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근의 "세계음악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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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12월) . . . 김정호, 님이 부재하는 시대의 님을 위한 진혼곡
보물섬  
 

 더 멀리 우회하여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순례의 여로 

  - 김정호, 님이 부재하는 시대의 님을 위한 진혼곡



  # 순례의 시작에 즈음하여 . . . 북을 울려라, 내 혼을 두드리는 천년의 노래여!    


  음악은 악기, 리듬, 음조, 음색, 악보, 계열적 형태, 표현 기법, 멜로디, 조화, 형식들 같은 소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음악을 단순히 선율과 가락, 리듬 따위의 청각적 요소에 의해서만 파악하거나 가사가 던져주는 메시지 중심의 의미소 형태로 축소시켜 이해하는 것은 그러므로 양쪽 다 온전한 접근 방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음악은 그 모두를 확장한 질서화 된 우주 형태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 음악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전공자들의 일반적인 소견이다.

 

  이러한 견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프랑스의 음악학자 파브르 올리베 같은 사람은 음계와 태양계의 행성 사이의 조응관계를 살펴 미는 태양, 파는 수성, 솔은 금성, 라는 달, 시는 토성, 도는 목성, 레는 화성으로 명명하였다. 온 세상을 마치 제 집처럼 바람 구두를 신고 떠돌아다닌 사생아 시인 아르튀르 랭보 역시 장르는 다르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인 영어의 알파벳에 각각 적당한 색깔 하나씩을 대입시켜 시의 영역을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연극 인류학을 주창하는 덴마크의 유지니오 바르바 같은 연출가는 동물들의 리듬과 운동, 모습 심지어 그 형태를 무대 위로 고스란히 흡수하여 배우들의 몸이 창출할 수 있는 표현의 영역을 상징의 영역으로까지 넓혀나갔다.   

 

  동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의 개화를 꽃피운 이 모든 예술적 지성들의 행보를 참고해보건대 그렇다면 음악이나 시 혹은 연극에 있어서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가장 본질적인 요소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오히려 어쩌면 전달자와 수용자 사이에 매개되는 상당히 미묘하고 불가해한 어떤 관계일지도 모른다고 어림짐작해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다.

 

  양자 사이를 접속시키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은 그러나 ‘소리’라는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하나의 인자이다. 인자의 특성상, 그 인자가 매우 독특한 휘발성을 발휘하여 각각의 영역에서 보다 강력한 자장을 형성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수 혹은 연주자와 배우가 관객을 향해 그리고 시인이 독자에게 마술적인 주문을 거는 형국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소리가 물질의 입자처럼 혹은 일정한 전파의 행진처럼 공기를 진동시키는 규칙적인 파고로 작용할 때 그 파장이 갖게 되는 울림과 떨림은 그것을 수용하는 당사자에겐 놀라운 경이와 매혹의 순간적 체험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 순례 1. 님만 님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 한용운, [님의 침묵] 중에서 


  만해 한용운은 그 독특한 시 세계로 한국 현대시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그의 시집 [님의 침묵]은 총 88편으로 구성된 서정시집으로 1925년 한 해 동안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해 시에서 주된 관심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님’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절대자로, 진리로, 조국으로 혹은 애인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어왔지만 어떤 이는 이를 가변적인 것으로 보아 상상력의 총체적인 구심점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서시라고 할, <군말>에 ‘기룬 것은 다 님'이라는 진술을 토대로 살펴보면 그것이 특정한 고정개념이기보다는 총체적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님에 대응하는 어떤 실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추상적으로 형성된 절대존재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이해함에 있어 ‘님'을 특정한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가 되며 ‘님' 자체로 이해하면서 부가적으로 상징의 세계를 추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님'을 님으로만 보아야 하는 근거의 하나는 그의 특이한 어조와 문체에서도 드러난다. 전편을 흐르고 있는 경어체의 문체와 여성적인 어조는 ‘님'을 사랑하는 대상으로서의 임으로 볼 때만이 서정적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시적 세계관은 변증법적 지양논리에 의해 희망과 기다림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정을 역설적으로 사유함으로써 보다 고양된 긍정에 이르는 것이 그의 시의 큰 특질이며 동시에 시적 수준의 높이를 보여준다는 것. 역설의 변증법은 그가 승려였다는 사실과도 관련된다. 불교적 세계관은 바로 이런 역설에 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부정에서 오는 한을 여성적으로 표출하며 자기희생과 인내를 통해 역설적으로 극복하는 미학은 한국의 전통 정서와도 맥이 닿아있다.     

 

  철학은 슬픔 속에서만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슬픔 이외에는 아무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슬픔의 철학자 김상봉은 서양의 사상가 르네 데카르트와 동양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을 비교, 대비하는 자리에서 슬픔과 눈물 속에서 존재의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슬픔은 철학의 어머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김상봉은 타자가 없는 자기 관계 속에서만 모든 것을 해소하는 서양적 주체성의 본질을 ‘홀로 주체성’으로 명명하고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을 나르시시즘으로 인식한다. 서양철학의 기원은 원래 조화와 질서를 내포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었는데 이것이 주관주의적인 사랑인 나르시시즘을 낳고 그로부터 자기 완결성의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능동적인 주체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그러한 근거를 비현실적이고 주관적인 존재에서 찾는 바람에 결국은 자기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나르시시즘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서양의 자유와 숭고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자기애는 객관적이면서 보편적인 탁월함이 빛을 발하지만 그 반면 자기에 대한 긍지와 자부가 너무 커 자기만큼 아름다운 타자를 본 적이 없기에 단 한번도 타자에 대해 매혹된 적이 없는 불완전하고 미완에 가까운 반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그에 따르면 그들이 타자로 간주하는 동성애자, 죄수, 정신병자, 여성 등은 ‘자립적’인 타자가 아닌 ‘가짜’ 타자이다. 서양의 철학은 그리하여 근대 이후 지금까지 줄곧 밝은 면을 추구해왔는데 그것은 진리를 찾던 철학이 역설적이게도 진리를 배반하는 순간으로 귀결되고 마는 지점이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기에 인생을 공정하게 바라본다,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는 행위는 가장 깊은 어둠 혹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기에 그러한 각성이 바탕이 된 후에서야 비로소 철학은 오랜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참된 삶의 자기반성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서양과는 달리 우리에게 타자는 슬픔의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현실 그 자체이며 인간은 오직 분명히 존재하는 타자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를 가리켜 ‘서로 주체성’이라고 부른다.

 

  김상봉은 만해의 여러 시들 이를테면 <최초의 님>과 <사랑의 존재>, <당신을 보았습니다>, <하나가 되어 주셔요>, <거짓 이별>, <이별은 미의 창조>, <눈물>, <생의 예술>, <해당화>, <알 수 없어요>들을 불러와 여기에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투사시킨다. ‘홀로 주체성’이 진정한 ‘서로 주체성’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나의 존재론에서 우리의 존재론으로 심화, 확장되는 자기의식과 존재사유의 근원으로 승화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결론은 곧 인식의 본질은 근원적으로 창조였는데 그 창조는 사유가 아니라 직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직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순례 2. 간다 간다 정든 님 떠나간다 간다 간다 나를 두고 정든 님 떠나간다 님의 손목 꼭 붙들고 애원을 해도 님의 가슴 부여잡고 울어 울어도 뿌리치고 떠나가더라 속절도 없이 오는 정 가는 정에 정들어 사랑을 했던 님 어쩌면 그렇게도 야속하게 가시나요 허-허 간다 간다 나를 두고 정든 님 떠나간다

  - 김정호, <님> 중에서


  본명 조용호. 1952년 출생. 서울 성동고등학교 졸업. 1974년 <이름 모를 소녀>로 가요계 데뷔. 이후 <빗속을 둘이서>, <사랑의 진실>, <잊으리라>, <작은 새>와 같은 애틋하고 처연한 비장미 어린 단조의 곡들로 폭발적인 인기를 끔. 1985년 폐결핵으로 33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소박하고 작은 것에 대한 사랑을 어둡고 깊고 그윽한 필링으로 노래했던 가수. 경기도 파주의 기독교 공원묘지 그의 비석엔 생전에 남긴 불후의 명곡 <하얀 나비>가 묘비명을 대신하여 남아있음. 사후에 <님>이 실린 유고 앨범과 추모 앨범이 잇달아 발표됨.

 

 이것이 김정호에 관한 짧은 약력이다. 그러나 그의 약력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약력은 과거의 것도 현재의 것도 아니다. 그의 약력은 그칠 줄 모르고 타오르는 그의 노래처럼 미래의 어느 한 지점에 가 붙박여 있다. 그것은 이미 선행적인 시간의 축을 벗어나 궤도를 이탈하여 무한히 질주하는 별의 운명과 닮아있다. 그것이 바로 김정호의 노래이다. 

 

  김정호의 노래가 보유하고 있는 미덕은 동심원을 그리듯 번져 가는 파문의 양상이 참으로 그 노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그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진실이라는 가치체계, 진정성의 세계 그 너머에 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 힘든 시대, 진짜와 가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이 혼돈의 시대에 다시 진정성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이 시대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벼워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리라.

 

  이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에피고넨의 시대에 하물며 십 년도 훨씬 전인 과거의 한 지점으로 ‘한’과 ‘슬픔’이라는 업을 안고 천천히 소멸해간 한 사람의 대중음악인을 소급해간다는 일이 어찌 가당키나 한 노릇일 것인가. 그러나 지하에 잠들어 있는 그를 다시 지상으로 불러올리는 소임을 바로 이 시점에서 나의 붓끝으로 기꺼이 감당하려는 까닭은 지금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이 시작과 끝을 가름하는 분기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정호의 소리는 분명히 여성적이다, 라고 할 수 없지만 남성적이라고 보기엔 너무 여리고 가냘프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임을 직감하겠지만 한 번 듣고 두 번 듣고 그러다가 그의 노래에 익숙해지게 되면  단지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한 그 무엇인가가 그 속에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한 번 듣고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그의 음성은 아주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게 되는데 그 매력은 질박함과는 구분되는 끈끈함이다. 그 끈끈함은 옷감으로 치자면 아주 질기고 튼실한 모시 삼베에 가까운 끈끈함이 아니라 질김 속에서도 부드러운 솔기를 간직한 명주 무명에 가까운 끈끈함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듬성듬성 빈곳이 느껴지는 허함과 그 허함 때문에 다시 그 목소리가 더 한층 빛을 발하는 중층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나 할까.

 

  그 말이 부적절하다면 몇 개의 겹으로 그의 목소리가 감추어져 있다고 한다면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인가. 그래서 그 목소리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주의 깊게 여러 번 그의 노래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때마다 매번 감상자에게 다가오는 소리의 톤과 필링이 다를 것이다. 김정호의 노래를 들어 본 사람들의 느낌이 공통적이지 않고 매우 다양하게 엇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숨겨진 목소리의 풍부함과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같은 발라드라 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성은 단아하고 정갈하고 소년처럼 해맑은 유재하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님이 떠나간 시대에 님의 부재를 호소하는 김정호의 애상적인 바이브레이션이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 만물의 기를 자신의 소리로 되살려내는 장사익과 타악기 세계의 깊은 내공을 토해내는 최소리에게까지 그 뿌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런 면에서 주목해봐야 할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고도 놀라운 것은 내가 김정호의 <님>을 알게 되기 훨씬 전에 이미 김소희의 구음(口音)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거문고와 아쟁과 대금의 그 신명나는 음색을 무색케 하는 입소리의 정체란 무엇일까. 혹시 그것은 맺고 푸는 것, 꽉 묵혀 두었다가 시원하고 개운하게 풀어버리는 우리 소리의 진수가 아닐까. 행여 그것은 작곡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노래를 말하듯이 중얼거리는 것,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접할 수 있었던 저녁 무렵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밖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하나 둘 불러 모았던 그 정겹고도 구슬픈, 그러나 지금은 주인을 잃어버린 소리가 아닐까. 그건 내게 맡겨진 숙제와 같다. 다만 나는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오솔길 사이에서 슬픔의 파도가 거대한 산처럼 밀려오는 광경을 그려보고 있을 뿐이다.   

 


  # 순례 3. 우리는 마술에 걸린 채 황홀해 하면서 잠자지 않고 잠 안에 있으며 잠들 무렵의 그 어린애 같은 쾌감 속에 있다. 그것은 옛날이야기의 시간이요, 나를 고정시키고 마비시키는 목소리의 순간이요, 곧 어머니에게로 되돌아감이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에서 


  그러나 김정호의 노래를 우리는 하나, 단군의 자손이라는 편협한 국수주의 시각에서 한이라는 한국인의 기본 정서에 초점을 맞추어 굴비 엮듯 도매금으로 넘겨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나는 그의 노래에 스며있는 곡진한 슬픔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할뿐이다.

 

   그 슬픔의 끝자락을 잡기 위해 고려가요의 <가시리>를 인용하거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예로 들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역사에 배반당한 슬픔의 한 장면을 증언하고 있는 80년대의 젊은 시인 박세현의 <정선 아리랑>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라. 그의 시를 들춰보는 것은 실로 뼈아프다. 왜냐하면 그는 잃어버린 고향의 아픔과 쓰라림에 통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근대화라는 경제 개발의 논리 앞에 철저하게 소외되고 버림받았으며 여전히 그곳은 타인의 눈엔 여가의 유람 차 들르는 한적한 오지일 뿐이다. 그 서글픈 현실을 목격한 시인은 분노한다. 그의 시가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은 어떻게 지극한 슬픔이 격렬한 분노와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고 그 분노가 단지 분노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적 행동의 동기부여가 가능하게끔 변모되느냐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와 [서편제]의 작가 이청준이 제시하는 슬픔의 한 국면은 막연하게 추상적인 애상적 슬픔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으로, 한 집단이나 민족의 삶으로 구체적으로 들어와 있는 슬픔의 최상급이다. 슬픔의 최댓값은 슬픔을 회피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 슬픔을 직시하고 자신의 살 속으로 체화시킴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만 17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만 초지일관하다가 결국 1998년 12월 11일 세상을 떠난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육성은 그래서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슬픔이 곡비의 처절한 통곡 소리처럼 한 공동체의 뼈와 살에 가슴 절절하게 와 닿을 수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광활한 우주 공간에 구체적인 존재로서 생물학적 생명체인 <나>를 있게 하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하여 그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형제들과 그보다 더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보(世譜)의 사다리는 항상 나에게 설레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상상력의 꼭짓점에는 내가 이 생명을 받고 성씨를 받은 최초의 조상이 계셨다. 그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어떤 음식을 먹으며 누구와 어떤 목소리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살았는지 나는 궁금하였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질문으로부터 저 불가사의한 조상의 몸과 정신에 이르는 징검다리며 모태로서, 나는 외갓집과 아버지의 고향을 찾곤 했다.”

 

  한 개인이나 그 민족 혹은 국가가 처해있는 사회와 역사의 슬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정당당하게 맞설 수 없을 때 그 슬픔의 몫은 당대에서 후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 목록의 말미에 김소진을 빠뜨릴 수가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연유다.

 

  이념과 가난한 세월에 밀려온 고단한 아버지의 삶을 그린 등단작 <쥐잡기>(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부터 시작해서 <춘하 돌아오다>와 <용두각을 찾아서>, <처용 단장> 그리고 비교적 후기작에 속하는 <자전거 도둑>과 <지붕 위의 남자>에 이르기까지 그는 고통 받는 삶과 의식세계를 핍진하게 그려내면서 가난과 민족 수난의 현실에 온몸으로 밀착해 들어가는 놀라운 작가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90년대가 만들어 놓은 거짓 풍요로 도배된 궁핍한 삶과 허위의식에 너도 나도 함몰된 동시대 다른 젊은 작가들이 걸어간 길과는 아주 대조적인 지점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은 그 슬픔이 맞닿아있는 자리가 아프다, 아프다고 지독하리만큼 밖으로 내보일 수 있을 때만이 그 슬픔에 대한 치유가 가능해짐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순례 4. 순교자들은 잊혀지거나, 조롱당하거나, 이용당하거나, 그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해를 받는다고? 천만에!

  - 알베르 까뮈, [전락] 중에서


  순교란 하나의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항상 신의 계획이었다는 T. S 엘리엇의 말을 인용하면서 여기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끝끝내 굽히지 않았던 이차돈과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고 말았던 정약용의 행위를 동일선상에 놓고 함께 거론하는 것은 어쩌면 터무니없이 무모한 짓처럼 보인다. 그보다는 그 굴욕의 순간을 잊지 않고 그러한 치욕의 슬픔이 안겨주는 자기모멸감을 평생을 두고 온몸으로 꿋꿋하게 감내해 갔던 다산을 기억하는 일이 한 걸음 더 현상의 본질에 가려져 있는 진실에 다가서는 방법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처럼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단가를 이해한다는 일은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제쳐놓고 한국의 근대사를 말하기가 곤란한 경우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일본의 변혁기에 해당되던 1886년 출생하여 1912년 4월 27세의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난 그는 시대를 뛰어넘는 일본인들의 정서와 보편적인 사상을 ‘하이쿠’라는 일본의 전통적인 짧은 시가에 담아냈던 우리나라로 치면 김소월에 해당하는 국민시인이었다.

 

 그의 일생이 가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자신의 단가를 슬픈 완구로 부르며 그 속에 맺힌 한을 풀고 또 그 한을 삭이는 슬픔의 정서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일본의 다른 지식인이나 사상가와는 달리 한일합방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들이 그를 개인사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사회사나 정신사와 관련지어 그의 작품을 연구하는 후학들로 하여금 그의 단가를 해석하게끔 만들었다.

 

  ‘꽃잎이 지면 / 누구보다도 먼저 흰옷을 입고 집을 나서곤 했던 / 어린 시절 내 모습’ 이라든가 ‘노동자, 혁명이라는 사회주의 단어들을 / 들어서 외워버린 / 다섯 살의 아이여’ 라든가 임종을 앞두고 쓴 ‘오늘도 다시 가슴에 통증을 느끼네 / 죽을 거라면 / 고향에 돌아가서 죽고 싶다 생각하네’ 혹은 ‘발길 끊긴 한 성의 / 풀 위에서 잠을 청하니 / 15년의 마음이 하늘로 빨려간다’ 등을 보면 슬픔이야말로 인간들 마음 속 저 깊은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기류의 덩어리라는 느낌이 든다.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아름다움에 대한 지속적인 감동을 발견해 나갔던 일본인 중에서도 일본 민예 운동의 창시자이자 미술 평론가이며 종교 철학자이기도 했던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를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은 뛴다. 그는 일찍이 불교 미학에 심취했었으며 조선의 독립을 진실로 염원한 양심적인 지식인이자 학자였다. 그가 조선 총독부가 광화문을 헐고 그 자리에 새 건축물을 지으려고 했을 때 이를 가슴 아파하며 발표한 <잃어지려 하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해서>라는 글을 볼 때마다 내 가슴 역시 심한 몸살을 앓는다.

 

  “ ...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목숨이 이제 경각에 달려있다. 네가 일찍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기억이 차가운 망각 속에 묻히려 하고 있다. 어쩌면 좋단 말이냐. 내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무자비한 끌과 매정한 망치가 너의 몸을 조금씩 파괴하기 시작할 날이 이제는 멀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을 생각하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너를 구해낼 수는 없다. 불행하게도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은 너를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 

 

  그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예술가들은 조선 민중과 살을 맞대고 직접 조선 문화를 호흡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1922년 <시라카바>지에 ‘조선시대 도자기 특집호’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한 지행합일의 참 문화인들이었다. 조선 공예품의 질박한 미에 사로잡혔던 가와이 간지로, 조선 도자가 내뿜는 따뜻한 흰빛과 넉넉한 완벽함의 형태에 감동했던 도미모토 켄키치, 대범하면서도 간결한 조선 목공예의 직선의 구조미에 심취했던 구로다 다쓰아키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마음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진정한 미학주의자들이었다.

 

  유종열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미의 창으로 바라볼 때 조선은 참으로 놀라운 나라였다. 그 예술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마음의 윤택을 얻어 온 나는 한없는 애정과 경모의 마음으로 그 미의 성질과 법칙, 그리고 그 민족의 뿌리와 운명을 추적해 온 첫 일본인임을 자긍한다. 예술을 빼고 또 무엇이 조선을 영원한 것으로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 순례 5. 춤은 가장 불가사의한 예술이다. 춤은 마치 우주 속으로 사라지듯이 사라져 간다. 그것은 무에서 나와 여기에 있다. 그것은 무에서 출현하여 그리고 또 다시 무로 되돌아간다.

  - 오조 라즈니쉬, [명상-무아경의 예술] 중에서


  벽사 한영숙의 10주기 추모공연이 지난 10월 대학로의 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 매년 그랬듯이 소박하고 간소하게 올려졌었다. 이매방이 한국춤의 ‘승무’를 대표한다면 벽사는 ‘살풀이춤’의 일인자라 부를 만하다. 그리고 그러한 벽사의 춤은 송만갑 등 동시대 명창들의 고수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1930년대에 조선무용연구소를 창단하여 전통무용 연구와 후진양성에 주력한 부친 한성준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올해 9월의 문화인물로 뽑혀 각종 학술제와 세미나 석상에 오르내리기도 했던 한성준은 일제 치하에서 한국 춤을 집대성한 민속 무용가였다. 이시이 바꾸의 서양 춤에 매료되어 동경으로 건너갔던 최승희도 후에 귀국하여 그로부터 한국 춤의 진수를 배우게 된다. 이것이 훗날 최승희를 반도의 무희에서 세계적 무희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튼튼한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벽사 살아생전에 그가 추는 살풀이춤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 내가 그의 존재를 알기 전 그 어디선가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듯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대신 그의 춤을 전수받은 시국 춤으로 유명한 이애주 선생의 춤을 가까이서 지켜본 일은 있다.

 

 이애주의 춤은 일명 바람맞이 춤이라고도 한다. 자연의 기본적인 생성요소인 생명으로서의 씨앗과 그것을 키우는 물과 불 그리고 꽃들이 한데 어울려 합장하는 이른바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대화합의 잔치 한마당이었다. 그것은 살풀이춤이 안으로 삭이고 있는 정한으로서의 슬픔을 마음껏 풀어버리는 일종의 방생 의식이기도 했다. 내 속에서 차오르던 슬픔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일대 환희의 한 정점, 그 속에서 춤꾼은 노래 부르고 관객들은 절을 한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전위무용가로만 알려진 홍신자가 근년의 과천 세계 마당극 잔치에서 첫선을 보인 <순례>가 보여준 그 한없이 고요하고 적막한 슬픔의 미학은 어쩌면 벽사의 살풀이춤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왜 우리의 춤과 연극은 서양의 그것을 무작정 따라가기만 할 뿐 그 속에 면면이 녹아 흐르는 슬픔의 맨 얼굴과 정직하게 조우할 수 없는가 하는 안타까움의 다른 표현이다.

 

  이태리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한 이탈로 만치니는 그의 마지막 저서 [얼굴들이 돌아보게 하소서]에서 “우리 세계는 얼굴이라고 하는 이타성의 중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바라볼 얼굴, 존중할 얼굴, 어루만질 얼굴들이 존재하기에 우리 세계는 존재한다."고 고해성사 하듯 토로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엠마뉴엘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을 자신의 철학적 테마로 삼았다.

 

  [우리끼리, 타인의 생각에 대한 시론]이라는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타인의 그 죽음에 응답해야 했다. 타인을 죽음 같은 고독 속에 내팽개쳐둘 수는 없었다. 나에게 그런 책임감을 깨닫게 해준 것은 바로 얼굴이었다. 누가 나를 부르는가? 누가 내게 묻는가? 누가 나를 향해 애원하는가? 타인은 이런 의문을 갖게 해준 직접적인 동기이다.”    

 

  그런가 하면 어딘가에 부딪쳐서 잃어버리고 만났다가 곧 잊어버리는 꿈과 환영으로 뒤범벅된 끝없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일관된 침묵으로 질문하고 고통스러운 절망으로 응답하는 작가 모리스 블랑쇼와 조각가 알베르토 쟈코메티의 아름다운 동행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아, 그렇다면 우리에겐 정녕 헨릭 구레츠키의 [슬픔의 노래]에서처럼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분노의 얼굴을 숨긴 채 조용히 흐르고 있는 슬픔으로 일그러진 아름다운 얼굴이 없단 말인가. 일어서야 할 때 일어서지 못하고 정작 분노해야 할 때 화를 내지 못하는 진실로 어리석은 나와 너, 우리들의 못난 얼굴이여!

 

  우리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바라볼 얼굴, 존중할 얼굴, 어루만질 얼굴들이 단 한번이라도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의 흔적이자 현존인 우리의 굴곡 진 얼굴은 우리 모두의 얼굴인 동시에 어느 누구의 얼굴도 아니었던가. 이 땅의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버림받은 우리의 생채기 난 얼굴과 만신창이 된 몸은 여전히 이 추운 겨울의 창 밖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지 않았던가.                   



 # 순례 6. 시인은 가장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며 그에게는 모든 재물 가운데 가장 위험한 언어가 주어졌고 그는 영원히 존재하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그것을 쓴다.

  - 프리드리히 횔덜린, [궁핍한 시대의 노래] 중에서


 몇 달 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인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 근대미술: 조소-근대를 보는 눈’전에서 드디어 말로만 듣던 김복진의 미륵불을 접하게 되었다. 비록 원형이 아니라 실물 크기로 재현한 복원물이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가라 불리던 작가의 힘과 사상의 면모를 어떤 한계 내에서나마 간접적으로 엿볼 수가 있었다.

 

  전시회를 다 둘러보고 나서 미술관 앞 돌계단에 앉아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석조전의 지붕 밑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문득 두서없이 십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덕수궁은 나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십 년 전 지금의 덕수궁 미술관 자리엔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시골에서 처음 서울로 올라와 하릴없이 낯선 거리를 방황하다가 우연히 들렀던 곳이 바로 덕수궁이었다. 바로 그 자리가 십 년의 서울생활을 시작하는 순례의 출발지였던 셈이다. 그리고 한참 후에 안 일이지만 내가 나중에 잠시 거쳐 가게 된 초창기의 공연예술아카데미가 그 음악 감상실 건물 한쪽 모퉁이에 터를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하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막힌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덕수궁 음악 감상실로 시작된 나의 행로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종로 서적과 교보문고를 거쳐 남산 시립도서관이나 서울역 앞에 있던 동시상영관으로 이어졌다. 책을 가장 많이 본 것도 그때였고 운니동에 있던 실험극장에서 연극다운 연극을 처음 본 것도 그때였다.

 

  그 때의 충격이 워낙 컸던지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서울의 이곳저곳을 틈만 나면 기웃기웃거리는 일종의 바람기를 끝내 접을 수 없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 이를테면 경복궁 안의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창경궁 안의 비원, 프랑스 문화원이나 독일문화원 같은 외국의 문화원들 그리고 재래 한옥식 가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필동의 골목길과 정독도서관 근처의 삼청 공원에서 성대 후문을 거쳐 간송 미술관으로 빠지는 고즈넉한 옛길들을 목적도 없이 어슬렁거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문득 나는 깨달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그 무엇인가가 그리워서 하염없이 쏘다니던 서울의 그 거리가 실은 다 낡고 후진 슬픔의 거리에 다름 아님을. 나는 거기서 내 출생의 비밀을 엿보았을 때와 마찬가지인 일종의 비애를 느꼈다. 그것은 비애라기보다는 서글픔에 더 가까운 연민이었을 것이다. 그 깨달음의 순간에 맛보았던 연민의 한 자락을 설치미술가 조덕현은 [20세기 추억] 시리즈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20세기의 말미를 시대의 추이를 빌려와 장식한 몇몇 설치 미술가들, 예를 들면 전수천이나 이 불 같은 작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폭력과 야만으로 중무장한 20세기라는 거대한 문명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흔과 아픔의 흔적들을 그들의 작품에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근대 회화의 초창기를 살았던 김관호의 <해질녘>과 그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난 뒤의 후배 화가 황주리의 작품 <그대 안의 풍경>을 한자리에 놓고 비교해보는 것은 김복진의 조각에 담겨있던 그 시대의 자화상과 조덕현의 설치미술이 시사하는 당대의 현실을 비교해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사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새 천년의 도래를 고대하고 그에 한 가닥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이맘 때 쯤의 거리 풍경이다. 작가이면서 번역가이기도 한 이윤기의 지적대로 서기로 환산한 시간 개념은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우리에겐 단군기원을 원년으로 한 단기가 있으며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만 하더라도 불교력과 이슬람력이 따로 있고 심지어 우주의 한 점 티끌에 불과한 이 지구라는 행성을 벗어나기만 해도 태양계엔 월력과 화성력을 비롯한 수많은 행성들의 시간주기가 저마다 존재하는 것이니 서양의 잣대로 잰 세기의 교차에 무어 그리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관호와 황주리의 그림에 공통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프랭크 커머드가 그의 저서에서 언급한 이 죽음의 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종말 의식이다. 해 저무는 강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이나 한 자루의 촛불을 중심으로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수많은 나의 모습이 교차되고 있는 한 인간의 내면 풍경은 그 자체가 문명의 한 끝에서 다른 축으로 건너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하라. 그리고 그 경험을 잊으라. 진정한 시인은 무의식 속에서 시의 첫 행을 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말했듯이 우리들의 무의식에 잠재된 슬픔의 강에서 나와 너의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길어 올리는 작업이 이 시대에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 순례 7. 희망이란 원래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고 없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은 것이다. 땅위에 원래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그것이 길이 된다.

  - 노신,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중에서 


  “푸른 도화선 속, 꽃을 몰아가는 힘이 푸른 내 나이 몰아간다 나무뿌리 시들게 하는 힘이 나의 파괴자라 오! 슬픔, 이 오래된 슬픔. 슬픔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외쳤던 시인은 딜런 토마스였던가. 그러나 자기 상실의 체험으로서의 슬픔을 적나라하게 토로했던 사람은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앨런 긴즈버그는 부르짖었다. “나는 광기에 파괴된 우리 세대의 최고선인(善人)들을 봤다. 적나라한 흥분 상태 속에서 굶주린 채, 새벽의 검둥이 거리에서 독한 마약주사를 갈망하면서 제 육신을 질질 끄는 천사 머리의 비트족들. 그들은 밤의 기계 장치 속에서 별처럼 빛나던 발전기와 나눴던 아주 오랜 천상의 교류를 찾아 불타오른다.”

 

  정신적 노예상태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라, 우리 자신만이 우리들의 마음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설파한 것은 밥 말리였다. 비틀즈 역시 지금 당장, 민중에게 권력을 양도하라고 외쳤다. 롤링 스톤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금은 거리에 나와서 싸울 때임을 거듭 강조하였다. 밥 딜런과 존 바에즈조차도 지금 우리는 어디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반문하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참가하였고 비폭력적인 플라워 시위를 주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멕시코의 저 유명한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벽화로 남겼다.

 

 20세기엔 수많은 혁명과 가두시위들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1917년 10월의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시작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하지 않고도 세계를 변화시킨 유일한 혁명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프랑스의 68혁명을 위시해서 홍위병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문화혁명과 미국의 반전 운동 그리고 독일, 이탈리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멕시코 등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학생 시위, 한국의 4.19와 일본의 미일안보조약 반대 투쟁, 터키의 학생운동에 이르기까지 20세기는 그야말로 환희와 갈채의 나날이 아니라 혁명과 투쟁의 나날들이었다.

 

  그 격동의 세월 이면엔 슬픔에 관한 뼈아픈 자기반성과 자각이 없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그 슬픔이 사라졌는가. 우리에게 더 이상 슬픔이 남아 있지 않은가. 머리띠를 휘두르고 두 팔을 힘차게 올리며 두 눈 부릅뜨고 증거 해야 할 슬픔이 이렇게도 얕고 가벼웠다는 말인가. 그 슬픔의 무게가 어디론가 가벼운 한숨이 되어 날아가 버렸는가.

 

  그러나 지금 이 서푼어치도 안 되는 글을 통해 슬픔을 슬픔으로 철저하게 확인하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감히 내가 말한다면 나는 그저 시대의 변화에 뒤쳐진 과격한 교조주의자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러므로 나의 고민은 내게 남아있는 슬픔의 무게가 덜어지지 않은 이상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니, 나의 고민은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 순례의 끝에 서서 . . . 깨어 있으라, 예술가여! 쉽게 잠들지 말라. 너는 영혼의 불멸을 꿈꾸는 시 간의 포로이니라.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밤에 쓰는 편지] 중에서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는 말 그대로 침묵에 관한 자유로운 에세이다. 저자는 침묵의 모습과 그 원 현상을 밝히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자아, 사물, 역사, 시간, 자연, 사랑, 형상들과 침묵의 관계를 섬세하고 사색적인 문체를 동원하여 추적하고 있다. 결국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 했던 바는 침묵이 또 하나의 언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굉장히 큰 영향력과 울림을 지닌 언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언가 현실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을 때 오히려 침묵해야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무언의 동조를 의미하는 침묵엔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음악은 정신의 언어이다. 그 멜로디는 현을 사랑으로 떨리게 하는 유쾌한 미풍과 같다. 음악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우리 감정의 부드러운 문을 두드릴 때, 그건 과거의 심연 속에 오래 감추어져 있었던 기억들을 일깨운다. 음악의 슬픈 가락은 우리에게 슬픈 기억을 가져다준다.”고 칼릴 지브란은 그의 유명한 책 [예언자]에서 밝히고 있다.

 

  지브란의 잠언을 읽으며 아, 이제 나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정호, 왜 그가 그토록 슬픔이라는 인간의 가장 비극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에 집착했었는지를.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유명한 제 7명제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가끔씩 앨범 재킷에 드러난 젊은 시절 김정호의 해맑은 모습을 떠올리며 어쩌면 그가 철저하게 침묵했던 세계가 실은 그의 노래에 저변에 깔려있는 그 깊은 우수와 슬픔의 무게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쨌든 그는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에서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가고 꽃이 피는 봄이 다시 오면 아 나는 나는 나는 꽃을 피우리 아름다운 마음속에’<세월, 그것은 바람>라 선언했던 <작은 새> 가 전해주는 <사랑의 진실>에 자신의 <인생>을 저당 잡힌 순수한 자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시대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세기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의 모습처럼 막 태동하려는 이즈음 세상의 온갖 더럽고 야비하고 혼탁한 어둠을 몰아내고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려는 소망의 기원과도 다름없다. 마치 사랑하는 친구 핼럼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를 생각하며 꼬박 만 17년 동안이나 공을 들여 완성한 추념의 시에서 영국 최대의 계관시인 알프렛 테니슨이 간절하게 갈구하였듯이.

 

 

  울려라, 힘찬 종이여, 거친 하늘로, 나는 구름과 서리 낀 빛으로, 묵은해가 밤중에 죽어간다. 울려라 힘찬 종아, 묵은해는 죽어라.

  묵은해 울려 보내고 새해 울려 들여라. 즐거운 종아, 눈벌판 넘어 울려라. 묵은해는 떠난다. 떠나보내라. 거짓 울려 보내고, 진실 울려 들여라.

  이승에서 보지 못할 사람 때문에 마음 시달리는 슬픔 울려 보내고, 빈부의 격차를 울려  보내고 온 인류에 공정함을 울려 들여라.

  좀처럼 죽지 않는 헛된 명분과 해묵은 당파 싸움 울려 보내고, 보다 귀한 생의 방식 정다운 풍습 보다 맑은 법률을 울려 들여라.

  궁핍 근심 죄악을 울려 보내라. 이 시대의 믿음 없는 냉랭한 인심, 울려 보내라 내 슬픈 가락. 보다 알찬 시인을 울려 들여라.

  지위 가문 자랑하는 헛된 마음과 중상모략 적개심 울려 보내고 진리와 정의를 아끼는 마음, 선에 대한 만인의 사랑을 울려 들여라.

  오래 묵은 못된 병을 울려 보내라. 인심을 옭아매는 황금의 탐욕, 천 가지 오랜 전쟁 울려  보내고 평화의 즈믄 해를 울려 들여라.

  용감하고 자유롭고 넓은 마음씨, 인정 깊은 손의 사람 울려 들이고 땅위의 어두움 울려  보내고 장차 오실 새 님을 울려 들여라.           

  - 알프렛 테니슨, <추억의 노래(In Memoriam A.H.H 106)> 전문(이상섭 역)


 




(대중음악 정론지 <서브> 199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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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 극작가. 2001년 서울시무대지원사업 선정작 <봄날은 간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이여, 고마워요』 가 있다. 제38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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