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근의 "세계음악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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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1월) . . . 정혜선, 투명하고 그리운 기억으로의 여행
보물섬  
 

친구, 내 슬픔을 등에 업고 가는 사람

- 정혜선, 투명하고 그리운 기억으로의 여행



  색에도 저마다 고유한 영역의 특질이 있듯이 이 세상 모든 것에는 함부로 명명하기 힘든 자기색이 존재한다. 꽃과 나비, 새와 나무 심지어는 목숨이 붙어있지 않은 대자연의 햇빛과 바람에도 엄연히 그 존재성은 살아 꿈틀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겐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 짓게 하는 멋이 우러나온다. 혹자는 이를 딱딱한 윤리 교과서의 가르침대로 ‘인격’이라 부르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인격에서 걸러진 우아하고 고상한 품위, ‘사람의 향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인간 역시 우주의 대질서 속에 편입된 하나의 개체, 살기 위해서는 먹고 자고 사랑을 해야 하는 동물의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종의 일부임을 상기할 때, 사회에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 본연의 멋을 가장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 사람의 목청에서 터져 나오는 음성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음성의 빛깔은 밤하늘에 뜬 별 만큼이나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그래서일까. 순수하게 미학적 범주에서만 본다면 색에도 색채학이 존재하듯 사람에게도 음성학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색채학은 미술의 한 분야에 속하고 음성학은 어학의 한 분야에 속해서 그것이 절대적으로 상호 교환, 보완의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음성학은 인간의 구강구조와 그에 따른 발음의 양상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지 사람이 내는 목소리, 음색과는 별 관계가 없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음색은 음악과 더 깊은 연관의 고리가 이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제목으로 소설을 쓴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있다. 그의 말처럼 밤하늘에 무수히 떠서 반짝거리는 저 이름 없는 별에도 저마다 독특한 음색이 있는 것일까. 먼 옛날, 이 세상에는 태양보다 더 눈부시고 달님보다 더 아름다운 한 사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나르시스. 물 속에 비친 제 그림자에 취해 평생 연못 근처를 떠나지 못했다는 신화 속의 인물. 나르시스의 아름다움에 비견할만한 또 다른 전설상의 사내는 아마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지옥의 여제 페르세포네스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은 숲 속의 사냥꾼 아도니스 정도일 것이다.

 

  아무튼 지나친 자기애에 빠져 타인의 사랑에 관해선 무관심했던 나르시스를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남몰래 짝사랑한 숲 속의 요정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코. 질투의 화신 헤라의 노여움을 사 말은 못하고 그 대신 목소리만을 허락받았던 불운한 정령. 그녀는 나르시스의 자살로 또 한번 눈물의 바다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게 되는 슬픈 운명에 처한다. 아도니스가 멧돼지로 변장한 아레스의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고 죽게 되자 그 시체를 부둥켜안고 아프로디테가 비탄에 잠겼을 때처럼 사랑하는 나르시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을 에코가 남긴 마지막 메아리. 그 메아리를 남기고 에코 역시 사랑하는 이의 뒤를 따르게 된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메아리는 어떤 식의 애조의 색깔을 띤 채 그의 이야기를 읽는 이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을까. 오래 오래 길고도 쓸쓸한 공명의 울림을 낳았을까. 

 

 

  정혜선을 보지 않은 지 꽤 오래 됐다.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하루를 시작한 지도 벌써 일년이 지났다. 하지만 길을 걸을 때 차를 탔을 때 심지어 친구를 만날 때조차 언제 어느 때라도 어디선가 그의 노래는 사이렌의 음성처럼 내 가슴속을 파고들어 여지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기형도의 시에 비로소 죽음의 옷을 입힌 김 현의 어투를 빌려서 고백하자면 나는 사이렌의 노래에 영혼을 빼앗긴 오디세우스다. 아니, 아니다. 나는 이 척박한 대중문화의 토양 위에 아직까지 그 꽃을 피우지 못하고 천년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신천옹을 불러들이는 이 지상의 이름 없는 한 시인이다. 시인의 이름을 빌어 도둑 행세를 하고 있는 눈멀고 귀 먼 샤먼이다. 나는 언제부터 그에게 사로잡히게 된 것일까. 돌이켜보면 그것은 근 십여 년에 가까운 외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의 노래는 어느새 내겐 끊을 수 없는 마약이 되었고 나는 그 치명적인 약물에 중독 된 불쌍한 환자라고나 할까. 그의 노래는 마시면 마실수록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인 것이다. 

 

  지금 내 손엔 한 장의 디스크가 들려있다. 그 디스크는 이젠 청계천이나 세운상가의 낡고 허름한 음반가게 혹은 서울 시내의 대형 음반 전문점에나 가야 겨우겨우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의 기억 저편 속으로 사라진 이 시대의 유물, LP 음반이다. 앞면의 앨범 재킷엔 <무지개>라는 큰 타이틀과 함께 제 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기념음반이라는 부제가 달려있고 그 밑엔 이 음반이 담고 있는 노래의 성격을 암시하듯 노랑, 빨강, 파랑의 아크릴 수채물감으로 통기타 한 대를 자유롭게 연주하고 있는 손이 그려져 있다. 재킷의 뒷면엔 경연대회에 참가한 재주 있는 예비 싱어송라이터들의 프로필들이 공연 사진과 곁들여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재킷 정 중앙엔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한 조규찬의 사진이, 그리고 그 왼쪽 상단에, 그렇다, 으뜸상이 아닌 버금상에 해당하는 은상을 받은 정혜선이 폭발하듯 분출하는 독특한 보이스 칼라를 감춘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다소곳한 소녀처럼 앉아 자신의 노래에 몰입하고 있다. 진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이 음반을 조규찬 때문에 산 것이 아니라 정혜선 때문에 사 들였다. 앨범의 뒷면 첫 곡으로 실려 있는 그녀의 노래 <나의 하늘>을 듣기 위해서.

 

  그녀의 목소리는 독특하다, 고 말하기만은 왠지 석연치 않은 무언의 힘이 깃들여 있다. 그 힘은 언어로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강렬한 인상으로 사람들의 귀를 휘어잡는다. 도저한 카리스마! 일찍이 나는 여성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이렇게 희귀한 한 개성을 만나본 적이 없다.

 

  시간과 공간의 벽과 틈을 허물고 비집고 들어가면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은 많다. 그 빼어난 가창력으로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는 가수들은 더 많다. 그러나 가창력과 더불어 그 가창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지닌 가수들은 흔치 않다. 얼른 생각나는 외국의 여가수로 치면 빌리 홀리데이나 니나 시몬, 제니스 조플린과 멜라니 사프카, 트레이시 체프먼 그리고 그 색깔은 다르지만 니코나 제인 버킨, 버피 세인트 마리나 밀렌 파머쯤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나는 정혜선에 앞서 이 땅 위에 현존하고 있는 그런 가수를 한 사람 알고 있다. 그가 바로 한영애다. 정혜선은 유전적으론 한영애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 갈무리된 소리는 한영애의 귀기 어린 음색과는 또 다른 그 무엇이다.

 

 한영애가 깊은 바다 속에 제 몸을 담근 채 가라앉아 있다면 정혜선은 푸른 하늘 위를 붕 붕 붕 날아다닌다. 한영애의 그것이 끈적끈적한 슬픔이 지닌 애수와 비애가 지나쳐 다소 퇴폐적으로까지 여겨진다면 -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또 얼마나 고혹적인가. 그러므로 여기서 ‘퇴폐적’이라는 말은 결코 나쁜 뜻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최고의 찬사에 가까운 표현일지도 모른다. - 정혜선의 그것은 슬픔을 단순한 슬픔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그 슬픔 너머에 있는 싱싱한 희망에까지 닿게 한다. 한영애에게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십대 중반의 노회한 원시적 생명력이 풍겨 나온다면 정혜선에게선 아직까진 모진 세상 풍파에 몸을 섞지 않은 숫처녀 같은 풋풋함과 푸른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어떤 측면에선 산뜻하고 그 산뜻함의 경계를 넘으면 때로는 경쾌함마저 느껴지게 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것은 때로 매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마력에 가까운 특이한 이끌림이다. 리즈 페어와 애니 디프랑코의 독기 서린 건방짐과 토리 에이모스의 종교적인 경건함, 엘라니스 모리셋의 도발적인 반항성, 케이트 부쉬의 서정적인 우아함 그리고 비욕과 폴 진 하비, 쥬얼과 피오나 애플 혹은 나탈리 머천트와 카산드라 윌슨을 마구 섞어놓은 듯한 그녀. 프랑스에서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온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나 우리나라에 CCM(종교음악)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송정미와 더불어 나는 정혜선의 음색을 감히 21세기를 새롭게 열어갈 새 천년의 신비스러운 전조라 부르고 싶다. 

 

  내가 정혜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특한 목소리의 소유자가 이 땅 위에 가수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앞서 말한 제 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열린 콘서트홀에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 대회가 열린 89년 가을이라면 그 전 해 대학입시에 떨어진 나로서는 서울역 뒤에 있던 어느 낡고 허름한 학원에서의 지루하기 짝이 없던 재수 생활로 인해 몸도 마음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던 때였다.

 

 그로부터 삼 년 후, 나 역시 남들처럼 대학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교내방송국이라는 데서 글을 쓰고 음악을 선곡하고 스튜디오에 들어가 녹음을 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마 그 무렵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옴니버스 앨범과 가요제 형식의 음반을 주로 꽂아두는 방송국의 음반서가 한 귀퉁이에서 그를 발견하게 된 것은.

 

 갓 수습기간을 마치고 첫 시험방송을 준비하던 그해 여름의 어느 흐린 날 오후, 어둑어둑해지는 부스 안에서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냥 좀 특이한 음색의 소유자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노래가 이상하게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마음속에 노래가 남긴 여진의 진폭이 그만큼 강했던 탓일까. 그런 특이한 느낌은 며칠동안 지속되었다. ‘이건 웬일이지?’ 하면서도 나는 어느새 노래의 멜로디 라인 한 소절을 입속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음의 색깔은 묘하게도 듣는 사람의 마음 한구석을 서서히 잡아끄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여성의 몸에서 축적된 에너지가 밖으로 발산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가 자연의 공기와 합일하여 이루어내는 울림의 극한적인 지점까지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전율에 가까운 충격이었다. 분명히 가성을 쓰는 것도 아닌 듯싶었는데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그의 목소리가 지니고 있는 묘한 매력에 새롭게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그의 노래에 나의 귀가 사로잡히는 순간이었다. 아니, 귀뿐만 아니라 잠들어있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새로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모르겠다. 어차피 노래에 대한 기호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니 그 순간 내가 경험했던 엑스터시(Ecstasy)는 나만의 극히 주관적인 것일 수밖에 없으리라.

 

  정혜선이라는 가수의 독집을 고대하게 된 것은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였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었나. 옴니버스 앨범에 실려 있던 단 한 곡의 노래로만 내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던 그를 가까이서 직접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이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삼 년간의 방송생활을 끝내고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간 94년 가을, 그해의 교내방송제에 그가 초청게스트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노래손님으로 초청된 것은 한동준이었고 그녀는 한동준을 따라온 신인가수나 다름없었다. 물론 한동준은 정혜선을 자신이 굉장히 아끼는 실력 있는 후배라고 소개했지만. 그 때 정혜선이 무대 위에서 부른 노래는 <나의 하늘>이 아니었는데 그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무대가 어수선한 탓이었는지 몰라도 전에 옴니버스 음반을 통해서 맛보았던 그녀 특유의 음색이 많이 사라졌다는 인상을 받았을 뿐.

 

  초청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잠깐이나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작정만 했다면 그 때의 상황으로 봐서 얼마든지 그 일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이 글이든 노래든 또 다른 그 무엇이든 그 자체로 좋아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그 이상을 기대하다가는 실망하기 마련인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속담처럼 나는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 ‘짧은 만남’ - 그것을 ‘만남’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만남이라는 말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짓는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상호 이해와 면식이 동반하지 않는 만남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노래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그저 한 순간의 스침에 불과한 조그마한 사건이었으리라, 어쨌든 그 후에도 그의 노래를 잊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졸업을 하고 참 많은 생각을 하며 이곳저곳을 부초처럼 떠돌다가 가끔씩 그의 노래를 떠올렸었다. 서울이라는 곳은 나와는 영 맞지 않는 곳이구나,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나가면서 내 속에서 느닷없이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리움 같은 것들을 시라는 형식으로 써 내려간 것 같다. 가끔씩 친구들이 찾아와서 보고는 맘에 든다고 몇 편씩 가져가는 것 외엔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외로운 작업이었다. 내 속에서 나도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내가 하는 일이란 고작해야 그것을 그대로 종이 위에 옮겨 놓는 것 뿐.

 

  그때 문득 어떤 예감처럼 먼 훗날 내가 정말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됐을 때 삶의 예기치 않은 길목에서 우연히 그것도 아주 우연히 그녀와 부딪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글에 정혜선이라는 가수가 곡을 붙여 노래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노래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게 된다면. 그러나 아마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그저 내가 멋대로 지어내는 환상에 불과할 뿐, 그와 나는 가는 길이 다르기에. 

 

  온 사방에 낡고 오래된 먼지 묻은 책들만 수북하게 쌓여서 나뒹굴던 나의 작은 옥탑방의 한쪽 벽면을 치우고 거기다가 집 앞 중고 전파상에서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값에 구입한 인켈 오디오를 들여놓은 것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 위에서였다.

 

  그리고 오디오를 들여온 다음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 <나의 하늘>을 들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학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나 출판사에서 교정을 볼 때나 연극 관련 기관에서 공부를 할 때도 <나의 하늘>은 늘 내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권태롭고 피로한 나의 아침을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싱싱하게 열어주었다. 그것은 비정하고 메마른 도시에서 내 나름대로 나를 지켜나가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자구책이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듣고 난 후엔 거짓말처럼 다시 하루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솟아났다.

 

 나는 주로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무렵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신선한 새벽공기를 호흡하며 최대한 볼륨을 키워놓고 온몸으로 그 곡을 받아들였지만 <나의 하늘>은 사실은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다. 봄볕 나른한 봄날 오후나 햇빛이 쨍쨍 내리꽂히는 무더운 여름날 정오, 가을비 부슬거리는 늦가을의 오전 심지어는 찬바람이 씽씽 날리는 한겨울밤이라도 상관없다. 계절에 상관없이 달에 상관없이 요일에 상관없이 언제든 마음이 울적할 때 꺼내놓고 들으면 다시 한번 이 험한 세상과 맞부딪쳐 살아봐야겠다는 의욕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이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나는 정혜선이 그 몇 년 전에 독집 음반을 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이었던가. 피곤에 지쳐 깜박 선잠이 든 내게 습관처럼 켜놓은 오디오의 FM에서 아주 낯익은 한 여자의 목소리가 꿈결인 듯 저 멀리서 아득하게 밀려왔다. 잠에 취해 있었던 터라 처음엔 그게 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것은 언젠가 한번은 다시 듣고 싶던 목소리,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던 저 희랍신화의 주인공 정혜선이었다. 참 어이없게도 곡이 끝난 뒤 아나운서가 소개해준 노래의 제목 역시 <언젠가 -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언젠가 모두 만나지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였으니 나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처럼 무엇엔가 크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니, 정혜선이 언제 음반을 냈지? 그날의 황당함과 그로 인한 궁금증은 그 얼마 뒤에 곧 풀렸다.

 

  문화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던 대기업이 돈을 댄 한 잡지에서 소개된 저주받은 음반 목록에 정혜선의 앨범이 끼여 있었던 것이다. 속칭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저주받았다는 표현은 실력은 있는데 그 실력만큼 빛을 보지 못하고 대중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어둠 속으로 묻혀버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음반 목록을 작성한 기자는 정혜선의 음반이 외면당한 가장 중요한 까닭은 추구하는 음악의 성향이 다른 기획사에서 앨범을 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그 앨범을 구해서 듣지 않고 있다. 음반을 꽂아두는 나의 책장 겸 디스크 장에서 그의 첫 앨범을 구경할 순 없다. 앨범이 절판된 터라 구하기 힘든 탓도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유통 경로를 통해 암암리에라도 나는 그의 음반을 내 손에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질 않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환상이 깨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또 다른 무엇을 그에게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러나 여전히 기회는 남아있고 언젠가는 그 음반의 숨어있는 진가를 내 귀로도 확인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내겐 그것보다 단지 정혜선이라는 가수가 이 땅 위 어디선가 살아있고 아직까지 그녀가 품고 있는 음악적 열정에 비해 그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단하고 힘겨운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으리라는 사실 그 자체가 주는 믿음이 훨씬 더 소중하기에.            

 

 

  정혜선의 <나의 하늘>을 듣고 있으면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언젠가 중앙의 어느 일간지에서 우리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힌 황순원의 <소나기>가 바로 그것이다.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아름다운 소설이었기에? 그보다는 아마도 그의 작품이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중,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 역시 <소나기>를 읽고 났을 때의 그 가슴 아픈 첫 느낌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소년이 소녀를 생각하면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씹던 대추의 맛이 혀끝에 그대로 남아 오래도록 맴도는 듯한 선명한 기억들. 그 첫사랑의 순수하고 풋풋한 감성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나기>라는 길지도 않은 단편소설 하나가 독자들이 간직한 추억의 도서목록에 길이 간직되고 있는 까닭은.

 

 <소나기>는 또 젊은 영화음악가 신병하의 가슴이 시리도록 애잔한 선율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감독 장선우가 원작을 각색한 TV 드라마에서 낮은 허밍으로 반복되던 주제곡은 천둥번개 우르릉거리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하여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그저 달아나고만 싶은 밑도 끝도 없는 우수와 비애를 자아냈었다. 아주 우울한 어떤 날, 방안에 홀로 누워 이 곡을 듣는 것은 그러므로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독소가 될 수 있다. 마치 사랑과 죽음의 노래, 자살의 노래인 ‘글루미 선데이’를 들을 때처럼.   

 

  내게도 성인이 되기 전의 그 비릿하고 풋풋한 사랑 아닌 사랑의 날들이 있었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무겁고 우애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그런 아슬아슬한 사랑이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사촌 동생이었다. 누이의 이름은 정미였고 그는 노랑머리를 한 말괄량이 계집애였다. 그와 나는 늘 같이 붙어 다녔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늘 같이 붙어 다닌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멀찌감치 비켜서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날들이 더 많았다.   

 

 나는 공부를 잘 했고 그는 공부를 못 했다. 나는 학교에서도 숫기 없는 모범생 꽁생원이었고 그는 남들이 다 알아주는 말썽꾸러기 푼수였다. 그래도 우리는 잘 통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얼굴을 보는 기회가 잦았고 그것이 나는 즐거웠다. 그 때는 어렸으니까 외삼촌댁에 며칠씩 놀러갔다가 한방에서 같이 잠을 자는 경우도 많았다. 그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어떤 때는 외할머니와 단 둘이 지내던 내가 살던 집에 그가 놀러 와서 며칠씩 묵어가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그와 나는 온갖 장난이란 장난은 다 치며 몹시도 짓궂게 놀았더랬다.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를 안기도 했을 것이다. 밤이면 이불 밖으로 목만 쏙 내놓은 채 아랫도리는 홀랑 벗고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서로의 은밀한 부분을 만져보면서 낄낄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마치 거짓말처럼 내 곁을 떠났다. 자기 몸보다 몇 배는 더 큰 통의 뜨거운 물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몇 달을 병원에서 앓다가 집으로 돌아와 곧 눈을 감았다.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거짓말 같아서 실감이 나지 않고 그래서 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죽던 날 아침, 사촌형이 할머니를 찾아왔었다. 정미가 죽으려고 해요. 할머니는 형을 따라 나서면서도 끝끝내 나는 데려가지 않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가 내 곁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이었다.

 

  죽음이 무언지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구슬치기를 하며 놀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나가는 말로 정미가 죽었대, 그랬을 뿐이다. 내가 나의 누이를 위해 해준 일은 단지 그것밖에 없었다. 그만큼 나는 모자라고 어리석었다. 지금 나는 그때 일을 후회한다. 그는 나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였음을 이제야 뒤늦게 알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다르지만 또 모두 같다. 첫사랑의 시리도록 투명하고 맑은 순정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한 우리 생의 밑그림과 같은 것이기에 더욱 더 소중한 건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 이전의 사랑, 인간의 저 심층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원초적인 감정이다. 그리다 만 감정의 포말이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우정에 더 가깝다. 그러하기에 첫사랑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그리고 그 전제를 부정하여 뒤집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남녀간의 사랑으로가 아닌 우정으로 남게 된다.

 

  소년의 소녀에 대한 까닭 모를 연민과 그녀의 죽음 뒤에 오는 허탈감은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보내는 연애의 감정이 아니라 그러한 연애의 감정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또 하나의 감정의 드러냄, 그 쓰라린 굴곡의 소용돌이, 감정의 전이다. 자기 곁에 남아 영원히 자신의 거울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또 다른 자아, 그것은 친구 혹은 동무라는 이름의 좀 더 가까운 보통명사가 아닐까.

 

  그 사랑과 우정 사이,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마치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의 양가성은 물방울이 환기하는 유년의 이미지와도 일치한다. 물방울은 존재의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내포한다. 실존이 곧 부재이고 부재가 다시 실존으로 변모한다. 물방울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끊임없이 수직이동과 수평이동을 반복한다. 그 반복과 순환이 곧 물방울이 갖는 끈질긴 생명력이자 존재 이유이며 정체성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물방울은 순간적으로 모였다가 그 응집이 다하면 흩어진다. 물방울은 물보라와 물거품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중간자이자 일종의 매개항이다. 한 개체의 삶이 순간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영원을 지향한다면 그의 삶은 물방울의 일생과 닿아있다. 물방울은 순간이 곧 영원인 삶이다. 물이라는 유개념의 대하에서 방울과 방울은 물과 따로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함께 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따로’ 또 ‘같이’ 간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한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유년이라는 시간이 환기하는 메타포의 자장은 넓고도 깊다. ‘넓고도 깊다’라는 말은 사실은 그 폭과 깊이를 가늠하기엔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상투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치명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이 소녀를 바라보는 감정의 복합적인 기류는 한없이 투명한 불투명성이다. 투명하면 투명해질수록 점점 더 본래 그 투명함이 갖고 있던 순도와는 멀어지는 투명함이다. 언제 깨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불안하고 초조한 투명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그 미완의 투명함을 향해 날개를 벌렸다. 무언지도 모르는 심연으로 날아가고자 하는 의지, 그것이 사랑의 완성이자 우정의 잉태이다. 양립할 수 없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불길한 길항이자 그 둘을 포월하여 나아가는 더 높고 깊은 감정의 비상이다. 사랑은 사랑을 버림으로써 우정을 낳고 우정은 사랑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난다.

 

  소년에게 있어 소녀에 대한 사랑과 우정의 중첩과 배리는 그러하므로 굳이 비유하자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빌어 와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반 오이디푸스적인 병리현상을 성찰했던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정신과의사 가타리의 동체이항 - 짝패 개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한국의 불교철학사에서 원 효라는 뛰어난 승려에 의해 정립된 화쟁사상의 본질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화쟁이란 조화와 화해를 모색하는 인식 전환의 한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 이분과 이항대립의 갈등을 넘어서는 어떠한 계기가 바로 화쟁이다. 따라서 그것은 부정과 긍정을 넘어서는 변증법적 열림의 총화이다.

 

 

  김창렬의 <물방울 연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언제였던가, 그날이, 목련꽃 이파리가 지나가는 봄비에 소리 없이 지던 사월의 끝자락, 마음속에선 어디선가 끊임없이 메마른 바람이 불고, 마음의 옷을 갈아입은 때 묻은 육신은 지치고 고단한 다리를 끌고 누추하고 추레한 서울의 이름도 없는 거리를 하염없이 배회하고 있을 때. 93년 그해 봄에서 여름 사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도무지 아득하기만 해서 아무 대책 없이 마냥 서성거리고만 있던 물거품처럼 허망하기만 하던 날들 중의 어느 하루였나.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날, 인적 없이 고요하기만 하던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그 적요한 풍경 속의 한 장면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도 나는 고달픈 몸을 끌고 마약에 중독 된 사람이 약효가 떨어져 다시 그 약을 구하러 가는 심정으로 습관처럼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그림을 보고 나면 비정한 현실의 살벌함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내 초라한 상황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고 나는 그 힘으로 다시 겨우겨우 서울생활의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었다.

 

  그림 앞에만 서면 마음은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내 몸은 끝없이 작아져 그 그림 속으로 쓱쓱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종의 도피였으리라.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남루하고 남루하여 어디론가 도망치고만 싶지만 사위가 꽉 막힌 벽이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을 때 존재의 비상을 꿈꾸어 보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영 어긋나기만 할 때 그 절대 절명의 순간에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자살을 꿈꾸게 된다.

 

  그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일 것이다. 존재와 무 사이에서 그래도 한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실천 가능한 최후의 선택이 자살임을 여전히 나는 굳게 믿고 있기에. 언제나 그런 용기를 부러워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그런 용기조차 낼 수 없는 소심한 겁쟁이에 불과했다. 죽을 수도 그렇다고 살수도 없는 그런 겁쟁이들에겐 그 자살을 대신하는 최소한의 도피처가 있을 것이고 내게 있어 그 도피처는 책과 그림이었다. 그것이 한 존재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다른 존재와 자연, 또 다른 존재와 세계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순환 현상인가.

 

  김창렬의 작품을 보기 전에 나는 귀동냥으로 벌써부터 그의 작품세계를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던 그에 관한 정보는 주로 [공간]이나 [미술세계]와 같은 잡지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실물 크기의 원화를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선 가슴이 뛰었다. 작품을 보기 전의 그러한 설렘은 역시 그 기대만큼 배반당하지 않았다.

 

  <물방울 연작> 앞에 섰을 때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던 그 청정무구한 느낌! 그것은 이미 언어의 수사학이 보유하고 있는 인식의 세계 그 너머에 존재하는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그 어떤 것이었다. 그의 그림은 말 그대로 그러한 신비로운 체험의 절정이었다. 수백 개의 물방울들이 무리 지어 울고 있었다, 아니 환하게 울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나도 어느 샌가 그 물방울들 중의 하나였다.

 

  물방울들의 손과 발은 서로 엉겨 있었고 그의 혈관에선 따뜻한 피가 돌고 있었다. 물방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우주였다. 그 우주 속에 내가 있었다. 나의 영혼이 숨쉬고 있었다. 영혼의 꽃과 숨이 껍데기뿐인 몸의 허물을 벗고 새와 나무가 되었다. 머나먼 우주를 여행하는 순례의 길 위에 나는 서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그냥 나는 떠밀려갔다. 숨이 차올랐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내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영원히 깨지 않는 깊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랬다. 그날, 미술관 위로 빗방울들은 소리도 없이 무너져 내렸고 그날, 나의 정처 없는 마음속으로 수만 개의 물방울들이 날아올랐다 내려앉았다. 내 의식의 실체는 부끄러운 등유의 깜박임처럼 점점 더 작아졌다. 이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갑자기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가슴속 저 밑바닥으로부터 신선하고 차가운 샘물이 차오르듯 서서히 스며들었다. 아무 것도 모르던 백색의 계절, 그 천진난만한 세계로 회귀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곳, 꿈길에서나 그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곳.

 

  기억은 천천히 온다. 천천히 왔다가 순식간에 달아난다. 밀물처럼 천천히 밀려왔다가 썰물이 빠져나가듯 일순간 사라진다. 기억은 쉽게 잊혀지는 것이다. 기억은 또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몸을 섞듯 과거의 눈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듯 그렇게 중요한 것은 순환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는 원근감이 없다. 공간적인 거리감도 없다. 죽은 친구가 성인이 된 친구를 찾아오듯 두서없고 낯설다. 짧은 글에는 늘 긴 침묵이 따르듯 기억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회로장치를 거부하고 그를 뒤엎는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섬뜩하게 한다는 파스칼의 정언처럼 그러하기에 기억의 상실, 기억의 훼손은 두렵고 치명적인 것이다. 치명적인 것이기에 불길한 것이다. 기억은 여태껏 시간과 공간의 틈을 비집고 내 구멍 난 몸을 통과해왔다. 그러고 보면 기억은 언제나 순간이었고 또 그 순간은 순간으로 영원했던 것은 아닌가. 오고 가는 그 기억의 미로 속에서 나는 기억의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내 몸을 구성하는 뼈와 살의 자양분으로 섭취하며 자라난 것은 아닌가. 명가의 마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보호받고 목숨을 부지한 것은 아니었던가. 

 

  기억한다. 사월이었다. 봄이었고 강의실 창 밖으로 만개한 벚꽃들이 마치 이승이 아닌 아득한 풍경 속의 한 점처럼 밀려왔다 밀려갔었고 나는 그 아찔한 창 밖의 정경에 혼미하여 넋을 잃고 있었고 그 순간 죽음의 먼지가 까맣게 묻어있던 내 시선 안으로 시름에 젖은 어떤 목소리가 부드러운 입김처럼 다가왔었고. 나는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자네! 시를 쓰나? 소설은 시가 아닌데 . . . 그가 누구였던가. 나의 이름을 호명한 그는 정녕 누구였던가.

 

  그 순간 강의실 칠판 위로 마구 쏟아져 내리던 햇빛들 나의 화끈거리던 얼굴을 향해 짓궂게 내려앉던 호기심에 찬 수많은 눈빛들 그리고 내 책상에 놓여있던 원고지 위로 아른거리던 빨간 사인펜 글씨 . . . 그리고 또, 또, 또, 나는 기억한다. 나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던 그때 그곳에서 나이 많은 한 선생의 주름진 이마, 그 세월의 끝없는 나이테를.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은 절친한 동료 이 상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그에게 이 상은 둘도 없는 죽마고우이자 터놓고 예술적 영감을 교류할 수 있는 지기였던 모양이다. 그림 속에서 이 상은 입에 파이프를 물고 파리하게 웃고 있다. 그들은 일제 치하의 저 암울한 1930년대를 오로지 치열한 창작욕 하나만으로 버텨나갔다.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질주였다.

 

  그들은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서로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존중하였다. 예술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는 벗이 곁에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자 지복(至福)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를 몰라 봐도 좋다 내겐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한 사람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아마도 구본웅과 이 상은 그런 관계가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은 한 문학잡지의 표지모델로도 쓰이고 있는 이 그림을 들여다 볼 때마다 예술 혼으로 굳게 결속된 그들의 사이가 부럽다. 지금 내 곁엔 나의 작품 세계를 인정해주는 눈 밝은 벗이 있는가. 아니, 그것보다 우선 나는 내가 추구하는 글의 세계에서 행여나 사이비는 아닌가. 나는 남들 앞에 나의 작품을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가. 나는 진짜이고 싶지만 지금까지 가짜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가짜이면서 진짜 행세를 한 건 아니었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만큼 나는 부끄러운 것이다.    

 

  언젠가 내 가슴 한구석에 비밀을 키우듯 몰래 몰래 자리 잡은 색다른 버릇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몇 편의 영화를 만들어보는 일이다. 그것도 긴 영화가 아니라 아주 짧은 단편영화 말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창작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영화가 아니라 원작이 따로 존재하는 영화들이다. 그 원작은 대개의 경우 내가 지금 여기 이곳에 이르는 동안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생의 여러 굽이진 길목 길목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 연이 맺어진 내 가슴에 마지막 유성이 사라질 때처럼 강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 소설들이다.

 

  양건식의 <슬픈 모순>에서부터 시작해서 김동인의 <수정 비둘기>나 현진건의 <고향>, 나도향의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과 계용묵의 <병풍에 그린 닭이> 같은 1920년대의 작품들, 3-40년대 채만식의 <치숙>이나 이효석의 <산>과 <들>,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이나 <소낙비>, 이태준과 박태원의 여러 소설들, 조명희의 <낙동강>과 허 준의 <잔등>, 강경애의 <산남(山男)>, 박화성의 <추석 전야>나 50년대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나 오영수의 <메아리>, 허윤석의 <유두(流頭)> 그리고 6-70년대 김승옥의 <생명연습>, 이청준의 <눈길>, 최인훈의 <국도의 끝>, 서정인의 <강>과 <나주댁>, 이동하의 <인동(忍冬)>, 천승세의 <혜자의 눈꽃>, 김성동과 황석영의 짤막짤막한 소설들 그리고 조세희의 <난장이> 연작과 박상륭의 <남도> 연작, 한수산의 <대설주의보> 8-90년대 이외수의 <고수>, 임철우의 <눈이 오면>과 양귀자의 <원미동> 연작, 이균영의 <멀리 있는 빛>과 윤후명의 <협괘열차> 연작들, 김영현과 김채원의 몇몇 작품들 그리고 김인숙의 <양수리 가는 길>과 최 윤의 <숲에서 숲으로>와 윤대녕의 <빛의 걸음걸이>에 이르기까지.

 

  신경숙의 <멀리, 끝없는 길 위에>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다. 신경숙이 쓴 아름다운 단편소설 <멀리, 끝없는 길 위에>엔 주인공인 ‘나’와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기이한 인연으로 엉킨 ‘이 숙’ 이라는 말을 심하게 더듬는 버릇이 있는 친구가 나온다. 이 숙은 그녀의 몇 몇 다른 소설, 이를테면 <직녀들>이나 <해변의 의자>, <밤길> 등에서도 그녀가 썼던 표현대로 운명의 기미처럼 등장하여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정조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주인공인 화자에게 있어서 이 숙은 그가 나서 죽을 때까지 숙명처럼 달고 다녀야 하는 어둡고 서글픈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그 무거운 천형과도 같이 이 세상의 그늘진 곳으로 낮게 드리워진 그림자의 몫은 어쩌면 작가 자신이 이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으면서 알게 모르게 지게 된 많은 빚들을 하나하나 되갚아가면서 조용하게 감내해야 할 소명인지도 모른다.

 

  나는 정혜선의 <나의 하늘>을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그들, 주인공인 나와 이 숙이 처음 조우하게 되는 봄날 교정의 눈부시도록 맑고 투명한 하늘 위로 올려 보낼 작정이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꿈이다. 그 꿈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실현 불가능한 꿈이다. 그러하기에 그 꿈은 미래가 없는 꿈이다. 꿈으로서의 희망이 거세된 불구의 꿈이다. 그러나 또 어떠랴. 그 꿈이 한낱 백일몽이라 한들. 우리네 인생이 어쩌면 이 세상에 한번 잠깐 왔다가는 찰나의 아름답고 덧없는 슬픈 꿈과 같은 것을. 어둡고도 환한 봄날 어느 한때 소풍을 나온 듯한 그 꿈이 실은 그만큼 아름답고 덧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정혜선의 <나의 하늘>은 이렇게 시작한다. (언제나 너는 그 푸르름으로 내가 가진 어둠 감싸주고 내가 빠질 수 있었던 유혹과 거짓으로부터 너는 나를 지켜 위로해주며 왠지 슬픈 날에는 비를 내려주고 기쁨 가득한 날엔 환한 햇살 내려 항상 나의 곁에 있는 . . .)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사이에선 친구라는 존재를 가리켜 ‘나의 슬픔을 자기 등에 짊어지고 가는 사람’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것은 문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아주 오래된 그들만의 공동체 사회에서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삶의 지혜이자 전통일 것이다.

 

  일전에 그 아름다운 인디언의 전통이 담긴 지혜를 만화가 박광수씨가 빌어 와 그의 작품에서 인용한 컷을 본 적이 있다. 그 역시 가족이라는 공동체적 삶에 기반을 두고 그 배경에 훈훈한 인간미가 넘쳐나는 둥글둥글한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다. 정혜선은 박광수가 그려내는 만화 속의 주인공처럼 또 노래한다. (언제나 너는 그 높은 곳에서 내가 가는 이 길 밝혀주고 내가 힘겨워하던 외로운 세상으로부터 너는 나를 지켜 강하게 하고 가슴 답답할 때면 밝은 아침이 되어 지쳐 잠이 들 때면 별빛으로 다가와 항상 나의 곁에 있는 . . .)

 

  친구나 가족, 그들의 모임으로 대표되는 공동체 사회에서 형성되는 ‘정’이라는 개념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일찌감치 청산해야할 전근대적 퇴행쯤으로 취급되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또 우리사회처럼 혈연이다, 학연이다, 지연이다 해서 유난히도 별스럽게 인연의 끈이 강조되는 풍토를 감안한다면 그 달갑지 않음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결국 나중에 돌아가 자신의 머리를 눕힐 곳은 바로 그런 고향임을 어쩌겠는가. 사회풍토가 잘못 됐다고 해서 그 자연스러운 사실마저도 부인할 순 없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숙명처럼 따라붙는 근원에의 그리움이자 향수이다. 그것은 애써 일부러 부정한다고 해서 거부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인간의 존재로 이 세상에 난 사람은 누구나 저 가슴 깊숙한 곳에 고이고이 묻어두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 자산이자 무형의 유산이다. 그것은 신화의 세계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본질적인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내게도 그런 벗들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세상이 무언지도 모르고 철없이 뛰어 놀던 시절 진흙탕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뒹굴던 꼬맹이들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우연인지 필연인지도 모르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던 소중한 이들 그리고 이 풍진 세상 활짝 꽃피워보지도 못한 채 너무 일찍 저버린 녀석들. 어찌된 영문인지 내겐 유난히 그런 친구들도 많았다.

 

  백혈병을 앓던 초등학교 때 먼 곳에서 전학 온 미처 친해보지도 못한 호성, 술에 취해 밤늦게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오던 차에 치에 사고를 당한 시를 쓰던 중학교 때의 유진, 그리고 얼마 전 느닷없이 스카프로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 방송국 시절의 선배 금희. 그들 모두는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막막한 이 세상 아니 저 세상의 어디쯤을 힘겹게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또 어디로 가는가. 잠시 잠깐 옷깃을 스쳐 지나가듯 어이없이 만났다 헤어지는 그런 바람인가.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처럼 그들과 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 것인가.

 

  그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그리고 지금 내겐 또 내가 힘들 때마다 언제나 찾아가 기댈 수 있는 몇몇 친구들이 남아있다. 서로의 구멍 난 가슴을 보듬어 안아주고 그 아픔과 상처에 새 살이 돋게끔 위로하고 격려하는 나의 사랑스러운 분신들.

 

  ‘음악을 하기로 하였다. 세상 그 많고 많은 일들 중에서. 그 속엔 새로운 자유, 상상의 기쁨 그리고 지키고 싶은 믿음이 있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잠을 줄이기로 하였다. 그것은 나를 긴장케 한다. 오, 왠지... ’, 첫 독집앨범 부클릿에 마치 피로 쓴 유서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던 그의 빛나는 다짐들. 그래서 정혜선은 또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변함없는 ‘희망’이고 ‘믿음’이고 ‘사랑’이어서 언젠간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친구, 바로 그 아득하고 아득한 곳이 <나의 하늘>이라고.     


(106매)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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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 극작가. 2001년 서울시무대지원사업 선정작 <봄날은 간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이여, 고마워요』 가 있다. 제38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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