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나의 "chit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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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나는 이렇게 만났다 >> - 사리에 대한 몇 가지 단상
금빛나  

 

                                                                                                  <금빛나의 인도 생활>

 

 

 

어느 화창한 봄 날, 인도에서 돌아온 나는 은사스님을 뵙기 위해 수유리로 향했다. 절에 도착한 후 먼저 경내를 돌며 각각의 부처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이 자리에 서서 나를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집을 나서서 버스- 전철-도보로 그곳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머물지 않은 적은 없었다. 다름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복장 때문이었다. 나는 인도의 전통복이자 일상복인, 사리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미간에는 부처님처럼 동그란 점을 붙였으며, 귀와 팔, 발, 손에는 누렇게 빛나는 인도식 금붙이와 은붙이가 흔들리고 있다.

 

 스님이 계시는 방 앞에서 “스님, 빛나왔어요!” 라고 외치고는 들어갔다. 삼배를 드리는 내내 스님은 “어, 이 녀석 봐라, 허허, 이 녀석…” 하며 놀라신 눈치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야, 이거 아주 우아한데? 니가 문 열고 들어오는데 꼭 귀부인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야” 하신다. 난 갑작스런 칭찬에 멋쩍어져 반달 웃음으로 답한다. “아… 요즘 이러고 지네요…”

 헌데 그 다음 번에 찾아뵜을 때 스님의 반응은 달랐다. 역시 사리를 입고 경내를 기웃거리다 스님을 뵈었는데, 스님은 대뜸 “야 이놈아, 니가 이러고 서울 한복판을 휘젓고 돌아다니면 미친년이 따로 있냐, 쯧쯧쯧…”, 혀를 차신다. 난 갑자기 재미있어져 씨익 웃으며 말한다. “아… 제가 좀 그렇잖아요, 스님…”

 

 은사스님의 이러한 대조적인 반응이 내겐 너무나도 흥미롭다. 사람들은 사리를 입고 한국 땅을 활보하는 한 한국인 아가씨에게 다양한 시선과 반응을 나타낸다. 그리고 난 그것을 즐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은 단연 초등학생들이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만나게 되는 초등학생들은 “이마에 붙인 게 뭐에요?”, “어디서 오셨어요?” 호기심과 재미가 잔뜩 실린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거침없이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도 만화 캐릭터 소녀가 되어 신나게 답해주고는 “인도에도 꼭 와보세요!”를 외치며 마무리 짓고는 한다.

 

여중·고생들은 삼사오오 모여 수군수군 키득키득댄다.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다짜고짜 묻기에는 멋쩍은 십대들인 것이다. 길에서 영어로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은 인도인과 마주친다. 그럴때면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의미있는 웃음과 '어깨 으쓱'만으로 곧바로 고향 사람이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는 아주머니들은 처음엔 조심스럽다가도 결국 말문이 트이고나면 곧바로 그들만의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혹시 신랑이 인도 사람?” 내가 행여라도 “아…예…" 하며 잠시 머뭇거리면, “아, 그랬구나! 어쩐지!", 아예 처음부터 나를 인도 사람으로 보고는 "남편이 한국 사람?", "한국으로 시집와서 살고있어요?" 내가 또 "아…예…" 라고 뜸을 들이면, "어머머, 그렇구나!" 하며 서로 모르는 사이일텐데도 맞장구를 치며 다함께 좋아하시는 것.  

  

 허나 대부분은 말을 걸지 않는다. 사리를 입고 버스나 전철에 들어서면 일단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스윽- 모아진다. 하지만, 고개를 쭉 빼고 쳐다보다가도 내가 바라보면 이내 고개를 싹 돌려버린다. 내가 가깝게 다가서면 어어어- 하며 비켜서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내가 이상한가 보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헷갈려한다. 흔히 보아 온 옷차림이 아니기에 일단 충격적이고, 인도인인지 한국인인지 딱히 모르겠으며, 뭐 하는 사람이기에, 왜 저러고 다니는 건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그렇게, 사리 입은 나의 일상으로 사람들의 지루한 일상을 일순 흥미롭고 궁금하게 흔들어 놓는 작업이 즐겁다.

 

 

 사실, 이렇게 사리를 입음으로써 얻게 되는 가지각색의 피드백과 신선한 충격, 더 나아가 인도에 대한 자연스런 홍보 효과는 직업에 충실하려는 나의 의지와 행동이 낳은 몇 가지 부산물들이다.

 

오디시Odissi 라는 인도고전무용을 배우며 그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생활의 여러가지 면에서 인도문화를 내 몸에 익히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성년의 한 뉴요커 여성이 한국고전무용을 보고 반해버렸다. 이제 그는 한국무용을 연마하여 직업 한국고전무용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한국무용이란  단지 무용의 테크닉만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 한국의 생활문화, 한국 강산의 기운, 한국 여인만이 지니고 있는 특이한 감성을 몸 속에서 직접 구현해내야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성년이 되어 인도무용의 길로 들어섰기에 이를 위하여 각별한 문화적 노력을 한다. 일 년의 9-10개월을 인도의 하늘과 땅에서 살고, 인도 말로 이야기하고, 인도 음식을 먹고, 인도 옷을 입고, 인도인과 지내며, 인도의 철학과 종교를 공부한다. 무조건적으로, 주체성 없이 그들의 문화를 따르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인도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장점을 내 속에 지니려 한다.

 

 한국인이면서 바이올린이나 발레 등의 서양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이러한 문화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런지 모른다. 이미, 라디오를 켜면 언제든지 서양의 고전 음악이 흐르고, 대학에선 발레와 바이올린이라는 뚜렷한 영역이 있으며, 그것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 이제는 우리나라 안에서 만이라도 서로 경쟁, 격려하며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사회-생활면에서도 역시 민주화, 자본화, 산업화, 근대화 등등의 서양에서 기원한 이념이 우리 사회를 주도하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를 우리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왜 나는 사리를 입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닐까?

매년 봄이 되면 서울로 돌아와 몇 개월을 지내는 동안, 난 인도 문화를 전혀 접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말로 웃고 떠들고, 우리 영화를 보고, 적어두었던 ‘먹고싶은 음식 리스트’를 먹고, 그리운 전통 문화 속에서 지내게 될 때, 내가 한국에서도 지닐 수 있는 유일한 인도 문화의 외형적 끈 하나가 바로 사리인 것이다. ‘한국에서 사리입기’는 이런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의 직업과 꿈을 위한 노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미학적이지 않았던들 매우 망설였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사리의 우아함은 나의 영혼을 끌어당긴다. 사리는, 5-6 미터의 풍성하고 긴 천으로 몸을 묘하게 감싸면서 조일 곳은 조이고 풀 곳은 풀어주어 여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로 새겨진 문양! 이 세상에서 상상해낼 수 있는 모든 색감과 옷감의 다채로움!

 

이렇게 아름다운 사리의 미학을 완성시켜주는 것은 '전통복이면서 동시에 일상복'이라는 점에 있다. 요즘은 젊은 세대들이 셔츠와 청바지를 많이 즐겨입고, 인도의 큰 도시라면 서양식 차림을 많이 접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사리 또는 살바르라는 옷을 입는다. 생활에서 단련되지 않고 행사 때만 잠시 전통복을 걸치는 것이라면 옷과 사람은 서로 낯설어 붕 뜨게 된다. 생활 속에서 익숙해진 옷맵시는 그 아름다움을 더욱 배가시켜주는 것이다.

 

 전통복을 오늘날의 일상에서 입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 근대화의 정신은 인도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항시 시계를 보며 시간에 쫓기는 우리는 편리하고 실용적인 옷을 입어야 한다. 사리는 근대화와는 근본적으로 방향을 달리한다. 면적이 크고 긴 그 옷을 간수하고 매번 다리미로 다리려면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사리를 제대로 입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시간이 소요된다. 형태가 고정되어 있는 옷이 아니라 천을 둘둘 감아 입으면서 주름을 잡고 핀을 꽂아 몸에 꼭 맞는 디자인으로 완성시켜야 하는 옷이기 때문이다. 입을 옷 하나하나에 번번이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는 그 자체가 인간을 기계적으로 닦달하고 쪼아대는 근대성에 대한 도전인 것 같아 더욱 좋아지고는 한다. 하지만 나 역시 때로는 그 긴 천을 다려 입기 귀찮아 대충 다른 옷으로 대체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슬며시 말을 거신다. “왜… 엄마가 다려줄까?” 어머니의 이해와 응원에 힘을 얻어 나는 다시 사리와 함께 서울을 거닌다.

 

 

서울에 돌아와서 가졌던 몇몇 공연 이후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다른 한 분의 은사스님을 뵙기 위해 문경으로 내려갔다. 스님은 사리를 입고 나타난 나를 보시고는 대뜸 "니가 인도 여자냐, 한국서도 사리입고 다니게?" 하셨다. 이에, “스님은 외국 가실 때 승복 벗고 나가시나요?” 라고 여쭸다. 나는 진심으로 여쭙고 있었다. 스님은 20년 전부터 인도에 수십 차례 드나드시며 내가 살고 있는 후미진 동네마저도 이미 다녀오신 분이였기에, 그런 말씀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겉모습으로 왈가왈부하는 것 아닌, 인도와 나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이해를 해 주시리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인사차 스님의 거처로 올라가니 이미 몇몇의 손님 스님들이 계셨다. 스님은 내게 차를 건네주시며 그분들께 말씀하셨다. “빛나가 입고 있는 옷이 인도애들 입는 옷이여. 뚱뚱한 인도 여자들이 뱃살을 흘리면서 입어야지 제 맛이지, 이 녀석처럼 홀쭉하게 입으면 영 그래-” 왜 또 저러시는 건지, 난 뽀로통해져 앉아있었다. 그러자 스님은 내게 한말씀 하셨다. “이놈아, 그 옷이 수도자복이니라”

 

 아-? 그러고 보니, 부처님과 스님들이 걸치고 계시는 고동색의 가사가 사리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 아닌가? 인도인들의 생활복, 직업, 아름다움 등의 의미로 입어왔던 내게 사리가 이제는 색상이 들어간 수도복으로 보였다. 실제로, 내가 추는 춤은 그 근본이 고대힌두사원에서 발원한 종교춤이고, 나 또한 나를 찾아보겠다며 인도로 홀로 건너가 지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이유에서, 전날, 스님이 외국 가실 때 승복을 입고 가시듯 신전 댄서의 뒤를 잇는 오디시 댄서도 어디에서건 사리를 걸치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주장했던 것 아니던가. ‘그랬구나…’ 살포시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사리를 입고 선 오늘  

                                                     내 얼굴엔 초승달.

 

 

 

 


                       

차창룡 2009.12.21. 3:05 pm 

잘 읽었습니다.

스님은 사리를 입고 나타난 나를 보시고는 대뜸 "니가 인도 여자냐, 한국서도 사리 입고 다니게?" 하셨다. 이에, “스님은 외국 가실 때 승복 벗고 나가시나요?”라고 여쭸다.

이 부분이 정말 통쾌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이 "나는 진심으로 여쭙고 있었다"더군요. 저는 "나는 진심으로 여쭙고 싶었다"인 줄 알고 여쭤보지는 않았구나 했는데, 다시 보니 '있었다'였습니다.

사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늘 다려입어야 하는 거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나는 한국에선 그보다 훨씬 무난한 펀자비도 입고 나가지 못하겠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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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나 - 인도고전무용가. 2005년 오리사주(Orissa)의 꼬나르꺼(Konark)에서 오디시에 입문했다. 현재 인도에서 오디시의 거장 뻐드머스리 구루 겅가더러 쁘러던(Padmashree Guru Gangadhar Pradhan)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꼬나르꺼 댄스 앤 뮤직 페스티발(2006, 그룹 공연), 미쯔비시-인디아(2007, 트리오 공연) 오디시 공연(2009, 솔로 공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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