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근의 "세계음악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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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6월) . . . 한대수, 세속과 신성의 경계를 떠도는 고독한 이방인의 항해
보물섬  
 

  무명, 무실, 무감한 자유의 나라를 향하여

  - 한대수, 세속과 신성의 경계를 떠도는 고독한 이방인의 항해



 “조르바씨, 이야기는 끝났어요. 나와 같이 갑시다. 마침 크레타엔 내 갈탄광이 있어요. 당신은 인부들을 감독하면 될 겁니다. 밤이면 모래 위에 다리를 뻗고 앉아 먹고 마십시다. 내겐 계집도 새끼도 강아지도 없어요. 그러다 심드렁해지면 당신은 산투리도 치고......”

 “기분 내키면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리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리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제임바키코, 하사피코, 펜토잘리도 출 수 있소.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고향을 그리워 말라.

  어디서 왔는가 묻지 말며, 어디로 간들 두려워 말라.

  항해가 곧 우리의 고향이니, 끝없이 가는 이 여행길을, 삶을 사랑하라.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되, 바람은 자유롭지 않은가?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 [그리스인에게 고함] 중에서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 . . . . .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중에서


  한대수. 그 이름 석자는 '영원한 자유인'의 초상이다. 적어도 내게는 '자유'라는 명제 앞에서 그만큼 적당한 음악인이 얼른 떠오르지가 않는다. 동시대의 음악인이었던 김민기나 서유석, 양병집과는 또 다른 멋을 풍기는 남자. 그에게선 길들여지지 않은, 길들여질 수 없는 원시적인 야성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의 음악 역시 정갈한 단정함이나 조용한 서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외려, 그의 음악은 거칠다. 그의 텁텁한 음색만큼이나 거친 그의 음악은 그러하기에 인간 본연의 심성을 자극한다. 본능에 호소하는 노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기까지 한 그의 노래의 메시지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까닭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그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하루아침>이나 <하룻밤>, <나그네 길> 같은 노래를 부르겠는가. 대중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행복의 나라>나 <바람과 나>, <물 좀 주소>도 귀한 곡이지만 그가 아니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노래 <옥의 슬픔>이나 <고무신>, <아들아 내 아들아>, <미치게 해>, <오면 오고>가 있기 때문에 한대수는 비로소 한대수답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후배 음악인 중에서 아마도 그를 흉내 내거나 그의 길을 좇아갈 수 있는 가수는 강산에 정도가 아닐까 싶다. 기행의 정도나 사상의 폭과 깊이로 따지면 [죽음의 한 연구]의 작가 박상륭이 친구로 어울릴법하다.

 

  아니, 한 사람 더 있다. 마술과도 같은 이국적인 언어의 힘으로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이 빛나는 슈바빙 거리, 알프스의 겨울 산정 그리고 낙엽 지는 레오폴드가를 생생하게 묘사했던,  집시와 엄지손가락 여행과 영원불멸한 보헤미안의 생애 그 목마른 시절을 끝없이 그리워했던 천재 에세이스트 전혜린이 이 땅위에서 살다 간 것이다. 지상의 양식과 회색 노트와 이미륵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오, 그리운 이름 나타니엘이여! 너는 떠나야 한다. 너의 골방에서, 너의 거리에서, 너를 가두고 있는 이 세계로부터 . . .” 같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 내 마음속의 화인처럼 새겨진 그 구절과 함께.    

 

 정통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국내 모던 포크의 창시자로, 한곳에 정착할 줄 모르는 유목민적 기질의 아웃사이더로 혹은 음악과 사진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인으로 각인된 그의 피는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뜨거웠을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났다는 불행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 천재성이 파묻힌 예술가들 중에는 김승희나 박남철 같은 타고난 시인들이 있다. 한대수도 그런 위인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불행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세계의 그 수많은 국가 중에 하필 이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한반도의 남쪽 땅에서 출생신고를 마쳤다는 것뿐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삶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음악을 하는 목적이 인간의 좁은 관념을 넓히고 마음의 창문을 여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기억상실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인생 자체가 추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에게 전부였던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아픔은 영원하고 오직 죽음만이 이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그는 또 모든 것은 관념이기에 자연의 소리가 최고의 음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는 음악은 섹스와 같아 욕망이 불탈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정리된 정신병자임을 자처하고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자살충동과 고통과 혼돈과 고독과 정체성의 위기로 점철됐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이다.

 

 항상 집이 없었던 사내. 자신의 몸이 아프고 죽어가는 기계이고 삶에서 겪는 고통이 노래라는 엔진의 연료라고 자위하는 사내. 시는 발이 두 개 달린 몸체라 홀로 설 수 있기에 시가 너무 훌륭하면 곡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간주하는 사내. 염세적인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 음악은 최고선의 창작품이자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과의 대화라는 신념을 소유한 사내.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와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가 세계의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행복의 나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경고하는 사내. 이런 그에게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그의 노래들 중에서 양희은이 객원 보컬로 참여한 <아무리 봐도 안 보여>와 그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작곡으로 느껴진다는 <침묵> 그리고 “내 눈은 부딪쳤네. 생존 경쟁, 나의 투쟁, 인공위성, 만리장성, 금은보석, 썩은 비석”식의 신랄한 가사가 매력적인 <마지막 꿈>이나 “야! 이상하다. 그치! 저 밑에서 무엇들 하고 있는 거지?"로 이어지는 <천사들의 담화>, “다섯 살에 나는 우물에 빠졌었다. 그 암흑과 공포는 아직도 남아있다.”는 독백이 인상적인 <공포>라는 곡들을 오래오래 음미하면서 자주 듣고 싶다. 그 곡들은 내겐 어떤 면에서 굉장히 생소한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람과 나>라는 곡은 한대수가 불러 전혀 다른 색다른 맛을 선사한 <희망가>나 <목포의 눈물>처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어떤 말 못할 슬픔이나 전율 같은 감정의 기류가 내 마음속에서 출렁이게 했던 노래였다. 그 섬광과도 같은 씁쓸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님

  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물결 건너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無目) 여행하는 그대의 인생은 나 인생은 나      

  - 한대수, <바람과 나> 전문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내 속에 있는 어떤 체질이나 성향이 그토록 이 한 곡의 노래에 미치게 만들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대책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의 처지와 공명을 한 걸까, 아니면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게 되면 세상이 그만큼 조금 더 투명하게 보일 줄 알았다가 오히려 점점 더 모르겠는,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착잡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거리를 걷다가 혼자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도 “무명 무실 무감한 님!”의 대목에 이르러서는 가슴속에서 사무친 그 무언가가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는 듯싶어 언제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무명 무실 무감한 님이라. 인간은 본래 이름이 없고 그렇기에 잃을 것도 없고 그래서 느낄 것도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무명 무실 무감한 님은 바람과 같은 삼라만상의 자연의 흐름에 비견되는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가 아닐 것인가. 어차피 인간은 희로애락애오욕의 칠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이거늘. 그러나 그러면서도 늘 외물(外物)에 현혹되지 않는 흔들림 없는 평심(平心)을 꿈꾸는 미련한 존재, 그 꿈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불쌍하고 가엾은 존재, 그래서 더 어여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 나 역시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 여행하는” 바람처럼 살고 싶었던 걸까. 노자나 장자의 한 구절처럼, 금강경이나 유마경의 위대한 가르침처럼 자유롭게 이 생을 건너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한대수의 삶은 1883년 그리스의 변방이었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일생을 인간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투쟁과 해방, 그리고 조국의 독립에 바친 한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르바의 자유분방한 삶에 대한 경배이자 흠모이다. 박영한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작가들 역시 한번쯤은 그 자유로운 사고에 매료당해 자발적으로 조르비스트가 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그가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다.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와 부처를 영혼의 스승으로 삼았던 이 위대한 부정의 작가는 이 세상의 모든 유혹 가운데 가장 무서운 유혹인 희망을 정복하라고 서슴없이 주장했던 사람이다.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가 작가로 설정돼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실존인물인 조르바를 만나 광산 채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학자와 예술가의 삶으로 크게 구분되는 작품의 내용과는 달리 어쩌면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게도 조르바가 곧 카잔차키스고 카잔차키스가 바로 조르바였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 작가의 삶의 행동양식과 세계관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여러 작품들을 입말에 가까운 유려한 우리말로 옮겼던 성실한 작가이자 뛰어난 번역가인 이윤기는 그의 산문집에서 이 희대의 희랍 소설가를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일정한 도덕률의 틀 속에서 온전하게 제 몫의 삶 누리기를 마다하고 떠돌이 앞소리꾼이 되어 영혼의 자유를 외치던 거인, 자기 내부에 잠재하는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드높이고 그 드높이는 과정에서 조우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문학적 표정을 부여하는 참으로 초인적인 작업을 시도한 거인이 있다. 신을 통하여 구원받을 게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존재와의 거대한 싸움터, 한두 마디로는 싸잡아서 정의할 수 없는 광활한 대륙을 떠올리게 한다.”    

 

 조르바는 화자인 ‘나’가 정신의 사유와 마음의 힘을 중시하는 문명인에 가깝다면 몸의 신성함을 최우선의 가치로 인정하는 원시적인 자연인이다. 그는 이 세상 자체가 수수께끼이고 인간은 야만스런 짐승에 지나지 않는 야수이면서도 신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갓 스물의 매춘부에게 유혹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의사대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그녀를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사람이다.

 

 그의 ‘자유’에 대한 개념은 자신이 다루는 악기인 생명 없는 사물에까지 확장된다. 물건도 백년이 넘으면 마음을 갖는다거나 그러하기에 물건에도 감정이 깃들이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악기가 원하지 않는 전조를 감지하면 그는 함부로 부주끼를 뜯지 않았다. 자신이 손에 든 물건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임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카찬차키스의 말을 직접 빌려 묘사하면 조르바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이자 아직 모태인 대지로부터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남자고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언어, 예술, 사랑, 순수, 정열의 의미를 쏟아내는 시시껄렁한 노동자이다.  작가는 또 쓰고 있다. 조르바는 삶에다 나날이 처녀성을 부여하는 자라고. “힌두교도들은 구루 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떠올렸을 것이다.” 작가의 자서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한 배우 앤소니 퀸이 나무와 돌과 새, 물과 여자와 별이 어우러진 꽃으로 뒤덮인 초록빛 해변에서 야성의 환희에 휘둘려 정신없이 춤을 추고 노래하며 절규하는 장면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동명의 영화에서처럼 그는 또 뇌의 기능이 더할 나위 없이 거칠고 대담하여 그 정신은 누군가가 건드릴 때마다 불이 되어 타오르는 사람이다. 이윤기에 의하면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복잡한 사유의 의미망으로 생각하는 대신 쾌도난마 하는 기세로 삶을 직면한다.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서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거라 호언장담하는 사람, 그가 바로 영원한 자유인인 조르바이고 니코스 카찬차키스며 유전적으로 조르비스트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물려받은 한국의 음악인 한대수가 아닐 것인가.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유행했던 히피 문화를 몸소 체험한 한대수는 히피 문화가 일깨워준 것은 ‘인간에게 다른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안 살아도 저렇게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들국화의 전인권처럼 마약이 없었으면 지미 핸드릭스나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같은 위대한 음악이 나올 수 없었다고 단정적으로 확신한다. 그의 확신처럼 근대국가의 감시와 통제 혹은 통제 권력의 시민 길들이기는 개인의 인권이 국가의 편의에 의해 수시로 침해받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남한의 야만적인 현실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돼 온 보이지 않는 폭력 중의 하나이다. 인간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리고 공공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 한 자유롭게 마약을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포크가 이 땅에 들어온 지 30주년이 되는 해인 1999년 포크계의 음악적 부부로 통하는 한대수와 양희은은 ‘아주 특별한 만남’이라는 주제로 콘서트를 열고 정담을 나눴다. 그 자리에서 한대수가 포크는 자신의 세계관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노래한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노래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그러한 개인적인 진실함이 남들을 동감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반면 양희은은 개인사와 사회사가 무관하지 않고 개인의 역사는 민족의 역사, 나라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독이나 슬픔, 이별을 노래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그가 속한 사회의 현실을 비껴갈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나는 한국 포크사의 산 증인들인 두 거목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얼핏 들으면 서로 다른 얘기 같지만 실은 똑같은 내용을 담은 발언이었다. ‘내 노래는 사회적이지만 내 행동은 은둔자와 닮은 것 같다’고 털어놓은 한대수의 용기는 개인의 자유가 진정성을 획득할 때 보다 폭넓은 단위 이를테면 사회나 국가, 민족의 자유를 끌어오는 원천적인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2001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한대수]라는 독립영화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2000년 여름, 쉰 셋의 한대수를 화면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가 지금까지 일궈온 음악세계를 개인적으로 찬찬히 되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구현됐다 할지라도 하여 만약 그 작품을 보았더라면 나 자신 영원한 자유를 꿈꾸는 한 음악인의 초상을 더 진지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혁명가란 저 푸른 하늘 너머에서 이 더러운 세상으로 불어오는 한 줄기 미풍 같은 것이라고 김 산은 말했던가. 문단 안팎에서 김수영이 화제다. 그와 관련된 신문 기사가 잊을 만하면 다시 지면에 소개되고 그로부터 시적 영감을 받아 시를 쓰게 됐다고 고백하는 시인들이 늘고 있으며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직, 간접적으로 자신의 글쓰기에 김수영이라는 시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얘기하는 문인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깊이 있게 연구한 철학자들의 저서도 하나, 둘 소개되고 있으며 이지상과 같은 독립영화감독은 그의 시에 뿌리를 두고 천착한 [노란꽃] 3부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김수영 신드롬’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김수영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 열풍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불고 있다. 김수영은 새롭게 ‘율려 학회’를 세우고 생명사상을 기반으로 한 신문화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김지하만큼이나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으로 뭇 작가나 시인들에게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육체적으로는 몇 십 년 전에 이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그가 아직도 사람들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인 자신이 평생의 화두로 삼고 온몸으로 밀고 나간 시 정신 때문이리라. 당대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자기반성과 성찰, 그를 통해 얻어진 자유에 대한 열망은 그를 단순한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지사적 풍모를 갖춘 진정한 지식인으로 거듭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부정의 올곧은 지식인상은 권모술수와 곡학아세가 난무하는 현 세태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김수영의 매력은 세상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는 지성인의 양심에 대한 매혹에 다름 아니다.    

 

 김수영의 시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그가 만년에 썼다는 마지막 작품 <풀>이다. 이 작품은 풀이 민초들의 끈끈한 생명력과 강인한 삶을 대변한다는 일차적인 해석을 넘어 여러 평자들에 의해 새로운 시각에서 아주 다양하게 읽혀지고 있다. 혁명의 정당성과 고독함을 노래한 <푸른 하늘을>과 작가와 지식인의 양심에 대해서 토로한 <瀑布>와 <눈>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만큼 잘 알려진 작품이다.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의 일절 ‘모래야 나는 얼마만큼 적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 정말 얼마큼 적으냐 ......’는 방송드라마에서도 인용되어 한동안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누이야 장하고나!>에 씌어 있는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는 시구는 김지하로 하여금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는 명문을 탄생하게끔 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했다. 김지하는 김수영의 시구를 잘못 빌려 쓴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창조적 오인이자 착각으로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로 시작되는 <사랑의 變奏曲>과 <거대한 뿌리>의 의미심장한 구절들 이를테면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 . .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등은 김수영의 시 정신의 한 극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 처음 김수영이라는 시인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은 <사랑>이라는 짧은 시를 통해서였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그러나 너의 얼굴은/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번개처럼/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은" 이 시의 어떤 면이, 나를 매혹시켰던 것일까. 아마도 사랑이라는 개념과 그다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번개'라는 말, '불안'이라는 말, '금이 간 너의 얼굴'이라는 표현이 그로테스크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탓이리라. 그랬다. 그에게는 그처럼 나른하고 편안한 일상에 묘한 충격을 던져주는 낯선 설렘 같은 것들이 숨어 있었다. 도발적이다 못해 퇴폐적이기까지 한 출렁거리는 시어들. <국토>의 시인 조태일의 표현에 의지한다면 그의 시는 ‘고여 있는 시’가 아니라 ‘움직이는 시’인 셈이다.

 

 그렇게 나는 <孔子의 生活難>의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척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과 같은 구절들과 <강가에서>의 말미를 장식한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 사이에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의 시구들 그리고 <엔카운터誌>에 등장하는 부분부분들 이를테면 “나는 지금 시간과 싸우고 있는 거야 ... 시간은 내 목숨이야 ... 안 빌려주어도 넉넉하다. 나도 넉넉하고 당신도 넉넉하다. 이게 세상이다.”를 만났다. <나의 家族>에 등장하는 마지막 행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고 <絶望>의 순금처럼 빛나는 시행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를 발견했을 때는 환희에 가까운 희열에 몸을 떨었다. 시인 채호기와 연극평론가 안치운을 통해 가난한 마음이 가로지르는 <봄밤>의 절제와 영감을 소개받았고 소설가 김영하로 인해 <등나무>와 <거미>같은 작품들을 다시 눈여겨보게 되었다.

 

1980년대 초에 [자유인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김수영 평전을 쓴 시인 최하림처럼 최근에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의 책이름으로 김수영의 새로운 철학적 읽기를 시도한 김상환으로부터 <먼 곳에서부터>라는 시를 그전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무수한 잡지로부터 <풍뎅이>와 <그 방을 생각하며> 같은 작품들을 다시 읽게 되었고 언젠가 교육방송의 ‘문학기행’ 코너에서 방영된 시인의 일대기를 보다가 <달나라의 장난>과 <헬리콥터>, <거리> 등의 시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러나 나는 그의 충실한 독자가 아니었다. 이 상과 기형도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왠지 모를 거부감과 부담감이 그에게도 있었다. 앞의 시인들처럼 그의 시가 내 속으로 조금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내 속의 인식의 나무가 자라는 시간과도 일치했던 것일까. 그랬을 터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흙 속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고 싱싱한 가지를 뻗어 올려 풍성한 잎새와 꽃과 열매를 피워 올리는 일생의 주기와 마찬가지로 나의 세계관이 성장하는 지점에 그들의 시가  놓여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敵>이나 <性> 같은 시를 남긴 시인이, <거대한 뿌리>에서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고 일갈한 시인의 기개가 어찌 나긋나긋하고 감상적인 시에만 탐닉하던 나같이 어리석고 겁 많은 인간에게 쉽게 들어올 수가 있었을 것인가. 일찍이 나는 남의 눈치 안 보고 이렇게 마음껏 다소 독선적일 수도 있을 자신의 생각을 시라는 양식으로 변주시켜 호통칠 수 있었던 천재형의 시인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다. 아, 박남철과 김승희의 초기시가 그랬다면 그랬을 것이다.                     

 

 김수영이 남긴 또 하나의 시에 해당하는 주옥같은 잠언들, <일기초>와 그 유명한 <반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등을 읽고 있으면 절로 숙연한 느낌에 고개가 숙여짐을 막을 도리가 없다. 또한 <시>, <언어>, <시인>, <작가>, <지식인>, <창작의 자유>, <혁명>, <일>, <사랑>에 대한 지적이고 차분한 그러나 꿈틀거리는 마그마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직선적이고 단호한 단상들 그 몇몇의 면면을 적어두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의 시작노트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시는 미지의 정확성이며 후퇴 없는 영광이다”라거나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거나 혹은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배반을 배반하는 배반자, 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다”와 같은 굵직굵직하고 정직한 육성들과 언어에 관해 언급한 “모든 언어는 과오이다. 나는 시속의 모든 과오인 언어를 사랑한다."와 지식인의 사명을 적나라하게 토로한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 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또는 온몸의 피가 펄펄 살아서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듯한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는 자신의 연애시와 관련한 고백들 말이다.           

 

 생전에 문학평론가 김 현은 <자유와 꿈>이라는 글에서 김수영의 시 세계를 다음과 같은 몇 줄의 짤막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이다. 그것은 그의 초기 시편에서부터 그가 죽기 직전에 발표한 시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끈질긴 탐구 대상을 이룬다. 그는 그러나 엘뤼아르처럼 자유 그것 자체를 그것 자체로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시적, 정치적 사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그의 反詩論은 언어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으며 또 자유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와 자유, 감동과 직관을 날카롭게 결합시킨 최초의 시인이다 . . . 그의 반시론은 박용철의 생명시론이 그 현대성을 획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초현실주의의 정신에 투철한 것이라고 진술할 수도 있다.”      

 

  김수영의 작품 세계를 기리고 그의 정신을 위무하는 그 많은 시들 중에서 나는 일찍이 국악의 대중화에 힘쓴 김영동이 그의 음반 작품집에서 화가이면서 무용평론가이기도 한 시인 김영태의 시를 빌어 고즈넉한 정조로 낭랑하게 낭송하던 음성을 잊을 수 없다.


  花園(화원)에 가도 마음 달랠 꽃이 없어

  나는 徒步(도보)로 그대, 무덤 곁으로 간다

  무덤은 멀다 노을 아래로

  노을을 머리에 이고

  타박타박 駱駝(낙타)처럼 걸어간다

  내가 그대에게 줄 것은

  식지 않는 사랑뿐이라고

  걸으면서 가만히 내 반쪽 심장에

  끓이는 더운물뿐이라고

  - 김영태, <김수영을 추모하는 저녁 미사곡> 전문


  1949년 후반기 동인으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시집을 함께 내면서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절친한 벗 박인환의 안이한 시 정신을 질타한 산문 <말리 서사>와 ‘전위문학의 불온성’이라는 주제를 놓고 신선한 감수성으로 재무장한 당시의 촉망받던 논객 이어령과 벌였던 첨예한 논쟁으로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김수영을 다시 세상 속으로 놓아 보내기 위해서 나는 그의 짤막한 아포리즘 하나와 시의 한 토막을 염치없게도 빌려본다. “...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들과 함께 적들의 적들과 함께 무한의 연습과 함께”<아픈 몸이>.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자유는 여하한 행동도 방종이라고 볼 수 없지만,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이다.”<사랑>. 김수영의 조카 김 민의 1행시에서처럼 ‘어떤 보이지 않는 눈에 우리 또한 아름다울 수 있을까.’<자벌레>.



   *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스물넷에 첫 시집을 낸 시인이 있다. 그 시집의 제목은 [허무집]이었다. 살아온 나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은, 그야말로 앞길이 구만리같이 창창한 나이에 허무라니, 문학소년 시절에 나는 그의 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인이 왜 그토록 젊은 나이에 그토록 짙은 허무의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허무가 삶의 한 양식이 될 수 있음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허무와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삶의 한 양식이 될 수 있음을 그때는 눈치 채지 못했다. 이십대의 전부를 어쩌면 나 역시 그 둘과의 싸움에 모조리 바쳐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 속에서,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숨어있는 그리하여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정체불명의 그 무언가가 바로 나의 삶을 이끌어가던 보이지 않는 힘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은교는 자유의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김수영과는 달리 허무로부터 비롯된다. 김수영의 자유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이 혁명이라면 강은교의 자유는 그것이 정치적인 함의를 포함하고 있을 때조차도 바람의 기구를 타고 지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유영한다. ‘바리데기의 여행노래’가 되어 이 행성과 함께 ‘자전’한다. 생의 비의를 품고 ‘창의 이쪽’에서 ‘순례자의 잠’이 되어 저 깊은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의 뿌리를 적시며 지하로, 지하로 흐른다, 흘러간다.


  부부가 혼인을 한다. 그리고 딸아이를 여섯이나 낳는다. 그러나 일곱 번째도 딸이자 부모는 그 딸을 버린다. 그 아이가 바리데기다. 부모가 병들자 그들이 버린 딸을 찾는다. 바리는 부모를 살릴 수 있는 약수를 찾아 서역으로 떠난다. 길 위에서 구원자들을 만나 여러 고난을 이겨낸다. 고생 끝에 약수를 지키는 무장승을 만나 약수를 얻는 대가로 혼인한다. 부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장승과 함께 약수를 가지고 돌아온다. 상여에 실려나가는 부모를 약수로 살린다. 바리공주는 북두칠성과 인도국왕 보살과 만신의 몸주가 된다. 무조신이 된다.

  - 김태곤 편, [한국 무가집], 집문당, 1971             

 

 바리데기의 시 쓰기. 왜 바리데기인가. 하필 바리데기인가. 현대시 중에서 생태시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들 예컨대 생태계 및 환경 파괴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고발하는, 문명 비판적 요소와 자연 예찬의 경향들 그리고 양자 사이의 관계에 천착하여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고자 하는 시의 유형들 그 너머에 버려진 여자로서의 여성이 있고 여성의 몸을 빌려 새롭게 탄생하는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자연이 있고 병적 증후가 농후한 자연과 병에 걸린 그 자연의 죽음을 껴안고 뒹구는 말의 결, 살의 말로서의 시 쓰기가 있다. 그야말로 징후와 기원으로서의 신화적 구음, 밑그림으로서의 신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강은교를 만나러 가는 처음 자리에 바리데기가 서 있다. 진정한 여성시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처녀시집인 [허무집]을 보라. [허무집]의 안쪽에 실려있는 바람의 시편들을 보라. 황천무가 중 ‘바리데기’의 일절 “게 누가 날 찾는가 날 찾을 이 없건마는 어느 누가 날 찾는가 베려라 베리데기 던져라 던지데기 깊은 산중 퍼버려라 퍼버려라”를 인용하면서 시작된 <바리데기의 여행노래> 연작과 “동쪽에서 서쪽으로 네 뼈가 불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는 <황천곡조> 연작들은 산중에 버림받은 오구 대왕의 일곱째 딸 바리데기가 죽은 부모를 살려내기 위해 저승에서 약수를 구해오는 줄거리를 모티프로 한 무가 그 자체이다.

 

 강은교의 시들을 분석한 본격적인 평문인 <허무의 선험과 체험>이라는 글에서 김병익이 밝힌 바대로 “그의 허무는 샤머니즘의 어휘들이 차용되기도 하고 동양의 불교적 윤회사상이 짙게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상의 원천은 오히려 서구의 정신문맥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파스칼적 명상법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강은교의 허무에 대한 분석과 검토는 우리의 허무에 대한 개념에 새로운 영역을 제공해주는 것이며 그 허무의 미덕을 통념적인 그것과는 또 다른 상상력의 세계로 확대시켜 주는 것이다.”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 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살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 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들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 강은교, <풀잎> 전문


  강은교의 초기 시는 주로 허무, 죽음, 소멸 등 내면적 관념의 세계 속에서의 치열한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사라지지는 않지만 흩어지고 무너지는 비극적 존재의 모습을 응축하고 있는 모래 이미지, 육체마저 버리고 떠나는 혼, 그 혼을 싣고 다니는 바람 이미지는 이와 같은 존재의 무너짐, 부서짐의 의미를 잘 드러내주는 소재들이다. 그의 상상력의 저변엔 생명력의 상징인 ‘살’이 생명을 거두고 부서지게 하는 불가역의 시간적 힘 ‘바람’에 의해 해체되고 죽음을 표상하는 건조한 ‘모래’로 바뀌어 가는 모티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모티프는 ‘그림자’, ‘갇힌 바다’ 등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갇힌 의식, 생에 대한 짙은 허무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성적 죽음을 통한 재생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녀의 시에서 자주 사용되는 ‘자궁’의 이미지는 모든 생명성을 잠재하는 성스러운 공간이며 생명과 죽음이라는 이질적 세계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죽음의 모성이라는 주제와 무덤에서의 그리스도 부활로 나타나는 요나 콤플렉스와도 관련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 자연과 인간의 교감, 그 경계의 벽을 허무는 넘나듦의 소통과 화해의 자리가 마련된다.

 

 그의 대표작인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우리가 물이 되어>이 그렇고 “떠나고 싶은 자/떠나게 하고/잠들고 싶은 자/잠들게 하고/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사랑법>이 그러하며 “바람은 늘 떠나고 있네/잘 빗질된 무기의 구름떼를 이끌면서/남은 살결은 꽃물든 마차에 싣고/집 앞 벌판에 무성한/내 그림자도 거두며 가네”<순례자의 잠>가 또한 그렇다.          

 

 죽음과 허무에 의해 지배되어 오던 강은교의 의식세계는 80년대에 이르러 [빈자일기]나 [소리집], [붉은강] 등의 시집에서 사회와 역사 속에서 숨쉬고 있는 한 개인의 삶으로 확장되어 간다. 내부에서 외부로 그 방향성이 확대되어 갈 때 이 시인은 냉정한 관찰자의 태도를 버리고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독자에게 다가선다. 또한 초기 시에서 우주에 던져진 한 고독한 개인의 실존적 삶을 암시해주던 ‘바람’ 이미지가 이제 개인의 죽음, 즉 궁극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과 저 지역, 이 사람과 저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단절 극복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강은교는 초기의 관념적이고 내면적인 세계에서 후기로 접어들면 점점 더 현실적인 세계로 시 의식을 변모해나가고 있는데 이러한 변모과정 속에서도 하나의 공통된 의식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타자와 자아가 서로 단절되어 있다는 고립 의식이다. 죽음 의식이나 유대감을 갖고자 하는 지향성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녀는 더 더욱 만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만남의 대상은 우리가 흔히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즉물적인 외피를 벗어나 훨씬 더 포괄적 지점에 위치한 하나의 ‘대우주’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의 자리가 개인적인 포즈를 취하든, 사회적 태도를 견지하든 나는 결국엔 다시 그가 처음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올 것임을 믿는다. 회귀와 순환, 그의 무의식 저편엔 앞의 두 단어로 매개되는 시원을 향한 그칠 줄 모르는 열망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바람부는 날, 나뭇잎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멀리서 와 다시 멀리 흐르는 강물처럼 시절은 쓸쓸히 흐르지

  때로는 깊고 고요하게 때로는 빠르고 거칠게 거짓 없는 제 모습

  그대로 흐르고 또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도 그렇게 흘러 사는 것

  인생은 제 마음이 그려내는 흐름과 같아서 강가에 서면

  내 마음 더욱 쓸쓸해 가을 강가에서 가을 강가에서 말이 없네

  강물은 마음처럼 쉼 없이 흐르고 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

  - 이철수, <흐르는 강물처럼> 전문


  누가 이 사람을 보라, 이 텅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차 있고 어딘가 모자란 듯 보이면서도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보라. 그는 낯익은 소재와 쉬운 말로 목판에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글을 새기고 있는 이 시대의 판화작가이다. 예술적 영혼에 상처받은 21세기 자연인 혹은 21세기 문화인, 아니 그는 목판을 새기는 일이 밭을 가는 일이나 진배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땀 흘리는 자유인이다.

 

  시, 서, 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문인화의 형식 위에 오히려 그 고정된 틀을 훌훌 털어 버리고 불교적 선화(禪畵)가 보여주는 관조의 미학을 일찌감치 터득한 장인으로서의 화가. 그러나 그가 일구어낸 관조의 미학엔 건강한 노동의 숨결과 체온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판화 달력과 엽서 시리즈로 이미 세인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그이지만 그의 예술가로서의 직업적 출발은 저 암울했던 1980년대 한 출판사에서 찍어낸 판화시선을 통해서였다.

 

 ‘풀빛시선’으로 명명된 그 타오르는 태양처럼 강렬하고 새벽의 여명처럼 짙고 푸르던 당대의 양심적인 시인들. 김지하의 [황토]와 강은교의 [붉은 강],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최하림의 [겨울꽃]을 나는 거기서 만났다. 그리고 그 시집의 첫 장에 어김없이 꽂혀있던 이철수의 작품들. 그때 나는 강경대와 김귀정과 노수석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이 순결한 목련처럼 하늘하늘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던 91년 오, 유월 정국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다니던 겉늙은 학생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리뷰]나 [문학동네] 같은 잡지에 실린 그의 작품들을 눈 여겨 봐왔지만 투박하지만 그래도 번쩍거리는 광채가 빛나던 시절은 아무래도 처음 민중미술계에 발을 들여놓던 1980년대 초반이 아닌가 내 나름대로 가늠해볼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80년대 말 충북 제천의 박달재 밑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후 선보인 선과 일상의 세계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의 판화는 첨예한 날카로움을 버리고 대신 부드럽고 둥글어졌다. 소재 역시 밤, 길, 시장, 논밭, 새순, 낙엽, 지는 해처럼 초기 벽화에서 출렁거리던 정치적인 색채에서 벗어나 드넓은 대자연의 삼라만상 속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철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1990년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를 시작으로 95년 ‘마른풀의 노래’를 거쳐 2000년 ‘이렇게 좋은 날’에 이르는 초기와는 달라진 그의 판화 여정은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를 손쉽게 21세기에도 여전히 종교적인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일개 예술인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다. “내 안에 있는 것이니 그대 안에도 있으리라 그대 안에 있는 것이라면 내 안에도 있겠지 그런 그리움으로<우리 사이>”나 “앉아 햇볕을 쬐다보니 알겠다 내 몸이 내 집이고 내 감옥인 줄<해바라기>” 혹은 “앓고 난 아내가 머리 묶고 일어나 앉았다 조용하다 무얼 보시는가 묻지 못했다<등뒤에서>”와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길>” 같은 판화의 한 귀퉁이에 새겨 넣은 잠언들은 단순한 삶의 초월이나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발견되는 어떤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비루하고 더러운 이 세계를 향한 초극의 의지일 터이다. 그에게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자유의 기운 혹은 생명의 열기는 바로 이 초극의 의지와 연결돼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흑백구조의 선명한 명암대비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적인 독일의 여성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초기의 <북 치는 앉은뱅이>나 <하얀 저고리>의 삽화와 <한>의 표지화,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도 좋지만 나는 그보다도 “사람들이 내 사는 골짝을 절터라카기도 하고 절골, 보지골카기도 않나? 그 말이 그 말인데, 허허 . . . 뭐라꼬 주께든지 내사 편하고 좋으이 됐다. 한 분 들 앉으마 도통 나오기가 싫으이께네, 그말또 맞기는 맞다. 안 그렇나?”는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가 돋보이는 <집터>나 “밤마다 도시의 불빛이 밝고 탐조등이 휘돌고 있었지만 짐승의 손에 이끌려간 어린 소녀, 젊은 처녀는 쉽사리 하늘나라의 천사로 사라져가곤 했습니다.”는 가슴아픈 사연이 그림과 함께 두 눈을 아프게 찔러오던 <세속도시의 이야기>, “바람 있습니다 잊고 지내던 이에게서 소식 오듯이 그렇게 오시는 바람입니다 나뭇잎들 나부끼는 대로 우리 마음도 따라 흔들리며 서 있게 되는 그 바람은 그대로 마음 풍경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나뭇잎도 흔들고 당신의 옷깃도 흔들고 가난한 세상도 흔듭니다. 가을, 바람소리 있는 날 그대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길고 긴 연서의 내용과 흡사한 <바람 부는 날 나뭇잎들> 같은 90년대 초의 작품에 더 마음이 쏠리는 형편이다.

 

 또 90년대 중반에 그 동안의 작품을 한데 모아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 . .]라는 제목으로 학고재에서 발간한 판화집을 굉장히 아끼게 됐다. 법정 스님과 시인 곽재구, 미술사가인 이태호 선생의 발문이나 추천글도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그 책에 실린 작품들 가령 <바람> 연작이나 <소리> 연작, <인간세(人間世)> 연작과 <그릇> 연작을 대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의 판화에서 곧잘 신영복 선생의 체취나 김용택 시인의 입김을 감지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인가.

 


  * 머물지 못하는 영원한 보헤미안의 꿈                                     

 

  나는 몸에 좋다는 일 절대 안 해. 사람은 소모하려고 나온 건데 . . . 몸을 돌보다가는 평생 아무 일도 못 하지. 사람은 몸을 써야 해. 다 써 버려야지. 나는 내 몸 다 쓰고 갈테야.

  - 김원룡, <장욱진 이야기> 중에서 

 

  보통 자연, 자연 그러는데 자연이라는 게 그래요. 뭐 시시각각, 여기서 이렇게 앉아서 보면 뭐가 뭔지 모르지만, 거기 가까이 있으면 또렷해요. 비오는 것도 좋고 바람 부는 것도 좋고, 자연에 접하고 있으면. 제 삼자가 보면 가장 둔하고 미련하고 그래 보이는데 예민한 게 자연이에요, 그 변동이라는 게. 지금 도회지 사람들이 공기 좋고 뭐 좋고 하지만 그건 그저 표면적인 거지. 실제로 거기 앉아 있으면 자연의 변동이라는 게 참 교묘한 거예요.           

  - 장욱진 구술, <그리면 그만이지> 중에서


  여름의 강가에서 부서진 햇빛의 파편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수면 위에 떠도는 아지랑이를 타고 동화가 들려올 것 같다. 물장구를 치며 나체로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적나라한 자연을 본다. 그리고 천진했던 어린 시절에의 향수가 감미롭고 서글프게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스치는 여름 강바람 - 이런 것들이 나 역시 손색없는 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공허하지 않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그럴 때 나는 물이 주는 푸른 영상에 실려 막걸리를 사랑해본다 . . .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을 술로 휴식하면서.

  - 장욱진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 중에서


  생전에 야인(野人), 기인(奇人), 장인(匠人)의 삼인으로 불렸던 화가가 있다. “나의 지나간 40여 년은 오직 그림과 술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그 휴식이었다.”고 고백하는 화가가 있다. 영감이 떠오르는 한 순간을 위해 몸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술을 마셨던 화가가 있다. 감동적인 화가란 확실히 ‘예술’에 대해서 말하는 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자라는 점을 실증시켜 준 화가가 있다. “분만될 시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일, 이것만이 예술가의 삶”이라고 했던 계시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신조를 한평생 몸으로 실천했던 화가가 있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평생 동안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노마드적인 삶을 구가했던 화가가 있다. 그리고 “나는 심플하다.”는 말과 “나는 교만이 겸손보다는 좋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 위험하지 않으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깃들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참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화가가 있다. 단순한 삶을 동경하면서도 세속의 잡사에 쉽게 휘말리고 아직도 겸손함이 타인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고 예의라고 생각하는 나처럼 겁 많고 소심한 인간은 도저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자유분방한 생을 누렸던 화가가 있다.

 

 장욱진은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찬 소탈하고 순수한 일생을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한 예술인이었다. 그의 그림은 경쾌하고 평면적이고 상징적이다. 자연을 응축하고 단순화시키는 조형방법론에 천착했지만 그의 작품엔 동양의 희화적인 정서인 해학과 웃음이 넘쳐난다. 장욱진은 그러한 웃음으로 인해 자유롭다. 그 자유로움은 다른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원초적이고 본원적인 것이다.

 

 장욱진은 작은 그림을 좋아했다. 조형의 극치 혹은 조형의 초극이라고 할까. 일명 ‘보리밭’이라는 부제가 붙은 <자화상>부터 시작해서 <자동차 있는 풍경>과 <자전거 있는 풍경>, <나무 있는 풍경>, <정자가 있는 풍경>, <과수원>, <우산>, <춤>, <두 사람>, <세 사람> 같은 작품들이 한결같이 다 그렇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풍경으로 흐른다. <시골 풍경>, <마을 풍경>, <언덕 풍경>, <강변 풍경>으로 시작해서 <소 있는 풍경>이나 <호랑이 있는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풍경에 대한 천착 자체가 작은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순진무구한 풍경 속에 일상의 공간인 집이 등장하고 그 집이 터를 잡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등장한다. 집과 관련된 작품들도 <부엌과 방>, <앞뜰>, <모기장>, <멍석>, <툇마루>, <평상>, <엄마와 아이들>처럼 굉장히 많다. 그들이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리라. 그렇게 소소한 일상적 소재들이 <해, 달, 산, 집> 혹은 <해, 달, 산, 아이> 같은 우주적인 소재를 불러온다. 아이를 연작으로 한 <나무와 아이>, <새와 아이>, <마을과 아이>, <호랑이와 아이>가 그렇고 <나무와 산>, <나무 위의 새들>, <나무와 집> 부류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수평적인 공간에서 수직적인 공간으로의 중심이동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상승과 하강의 미학이라고 할까.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그냥 단순한 것이 위대하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공기의 흐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아이의 환희에 찬 둥글둥글한 얼굴엔 분명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황홀한 꿈이 내재해 있다. 인간의 심성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그 꿈은 유럽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인 샤갈이나 미로, 키리코의 작품에서 흔히 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중섭이나 박수근, 김환기의 어떤 그림에서도 발견되는 독특한 요소이다. 나는 그 꿈에 자주 현혹되고 세뇌 당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끌림은 기분 좋은 이끌림이다. 늘 가까이 두고 아껴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 비밀로 가득 찬 세계를 엿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얼굴> 연작이고 불교신자인 아내의 법명을 그대로 따온 <진진묘(眞眞妙)>이다. 진진묘라, 이 세상의 모든 진실한 것은 말 그대로 묘한 법인가. 그래서 참 진리는 찾기 어려운가보다. 마치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빙그레 웃었던 석가모니의 화두를 이해한 총명한 제자 가섭의 신비한 미소처럼 작품 속의 여인은 이심전심의 염화미소를 볼 안 가득히 머금고 있다. 그 여인은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의 화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 생로병사의 고통과 삶의 허망한 이면을 조목조목 짚어내어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는 대중적인 불교노래 <회심곡>을 즐겨 들었다는 장욱진이 그의 화폭에 담아내는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화려한 비상의 꿈은 그 꿈이 찬란할수록 고독하고 슬프다. 외롭게 서 있는 인물에서 풍겨 나오는 그리움이나 우수, 둥지로 모여드는 새의 이미지에서 감지되는 회귀본능과 향수 등이 그의 작품에 배어있는 서정적인 자취이자 흔적이다.

 

 그의 작품이 후기로 갈수록 일반 서민들의 꿈과 애환을 담아낸 민화의 속성과 닮아가는 것도 그 때문일까. “판잣집들이 즐비하고 자동차 자전거가 오가고 무엇인가 팔려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그리고 그 속에 내가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 . . 나에게는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심심찮게 앉아 있을 방 한 칸도 비벼댈 만큼 마련되어 있지 못했다 . . .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생각하는 목적에 변함이 없다는, 즉 주위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본연의 자세 그대로를 갖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는 진솔한 고백이 보여주듯 머물지 못하는 여행자처럼 작업하는 거처를 경기도 덕소에서 서울 명륜동으로, 명륜동에서 충청도의 수안보로, 수안보에서 다시 경기도 신갈로 수시로 옮겨 다녔던 당시 정황을 꾸밈없이 드러낸 그의 다음과 같은 육성은 그러하기에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12년 전부터 아예 서울을 버리고 이곳 한강이 문턱으로 흐르는 덕소에 화실을 잡았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덕소의 비를, 덕소의 달을, 덕소의 바람을, 덕소의 모든 것을 얘기해준다. 그만큼 나는 덕소를 사랑한다.

  - 덕소 시절, 1974년 9월


  새벽 3시엔 항상 일어나 그림을 그려요. 그림을 그리다 재미가 없으면 붓을 놓고 4년 전 내가 제작한 초당인 관어당에 나와 잉어 먹이를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이 시간 그림 구상을 하지요.

  - 명륜동 시절, 1979년 4월


  수안보는 이상해. 거기는 이제 가도 타향 같지 않아요. 아직도 좋아해. 엄마는 수안보서 눈물도 많이 흘리고 고행했다고 지금도 그러지. 사람은 서로 돕는 건데. 나, 서울에서는 그 사람 없이는 꼼짝달싹도 못해. 얼이 빠져 가지고. 근데 수안보에서는 나한테 기댔지요.

  - 수안보 시절, 1987년 7월


  난 죽음에 대해 두려운 게 없어요. 자기 명대로 사는 거예요. 이제 일흔 하난데 어떻게 될 지 모르지. 내가 전에 엉터리 같은 소리로 산다는 건 소모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가 구박도 많이 받고 그랬어요. 엉터리지만 사실이에요 . . .  오래 사는 게 장한 것은 아니나 생명 줄일 수는 없는 거고 기능 없으면 죽어버리는 게 좋아. 없어지는 게 낫다구. 내 기능은 그림 그리는 거니까 죽는 날까지 그려야죠, 쉬다가 그리다가.

  - 신갈 시절, 1987년 7월      

 

<187매>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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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 극작가. 2001년 서울시무대지원사업 선정작 <봄날은 간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이여, 고마워요』 가 있다. 제38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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