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근의 "세계음악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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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7월) . . . 박인희 & 이연실, 은밀한 내 꿈과 몸을 섞는 여옥의 후예들
보물섬  

그토록 슬프고 그토록 생생한 나의 노래여!

  - 박인희 그리고 이연실, 은밀한 내 꿈과 몸을 섞는 여옥의 후예들


 

  <1>

 

  길은 멀고 돌아갈 꿈은 이루기 어렵다

  고향 생각은 봄의 풀과 같아서 아무리 멀리 가도 다시 돋아나는 것

  춤추는 꽃잎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지나가 버린 인연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 한산자, [한산시] 중에서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곳이 보일 때가 있다. 꿈속이었던가. 어둡고도 환한 봄날, 나는 누군가의 무덤으로 가고 있었다. 누구였을까.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일찍이 내가 발을 담고 있던 장소와는 전혀 다른 그 어떤 공간이 신천지처럼 눈앞에 활짝 펼쳐질 것만 같은 새로운 예감에 전율했던 날들이 있었던가. 그곳에 있을 때 나는 늘 머나먼 이국을 생각했었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꿈. 벗어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멀리 멀리, 더 먼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내 영혼이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곳으로 줄달음치고 싶었다. 지긋지긋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삭제되던 곳,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주어졌던 고통의 시간들,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옥수수 알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곳.     

 

 꿈들. 아주 이상한 꿈들. 꿈속에서 나는 어디선가 본 듯한 한 소녀로부터 마법사가 쓰던 모자를 전해 받는다. 모자를 쓰던 마법사는 아주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고 모자만이 남았다는 말과 함께. 덩그마니 혼자 남겨진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다가 어렴풋이 잠에서 깨면 목덜미가 서늘한 게 방금 꿈속을 마구 헤집고 다니던 긴 머리를 휘날리던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무엇인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꿈을 꾸고도 방금 꾼 꿈을 잊어버리는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앙상하게 드러난다. 누군가 잠자는 사람을 물에 젖은 영혼이라고 했었던가. 기차를 타고 생전 처음 보는 나라를 여행하는 경우, 생각도 나지 않는 것들 그 희미한 이미지에 사로잡혀 하루해를 다 보낼 때도 있었다. 먼 옛날, 황혼이 물드는 언덕에서 태초의 인간들은 환각 상태에 빠져 짐승의 생살을 뜯어먹었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또 순수한 사람들은 사자나 독수리가 되어 드넓은 초원을 달리거나 높은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하는. 그때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왜 그런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것일까. 책을 펼친 철학자가 불안한 여행을 통해 게으름뱅이들의 천국에 이르는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청동의 문 입구에 선 푸른 수염의 남자는 왜 아무 말이 없는 걸까. 바이올린을 켜는 날개 달린 물고기들의 싱싱한 꼬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짧은 혀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초생달 모양의 빵은 다 어떻게 된 걸까.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꿈꾸는 표정에 잠긴 저 늙은 남자는 또 어디로 갔을까. 모든 장면은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나 영화에 나오는 의미를 판독하기 힘든 상형문자와 같다. 아니면, 내가 그들의 꿈속으로 들어간 것인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꿈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아니, 그 자체가 한 편의 꿈이었을까. 꿈속의 청년은 누구였을까. 광장. 드넓은 광장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광장 앞쪽 철제로 쌓아올린 멋진 가설무대 위에서 공연이 올려진다.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열광을 한다. 어떤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어떤 사람은 휘파람을 불어제치고 그러나 그 모두가 한 순간의 일이다. 무대 위로 색색의 조명이 번쩍거리고 그 현란한 조명은 한 팀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수시로 변한다. 무대 위의 쇼도, 무대 밖의 열광도 모두가 한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만은 그들은 하나가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가 된다는 것. 크레인이 올라가고 광장 여기저기서 축포와 불꽃이 터지고 객석으로 무비카메라의 불빛이 환하게 쏟아질 때. 아, 그곳은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린 학교였다. 개교 70주년을 맞아 벌어지는 축하 음악회. 이제 사람들은 광장뿐만 아니라 학교 곳곳에 흩어져 있다. 건물 옥상이나 시계탑 주변, 높은 언덕에서 가설무대를 지켜보고 있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은 기분 좋은 장미의 짙은 향기를 공중으로 마구 뿌리고 멀리 보이는 밤바다의 불빛이 아련한 시간. 그곳이 이곳으로 바뀌는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이국의 어느 하늘 아래에 서 있는 듯한 느낌. 그게 꿈이었을까. 꿈에는 가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도 보인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동안 나는 정말 이곳에 있었던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청년은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언덕 위에 서서 썰물처럼 빠지는 인파의 무리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습은 떠나온 그곳을 생각나게 한다. 이곳이 있으면 언제나 그곳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 몸은 있어도 마음은 벌써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 이곳에서 바라보는 그곳은 언제나 그리움만 키워가는 마음의 고향이지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곳. 이곳에서 그곳을 바라보면 그곳은 아주 먼 곳인데도 눈길은 늘 허공을 헤맨다. 상처를 감추려는 이들은 문득 허공 속으로 눈길을 돌리듯 그곳은 그래서 이곳에 처한 나를 병들게 한다. 이곳은 이곳이고 그곳은 그곳인가. 그곳을 떠나 이곳으로 왔을 때 그곳은 이미 사라져 버렸나. 다시, 이곳에서 그곳을 꿈꿀 수 있을까.

 

  눈사람도 꽁꽁 얼어붙는다는 한겨울, 개와 인간이 화물 열차 짐칸에서 만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감동을 안겨주었던 작가 이동하의 <우울한 귀향>과 <장난감 병정>을 읽고 나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사십대 후반의 아까운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만나 유명을 달리한 이균영의 성장소설 <멀리 있는 빛>과 <길은 그리움을 부른다>는 제목으로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던 <나뭇잎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 역시 사람의 한쪽 가슴을 와르르 무너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러브레터>라는 원작이 따로 있었던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영화 <파이란>처럼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됐던 아스다 지로의 <철도원>을 접하게 되면서 코끝이 찡하던 느낌들. 그 모든 영화나 소설들은 고향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내 기억 속에 고향에 대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아로새겼던 작품은 단연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이다. 개발 지상주의, 성장 제일주의라는 산업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 휩쓸려 점점 허물어져 가는 옛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섰던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사내. ‘백화’라는 예명을 가진 여자는 술집 작부였고 사내들은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부평초 같은 따라지 인생들이었다. <삼포 가는 길>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TV문학관으로도 방영되었다. 영화에서 백화 역을 맡은 여배우는 당대의 스타 문 희였으며 TV에서는 차화연이 대신했었다. 80년대를 주름잡은 2대 트로이카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배우는 배창호 감독 영화의 단골 주연이었던 장미희나 퇴폐적이고 도발적인 분위기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정윤희가 아니라 영화보다는 TV를 통해 더 많이 낯이 익었던 유지인이었던 것처럼.      

 

  그래, TV 문학관이다. 시인 유 하가 그의 산문집 제목에서도 밝혔듯 자신의 연배를 가리켜 ‘이소룡 세대’라고 명명했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일찍이 글 짓는 재미에 맛을 들인 나를 포함한 우리 나이 또래는 단연 ‘TV 문학관’ 세대로 불러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 80년 겨울에 첫 프로를 내 보낸 한국방송공사의 TV 문학관은 문화방송의 베스트극장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드라마문학의 꽃을 활짝 피우게 한 토대를 만들었다. 박경리의 <토지>,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청학동 나그네>, 윤흥길의 <묵시의 바다>, 박완서의 <미망>, 오정희의 <유년의 뜰>,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 김동리의 <등신불>, 오영수의 <갯마을>, 이문열의 <금시조>, 서정인의 <강>,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손창섭의 <비오는 날>, 이범선의 <오발탄>,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최 윤의 <회색 눈사람>, 윤대녕의 <천지간> 등이 모두 TV 문학관에서 방영됐던 원작 소설들이었다. 최근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등장한 신 TV 문학관에서도 김주영이나 홍성원 같은 중견작가들의 작품 외에도 강석경이나 이순원, 전경린, 한창훈, 공지영 같은 비교적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강석경의 <석양꽃>이 <그곳에 바람이 있었네>로, 전경린의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이 <다리가 있는 풍경>으로, 공지영의 <길>이 <누구에게나 마음속의 강물은 흐른다>로 제목을 바꿔 단 채 시청자들을 찾아갔다. 또 여러 작가의 소설을 모티프로 제작된 첫 작품 <길 위의 날들>은 존재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한 장기수의 삶을 절제된 침묵의 언어로 승화시켜 97년 TV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는 프리이탈리아상 대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었다.

 

  아마도 베스트극장이나 미니 시리즈가 다분히 대중적인 젊은 감각 취향이라면 TV 문학관은 대중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고급함을 함께 추구하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그 중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호평 받았던 작품들도 있어 그 둘을 비교해가며 뜯어보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가령,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스크린으로 옮긴 김수용 감독의 <안개>에서 주인공 ‘나’ 역을 맡은 신성일과 함께 무진으로 들어가는 버스 바로 뒤쪽에 시골농부 차림으로 앉아있던 원작자인 김승옥의 촌티 나는 모습이라든가 한수산의 감성적인 소설 <대설주의보>에 나왔던 신인 탤런트 허윤정의 짙은 우수라든가 김채원의 <초록빛 모자>에서 남장 여인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던 서갑숙의 인상적인 연기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었다. 그 덕분에 몇몇 작품은 나중에라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명작으로 손꼽히기도 했었다. 마치 예전에는 줄거리 중심이나 주연을 맡은 인물 중심으로 영화를 보다가 영화의 조연은 연기는 잘 하지만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연극배우들이 주로 맡는다는 것을 알고 그 배우들이 출연한 지나간 영화를 다시 한번 보게 되는 것과 똑같은 심리라고 할 수 있을까. 고향에 대한 풍경은 그렇게 흘러간 TV 문학관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2>


  아홉 명의 여신과 함께 안개 낀 수면 위로 배는 떠나네

  수많은 용사가 상처 입고 영웅은 쓰러진다

  빛나는 죽음이 다가오고 망령의 모습이 나타날 때

  만물은 어둠 속에 휩싸이고 검은 어둠이 찾아든다

  아바론 사과나무와 안개 너머의 전설의 섬

  아바론 언제인가 영웅이 찾아드는 요정의 섬

  아바론 지금 영웅의 여정이 머무른 전설의 섬

  아바론 생명의 섬 아바론 그림자의 낙원 

  - 오시이 마모루, 영화 [아바론] 중에서  


  “님아,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물을 건너다 빠져 죽으니 혼자 남은 이내 몸은 어이할까.” 옛날하고도 먼 옛날, 이제는 까마득한 전설 속의 이야기인 것처럼 머나먼 고조선의 한 강가에 곽리자고라는 뱃사공이 살았는데 그가 어느 날 강가에 나갔다가 호주머니에 술병을 찬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늙은이 하나를 발견했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여인네가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는 지아비를 목격하고 울부짖으며 불렀다는 노래.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가요의 주인공은 백수광부의 처였다. 사공이 집에 돌아와 자신이 본 일을 아내인 여옥에게 들려주자 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옆에 있던 공후를 집어 들어 자신의 남편이 들려준 슬픈 이야기에 곡조를 붙인다. 곡조가 붙은 그 노래는 이웃집 여자 여용의 손을 거쳐 온 마을로 퍼지고 급기야 천지사방으로 흘러, 흘러간다. 우리 노래의 첫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인희와 이연실. 그들은 여느 가수들과는 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바로 고백하자면, 그들은 여옥의 후예들이다. 백수광부의 처가 불렀던 노래가 되기 전의 노래에 곡을 붙이고 말을 만든 여옥처럼 그들은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육성에 음악이라는 옷을 입혔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했고 내 성장주기는 그 노래를 들은 횟수와 정확히 비례한다. 그럴 수도 있는가. 그들이 활동하던 당시 나는 어린 아기였는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노래는 사랑처럼 국경과 신분, 나이를 초월해서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는가보다. 부모와 자식 세대 사이에도 정서가 비슷한 동류항의 무리들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노래는 다정한 연인이나 절친한 친구의 음성처럼 어느 날 문득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오래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쉽게 물리지 않는 음식이나 집처럼, 그렇게.

 

  박인희 하면 얼른 떠오르는 시는 박인환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하는 이 허무하면서도 다소 퇴폐적이기까지 한 시는 “등대 . .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를 거쳐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에 이르면 그 도저한 낭만적 감상의 절정을 이룬다. 센티멘털리즘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가치임을 역설하고 있는 듯한 이 시는 우수 어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어울리면서 그 시가 내포하고 있는 본연의 정서적 울림의 최대치를 뽑아내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이제껏 박인희만큼 이 시의 진가를 유감없이 뿜어 올린 이를 알지 못한다. “우리 모두 잊혀진 연인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한 <얼굴>은 <목마와 숙녀>에 버금가는 아슬아슬하면서도 투명하고 영롱한 소녀적인 감수성으로 청춘의 피를 뜨겁게 달구던 자작 낭송시였다. 그러나 지금도 노래방이나 술자리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녀의 대표 곡은 아무래도 <세월이 가면>일 것이다. 노래의 가사에서처럼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난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는 추억들을 누구나 하나씩은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러하기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는 부분에 이르면 그 노랫말이 단순한 노랫말로 생각되는 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현명하고 지혜로운 스승들이 남긴 소중한 잠언 같기도 한 것은.

 

 언젠가 시를 쓰는 한 여자 선배가 부르던 <세월이 가면>을 기억한다. 그녀의 시만큼이나 그녀의 노래는 맑고 고즈넉했다. <물소뿔을 불다>와 <감자먹는 가족>이라는 시에 붙인 ‘나를 향해 떠나온 마음들을 훔치며‘라는 시작 메모에서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마음은 먼 곳을 향해 있으면서 매인 몸을 고달파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럴수록 더 단단히 삶 쪽에, 이승 쪽에 매인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였을까? 먼 곳으로 떠나온 사람처럼, 더는 떠날 곳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기로 작정했던 때가. 그래서일까? 밖을 응시하던 눈빛이 내 안으로 향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존재가 조금 날씬해졌다. 아이 손을 잡고 가을저녁 산책을 나서면 나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이의 작고 흰 손목에 겹친 나의 밋밋한 손등은 아주 먼 시간을 돌아와 어스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 그리하여 이 세상 누구에게도 저녁의 어스름이나 애잔한 손목의 겹침을 말하지 못하고, 그걸 다만 내 안으로 끌어당기며 나는 서 있곤 한다. 그때 내 어깨 위로 떨어지는 굴참나무 잎새 하나야말로 나의 전생이거나 내생이 묻는 안부는 아닐는지! 시란 때로 나를 향해 떠나온 마음들을 훔치는 것은 아닐까? 범종이 저에게서 멀어진 종소리들을 평생 한자리에 서서 기다리듯이, 어쩌면 나를 찾아 참으로 먼 길을 떠나온 마음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슬쩍슬쩍 훔치며, 때로 기다리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나 또한 참으로 먼 길을 떠나왔음을 깨닫는 것이 시는 아닐까.

 

  그녀의 글에서처럼 나를 향해 떠나온 마음들을 훔치게 만든 박인희의 노래는 참으로 많다. 이필원과 듀엣으로 활동했던 [뚜와 에 무와] 시절, 번안곡으로 함께 부르던 <스카브로우의 추억>이나 <도나, 도나>, <이사도라>, <방랑자>, <사랑의 휴일>, <나의 소망>, <알로하오에>는 고전 축에 속하고 <장미꽃 필 때면>이나 <나무벤치 길>, <내가 부를 이름은>, <그리운 사람끼리>, <봄이 오는 길> 등은 거리를 걷다가도 나도 모르게 문득 문득 흥얼흥얼 하던 노래들이다. 어떤 곡은 리듬이 먼저 익숙해지고 그 다음에서야 가사가 입에 옮겨 붙거나 또 어떤 경우는 정 반대일 때도 있었지만 유독 박인희의 곡은 리듬과 가사에 저절로 멜로디와 하모니가 따라붙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내 몸 속 어딘가에서 스르르 빠져 나오던 노래들. 돌이켜보면 인간관계로부터 얻은 배신이나 상처를 말없이 다독거려 주던 것도 <세월아>나 <들길> 그리고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로 끝나는 <섬집아기>였다. 마치 <등대지기>나 <나뭇잎배>, <오빠 생각>, <과수원길>, <반달>, <고향의 봄> 같은 동요를 부를 때처럼 푸근해지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 누군가가 그랬듯 고향에 대한 기억이란 이미 사라진 것 혹은 사라져 가는 것을 반추하는 행위인가.

 

  이연실의 노래들도 그러긴 마찬가지였다. 듀엣 한마음 출신의 양하영이 어느 고아원에서 그들과 함께 눈물을 철철 흘리며 부르던 <찔레꽃>이나 봄의 눈부심, 그 찬란한 생명의 태동을 이만큼 더 꿋꿋하게 표현한 곡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민들레>나 6,70년대적인 정서가 그대로 배여 있으면서도 지금 들어도 결코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목로주점>이나 첫사랑의 아픔이 초경의 비릿함처럼 묻어나는 <새색시 시집가네>나 소월의 시에 가락을 붙인 <부모>도 정겹기가 그지없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번안해서 취입했던 <스텐 카라친>이나 <릴리 마를렌> 혹은 더 나아가 우리의 구전민요나 광복군의 노래에서 차용한 <타박네>나 <고향꿈> 같은 곡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의 서유석이나 양병집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박인희처럼 이연실 또한 단순한 번안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줄 알았던 포크 싱어였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박인희가 노래에 담겨있는 서정적인 감수성에 치우쳤다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연실은 포크송만이 지닐 수 있는 민중들의 끈질긴 정한을 잡아냈다는 점이다. 그러한 미덕은 방의경의 <불나무>나 <내 집>, <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오>나 김광희의 <나는 돌아가리라>, 김인순의 <나비야>와 <하양나비>, 윤연선의 <그 소년>, <고아>, <님이 오는 소리> 그리고 박영애와 이현경의 <아름다운 사람>이나 <그리워라>, <초겨울> 같은 곡으로 흡수되고 확장된다. 그러니까 서유석의 <친구야>나 <그림자>, 양병집의 <부활가>나 <엄마, 엄마 아-엄마>에 나타난 짙은 사회성과 정치성의 또 다른 지점을 이연실이 열어놓았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객관적일 것이다.

 

  아, 그러나 어찌됐든 윤명환의 곡 <오늘 같은 날>이나 <솔개>, <종이꽃>을 부르는 이연실, 그녀의 음성은 서늘하다 못해 고혹적이다. 그녀의 음성엔 향토적인 애잔함과 그리움도 녹아있지만 도회적인 쓸쓸함과 고적함의 향취도 진하게 배여 있다. 그러니까 다들 이연실, 이연실 하는 걸까. 뭐라고 정확하게 꼬집어낼 수 없는 그 미묘한 음성은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출신의 여성가수 토니 차일즈와 애팔래치아 산맥의 작은 마을에 은둔했던 제인 리치의 염세적인 슬픔이 깃든 허스키한 목소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이연실이 청중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꽃반지 끼고>의 은 희가 자아내는 청정무구한 애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겠다. 곽성삼이 <귀향>이나 <나그네>, <길손> 등에서 추구한 고향의식과 박동률이 <고향가는 길>과 <굴렁쇠>, <잃어버린 시간>에서 보여준 사라진 고향에 대한 생각이 다르듯이. 

 

             

  <3>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 이연실, <찔레꽃> 전문


  찔레꽃을 부르며 나는 울었다. 가시에 찔려서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단지 한 사람이 그리워서였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였다. 보고 싶지만 만날 수 없어서였다. 그이는 이곳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 지상에서 가뭇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와 나는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다.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차를 마시며 웃을 수도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수도 없다. 그가 옷을 입는 방식에 대해서 흉을 볼 수도 없고 팔짱을 끼고 행복한 웃음소리에 파묻혀 산책을 할 수도 없다. 그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는데 그를 이제 더 이상은 볼 수 없다는 이 맹목적 현실이, 나를 아프게 했다. 아니, 그것은 아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일 것이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나는 무서운 것이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부재에 대한 어떤 위안이나 상황설명도 그가 내 눈앞에 실재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진실을 은폐할 도리는 없다. 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이라는 불가의 보편적인 법리를 믿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믿고 싶지가 않다. 존재의 부재와 현존에 관한 문제는 시각적인 것이다. 청각과 후각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상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오감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없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그 모든 실존의 현상들을 마주하기가 겁이 난다. 슬픔의 무게와 상실의 아픔을 감당할 수가 없다. 고통스러운 것은 끝끝내 고통스러움 그 자체일 따름이다.

 

  이연실의 노래는 내가 사랑했던 대상이 이제는 멀리 떠나버려서 다시는 내게로 되돌아올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나는 다만 그의 노래를 가끔씩 흥얼거리면서 어리석은 추억과 감상에 젖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러한 추억과 감상이 그의 순전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한 줌의 재로 화하는 날, 나 역시 그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 함을 알고 있다. 가슴속에서 깨끗하게 지워내야 함을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도. 그러나 그 순간이 오기까지는 나는 여전히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혹은 문득문득 누군가가 아무 허락도 없이 내 마음의 빗장을 부수고 내 속으로 쳐들어오는 날이면 기꺼이 그들에게 나를, 내 영혼의 전부를  송두리째 온전히 내맡길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겠는가. 이연실의 노래를 부르는 순간, 나는 그의 노래가 되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때로 내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나를 흔드는 노래 그리하여 내 생의 일부가 되는 노래, 그 노래는 내 몸과도 같다. 노래가 몸이 되고 몸이 노래가 되는 경지, 노래에 취해 내 몸이 대기 속으로 흡수되는 듯한 어떤 떨림의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내가 아닌 나, 단백질의 분자로 구성된 유기물질이 아닌 신성한 존재감에 전율하는 그 무엇. 그것이 무엇이라 한들 어떠랴. 이연실의 노래는 나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 향수는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내가 향수의 주체가 되어 그의 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내 눈앞엔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계는 ‘나’의 영혼과 ‘그’의 영혼이 자유롭게 교감하는 무한 혼융(混融)의 세계이다. 비유는 낡아도 결코 낡을 수 없는 생처럼 그렇게 그의 노래는 살아있다. 김혜린의 <비천무>와 오 수의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에서처럼.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 박인희, <모닥불> 전문


  어떤 날 마음이 아프고 쓸쓸할 때 그 맘이 어둡고 어두워 찬바람 잉잉거리는 길 위에서 벌거벗은 낙엽처럼 저 홀로 나뒹굴 때 다 낡은 가죽가방에 환한 햇살로 버무린 얼굴 몇 개 달랑 넣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어떤 날 누군가 불쑥 나를 찾아와 나를 데리고 어느 낯선 벌판에 가 닿아서 잃어버린 옛 이름을 목 놓아 부르다가 메아리가 되지 못하고 나를 기억하는 그 옛날의 바람도 되지 못하고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바로 그렇게 흐리고 흐린 날, 나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그 거리에 버려진다. 어디선가 한번은 본 듯한 거리, 언젠가 한번은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적이 있을 법한 사람들. 그러나 이제 지도상에는 실재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만 선명하고 뚜렷하게 살아있는 장소, 지금 이곳엔 없고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추억의 책장처럼 붙박여 있는 공간, 그 틈의 여백 사이로 천천히 스며든다. 어떤 날,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그저 멍하니 그저 한참을 내 속의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에 세 들어 사는 집 한 채 지었다가 집 한 채 허물었다가 그렇게 맥없이 풀려있는 그런 날, 나는 그를 만나러 떠난다. 그의 손을 잡으러 떠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예측할 수도 없고 그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지만 안 갈 수는 없기에 그래도 가야 하는 길. 가도, 가도 세상은 점점 더 모르겠고 그 속에서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되뇌어 보지만 딱히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예전엔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게 되면 안개 속에 휩싸인 것처럼 미궁에 빠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환한 햇살 속에 제 모습을 드러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헤어날 길 없는 깊은 수렁 속으로 한 발, 두 발 빠져드는 듯한 소름끼치는 악몽에 시달릴 때면 나는 늘 박인희의 이 노래를 떠올렸다. 그래,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이다. 결국 그렇게 허무하고도 허무한 것인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이 남은 이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애늙은이 같은 말을 하고 있으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그래도 어쩔 것인가. 인생이란 허무하고도 허무하지만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보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든 갈 때까지는 가 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향이란 대상도 그런 것이 아닐까.   



  <4>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정지용, <고향> 전문   

 

  조수미. 그는 여전히 리릭 소프라노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창법으로 사람을 울리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그의 앨범 중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음반은 우리의 민요와 가곡들을 한데 모아놓은 [새야, 새야]이다. 꽃, 사랑, 새, 고향 네 개의 주제로 구분된  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앨범엔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로 시작되는 <수선화>나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서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지”로 문을 여는 <님이 오시는지>도 있는가 하면 백남옥과 엄정행의 곡으로 기억할 만큼 인기 성악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상되는 <동심초>나 <가고파> 같은 가곡도 실려 있다. 사랑으로 언약한 인연의 부질없음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을 그 노래들만큼 절절하게 그려냈던 경우가 또 있었던가. <그대 있음에>나 <그리운 금강산>도 좋지만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같은 전래민요도 인간의 심성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근원적인 감성에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내 귀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던 곡이 김순남의 곡으로 유명한 김소월 작시의 <산유화>와 <고향>이었다. 나는 이 시를, 시가 노래로 변한 채 불려지던 <망향>이라는 가곡으로 들었었다. 그 때는 그 곡의 작곡자였던 채동선이 누군지도 잘 몰랐던 시절이었고 다만 막연히 마음 한 자락에 와 닿는 노래의 선율과 가사에 이끌려 가끔씩 입 속으로 따라 부르곤 했었다. 이 곡의 원 가사가 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진학해서 현대문학사 강의를 듣고 난 후였다. 곡의 노랫말이 된 시의 원주인이었던 해방 전의 시인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던 선생님은 그가 월북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시가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채 타인의 이름을 빌어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지나가는 말처럼 언급하셨다. 그리고 그 시인의 다른 시들 이를테면 <말>과 <띠>, <별똥>, <호수>와 <바다> 그리고 <유리창> 연작, <춘설>과 <백록담>, <장수산> 연작, 박인수와 이동원의 듀엣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향수>를 소개해주셨다.

 

  그 시인이 ‘태양의 풍속’에 젖은 언어의 마술로 신 감각의 ‘기상도’를 그려냈던 저 1930년대의 화려한 모더니스트이자 <길>과 <바다와 나비>의 저자로도 유명한 김기림이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고의 시인’으로 극찬한 정지용이었다. 그런데 실은 내가 정지용을 알게 된 것은 그보다는 한참 전의 일이었다. 아마 그것은 윤동주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윤동주가 사숙했던 시인이 세 명 있었는데 그들이 백 석과 서정주 그리고 정지용이었다는 글을 어느 잡지에선가 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용은 1930년대 말 [문장]지를 통해 청록파를 문단에 등장시킨 산파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당시만 해도 시에는 지용, 소설에는 태준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도 한다.          

 

  시인의 고향인 충북 옥천으로 문학답사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었고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이거나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이었을 것 같았고 궁극적으로는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거리는 곳”이거나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이었으리라. 이보다 더 완벽한 유토피아가 또 있을까. 현실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의 고향, 낙원상실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이처럼 질박하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었던가. 나는 그때 그곳에서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면서 잠깐 '영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머무른 적이 있었던 벌교와 하동 땅에서도 느꼈던 현기증이 새삼스럽게 일었던 듯도 싶다. 내가 다시 이곳을 들르게 될까. 그런 시간이 내게도 주어지게 될까. 이것이 행여 마지막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던 건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 않던가. 그처럼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한국 시단에서 소월이 전통적인 서정시를 대표하는 국민시인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면 지용은 오히려 현대적 호흡과 맥박을 두루 겸비한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감정보다 지성을 강조한 주지주의 색채를 띤 서양 지향적인 이미지즘에 치우쳤던 그도 나이가 들면서 우리 고유의 전통의식과 뿌리 찾기에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그의 후기 시에서 언뜻언뜻 내비치는 동양적 선비의식에 기초를 둔 정신주의 경향과 실향의식은 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리라. 서양 중심에서 동양 중심으로 귀환한 그의 작품 세계는 오태석, 최인훈과 함께 한국 현대극을 대표하는 희곡작가 이강백의 극작 여정과도 흡사해서 흥미로움을 더한다. 초기의 <파수꾼>에서 후기의 <느낌, 극락 같은>에 이르기까지 이강백이 걸어온 길은 초지일관 한국적인 전통의 동적 세계를 무대 위에 구현한 오태석이나 그 반대로 한국인의 심성에 내재해 있는 정적인 세계를 언어로 옮긴 최인훈과는 또 다른 면에서 그 폭과 깊이가 넓고도 깊다. 하기야 정지용의 시를 극찬했던 세기의 아방가르드 김기림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지 않았던가.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두움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 김기림, <길> 전문  

 

 이들의 실향의식은 하층민 가족이 몰락하여 마침내 자신의 고향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를 선명하게 그려낸 이용악의 <낡은 집>과는 분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용악의 시에서 고향은 자기 충족인 세계가 아니고 신비와 경이로 가득한 세계도 아니다. 그 세계에는 화해보다는 갈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삶의 터전을 부당하게 빼앗긴 뿌리 뽑힌 자들의 한과 분노가 스며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용악의 고향은 같은 카프 계열의 작가였던 이기영과 한설야가 제시하는 고향의 심상과 더 가깝고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칭으로 통하던 후대의 향토 시인 박용래의 작품 <연시>나 <건들장마>, <겨울밤>, <저녁눈> 등에 어려 있는 고향과는 그 거리가 멀다.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족제비 이런 것들이

 앞 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붙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삶의 무늬에 아로새겨진 고향의 결은 다 달라도 그 누구에게나 고향은 다 같은 고향이 아닌가.

 

  현상학자이자 실존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의 <들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종도 마지막으로 얻어맞자 고요는 더욱 고요해진다. 이 고요는 두 차례에 걸쳐 세계 대전을 지나오는 사이 시대에 앞서 제물로 바쳐진 저들에게까지도 미치고 있다. 단순하기만 한 것은 어느 사이에 더욱더 단순해졌다. 노상 한결 같은 것은 낯선 표정을 지으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들길이 외치는 소리는 이제 누구 귀에나 들릴 수 있을 만큼 또렷해졌다. 들어보자. 심혼(心魂)이 이야기를 하겠는가, 세계가 이야기를 하겠는가, 아니면 신이 이야기를 하겠는가. 모든 것은 한결 같은 것 속에다 대고 체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체념이라고 해서 빼앗는 게 아니다. 체념이란 주는 것이다. 단순하기만 한 것에서 뽑아 올려도 뽑아 올려도 다함이 없는 힘을 체념은 주는 것이다. 들길이 외치는 소리는 오랜 내력 속에서 고향 품에 안기고 있다.

 

  이를 우리의 시인 이형기는 다음과 같이 변형시키고 있다.

 

  고향은

  늘 가난하게 돌아오는 그로 하여 좋다.

  지닌 것 없이

  혼자 걸어가는

  들길의 의미.

 

  백지에다 한 가닥 선을 그어보아라.

  백지에 가득 차는

  선의 의미...

 

  아 내가 모르는 것을,

  내가 모르는 그 절망을

  비로소 무엇인가 깨닫는 심정이

  왜 이처럼 가볍고 서글픈가.

 

  편히 쉰다는 것

  누워서 높이 울어 흡족한

  꽃그늘...그 무한한 안정에 싸여

  들길을 간다.

 

  또 다른 시인 오세영의 말대로 고향은 푸근한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공간인가. 그래서 세상의 고달픈 육신들은 삶에 지칠 때,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 외로울 때 고향을 생각하고 그 고향에 돌아가 사랑과 안식의 땅에 몸을 누이고 새로운 생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인가.                



  <5>


  오, 나와 함께 오래된 카이암으로 가요.

  그리고 현자들이 얘기하게 놔 둬요.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인생은 화살과 같다는 것.

  확실한 것은 한 가지, 나머지는 거짓이에요.

  한 번 핀 꽃은 영원히 죽는다는 것.

  - 오마르 카이얌, [루바이야트] 26절에서

 

  그 책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 

 

  어렸을 때 내가 읽은 책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건 분명 수수께끼였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들은 수많은 기억의 모세포로부터 살아남은 기억들이다. 나머지 기억들은 잊혀졌다. 그런데도 그 기억들 중에는 절대로 안 잊혀지는, 잊혀지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되살아나거나 내 영혼의 어느 한 부분에 강렬하고 선명하게 찍혀 지워지지 않는 잔상처럼 어른거리는 것들도 있다. 책도 그런 면에선 기억과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한 권의 책을 찾아 온 도시를 헤매고 있었다. 그렇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그 책은 지금은 작고한 1930년대의 한 아동문학가가 쓴 [대답 없는 메아리]라는 자전적인 동화였다. <꿈을 찍는 사진관>이나 <이상한 안경>, <만년 셔츠> 같은 동화와 <꼬마 눈사람>, <코끼리>, <종이 접기>, <산토끼야>, <금강산>, <태극기>, <봄동산 꽃동산>처럼 초등학교 때 음악시간이면 풍금에 맞춰 불렀던 수많은 동요들의 노랫말을 직접 쓴 사람. 그의 한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고향 마을의 소녀, 유년 시절의 첫사랑에 얽힌 이야기. 그 책을 어디 가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글쎄요. 아마 그 책은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된 듯싶은데.

 

  시내의 여러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이번엔 다시 헌 책방을 중심으로 뒤지기 시작했을 때 그 중 한 곳에서 만난 주인아저씨의 말이었다.

 

  요즘은 따로 그런 동화는 안 나오는가 보죠?

  동화야 전집으로 많이 나오지 낱권으로는 출판이 안 되는 게 보통이지요. 게다가 벌써 칠십 년 전에 쓰여 진 작품이라면.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건 더 찾아봐야 헛수고니 그만 포기하라는 뜻을 담은 몸짓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대답 없는 메아리. 나는 왜 그 책에 집착해야 했던가. 그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와 같은 것은 아닐까. 지나온 세월을 어찌 한 권의 책으로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난 찾고 싶었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아니 그게 사실과는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어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가 처음 그 책을 보았을 때와 똑같은 책표지를 한 책을 찾을 순 없을 것이다. 나도 거기까지는 기대 안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책 속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거대한 파도처럼 때때로 밀려와 목이 메곤 했다. 그래. 그 속엔 나의 역사가 숨겨져 있지. 한 개인의 역사가 온 우주와도 맞바꿀 수 없는 엄청난 무게로 숨어있지. 도저한 슬픔으로 숨이 가빠질 때면 난 스스로 그렇게 나를 위로했었다.

 

  서울을 떠나올 때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뿌리가 뽑혀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아는 법이다. 힘내라.

 

  내 지친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아예 그 뿌리조차도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밑바닥까지 내려가 샅샅이 캐내려 해도 더 이상 들어갈 수조차 없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는 메아리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분할 것도 없었다. 지난 십 년간은 내겐 끝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심연이었다 여기면 될 터였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내 영혼에 이미 인화지처럼 찍혀 각인된 지울 수 없는 흔적은 어쩌란 말인가. 난감한 일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적어도 내겐 기적이라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벅찬 감격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그 책을 발견한 것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 찾아 헤맸던 그 책을 아주 우연히 고향의 작은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나는 그만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떤 전율 비슷한 떨림이 스쳐갔고 다음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너무나 행복한 충만감에 젖어들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은 신의 계시와도 같은 거라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강소천의 [대답 없는 메아리]는 그렇게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어쩌면 그것은 미리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만의 대답 없는 메아리를 다시 쓰고 싶은 탓일까.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도 마찬가지였지. 언젠가 ‘감자꽃’이라는 제목의 시로 교내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고등학교 때 친구가 있었지. 김종삼의 <북 치는 소년>을 좋아했고 프랑스의 행동주의 작가 쌩떽쥐페리를 흠모하던 해맑은 소년 같던 인상의 그가 쓴 시는 고향 동네의 어린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하얀 백지 위를 촘촘하게 채워가고 있었다.

 

  흰 종이 위에 꼼꼼히 적어 내려간 너의 편지를 받던 날 갈대처럼 맑은 너의 가난과 눈물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나는 오래 침묵해야 했다 허울 좋게도 문학지망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거짓 시를 써온 지 몇 해 마산이나 창원 아니 그보다 더 먼 홍제동 골목길 서성이는 별빛의 소인이 찍힌 너의 편지에는 감자꽃 꽃대궁이의 불빛으로 글썽이는 대관령 기슭 너를 기다리는 네 어머니의 노동이 뜨겁게 박혀 있었다 주워들은 문학이론을 들먹이며 내가 무슨 화해니 구원이니 시의 시대니 떠들고 있을 때 몸부림치는 강물 줄기를 따라 숨가쁘게 피었다 진 네 고향 밭둔덕의 감자꽃들이 네 아버지의 저문 쟁기질로 나를 후려친다 아무 가책도 없이 순결도 없이 이웃들을 팔아 먹어온 나의 이 뻔뻔한 혓바닥은 백 토막 아니 천 토막을 낸다 해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임을 너는 알고 있을까, 불어오는 황사바람 속에 서서 남대천 변 잡꽃들을 향하여 바람결에 쓸려 가는 네 길고 긴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토막 난 내 혓바닥은 미처 흐르지 못한 강물이 되어 헐벗은 땅 네 가슴의 시 한 구절로 피어나는데 허기진 앉은뱅이 풀 몇 송이의 뜨거움으로 너는 그렇게 손 내미는가 또 어떤 거짓말의 시를 써야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살아왔다며 한 끼 밥도 되지 못하는 너의 시가 가슴 치는 날 나는 네 고향의 감자꽃들과 반갑게 악수하고 싶었다 너로 하여 풀이 되게 하는 식구들의 희망 속 시내버스 차창 밖으로 빛나는 네 고향의 불빛들을 위하여 허름한 별이 되고 싶었다 뜨거운 노래가 되고 싶었다.

 

  ‘재연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세상의 그 어떤 유명한 시인의 작품도 아닌, 어찌 보면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던 친구의 시는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때 ‘감자꽃’이라는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나를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들던 이상한 슬픔의 정체는 무어였지?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은 그때 일을 떠올리게 해. 그 시를 쓴 친구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누구보다도 시를 사랑했고 타인의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그 예민하고 섬세하던 애는 고향으로 내려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 이젠 다 잊어버렸어. 권태응이 누군지, 그가 충청도에서 태어났는지,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는지, 독립운동을 하다가 폐결핵에 걸려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지 까맣게 잊어버려서 가뭇가뭇한 기억들. 맞아. 최근에 한 문학전문 출판사에서 책으로 묶여 나온 그의 동시들을 본 적이 있어. <코스모스>, <고추잠자리>, <어린 고기> 등 등 등. 그 속에 아마 <감자꽃>도 숨어있겠지. 감자꽃, 감자꽃, 감자꽃 . . . 하지 무렵 검푸른 잎새 위로 투박한 꽃대궁을 내밀고 자줏빛으로 혹은 흰빛으로 피어나는 감자꽃. “자주 꽃 핀 건/자주 감자/파 보나마나/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하얀 감자/파 보나마나/하얀 감자” 하고 입 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불현듯 되살아나는 그 애 생각,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추억의 불. 몸을 웅크리면 웅크릴수록 더 강렬하게 피어나는 마음속의 불.       



  <6>


  너무나 쓸쓸한 곳으로 와 버렸군요.

  우리, 그만 돌아가기로 해요.

  얼마나 기다려야 되나요?

  충분할 만큼 . . . 충분히, 충분히 지칠 수 있을 만큼 . . .

  아주 조용해졌군요. 꼭 낮잠 자는 거리 같아요.

  햇빛이 참 따뜻해졌네요. 그걸 이마에 받으며 꾸벅꾸벅 졸아보고 싶어요. 어릴 때처럼요.

  햇볕이 너무너무 따뜻해서 . . . 정말, 정말 그래서 좋아요.

  그처럼 미련하게 굴다가는 동사하기 딱 알맞을 거네.

  그렇다고 자네들처럼 무작정 돌아다닐 기력은 없네. 난 이미 늙고 병들었으니까.

  가고 싶어요. 돌아가고 싶어요.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집이 없는 사람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나나요?

  그리고 . . . 애정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추위를 견딜까요?

  - 이동하, <인동(忍冬)> 중에서


  <유동>, <뒤뜰>, <한정>, <한일>, <훈풍>, <소와 소년>, <외양간>, <언덕 위에서>, <양지>, <연자방아>, <소와 목동> 같은 박상옥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그림들을 보다보면 내 몸은 어느새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고향 마을의 입구로 들어서는 착각에 빠진다. 일본의 영화거장 구로자와 아끼라의 한 영화에서 주인공인 화가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 가듯이 나는 시골의 평화로운 논두렁과 밭이랑을 거닐고 있다. 소 곁에 누워 상념에 잠기거나 뿔피리를 불고 있는 아이들과 햇볕 바른 초가집 안마당에 둘러앉아 집토끼들이 뛰노는 모습을 한가로이 지켜보는 동네 꼬마들, 뒤뜰에서 닭들에게 모이를 주는 젊은 처녀, 나무 밑에서 나른하게 졸고 있는 고양이와 언덕 위를 자유로이 노닐며 풀을 뜯고 있는 염소들, 삼일장이나 오일장이 서는 아주 오래된 시장 풍경이나 고무신을 벗어 던진 채 마루 위에서 한창 씨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개구쟁이 사내들,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장을 보고 있는 누나와 나이 어린 남동생, 볏짚더미 아래 모여서 놀고 있는 가시내와 머슴애들. 그런데 이들 인물의 표정은 말끔하게 지워져있다. 표정이 있다면 무심함 자체가 표정이랄까.

 

  그의 작품은 마치 저 30년대의 뛰어난 시조시인이었던 초정 김상옥의 <달밤>과 이호우의 <사향>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마고자>나 <방망이 깎는 노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윤오영이 쓴 같은 제목의 수필을 떠올리게도 한다. 박상옥의 세계는 <보리밭>이나 <바위고개>, <고향 생각>, <사공의 노래>, <얼굴>과 같은 우리 가곡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세계지만 지금은 점점 사라져 가는 세계이기에 더욱 더 소중하고 귀한 세계이다. 젊은 시인이나 소설가 중 이문재나 장석남, 한창훈이나 전성태가 고집스럽게 걷고 있는 이 좁은 길은 대로나 아스팔트가 아니고 큰 길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오솔길에 속한다.

 

  따뜻한 체온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오는 그 적막하고 평화로운 공간은 일찍이 한국적인 고향의 모습을 민화적인 기법으로 형상화했던 이만익이나 후배 화가인 황영성의 몇 몇 그림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가령 이만익의 <고향>이나 황영성의 <큰 소 이야기>, 이영일의 <시골 소녀>와 장우성의 <귀목>에서 묻어나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정감이나 향수는 인간 본능의 잠재성이라는 보편적인 화두를 끌어당긴다. 그것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사랑채의 문고리를 꼭꼭 끌어당긴 채 동네 처녀 총각 몇몇이 질화로에 둘러앉아 부젓가락으로 타다 남은 불씨를 뒤적이며 도란도란 주고받는 나의 이야기이자 너의 이야기, 곧 우리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담아놓은 소담스러운 한 폭의 풍경화이다. 조용한 삶에 대한 관조. 정적인 생에 대한 동경. 그의 그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란스럽지가 않다. T. S 엘리엇의 말처럼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되는가 보다.      

 

 박상옥의 그림을 보다 보면 바람의 갈래에 대한 탁월한 비유를 통해 그 생리를 꿰뚫어 본 한 비평가의 전언이 생각난다. 그에 따르면 태풍이 집단으로 비명횡사한 이들의 영혼이 불길한 운명으로 한데 엉켜 원한과 증오와 미련을 악의 씨앗처럼 지상에 뿌리고 다니는 바람이라면 미풍은 오랜 병으로 앓다가 언제 죽는 줄도 모른 채 숨을 거둔 이들의 영혼이 아스라한 여운처럼 혹은 미세한 울림처럼 지상에 남겨져 있는 바람이라는 것이다. 박상옥의 작품은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삼월 삼짇날, 아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환한 봄볕 가운데로 나선 남편과 아내. 아이가 제비 같은 입술을 열어 종종거리며 묻는다. 아빠, 저기 저 나무의 분홍색 꽃은 뭐예요?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대답한다. 아, 살구꽃이 피었구나. 아이는 이번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긴다. 엄마, 파란 풀은 다 벼인가요? 아니, 저건 보리란다. 가만, 가만, 보리가 아니고 밀이든가?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할 것만 같은 한 가족의 대화 내용을 상상해본다. 자연, 본능, 천성에 가까운 그림.

 

  소설가 이청준에 따르면 도회의 삶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그래서 사회적이고 의존적인 삶에 가깝다면 이와 대비되는 고향의 삶은 근원적이고 감성적이며 그래서 오히려 개성적이고 자족적인 삶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보라.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헝가리의 미클로시 얀초와 이스트반 자보, 폴란드의 크쥐쉬도프 키예슬롭스키와 안제이 바이다, 유고의 에밀 쿠스트리차와 두상 마카베예프,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르히만, 네덜란드의 요리스 이벤스, 프랑스의 로베르 브레송, 독일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스페인의 루이스 부뉘엘,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리스, 아이슬란드의 프리드릭 쏘 프리드릭슨, 오스트레일리아의 제인 켐피온, 이탈리아의 페데리코 펠리니와 루키노 비스콘티,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자파르 파니히, 중국의 첸 카이거와 장 이모우,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나루세 미키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유현목과 이만희, 임권택까지. 박상옥은 누가 뭐라고 하든 한결같은 그 길을 따라갔던 화가였다.       


 

  <7>

 

  설날이나 추석 때의 귀향 인파에 매스컴은 ‘민족 대이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세계 역사상 게르만의 민족 대이동 같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해마다 두 번씩 4천만 인구가 일시에  살던 곳을 떠나는 민족 대이동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 때마다 어떤 물고기가 생각난다.  해마다 가을이면 동해안의 하천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몰린다. 구름 모양의 붉은 무늬가  있고 길이가 무려 70센티에 달하는 이 물고기의 이름은 연어. 연어는 민물 하천에서 부화되어 6센티 가량 될 때까지 거기서 자란다. 그러나 몸이 어느 정도 커지면 바다로 내려간다. 거기에서 3년에서 5년쯤 지내며 성숙한 이 물고기는 산란기가 되는 9-11월에 자기가  자란 하천으로 어김없이 돌아와 산란을 하고 죽는다. 이 물고기가 왜 이런 습성을 가졌는지 잘 모른다. 또 어떻게 망망대해에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자기가 자란 하천을 정확히  찾아오는지도 알 수 없다. 물맛이 다를 수도 있고 해수의 온도로 감지할 수도 있으리라. 아니면 텔레파시를 고향 하천으로부터 받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국인의 민족 대이동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 신기한 물고기가 생각난다.

  - 신문 사설 부분 인용

 

 ‘민족 대이동’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향인파들을 볼 때마다 우리 민족은 유난히도 ‘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한 향수가 강함을 알 수 있다. 고향이라는 말이 갖는 어떤 근원성이 가고 오는 동안의 여러 가지 불편한 교통상황까지 넉넉하게 감수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마치 제가 살던 하천을 떠나 수천 킬로나 되는 넓은 바다를 여행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어 가는 연어처럼 인간 역시 타지를 방황하다가도 심신이 지쳐 휴식이 필요할 때가 되면 자신이 나서 자란 유년의 체취가 배어있는 고향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고향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부여받은 모든 개체들의 안식처이자 귀소처인지도 모른다.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루나무가 서있는 동구 밖 풍경일 것이다. 우리에게 고향으로 각인된 상징적 공간은 문명화된 근대적 도시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여전히 전근대적 공동체의 기반이 남아있는 시골 농촌이다. 피붙이와 살붙이로 대변되는 가족과 일가친척들 그리고 어렸을 때 같이 자란 친구들의 따뜻한 정과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 그것이 고도로 산업화된 문명사회 속의 현대인들에게 고향이 갖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고향이 지니고 있던 풍요로움은 오늘날 그 어디에서도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근대화, 산업화라는 명목 아래 자행된 개발 지상주의나 성장 제일주의는 도시와 농촌을 똑같이 황폐하고 메마른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은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으며 우리가 꿈꾸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핀 고향은 머릿속에만 있고 실재하지는 않는 허상으로 전락했다. 현대는 가장 풍요롭고 편리한 시대이면서도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가장 궁핍하고 불행한 시대라는 말과 현대인의 심각한 위기는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다는 점은 이와 같은 이유에 기인한다. 바다로 간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하천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서양의 어느 시인은 “고향은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동경으로서의 영원한 모성”이라고 쓴 바 있고 “아주 할 수 없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는 말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주어도, 주어도 다함이 없는 고향의 따뜻하고 포근한 옛 이미지를 회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처럼 나서 자란 곳 그래서 유년에 얽힌 추억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이라는 고향의 예전 개념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이제는 고향이 아닌 타지라도 자신이 정을 주고 살게 되면 그곳이 새로운 고향이 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제 2의 고향인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향의 개념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해도 고향이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다고 해야겠다. 그것은 인간이 결국엔 마지막으로 회귀할 수 있는 최후의 거점이자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이 느끼는 고향상실에 대한 위기의식을 단순히 평화롭고 아늑했던 과거적 공간의 상실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원형적 세계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상실감이나 단절감으로 해석하고 이에 따른 진지하고 사려 깊은 성찰과 반성적 사유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그들이 내던져진 심연의 깊이로부터 자신을 회복하고 추스를 수 있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마음의 고향을 되살려할 때이다.


(142매)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2년 7월호)

                       

김애리자 2010.07.23. 12:24 am 

장장~ 읽어 내리는데 휴, 춤이 차네요. 어릴적부터 살아온 나의 이야기도 들어 있는 것 같은 공유하는 점이 많아 술술 읽어 갔습니다. 그 때 그 시절 노래들이 연막을 치듯이 떠 오르네요~ 추억으로의 여행? 정말 좋은 글입니다. 분홍빛 감성들이 폐부를 찌르며 못다한 이야기 듣듯, 지난날의 그리움에 멈짓 눈이 흐려오네요...아련한 밤이 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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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 극작가. 2001년 서울시무대지원사업 선정작 <봄날은 간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이여, 고마워요』 가 있다. 제38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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