤 위대한 조각가도 흉내낼 수 없을 생명과 탄력, 그리고 솟아오르는 남성의 힘! 

 그 첫 번째 공연 후에도 여러 종류의 곡예와 예술이 펼쳐졌으나 나의 감탄과 감동은 이미 그 러시아 남자에게 모조리 바쳐진 상태였고 나는 공연 내내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모든 공연이 막을 내렸다. 나는 공연장 문을 나서자마자 다짜고짜 토니를 붙잡고 서서 말했다.


                               토니, 난 너를 이해해! 난 널 정말로 이해할 수 있어. 진심으로 말이야!

 


 

 

                                             여자인 내가 보아도 남자의 몸은 그토록 아름다운데

                                             남자인 네가 보면 스스로 반할 수 밖에 없겠지

 

                                             너는 계속해서 남자를 사랑해라!


 

 

 

 

 

 


                       

허은희 2009.11.23. 4:04 pm 

예전에 선배언니가 누드크로키로 남성의 몸을 그려서 보내준 적이 있는데, 그림으로 보는건 상상력이 포함되어야하니,.. 실제로 볼 기회가 생기면 빛나씨처럼 미학적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토니군은 잘 지내고 있겠지요? 남성을 사랑하면서?

은기사 2009.11.23. 5:37 pm 

스팅의 Moon over Bourbon street......은 제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빛나 씨는 일찌감치 그곳을 서성거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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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나 - 인도고전무용가. 2005년 오리사주(Orissa)의 꼬나르꺼(Konark)에서 오디시에 입문했다. 현재 인도에서 오디시의 거장 뻐드머스리 구루 겅가더러 쁘러던(Padmashree Guru Gangadhar Pradhan)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꼬나르꺼 댄스 앤 뮤직 페스티발(2006, 그룹 공연), 미쯔비시-인디아(2007, 트리오 공연) 오디시 공연(2009, 솔로 공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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