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근의 "세계음악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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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2월) . . . 조동진 & 장필순 , 순간에서 영원을 가로지르는 영혼의 음유시인
보물섬  
 

 꿈과 잠, 꽃과 숨의 시학

  - 조동진[장필순], 순간에서 영원을 가로지르는 영혼의 음유시인



  제비꽃은 들에서 흔히 자라는 들꽃이다. 풀잎 같은 연약함을 간직한 채 저만치 홀로 피어있는 꽃이다. 원줄기는 없고 뿌리에서 긴 자루가 있는 잎이 자라서 옆으로 비스듬히 퍼지는 게 설핏 보면 작은 나팔꽃이나 담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을 연상시킨다. 잎은 긴 타원형의 피뢰침 모양이고 끝이 둔하고 가장자리에 가느다란 톱니가 있다. 가느다란 톱니는 가시와도 같아서 그것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연약함 속에 숨어있는 강인함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한다. 꽃이 진 다음 잎자루의 윗부분에 날개가 자란다.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자라나 끝에 꽃이 한 개씩 옆을 향하여 달린다. 꽃은 짙은 붉음을 뿜어내는 자주색이다. 선홍색에 더 가까운 그 빛은 묘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청명한 하늘의 푸른색과 어울려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청초하고 해맑은 여인의 자태를 빼 닮았다. 아니, 그것은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아직 아무 것도 잘 모르는 순진무구한 소녀의 얼굴처럼도 보인다. 가슴속에 순결한 영혼을 향한 동경과 소중한 꿈을 품은 채 행여나 그 꿈이 깨질까 노심초사하는 소녀의 모습은 아슬아슬하다. 언제까지나 어른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도는 영원한 소년의 비애처럼 소녀의 순수는 어린애처럼 꿈을 계속 좇고 있기에 주체적인 한 여성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어리광쟁이의 무분별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유치함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줄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소녀는, 소녀라는 존재의 대명사는 예쁘고 귀엽지만 아름답고 눈부시지는 않은 건지도 모른다.

 

 자유롭고 변덕스러운 유예기간인 청소년기로부터 나오려고 하지 않는 모라토리엄 인간. 파랑새 증후군과 피터팬 신드롬으로 대변되는 소녀의 아침 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세계는 언제 금이 갈지도 모르는 거울의 운명을 예감케도 한다. 호수에 비친 제 모습에 취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던 신화 속의 인물 나르시스처럼 그러한 거울의 운명은 소녀 자신에게 있어선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인 동시에 고통스러운 저주이다. 그 축복과 저주의 심연에 갇혀 소녀는 차츰 늙어간다. 그러나 그 늙음은 시간의 흐름이나 세월의 변화와는 무관한 겉늙음이다.

 

 겉늙음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존재의 근거를 부정하고 망각하는 파멸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수렁으로 빠져드는 첩경이기에. 마치 갈매기의 크고 화려한 비상을 꿈꾸다가 결국은 꿈도 사랑도 잃어버리고 현실의 덫에 치여 삼류배우로 전락한 체홉 희곡 속의 여주인공 니나의 고달프고 쓸쓸한 운명처럼. 니나는 작품의 말미에 자신의 옛사랑이었던 뜨레쁠레쁘를 찾아와 미친 여자처럼 중얼거린다.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건 명성이나 영광처럼 내가 공상하고 있던 것들이 아니라 실은 인내력임을 이젠 알겠어요. 그래요. 겨우 이제서야 깨달은 겁니다. 자신에게 지워진 십자가는 바로 자기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그다지 괴로울 것도 없고 인생이라는 자체도 두렵지만은 않아요.”

 

  니나의 뒤늦은 각성처럼 삶은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견뎌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이라면 그에 따라 시간 역시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고 우리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 또한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기에 이 모든 것을 수렴한 뒤에라도 소녀의 존재는 반딧불처럼 살아서 반짝거릴 것이다. 예민하고 섬세하다 못해 결벽증에라도 걸린 듯한 소녀적 감성은 이른 아침 우물에서 막 길어와 항아리에 찰랑거리는 찬물처럼 신선하고 새로울 것이며 그에 대한 찬미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16세의 베아트리체를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그 순간 사랑과 인생에 눈을 떴다는 노 시인 단테의 고백 어린 육성과 이웃집 젊은 처자 로테를 한평생 영원의 여인상으로 그리워한 베르테르의 삶은 소녀라는 인식론적 기표와 기의가 인류사의 망망한 대해에서 결코 쉽게 가라앉거나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어쩌면 소녀라는 명제의 차원은 인식론적이라기보다는 존재론적이고 그것은 경험적인 게 아니라 선험적인 것인가.

 

 

  제비꽃은 순수하다. ‘순수함’의 반의어는 ‘불순함’이나 ‘더러움’ 혹은 그에 상응하는 여러 갈래의 말일 텐데 그 말의 어감 속에는 ‘약지 않다’는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세상의 온갖 냄새나는 소문의 진원지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홀로 고고하고 의연하게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속의 티끌이나 잡물로부터 벗어나 초연하게 서 있는 그 자체가 이미 순수의 어원이 던져주는 이미지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동진의 <제비꽃>은 순수하다. 그 꽃의 향기는 시적 감성에 의해 정제된 가사에서 시나브로 흘러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차라리 그보다는 리듬이나 멜로디가 빚어내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화음에서 솟아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사소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고 그 아름다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와도 통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잠언은 그렇다고 해서 큰 것이 모두 추하고 볼썽사납다는 차원에서 얘기되는 것이 아니고 큰 것이 지향하는 세계를 인정하고 그를 아울러 끌어안는 보다 포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이다.

 

 조동진이라는 음악인이 한국의 대중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그러하기에 독보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신중현이나 산울림이 걸어간 길과도 다르고 같은 장르 안에서도 김민기나 한대수가 나아가고자 한 음악적 지향점과도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그들이 주류의 궤도 바깥에서 끊임없이 제도권 안의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여 싸웠다면 기이하게도 조동진은 그들이 공격하려고 했던 제도 안에서 오히려 자신만의 성채를 굳건하게 쌓고 외부의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나갔다.

 

 단지 음악을 한 시대와 그 사회에 교감하고 소통하는 동시대성과 당대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조동진은 그 음악이 소유하고 있는 역사적 의미보다는 예술적 본질에 더 집착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사상과 관련된 면이라기보다는 체질이나 기질과 맞닿아있는 부분이므로 그렇다고 해서 조동진이라는 한 예술가가 보여주는 음악성의 폭과 깊이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예술가의 생애를 돌아봐도 마찬가지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상은 쉽게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체질이나 기질은 여간해서는 잘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변화하지 않는 중심을 가슴 한가운데에 세워놓은 상태에서 오히려 더 빛난다. 변화하지 않는 중심이 근원이고 본질이고 식물에게 있어서 뿌리라고 한다면 그 바깥은 줄기이자 가지이고 잎과 열매라고 할 수가 있다. 현상과 외관에 해당하는 표면이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척도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외부로 드러나는 측면이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의미가 없거나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밖으로 보여 지는 것만큼이나 안으로 숨어있는 어떤 성향의 소중함도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조동진이 지향하고 있는 음악세계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물이 물 속으로 흐르듯 우리들의 꿈과 잠 속으로 스며든다.

 

 

  조동진의 음악은 동양적이다. 그의 음악이 동양적이라고 해서 송창식의 음악처럼 초월과 달관의 멋이 우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쪽으로 치닫거나 기우는 것도 아니다. 송창식이 일찌감치 대자연의 너른 품속으로 귀의해버렸다면 조동진은 여전히 문명 속에 살고 있다. 자연에도 사계절이 있듯이 문명의 수레바퀴 속에도 엄연히 사계는 존재한다. 조동진이 송창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그 문명의 이기와 혜택 속에서 그것을 거부하거나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일관되게 자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음악은 전근대적이지 않고 모던하다.

 

 그의 음악이 갖는 모던함은 곧잘 음계나 화성의 사용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음계나 화성의 사용이 복잡하지가 않고 단순하다. 단순함은 역설적이게도 최상의 기교를 수반할 때만이 도달할 수 있고 가능한 경지이다. 단순함은 때로 은은하다. 은은하기 때문에 그 음악이 전달하는 메시지의 파장은 녹록치가 않다.    

 

  조동진의 음악이 동양적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그의 음악이 꾸밈이 없이 소박하고 자연스럽다는 맥락으로도 읽힌다. 요란한 수사와 과잉된 기교가 환영받는 세상에서 그의 음악은  고요한 침묵을 통해 실은 그러한 침묵의 미덕이야말로 참다운 진리로 나아가는 길이며 진실에 귀를 기울이는 또 하나의 방편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것도 크고 거대한 함성이 아닌 귓속말을 속삭이듯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낮은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는 세상의 그늘진 곳을 향하여 내미는 사랑과 연민의 손길이기에 힘이 있고 강렬하다.

 

 그의 음악은 자유롭지만 절제되어 있다. 무색무취의 사색적인 음악. 그의 음악은 그래서 노장철학에서 흔히 회자되는 ‘무위(無爲)’라는 개념과 잘 어울린다.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이름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할 때 마치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일이 이루어짐을 일컫는다. 사물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가 곧 무위이다. 무위란 일부러 꾸며서 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어떤 경지이다. 무위란 말은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할 때의 ‘자연’이라는 개념과도 뜻을 같이 한다. 조동진의 음악은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무위의 음악이다.

 

 무위에서 출발한 조동진의 음악은 중용의 과정을 거쳐 간다. ‘중용(中庸)’이란,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는 상태를 하나의 틀로 유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용이 중간자적 입장의 관철이나 회색인의 태도를 고수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중용이 아니라 기회주의적 속성에 그칠 뿐이다. 참다운 중용이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다. 마음의 중심은 도덕성의 윤리와 직결된다. 그렇게 때문에 정심(正心)은 어린이의 마음처럼 순결무구한 순심(純心)과는 다르다. 정심은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해서 마음자리의 거점을 흔들림 없이 한가운데 잡는 것을 전제로 하여 성립되는 개념이다.

 

 조동진의 음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줄기차게 일관된 흐름을 향해 나아가는 중용의 음악이다. 중용의 과정을 거쳐 조동진의 음악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도가 사상에서 비롯된 ‘도(道)’라는 우주 자연의 생성원리이다. 도는, 거기 그렇게 있는 존재 자체의 원리를 가리키는데 삼라만상의 모든 산 것과 죽은 것이 총체적으로 조율을 이루어내는 것이 도이다. 자연은 거기 그렇게 있다. 무위자연이다. 인간의 삶은 그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다. 인간의 힘이 자연을 압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연과 화해하고 그와 조화를 이룰 때만이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욕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그러나 그 욕망은 충족되지 않으면 좌절될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고해(人生 苦海)’라는 말은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욕망의 좌절이다. 욕망이 그 욕망의 성취뿐만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좌절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면 마음의 평화는 무엇을 쌓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무엇인가를 덜어내는 것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역설도 성립한다. 성인은 실재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그를 뒷받침해주는 자라는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동진의 음악 작업은 채움에서 비움으로 나아간다. 비움의 완성이 그에게는 곧 채움이다. 완전한 비움이 그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채움의 미학으로 귀결된다.

 

  아주 고요한 말은 저절로 그렇게 말하여지는 것임을 음악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가 다름 아닌 조동진이다. <작은 배>가 그랬고 <나뭇잎 사이로>가 그랬고 <행복한 사람>이 그랬다. 경건한 기도를 올리듯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이 기품 있고 희귀한 음유시인은 <어둠 속에서> 뿌리 깊은 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묵묵히 <겨울비>와 <끝이 없는 바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제비꽃>이 존재한다. 그의 제비꽃이 순수의 차안을 넘어 영원의 피안을 바라본다면 <기쁨의 바다로> 무한히 열린 외롭고 고독한 그의 <항해>가 결코 미완의 <진눈깨비>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제비꽃은 그러므로 아직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먼 여행의 경계에 피어있는 꽃이다.         

 

 

 조동진이 캐나다의 저 유명한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을 연상시킨다면 장필순은 겉모습 자체나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노래의 색깔에 이르기까지 영락없이 멜라니 사프카를 빼 닮았다. <제비꽃>은 애초에 조동진의 노래였지만 고백컨대 나는 장필순이 부른 <제비꽃>을 더 좋아한다. 조동진의 제비꽃이 저물녘의 비애나 애수를 간직하고 있다면 장필순의 제비꽃엔 새벽녘의 수줍음과 영롱함이 물씬 묻어난다.

 

 <여자의 일생>은 D.H 로렌스가 쓴 소설의 제목이지만 제비꽃 역시 소녀에서 숙녀를 거쳐 원숙한 중년에 이르는 한 여자의 생애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같은 여자가 부르는 노래가 성이 다른 중년의 남자가 부르는 노래보다 가슴에 더 진하게 와 닿는 까닭은. 물론 거기엔 장필순이라는 가수가 소유하고 있는 재능과 개성이 큰 영향을 미친 탓이겠지만. 아무튼 장필순의 대표곡을 제비꽃 하나로 규정짓기엔 많은 무리가 따른다 하더라도 그것이 리메이크 곡임을 감안할 때 원곡이 미처 집어내지 못한 새로운 감성의 영역을 다른 각도에서 표현했다는 자체가 놀랄만한 성과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작가 김승옥이 <무진기행>을 처음 발표했던 당시, 벌집을 쑤셔놓은 듯 문단을 발칵 뒤집어놓으며 유포시켰던 ‘감수성의 혁명’에 버금가는 ‘감수성의 반란’이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또 하나의 인간학을 위한 저항과 투쟁의 대열에 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학문의 한 부류라면 기꺼이 연대와 지지의 의사를 보내고 싶다.          

 

 장필순은 범박하게 말하자면 페미니즘의 최전선에 서서 투쟁하는 전사는 아니다. 오히려 여리고 연약한 것들에게 보내는 그의 눈길은 철저한 이론과 사상으로 중무장한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엔 너무나 나약하고 감상적이다. 풀잎 같은 가녀림으로 아무도 없는 벌판에 홀로 피어있는 들꽃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감수성은 그러나 편협하게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넓고 깊이 보기 때문일 것이다.

 

 21세기는 절망적이지도 희망적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코스모스]의 저자였던 우주학자 칼 세이건은 일찍이 미국의 유명한 과학 잡지 ‘사이언스’지에 그가 죽기 몇 달 전 인터뷰 기사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는 21세기가 생명의 고귀함을 축으로 공생과 상생(相生)의 원리가 지배하는 영성으로 충만한 시대가 될 것임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 시대는 여성의 힘이 모든 우주적인 법칙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리라 믿었다.

 

 장필순의 음악은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이 비정한 세계의 현실을 거부하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꿈에서 또 다른 꿈으로 건너간다. 꿈에 사로잡히고 꿈속에서 잠들고 마침내 그 꿈을 읽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여성이라는 존재를 향하여 내미는 그의 손길은 조동진과 마찬가지로 순수의 비좁은 담을 넘어 영원을 지향한다. 3집 음반에 실려 있는 <가난한 그대 가슴에>가 그랬고 <넓고 좁은 세상 속에서>가 그랬고 <내가 좇던 무지개>와 <강남 어린이>가 그랬다. 3집 음반은 순수한 영혼의 불멸성을 꿈꾸는 장필순 음악의 결정체다.

 

 꿈과 추억과 회상의 슬픈 애가인 그녀의 노래는 시인이 시를 쓰듯 우주와 교감한다. 나는 그의 음악에 하나의 레테르를 달아주고 싶다. 그 레테르의 이름은 ‘꽃과 숨의 시학’이다.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날 때 우주는 조그맣게 숨을 쉰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그 숨은 낮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숨이 멈추는 순간, 꽃은 떨어지고 세상은 사라진다. 꽃의 개화와 낙화는 그 자체가 숨의 일생이다. 숨은 어느 한 순간 머무를 순 있지만 숨의 운명은 머문 듯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한 송이의 제비꽃을 떠올리는 나는 지금 숨이 차다. 숨이 차오르고 있다. 꽃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권진규와 최종태를 알게 된 것은 중,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대학에 오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일한 조각가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작가 한수산을 통해서였다. 떠돌이 곡예사들의 인생 역정을 그 특유의 감성 어린 문체에 의해 사실적으로 그려나갔던 장편소설 [부초]와 첫 창작집 [사월의 끝]에 실려 있는 보석 같은 단편들로 내 마음속에 잔잔히 아로새겨져 있던 그의 작품에서 나는 처음으로 권진규와 최종태라는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소유한 문학소녀들 사이에서 유난히 인기가 높다는 사실도 풍문으로 전해 들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여고의 문예반에서 주로 읽었던 시인이 강은교와 김승희였듯이 권진규와 최종태의 비극적인 삶과 예술적 행로가 소녀들의 꿈과 순수한 열망을 자극했었던가 보다. 아니면, 그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예술세계가 그만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일상적 삶의 차원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드높은 비상의 몸짓을 살에 남아있는 문신처럼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에.  

 

 권진규의 <얼굴> 연작은 자살로 마감한 그의 비극적 생애와 함께 예술의 순수성이 영원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파멸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가 생전에 집착했던 것은 동양인의 인체였다. 인체 중에서도 그 어딘가를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흡사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초기 모태였던 수메르 문명의 풍요의 여신상을 닮은 흙으로 빚어진 그의 테라코타 중에는 그래서 유난히 얼굴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다.

 

 여러 종류의 자소상(自塑像)과 여인상에서부터 <영희의 얼굴>과 <지원의 얼굴> 같은 작품이나 비구니상과 불상, <예수>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 작가가 현실의 안위와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지독한 이상주의자이자 고독한 은둔형의 예술가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그의 작품들, 특히 <영희의 얼굴>이나 <지원의 얼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인물과 시선의 관계이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들의 눈은 어느 허공중을 배회하고 있는가. 끝간 데 없이 달아나는 시선의 향방은 도무지 가늠할 길이 없다. 아득한 세계의 저편을 향한 끊임없는 동경의 자리, 그것은 비밀스러운 수수께끼이자 영혼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겐 도저한 미스터리일 것이다.

 

 인물의 눈과 그 눈이 투영하는 시선의 거리와 관련된 작품으로 얼른 떠오르는 것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새로운 유화기법의 창시자였던 얀 판 아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이지만 그것은 거울에 비친 대상과의 연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문제였다.

 

 권진규는 중세 시대의 연금술사 - 연금술사들의 꿈은 단순히 철을 제련하여 그 속에서 금을 뽑아낸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 차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광물질 자체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대상의 속성을 변화시켜 그 대상의 질서를 바꾸고자 하였다. 그것은 질량과 무게를 포괄한 기타 제 원소들의 물리적 변화는 물론이고 원래 그 대상이 천연으로 간직하고 있던 본질의 새로운 탈바꿈을 암시하는 것이다. - 나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종교적 제의나 신화의 부활을 통해 유한한 존재의 무한한 영생을 꿈꾸던 흑마술사 - 고대 희랍, 로마 신화와 같은 서양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여러 신들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따위의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의 감정마저 인간과 유사하여 진실로 인간의 얼굴을 한 인간적인 신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변신의 대 향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상징이자 아름다운 환상이다. 한 시대의 예술사와 정신사, 그를 아우르는 사회사를 읽어내는 기호로써의 변신의 상징적 의미는 비단 희랍, 로마신화로 대변되는 서양의 신화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인류가 남긴 무형의 정신적 자산이자 풍요로운 문화유산의 보고, 생명의 고향으로 불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크고 작은 신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보편적이고도 본질적인 요소이다. 가까운 예로 동양의 중국신화나 일본의 신화, 그리고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를 떠올려 보라. - 가 아니다.

 

 자유로운 인간 영혼의 해방을 부르짖으며 비밀결사를 주창했던 프리메이슨 기사단 - 신비주의자들은 인간이 잠이 든 사이의 어느 순간 몸이 깨어나 말하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몸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며 그 에너지가 몸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에너지는 그 자체가 이미 거대한 생물학적 바탕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 에너지는 에너지임과 동시에, 의식의 양태라는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들은 바로 그러한 에너지의 상징적인 의인화이며 따라서 그 에너지는 우주적인 에너지에 다름 아니므로 신은 결국 이곳이나 저곳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도 있는 것이고 한 개체의 안에도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삼라만상 모든 것에 신이 깃들여 있으며 인간 역시 일체의 집착과 욕망을 끊고 마음을 정화시켜 평상심의 경지에 이르면 신이 될 수 있다는 동, 서양의 이러한 공통된 생각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梵과 개인의 중심인 我의 본체가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는 우파니샤드 철학의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과도 통한다. 결국 그것은 죽음과 삶에 관한 문제이며 인간의 유한함과 그에 대비되는 신의 불멸에 관한 문제이자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의 흐름에 관한 문제이다. 순간이 아닌 영원의 한 지점에 가 닿기 위해서 그 영원은 시간의 형상들로 구성된 각자의 틀 안으로 들어가 해체되어야 한다. 그때부터 하나가 다수가 되는 전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 의 일원은 더더욱 아니다.

 

 현실에 대한 완강한 저항의 수준을 단순한 반항에서 명백한 혁명으로 끌어올린 프랑스의 사상가 쟝 뽈 싸르트르는 그의 책 <구토>에서 “때때로 오늘처럼 무료하게 하루를 끝냈을 때 나는 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이 얼굴을 도무지 알 수 없다. 내 얼굴이 아름답다라든지 추하다라든지 하는 것을 결정할 수가 없다. 실은, 사람은 그렇지 아니한가. 흙이나 바위덩어리를 보고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하는 따위의 형용사를 나의 얼굴에 붙인다는 것은 나를 놀라게 하는 것.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자조적인 말로 자신의 이상과 격리되고 분리된 현실의 낯섦을 토로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먼 곳을 꿈꾸는 사람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옭아매는 그 현실을 거부하고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가 진정으로 사는 길은 현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죽이는 길이다. 권진규, 그는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결국은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은 파멸로 끝났지만 그러나 그의 예술은 살아남았다. 그는 작업실의 한쪽 벽에 “범인에겐 침을, 바보에겐 존경을, 천재에겐 감사를.”이라는 말을 써 붙여 놓았다고 한다. 삶과 예술의 이율배반적인 역학적 관계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선비 조각가로 알려진 김종영의 제자이기도 한 최종태의 <소녀상> 연작도 권진규의 <얼굴> 연작과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삶과 그 속에서도 변함없는 예술의 정신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사람의 얼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이마에 주름살도 늘 것이고 머리카락도 반짝반짝 윤이 나던 검은머리에서 흰머리로 바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얼굴의 전체적인 윤곽과 인상도 달라진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도 있고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간혹 들린다. 얼굴은 한 사람의 마음의 반영이고 삶의 반영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달라지는데 그 와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에 매달리고 애착을 갖는 것 또한 예술가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최종태는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런데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한평생 밝음과 사랑으로 가득 찬 소녀상을 만들어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밝음과 사랑으로 가득 찬 소녀상은 슬픈 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작가의 생각엔 소녀의 모습이야말로 인생의 여러 시기 가운데서도 불변의 속성을 꿈꾸는 인간의 심사를 가장 정직하게 대변하는 것이었으리라.

 

 작품으로 남겨진 소녀의 유형을 보자면 댕기머리에 수줍은 얼굴을 하고 약간은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빨간 스웨터를 입은 이인성의 얄궂은 소녀 - 이 그림은 꽃무늬가 있는 푸른색 원피스 차림으로 단발머리를 한 채 의자에 앉아있는 단아하고 이지적인 현대 여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김인승의 <청(廳)>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 가 있는가 하면 현란하고 화려한 색조로 오월의 꽃과 같은 소녀의 우수를 담아낸 임직순의 그림 - 이 작품은 수수하고 소박한 여인의 일상을 그리움이라는 이국적 정서의 세계로 환치시킨 권옥련의 <소녀 누드>와도 비교된다. - 도 있지만 최종태의 소녀상과 직접적으로 짝을 이루는 것은 로댕의 <소녀입상>이나 브랑쿠시의 <키스>와 같은 작품이다.

 

 지역과 시대, 인종을 뛰어넘어 그들의 작품들은 한 무리로 묶인다. 이 놀라운 예술의 친화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중세 영국 민요의 노랫말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가 겨냥한 첫 사슴은 도망쳐 버렸다. 드디어 잡은 두 번째 사슴에 그는 입 맞추었다. 세 번째 사슴은 젊은이의 마음속으로 도망쳤다. 사슴은 파란 잎의 바다 속으로 숨어 있다.” <사냥터 파수꾼>의 노래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시와 같은 한 곡의 노래가 일으키는 울림과 파장은 그들의 작품을 말없이 대면하고 있을 때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소리도 없이 새어나오는 어떤 놀라움이나 탄성, 기꺼운 느낌들과 하나도 다르지가 않다. 최종태의 <소녀상>은 현실과 이상, 순간과 영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구도적이고 종교적인 찰나의 시, 찰나의 노래와 같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인연>”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이 한 편의 수필이 그 당시의 수줍고 부끄럼 많이 타던 한 소년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인간의 운명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아주 의외의 상황을 만나 바뀌기 마련인가보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년은 학교 글짓기 반에서 작문을 짓고 각종 백일장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지만 장차 작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어본 적은 없었다. 공부를 잘 했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의대나 법대로 진학할 생각만 했지 시인이나 작가의 길을 가 볼 엄두는 쉽게 내지 못 했다. 그러나 이 한 편의 수필이 소년으로 하여금 또 다른 삶을 꿈꾸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지금으로부터 십 오 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그런데도 그 옛날의 일이 까마득하게 여겨지기는커녕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선연하게 떠오르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 수필의 매력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김소운이나 윤오영, 이양하와 김용준 같은 이들의 수필에 맛을 들이면서부터 소년의 가슴속엔 나도 저들처럼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은밀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도 저들처럼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소년의 손을 거쳐 갔다. 게 중에는 지금은 이름을 잊어버린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소년의 가슴 저 밑바닥에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람들도 있다. 소년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시나 소설과는 달리 수필만이 소유한 독특한 글쓰기의 매혹에 아직도 힐끔힐끔 곁눈질하고 있는 형편이다.

 

  금아 피천득의 수필은 희곡 작가 오혜령과 시인 김승희의 산문집과 더불어 내게 청소년 시절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들이었다. 나는 그 책들에서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영문학과 관련된 인문학적 소양을 거의 대부분 미리 훔쳐볼 수가 있었다. 특히 피천득의 수필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노라면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고인다. 그 웃음은 행복한 웃음이고 인간이 돈이나 명예, 권력과 같은 욕망을 버리고 유유자적하게 생활할 때만이 느낄 수 있는 자족적인 웃음이다. 그 웃음은 위정자나 지배자의 허위와 기만에 가득 찬 헛웃음도 아니고 그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자들의 냉소 어린 비웃음도 아니다. 그 웃음은 평범한 서민의 옷깃에서 떨어지는 아주 편안하고 소탈한 홍소에 가깝다. 그 웃음은 도덕적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깨끗한 웃음이다. 나는 그 웃음의 바다에서 그 글들을 읽으며 내내 행복했었다.

 

 그의 수필 전반을 가리켜 ‘작은 것들의 세계’라고 명명한 비평가 김우창은 이렇게 적고 있다. “금아 선생의 세계가 깨끗하고 맑은 세계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도려내고 단순화하는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는 아니다. 선생이 어둡고 뒤틀린 것들을 별로 말하지 않는 것은 긍정에의 동경이 너무 강한 때문이지 그러한 것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긍정은 도저한 부정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안에다 가꾸는 꿈의 공간에서 비롯한다. 이것을 버릴 때,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은 또 다시 황량한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그의 글을 읽으며 행복해 하는 까닭은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났을 때이다. “나는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와의 유사성이 너무나 없기 때문인가 보다.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동정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 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찰스 램>” 그와 같은 이유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나 <비원>, <토요일> 같은 글들을 아낀다. <잠>이나 <술>, <피가지변(皮哥之辯)>들을 보면서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도 어쩌면 저토록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한다. <유순이>나 <서영이와 난영이>에서 감지되는 여성에 대한 배려와 사랑은 <영원(永遠)의 여상(女像)>에 가면 그 느낌이 완연해진다. 내 친구 중의 하나는 눈 오는 날 버스 안에서 <그날>과 <엄마>를 읽다가 울었다고 했다. 나 역시 그 글의 어느 대목에 가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글에는 인생의 맛과 멋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만이 두고두고 음미해볼 만한 참신하고 빛나는 구절이 여럿 나온다. 그 구절들은 혼자 읽기엔 너무나 아까운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구절이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오월>”라거나 “조롱 속의 새라도 종달새는 종달새다.<종달새>”라든지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이야기>” 뿐만 아니라 “멋있는 사람은 가난하여도 궁상맞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멋>”나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 사십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만하다.<송년>” 와 같은 혜안은 누구나 흔히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봄을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과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과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이라고 찬미했다. 그의 말대로 “녹슨 심장의 피가 용솟음치는” 봄이 바야흐로 오고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그리고 심심산천의 사랑하는 님이 죽은 무덤가에도 제비꽃은 필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친 일 외엔 한평생 수필만을 써오고 있는 그는 제비꽃을 닮은 사람이다.

 

 ‘깊고 깊은 바다 속에 너의 아빠 누워 있네 그의 뼈는 산호 되고 눈은 진주 되었네’ 셰익스피어의 [태풍] 1막 2장에 나오는 에머리엘의 노래를 인용하면서 그가 책의 서문에 쓴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독자들은 소년의 진솔한 마음과 꽃처럼 순수한 감성을 늘 간직하고 사는 그의 해맑은 동심을 엿볼 수 있다. “산호와 진주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다 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들을 줍는다.”

 

 그 모든 글들을 ‘엄마께’ 바친다고 한 그의 수필엔 성직자의 고결한 인품과 해탈자의 무욕이 아로새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움을 넘어선 잔잔한 슬픔의 세계가 숨쉬고 있다. 그 세계는 애달고도 아름답다. “하늘의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소년(少年)> (1939) 전문 -                    


  예전의 중학교 교과서에는 <인연>이라는 수필도 실려 있었지만 <굴뚝>이라는 동시도 실려있었다.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 몽기몽기 웬 연기가 대낮에 솟나. //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 옛이야기 한 거리에 감자 하나씩. //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로 끝나던 그 시는 그 시절의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소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후로 소년은 한 시인의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되었고 그 시인은 먼 길을 돌아 돌아가는 소년의 앞날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었다. 소년은 슬플 때나 괴로울 때면 시인의 시를 꺼내 읽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시인은 소년에게 있어서 훌륭한 선생이었고 다정한 벗이었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습관을 버릴 수 없었다. 시인의 시는 이제 어른이 된 소년에게 생활이 된 것이다. 그 시인의 이름은 윤동주.

 

 윤동주의 시는 알게 모르게 많이 노래로 만들어지고 불려졌었다. 순교의 이미지가 강한 <십자가>라는 시는 홍순관에 의해 불려졌었고 김영동은 <해바라기 얼굴>에 곡을 붙여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비참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건드리기도 했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로 시작되는 <눈감고 간다>는 시 자체가 약간은 변형된 형태로 야학이나 농활 같은 데서 전래민요처럼 아이들과 아이들의 입을 건너고 건너 회자되기도 했으며 <반딧불>은 윤극영에 의해 아예 동요로 만들어지게까지 됐다.

 

 그런가 하면 서시에 해당하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나 <별 헤는 밤> 그리고 <참회록> 같은 시들은 라디오 성우들의 단골 시 낭송 레퍼토리로 자주 쓰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사랑받게 되었다. 윤동주의 가까운 친척 동생뻘인 트윈폴리오의 윤형주는 1983년 <자화상>, <또 다른 고향>, <새로운 길>등의 시인의 애송시를 모아 시 낭송집을 취입하기도 했다. 그 앨범의 후기엔 “짧았으나 아름다웠던 아픔들을 기억하여 이 시 낭송집을 북간도에 잠들어 있는 동주 형님께 바친다.”는 헌사가 적혀 있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로 끝나는 <사랑스런 추억>과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내면적 고백이 묻어있는 <쉽게 씌어진 시>, 마태복음의 오장 3절에서 12절까지를 인용해 고해성사 하듯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이나 반복한 <팔복>은 시인 자신의 정신적 순결성에 감동 받아 좋아하게 된 시들이다. 시인의 시 중에서도 특히 내가 관심을 갖고 아꼈던 시들은 대개 <슬픈 족속>이나 <산골물>, <편지>, <무얼 먹고 사나>, <산울림>, <오줌싸개 지도>, <만돌이>와 같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그 속에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동심이 깃들여있는 시였다. 산문 <투르게네프의 언덕>과 <별똥 떨어진 데>도 마찬가지였다.   

 

 <아우의 초상>이나 <그 여자>를 제외하고 별다른 연애시가 없는 윤동주의 시에서 실명으로 ‘순이(順伊)’라는 여자의 이름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단 세 편뿐이다. 그 하나가 ‘순아 너는 내 전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로 시작되는 <사랑의 전당>이고 나머지 둘은 앞서 소개한 <소년>과 다음에 소개할 <눈오는 지도>인데 이 시들엔 순이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가슴절절하리만치 짙게 배어있다.

 

 시의 화자인 소년이 그토록 간곡하게 사모한 순이는 누구일까. 그녀가 누구든지 간에 순이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소년의 마음은 한결같다. 그 한결같음은 순수하고도 영원하다. 설령, 순이가 소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년의 순이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을 것이고 오래도록 변함없을 것이다. 그 사랑은 모든 육체적이고 동물적인 사랑을 초월한 아가페적 사랑이다. ‘나’의 희생을 통해 ‘너’와 ‘우리’를 살리는 이타적 사랑이다. 이 때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서 다른 쪽을 향해 일방적으로 베푸는 사랑이다. 받지는 않고 한없이 주기만 하는 그 사랑은 부모가 자식에게 쏟아 붓는 내리사랑과도 같다.

 

 그 사랑의 항구성은 어느 광고의 카피로도 쓰였던 “천만번을 만나도 늘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 때 묻지 않았다.”에 나타난 인과율과 동일률의 원리와도 통한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은 계절이 순환하듯 끝없이 변주된다. 사랑의 종착지는 마침내 사랑으로 회귀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의 변주는 누에가 알에서 성충으로 탈바꿈하듯이 허물을 벗는다.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여 사랑의 완성이 확인되는 순간 삶과 예술은 비로소 화해의 손을 기껍게 잡게 되리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국을 따라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 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 <눈오는 지도(1941)> 전문 -      



  제비꽃은 서양에선 그리스의 아테네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로마 시대엔 장미와 더불어 길가에 흔히 심어졌던 꽃이라고 한다. 중세 기독교 시대엔 장미와 백합과 제비꽃을 성모 마리아에게 바쳤다는데 장미는 아름다움을, 백합은 고결한 기품을, 제비꽃은 성실함과 겸손함을 나타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제비꽃의 꽃말은 겸양이다. 흰제비꽃은 티 없는 소박함을 가리킨다. 마리아의 옷 색깔과 같은 하늘색제비꽃은 성실과 정절을 뜻하고 노란제비꽃은 한가로운 전원의 행복을 암시한다고들 한다.

 

 제비꽃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 한계령을 넘다가 차장 아가씨가 불러준 ‘진주 조개잡이’라는 오래된 영국민요와 동의어이다. 나는 누나가 불러준 그 노래의 선연한 이미지 때문에 지금도 그를 가끔씩 떠올리는가 보다. 제비꽃은 고등학교 하교길에 시내버스에서 만난 첫사랑과도 같다. 그 애와 나랑은 한번 마주친 눈빛을 서로의 호주머니에 푼푼이 나누어 가진 채 다시 못 만나고 헤어지고 말았지만, 그 형형한 눈빛은 십 년이 흘러서도 어떤 강렬한 불씨보다 더 생생하게 가슴속에 살아 꿈틀댄다.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는 말은 김남조의 꽁트 산문집 [아름다운 사람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1936년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나 연극, 시, 영화, 평론 등의 분야에서 활약한 일본의 귀재 데라야마 쥬지는 ‘망각’이란 아주 잊어버리는 것이며 잊을 수 없어서 망각이라 이름 붙이는 마음의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그는 “내겐 잃어버린 추억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난 . . . 그것들을 버리고 온 게 결코 아니다. 잊는 것도 어쩌면 사랑하는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을 . . .”이라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던 것일까. 누구를 사랑한다든가 그리워하고 그 끝에 외로움을 느끼는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리라.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눈, 얼굴의 눈과 마음의 눈이 있기 때문이다.

 

  제비꽃은 이용악의 시 <오랑캐꽃>에 묘사된 매서움과 구전동요 <해야해야 잠꾸러기 해야>에 등장하는 앉은뱅이꽃들이 보여주는 슬픔의 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제비꽃을 오랑캐꽃이나 앉은뱅이꽃으로도 부르고 장수꽃이나 반지꽃이라는 이름으로 호칭되기도 한다. 강인함과 가녀림을 동시에 품고 있는 꽃, 한없이 부드럽고 연약하면서도 그 속에 유함을 넘어서는 굳센 의지를 표상하고 있는 제비꽃은 여러해살이 풀이며 해마다 봄이 오면 삼천리 방방곡곡에 그 화사한 꽃망울을 틔우는 봄꽃이다.

 

 류환의 시 <제비꽃에 대하여>의 일절 “나는 가끔씩 제비꽃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깨어진 종, 묘지 위를 날아가는/새의 그림자/바람을 일으키는 춤꾼의 몸짓처럼/지칠 줄 모르는 단순하고/그리운 것들”을 떠올리며 봄이 오면 나는 기차를 탈 것이다. 기차를 타고 고향역에 가 내리면 거기 한 여자가 서 있을 것이다. 플랫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여자는 어릴 적 제비꽃을 머리에 꽂고 역 주변을 서성거리던 소녀를 닮았다. 동네 꼬마들은 그네를 미친 여자라 놀렸지만 그네는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냥 말없이 빙그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해 봄, 봄볕이 유난히도 따갑던 오후였던가. 그날 나는 옷고름이 다 뜯어진 채 손가락 사이로 선홍색 피를 철철 흘리며 그래도 얼굴은 하늘을 쳐다보며 깔깔거리던 그 소녀를 역 주변에서 마주쳤다. 소녀는 잠시 잠깐 나를 힐끔거리더니 다시 하늘을 향해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그네를 외면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신들린 듯 자지러지던 그 웃음 사이로 흐느낌 비슷한 것이 새어나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네를 쳐다보았다. 소처럼 크고 순한 그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못 박힌 채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 소녀를 향해 봄햇살처럼 기울던 묘한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그날, 세상의 모든 선한 웃음과 눈물은 거기 그 역 광장에 있었다. 흰 치마에 더럽혀진 노랑저고리를 받쳐 입고 머리엔 분홍색 제비꽃을 꽂고 있던 소녀. 나는 아마 그네를 사랑하였던가 보다. 그네의 웃음 사이로 내비치던 눈물을 사랑하였던가 보다. 그 눈물은 맑고 투명하고 고귀한 것이었다. 그와 같은 눈물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봄이 오고 있다. 소리도 없이 봄은 어느 샌가 내 주위로 몰려올 것이다. 제비꽃은 그 사이로 하늘하늘한 목을 내밀고 바람에 팔랑거릴 것이다. 봄에 피는 제비꽃은 내 마음에도 피어난다. 그 꽃은 내 안의 꽃이다. 


(106매)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1년 2월호)

                       

두루미 2010.02.18. 1:25 pm 

  이 길고도 긴 글은 마치 봄날의 제비꽃을 기다리는 챤트와도 같군요. 장필순, 조동진, 권진규...이 들의 이름을 들으니 울컥 반가움이 밀려오네요. 우주의 숨을 고르는 '꽃과 숨의 시학' 장필순 너무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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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 극작가. 2001년 서울시무대지원사업 선정작 <봄날은 간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이여, 고마워요』 가 있다. 제38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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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6.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6월) . . . 한대수, 세속과 신성의 경계를 떠도는 고독…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2년 6월호
1026
9
2010.05.05.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5월) . . . 김광석 & 안치환,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1]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2년 5월호
1103
8
2010.04.05.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4월) . . . 송창식, 자연의 기쁨을 노래하는 한 음악인…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2년 4월호
1225
2010.02.15.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2월) . . . 조동진 & 장필순 , 순간에서 영원을 가로지… [1]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1년 2월호
1136
6
2010.01.20.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1월) . . . 정혜선, 투명하고 그리운 기억으로의 여행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1년 1월호
799
5
2009.12.24.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12월) . . . 김정호, 님이 부재하는 시대의 님을 위한 진…
대중음악 정론지 <서브> 1999년 12월호
1400
4
2009.11.20.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11월) . . . 김현식, '나'와 '또 다른 나' 사이를 건너가… [1]
대중음악 정론지 <서브> 1999년 11월호
1271
3
2009.10.19.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10월) . . . 한영애, 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마법의 노래 [3]
대중음악 정론지 <서브> 199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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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9월) . . . 박은옥, 흔들림 없는 서정 그 서늘한 아름다…
대중음악 정론지 <서브> 199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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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09.28.
[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들어가는 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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