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근의 "세계음악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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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3월) . . . 채희준, 나 홀로 가는 어떤 싱어송라이터의 꿈
보물섬  

  소외와 저항을 넘어 새로운 연대의 지평을 찾아서

  - 채희준, 나 홀로 가는 어떤 싱어송라이터의 꿈

 


나는 지금 헛것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는 지금 헛것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는'이라는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인 대명사를 앞세워 첫 문장을 기술하는 것은 고대의 수사학이나 문체론의 범주에서 본다면 주어의 의미 변주 내지는 주체의 상황 변경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이 무모하고도 당돌한 그러면서도 어처구니없이 자기 고백적인 일인칭 주어를 사용하여 다시 재현하고자 시도하는 형상, 곧 문채(文彩)는 아우얼바하가 말하는 미메시스 이론으로도 생명복제가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21세기에 되살릴 길 없는, 아니 그 가능성이 요원한 어떤 이미지-기호이자 상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탁월한 문예 비평가이자 원형이론의 창시자인 캐나다의 노드롭 프라이에 의하면 행위(act)를 모방행위(mime)로 바꾸는 것, 제의를 행하는 것에서부터 제의에서 연행하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 야만의 이름에서 벗어나 문명으로 발전하는 중심적 특징의 한 원리라고 했는데 이 이상야릇하고도 기괴한 어떤 이미지-기호이자 상징인 그 헛것은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니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고도로 상업화되고 획일화된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시장에서 '파르마코스(pharmakos)', 곧 산 제물의 운명을 감수해야하는 능욕의 길을 걸어야 했다. 결국 그것은 바흐찐이 말한 카니발리즘(cannibalism), 다시 말하면 자신의 몸을 제 스스로 갈기갈기 찢는 스파라그모스(sparagmos)적 이미지의 현대적 변용이다. 미로란 사악한 괴물 자체 내부에 있는 꼬불꼬불한 창자이며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우로보로스(ouroboros), 즉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은 묵시적이며 동시에 악마적이라고나 할까. 두려움은 먼 곳으로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불안은 가까운 곳에 있다. 공포와 연민은 이제 그 대상이 없다. 그러하기에 지라르의 희생양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불길한 것이었다.

 

 

  채희준이라는 음악인이 있다. 그는 가수이다. 아니, 그가 직업적인 가수인지 아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정확하게 알 수 없다기보다는 차라리 그에 대해서, 그의 이력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그가 지금 어디 사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모르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의 나이와 얼굴을 포함한 용모, 신분 일체를 알지 못한다. 모르고 있다. 그는 단지 사라졌을 뿐이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눈앞에서 꺼져버렸다. 그의 실체를 확인할 길이, 그러므로, 지금의 나로서는 막연하다.

 

  그가 죽었는지 어딘가 살아있는지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그의 음악에 대해서,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우연히 소유하게 된 두 곡의 노래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지도 실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이다. 이 말 역시 어폐가 있다. 누군가로부터 잊혀졌다는 말은 한번이라도 그가 잊혀진 대상으로부터 기억된 존재였음을 가정한 상황 아래에서만이 성립 가능한 전제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사람들에게 가수라는 이름으로, 음악인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된 일조차 없다. 사정이 그러하니 다른 것을 다 젖혀놓고서라도 그를 극단적으로 말해서 가수나 음악인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아이러니컬하지만 명백하게도 그러한 자신 없음에서 출발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그를 한 사람의 일반인에서 가수나 음악인으로 호명할 수 있는 자격의 소재가 누구에게 부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점이리라.

 

  그렇다. 그는 그저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무림의 정글과도 같은 거대한 자본의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음악을 하고 있다는 세속적 직업윤리와는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다. 설령, 상관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어진다. 막스 베버식의 프로테스탄트적 자본주의 윤리강령을 굳이 들먹여서 얘기하자면 그는 단지 무수한 눈으로부터 소외되었으므로 괴로울 뿐이다. 만약 그 괴로움이 전적으로 그의 것이 아니라면 이제 그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일찌감치 밀려난 아웃사이더적인 존재라고 해서 그를 단죄하고 비난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채희준의 노래는 팬터마임 송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팬터마임을 위한 무대음악으로 그 노래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채희준의 노래가 녹음이 된 테이프가 어느 날, 내가 한동안 몸담고 있던 대학교의 교내방송국으로 날아왔다. 이건 날아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싶다. 왜냐하면 그 일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고 느닷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일이었으므로 나는 [나무와 새]라는 기획사 이름이 찍힌 작은 소포를 풀어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신인 가수의 신작앨범이라는 명목 하에 각 기획사나 음반사에서 보내지는 음반이 그 당시만 해도 꽤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나는 채희준이라는 가수를 알게 됐다.   

 

  그의 노래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내가 그를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음악인이었던 아따우알빠 유팡키나 칠레의 행동하는 음유시인 빅토르 하라에 비견한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적어도 내 판단에 기초한다면 채희준은 반골 정신이 강한 체제 저항적인 가수로서의 체질을 타고났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체 게바라와 같은 혁명적인 투사로서가 아닌 음유시인의 조건으로서 말이다.

 

  그의 음성은 부드럽지만 날카롭다. 봄바람과 같은 미성 속에 칼날과 같은 예리함이 번쩍거린다. 그것은 강인함을 안으로 품은 유함이다. 감춰진 무기가 더 유용한 법이다. 그는 노래가 하나의 무기가 될 수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중세 시대의 떠돌이 악사에서 그 기원이 유래된 배가뱅드나 일 트로바토레 혹은 미네징거와는 차별화된 개념으로서의 음유시인이다. 극단적인 떨림 속에서 고요하게 번져가는 그의 목소리는 지독하게 아프다. 얼음처럼 차디찬 섬세함은 푸른 독을 품었다.

 

  그가 서슬처럼 머금고 있는 독은 여간해서는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다. <춤추는 인형>이나 <난쟁이의 봄>을 되풀이해서 듣고 있노라면 온몸이 아프다. 그 통증은 무사와 안일에 찌든 내 의식의 전부를 샅샅이 도려내어 흔들어 깨운다. 각성된 의식의 실체가 감수성으로 충만한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아름답고 무서운 선율에 의해 운다. 그 울음의 끝은 부끄러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채희준의 노래는 거기, 그렇게 있다. 

 

  그의 노래는 느리게 간다, 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처연하고 어떻게 들으면 또 유장하다.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이 초고속의 시대에 그의 느릿느릿하다 못해 어눌하게까지 여겨지는 목소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연주하는 파블로 카잘스처럼 저 홀로 가는 이의 외로움과 인내를 가르친다. 그 고독과 인내는 슬프다. 슬프기 때문에 거침이 없다. 거침이 없는 슬픔이다.

 

  그는 우수보다는 차라리 비애에 가까운 무채색의 톤으로 담담하게 현실을 노래한다. 통통거리는 기타 한 대의 단조로운 힘으로 그가 노래하는 현실은 ‘겉만 보이는 거울 속의 세상이 진실이라고 믿는’ 어둡고 암담한 현실이다. 그 속에서 ‘태엽에 감긴 채 딩동거리는 음악 소리에 맞춰 언제나 똑같은 몸짓으로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인형의 길들여진’ 현실이다. 그 현실은 인형의 현실인 동시에 그 자신의 현실이고 더 나아가 ‘나’와 ‘너’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부턴가 현실에 갇혀있다. 그리고 그 갇혀진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 현실은 극장 속에 있다. 베이컨에 따르면 그 현실은 동굴 속에 혹은 시장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현실은 어쩌면 꿈속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꿈속에서 사람들은 잠들고 구경꾼들은 손뼉을 친다. 그 현실은 그렇기 때문에 주인의 현실이 아니라 노예의 현실이다. 주체자의 자유로운 이성적 사고가 거세된 현실이다. 나를 제외한, 내가 결여된 그래서 결국은 나는 빠진 상태에서 자연이나 기타 환경 등의 타자의 손에 의해 질 질 질 끌려 다녀야 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그 현실은 그러므로 나를 어느 순간 곤경에 빠뜨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물음을 처음부터 막아버린다. 허위의식을 거둬내고 남은 곳에 존재하는 진정한 나를 확인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없애버린다. 그 싹을 아예 뭉개버린다.         

 

  <춤추는 인형>이 프랑스의 행동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생텍쥐페리가 자신의 책 [어린 왕자]에서 얘기한 길들여짐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길들여짐의 개념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면 또 하나의 곡 <난쟁이의 봄>은 ‘시인과 촌장’의 <푸른 애벌레의 꿈>을 들을 때와 같은 묘한 여운과 울림의 뒷맛을 남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절대 영혼에 호소하는 간절한 기도문과도 같다.

 

  노래의 마디마디에서 육신의 허물을 벗고 자유롭게 비상하려는 피 묻은 영혼의 절규가 묻어난다. 그 절규는 뭉크의 그림에서 감지되는 절망과 고뇌의 선을 훌쩍 넘어버린다. 그 절규는 외마디 비명과도 같지만 소리가 삼켜진 침묵의 비명이다. 침묵으로 비명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큰 고행일 것인가. 가령, 나는 아프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아픈데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아픔은 얼마나 큰 아픔일 것인가. <난쟁이의 봄>은 그러하기에 또 하나의 역설을 만들어낸다.

 

  가사의 메시지가 던져주는 패배적인 분위기가 현실적인 차원에서 종교적인 차원으로 중심 이동해버림으로써 슬픔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선율의 비극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시인과 촌장’을 떠난 하덕규가 종교에 귀의한 다음 보여주는 평화로움은 그래서 못내 아쉽다. 그 평화로움엔 무한한 안식의 쉼터가 놓여있지만 그 평화로움엔 치열한 자기 부정의 정신은 빠져있다. <난쟁이의 봄>은 예술과 종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다.

 

  채희준이 현실의 괴로움을 초월의 의지로 극복하려 한다면 그는 자칫 잘못하면 하덕규가 걸어간 길을 되밟을 수도 있다. 그의 전철을 따라 가게 될지도 모른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떠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상의 세계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로서의 운명이자 그를 오래도록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끈이다.

 


  헛것은 헛것이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죽음들 . . . 모두들 흥분하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 . .  그들의 아름다운 확신은 더욱더 그들의 절망의 깊이를 다듬어갔다. 신문에서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 신문을 들고 흥분하였다. 어느 서점에는 그의 글이 복사되어 투명한 유리창을 가리고 있었고 그 옆으로 볼펜으로 쓰여 진 자잘한 글씨가 빽빽하였고 창안으로 사람들이 책을 들고 서성거렸다. 아니 여기저기 그의 글이 붙어있었고 대자보가 붙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몇몇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 . .


  검은 뿔테안경에 덥수룩한 머리, 사진 속의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김수진, 철학 4, 92년 대학문학상 당선자. 분명 그였다. 칠 년 전 서울역 뒤편의 어느 낡고 허름한 재수학원에서 만났던 그러나 그 후 내 후미진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그는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시를 쓴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쓴 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는 재수생이었을 뿐. 이십대의 청춘을 저당 잡히고 괴로워하는 잉여인간. 단지 시간이 흘러가길 바라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 . . 아무 것도 없었다. 그와 나는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그저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치면 어색한 웃음이나 고개를 약간 숙이는 정도의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그러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일본작가 아다치 미쓰루의 <겨울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인가.  

 

  일관된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일관되지 않은 것 또한 아름답다. 선악의 개념도 아니고 시비의 개념도 아니고 그것이 단지 미추의 차원이라면 일관된 아름다움과 일관되지 않은 아름다움은 나란히 간다. 서로 마주보고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한곳을 바라보고 같이 간다. 그러니 헛것은 아름답다. 헛것 아닌 것이 추하지 않다면 헛것 또한 추하지는 않은 것이다.

 

  김지하. 그는 오랜 동안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아니 그의 젊은 시절의 말을 그대로 빌린다면 찢어진 한반도의 남쪽, 남한을 대표하는 제 3세계의 체재저항시인으로 인정받아왔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역사가 기록되는 한 언제까지고 변함없는 사실이다. 한 시대의 나침반 노릇을 해 온 그의 사상과 행동, 불의에 항거한 지사로서의 행로에 감격하면서 때로 부끄러워하면서 갈채를 보내지 않은 당대의 지식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그는 의식 있는 지성인의 양심을 일깨우는 교사,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선지자로서 세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그 요지부동의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김지하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무궁무진해서 손으로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그만큼 그는 어느 새 오욕과 추문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우리 현대사에서 저항과 투쟁이라는 이미지로 아로새겨진 중심인물이 되어 버렸다. 아니, 인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고 보는 게 옳을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오늘날 그의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김지하와 관련된 사상적 논쟁의 출발점이며 김지하의 뒤를 따라 다니는 소문의 진상이다.

 

  김지하, 그는 누구인가.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그에 관한 아름다운 글들. ‘무화과’라는 짧은 시에 <속꽃 핀 열매의 꿈 - 김지하에게>라는 제목으로 60매가 넘는 섬세한 비평을 남긴 생전의 김 현과 순수한 우리말과 한문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김지하의 일상적 단면을 스케치한 김성동의 <광대 또는 보살 - 지하선지식과의 만남>을 잊을 수 없다. 그 글들은 한과 고통, 개인적인 실존과 시대의 아픔을 동시에 껴안고 역사의 중심에서 뜨겁게 몸부림치던 청년 김지하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후배시인 이문재의 인터뷰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시급하다 - '율려문화운동' 펼치는 시인 김지하>와 미학과 직계 후배인 황지우 시인과의 대담 <혼돈시대의 줏대 세우기>, 지용 탄생 백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정지용 문학상 수상 기념으로 이루어진 대학시절의 벗 조동일과의 대담 <이론가와 예술가의 만남> 등은 중, 장년을 거쳐 어느새 초로의 길에 접어든 그의 최근 심경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그와는 달리 그의 요즘 근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의를 제기하는 글들도 눈에 들어온다. [당대비평]의 편집위원 홍윤기는 <우리의 허약한 현대, 그리고 야만으로의 퇴행 - 김지하, 시적 강인함과 철학적 혼돈 뒤에 오는 것>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를 정신적 파시즘의 한 사례로 지목하고 그의 사상적 경로가 민중담론에서 생명담론으로, 생명담론에서 민족담론으로 옮겨갔다고 주장했다.

 

  홍윤기의 말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근원회복을 부르짖고 고대 사회로 다시 돌아가 원시반본(原始反本)하려는 김지하는 지구적 보편성을 상실하고 초현실적인 한민족 특수담론으로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학/민중에서 수운/증산/생명으로 거기서 다시 율려/단군으로 이행하는 김지하의 사상적 순례는 결국 역사성을 결여한 채 과거로 원점회귀(原點回歸) 해버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거론하고 싶은 헛것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이제는 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려 그 실체를 다시 되돌릴 길 없는 헛것, 헛것 그대로의 헛것, 그 자체로서의 헛것이다. 머문 듯 왔다가 간다는 말이 있다. 오 윤이 그랬다. 머문 듯 왔다가 갔지만 그는 실은 이곳에 두고두고 남은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오 윤에 대한 추억, 허나 그것은 추억이라고 할 것까지는 못 된다. 나는 그를 생전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다만, 그와 관련된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판화와 관련된 몇몇 사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꼭 그를 떠올릴 때면 가난하고 불우했던 화가 박수근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온다. 왜일까. 오 윤과 박수근은 연배 상으로도 그렇고 장르로도 그렇고 작품 제작 스타일 면에서도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 두 사람이 서로 교유했을 리는 만무하고 오 윤이 박수근으로부터 받은 영향 같은 것도 그 어느 지면에서고 구체적으로 밝혀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일까.

 

  그것은 두 사람의 예술가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강한 나머지 빚어진 나의 지나치게 주관적인 느낌일 뿐일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그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은 존재한다. 그것이 그림이든 판화이든 간에 그 속에 한국적인 혼과 숨결이 살아있다는 것. 아, 그렇구나. 그게 또 그런 식으로 만나는 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느낌은 구체적으로, 그 느낌 뒤의 깨달음은 늘 뒤늦게 찾아온다.

 

  오 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 심장을 꿰뚫을 듯이 강렬하고 투명한 그 눈빛이다. 일찍이 나는 그렇게 정직한 눈빛, 매서우면서도 부드러운 눈빛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눈, 서늘하게 살아있는 눈은 그것이 비록 사진을 통해서일지라도 그 인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짜릿한 전율 때문에 순간적으로나마 정신이 아득해졌던 기억은 보헤미안의 꿈을 좇아 전설이나 신화 속으로 사라져간 세기의 에세이스트 전혜린이나 자유엔 피의 냄새가 섞여있고 그렇기 때문에 혁명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고 절규한 자유의 시인 김수영, 태양의 극점에서 불꽃처럼 시어를 연소시키는 한국의 실비아 플라스 김승희와 만년필이 불러일으키는 영성의 힘으로 대하소설 [혼불]을 써 내려갔던 최명희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막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머리에 반소매의 티셔츠만 입고 목판 작업에 열중하던 오 윤의 모습은 영락없는 젊은 시절의 김수영의 모습이다. 반골 정신이 강했던 점도 두 사람은 닮았다. 어설픈 헛짓 나부랭이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을 듯싶은 그들이지만 오 윤의 판화에 등장하는 삼라만상의 모든 제 이름을 가진 것들은 그것이 사람이든 호랑이나 도깨비든 간에 우리와 아주 친근하고 익숙한 형상이었다. 풀빛 판화 시선에 실려 있던 작품들은 물론이고 제 1회 한민족 춤잔치의 전단에 실려 있던 <칼노래>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 형상이 우리에게 친근하고 익숙할 뿐만 아니라 숨겨진 비수처럼 가슴 한복판으로 날아와 허위와 거짓으로 위장한 날림의 정신상태를 각성시키는 힘이 더해진다는 것이 여타의 작품들과 다르다면 다른 점일 것이다.

 

             

헛것은 헛것이 아니다     


  나는 여태껏 몇 가지 유형의 헛것에 대해 말하여 왔다. 그 헛것이 일으키는 어떤 울림에 대해 말하여 왔다. 그러나 여기까지 허위허위 달려온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무언가 빠져있다. 무언가 빠져 있다는 이 절박한 결핍의 정체는 또 무엇일까.

 

  세상에 헛것이 존재한다면 그 헛것이 헛것으로 마침표를 찍게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게 하는, 그리하여 오스트리아의 현대시인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와 같은, ‘헛것은 헛것이었다’는 고전적인 명제로 환원하는 오류를 방지하는 대항 기제, 다시 말하면 대안의 담론을 형성하는 어떤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헛것이 그저 헛것으로 존재한다면 그 헛것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헛것이란, 그러한 헛것이 실은 보이지 않는 실체임을 상기시켜주는 분명한 실체에 의해 도드라지고 환해진다. 환해진다는 말은 밝아진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헛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존재의 의미 자체를 가릴 만큼 그 존재의 표현양상이 어둡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헛것은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헛것이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존재와 부재 사이를 가르는 기준은 믿음이다. 믿음은 존재의 척도이다.

 

  조세희는 헛것은 헛것이지만 헛것은 헛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헛것은 헛것이 아니다, 라고 못 박기보다는 헛것은 헛것이 아니어야 하고 헛것은 헛것이 되어서도 안 되며 헛것은 헛것일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일종의 헛것에 대한 변주이다. 그리고 거기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자율성의 논리가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의 논리가 개입되어 있다. 그래서 그에겐 헛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 헛것은 극복되어야 하고 넘어서야 할 하나의 벽이기 때문이다. 조세희에게 있어서 그가 넘어서야 할 헛것은 자본주의라는 근대가 빚어놓은 망령이다. 또한 그 망령이 불어넣은 마술의 포로가 되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인형들이다. 그래서 그는 ‘소외’를 말하고 ‘저항’을 부르짖으며 ‘혁명’을 이야기한다. 그 모든 단어는 궁극에 가서는 사랑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명제로 묶이겠지만, 그러나 아직은 사랑을 설파할 때가 아니다.

 

  사랑이 한낱 나약하고 감상에 젖은 이기적인 사랑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랑은 불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이 손쉬운 화해나 타협이라고 끊임없이 속살거리는 철없는 무리들, 사랑의 적들이 당의정처럼 눈앞에 펼쳐놓는 유치찬란한 유혹과 싸워야 한다.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 싸움에서 이겨야 만이 비로소 사랑은 사랑으로 온다. 사랑은 온갖 허위와 교만과 위선을 걷어내고 사랑으로 온다.

 

  세상에 사랑이 있을 뿐이다. 참사랑이나 진실한 사랑, 위대한 사랑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랑은 그저 사랑으로 있다. 사랑은 사랑으로 존재한다. 사랑은 사랑으로 나서 사랑으로 숨을 쉬다가 사랑으로 죽는다. 사랑은 사랑이다. 신경숙은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고 했지만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다.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명제는 ‘헛것은 헛것이다’는 명제와는 같지가 않다. ‘헛것은 헛것이다’는 명제는 헛것은 헛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만, 사랑은 그렇지가 않다. 사랑은, 그것이 사랑이지 사랑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세희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다. 전제했듯이, 사랑은 사랑이지 절대적인 사랑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여기서의 ‘절대적’이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을 미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말속에 용해되어 그 사랑과 몸을 섞고 천천히 사라지는 촛불과 같은 운명으로서의 말이다. 아니, 그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조세희는 그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날 밤 아버지가 그린 세상을 다시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이 헛것 되살리기 혹은 헛것 되지 않기에 동참한 한 사람의 사진작가가 있다. 그의 사진 작업은 조세희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시간 여행]을 거쳐 도달한 세 번째 작품집인 [침묵의 뿌리]를 통해 시도한 변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세희는 펜 대신 카메라를 들고 사북 탄광으로 내려간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과 검게 물든 하늘과 땅을 찍는다.

 

  모든 것이 검다. 그곳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사람들은 배용균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제목처럼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들이다. 그 세계는 일찍이 한국의 음유시인 김민기가 ‘아빠 얼굴 예쁘네요’라는 노래극을 통해 담아낸,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그 아픈 생채기가 덧나는, 우리 사회의 감추고 싶은 치부의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이제 펜만을 들 수 없다. 펜과 더불어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예전엔 펜이 무기였다면 이젠 카메라가 무기이다. 아니, 카메라가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펜과 카메라는 동시에 세상의 어두운 곳을 샅샅이 훑어내는 최적의 무기이다.

 

  최민식이 그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포착한 세상과 인간들 역시 예외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이다. 몇 년 전엔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라는 사진 산문집을 발간하면서 다시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바 있는 그의 사진엔 거리를 부랑하는 소녀가 있는가 하면 공사판의 노동자가 있고 노점상을 하는 여인이나 장애인 청년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점치는 노인이나 운동권 대학생, 고깃배 위에 서 있는 어부의 주름진 모습도 들어온다. 그의 인간 시리즈에는 그래서 거친 인화지의 질감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동이 있다. 그 감동은 말 그대로 살아서 꿈틀거린다. 밝음과 어둠, 그 선명한 음영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고통엔 눈물이 녹아있다.

 

  [눈물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는 제목의 시집을 낸 시인도 있지만 그 눈물은 세상의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도 더 값진 눈물이다. 실은, 그 눈물은 자본주의 화폐 개념으로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눈물이다. 그 눈물엔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 그 눈물은 성스럽고 고귀하다. 눈물어린 빵을 먹어본 자만이 빵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듯이 가난을 겪어본 자만이 생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진에는 절규가 있어야 합니다. 외침과 고함소리가 있어야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위정자들의 실정을 강력히 비판할 수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닌, 같이 살아가는 세상의 잠들어 있는 도덕성과 인간애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야말로 사진이 감당해야 할 큰 몫이지요.” 그의 이러한 사진관을 들여다보면 그가 왜  미국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타이겐의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에 그토록 충격을 받았고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자화상의 화가 렘브란트에 매혹되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카메라로 인간냄새 나는 다큐멘터리를 한평생 찍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파노라마의 집적체인 그의 인간 시리즈 제 7집에 해당하는 [이 사람을 보라 1957-90]의 서문엔 다음과 같은 작가의 변이 담겨있다. “진실은 위대하다. 거기에는 생명력이 있고 억압과 거짓의 신전을 무너뜨리는 신비한 힘이 있으며 사진은 이 힘을 쟁취해 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있다. 그러므로 약자와 강자, 부자와 빈자의 대립이 이 땅에 남아 있는 한 나의 사진 작업은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쉼 없이 계속 될 것이다.”

 

  최민식의 사진집인 [인간] 제6집에 부쳐 시인 이승하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또 한 인간의 죽음이 잉태한/아픈 시간의 인자들/산 자들, 무슨 죄 있어/망자를 울며 보내고/상복 불태우고//연기 사라진 하늘가로/그대 자식이 입었던 수의도/불태워져 연기로 사라질 터이니/사라질 것은 차례차례/이 땅에서 다 사라질 터이니/울지 말아라 이승의 피붙이들아/저 저승이 여기보다 못하진 않으리/그 어떤 끈보다 질기다는/사람의 명줄이야 반드시 끊기는 법//이 땅과 저 태양도 반드시 식는 법/그러니 너무 그렇게 울지 말아라/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지상에서 울리는 모든 시계 소리는/인간을 위한 진혼곡이니.”

 

            

다시, 지나간, 헛것을 불러오기 위하여      


  칼 마르크스(1818-1883)가 1844년에 완성, 그의 사후인 1932년에 공개된 [경제학, 철학 초고]에 ‘소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핍박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의 참상이라는 의미로 소개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밝히고 있는 소외란 생명이 대상화되는 노동 생산물과 외적 강제에 의해 이루어지는 노동활동으로부터의 소외, 개인의 생존수단으로 전락한 유적 존재와 생산/비생산자의 적대관계에서 비롯된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를 이름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화폐의 물신성을 낳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서 화폐의 물신성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기 귀환이 이루어지려면 사랑과 신뢰의 회복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덧붙이고 있다.

 

  근대 산업사회에서의 마르크스가 생각한 소외되지 않은 완벽한 노동의 모습은 예술가의 창조활동과 예술품 그 자체였고 예술가와 감상자 사이의 완벽한 교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일하는 자체가 삶의 의미요 보람이고 가장 인간다운 삶의 표현이 노동에 의해 건설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소외의 개념은 루소, 실러, 헤겔, 포이에르바하에 이르는, 헤겔 철학을 위시한 독일 관념론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페르디난트 퇴니스의 공동사회/이익사회 논의를 거쳐 본질의지와 선택의지의 문제로, 에밀 뒤르켐의 아노미 개념으로, 막스 베버의 사회제도의 물신성 문제로, 게오르그 짐멜의 생에 대한 형식의 승리와 형식에 대한 인간의 굴복으로 이어졌다.   

 

 전체주의의 폭력 체재를 통해 인간됨의 조건을 연구한 제 2의 로자 룩셈부르크 한나 아렌트와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연구, 수용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에리히 프롬은 이 소외의 개념을 재해석하여 선진제국의 대중사회를 분석하는 준거로 삼았으며 실증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사회학에선 이를 사회적 병리와 일탈현상을 해석하는 틀로 이용하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 마르크스의 소외의 개념은 저항의 의미로 전위된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 공권력 행사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저항권이라 한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고전적인 명제의 근간이 되는 이 신성한 개념은 중세 유럽의 태동과 함께 발기되어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 . .’ 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 눈부신 대목이야말로 명백하게도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 저항권의 행사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주목해야할 사항은 이 저항권은 혁명권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항권이라는 말은 ‘Monarchmach(모나르코마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이 말은 16세기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신, 구교간의 극한대립에서 비롯됐는데 그 당시 칼뱅파는 반 군주이론을 내세우며 군주와 인민 사이에는 보호와 복종 관계라는 통치 계약이 성립해야함을 역설했다.

 

  이 사회적 규약은 17세기로 접어들어 영국의 사상가 존 로크에 의해 정부와 인민 사이의 사회계약설로 발전했고 이것은 1776년 6월 체결된 버지니아 권리장전에 이르면 공공복지에 최대한 공헌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간다. 버지니아 권리장전 이후 1776년 7월의 미국 독립 선언, 1789년 8월의 프랑스 인권 선언을 거쳐 1793년 6월 프랑스 헌법에 명시되기까지 이 조항은 인권의 한 형태로써 실정법을 뛰어넘는 자연법사상의 최후의 수단으로 존재해왔다.

 

  법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저항권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또 한번의 질적인 도약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헨리 소로우로 대변되는 시민 불복종운동과 무정부주의의 발흥으로 나타난다. 넓은 범주에서 본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총선 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은 바로 이러한 저항권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항권이 단순한 반항에서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는 상황으로 전화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민 불복종운동과 무정부주의가 어떤 식으로 연계 가능 하느냐는 지점으로까지 확장된다. 저항권은 그것이 혁명권으로 진화되는 단계에서 거쳐 가야 하는 중간 기착지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21세기 새 삶의 화두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자 계보학과 고고학의 대가인 미셸 푸코는 자신의 저서 [성의 역사]에서 권력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권력은 무수한 요소들로부터 그리고 불평등하고 유동적인 관계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행사된다. 권력관계는 다른 유형의 관계들(경제적 관계, 인식 관계, 성적 관계)로 표면화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내재하고 따라서 그러한 관계들에서 생기는 분할, 불평등, 불균형의 직접적 결과이며 거꾸로 이러한 차등화의 내적 조건이다. 권력 관계는 단순한 금지 또는 갱신의 역할을 지닌 상부구조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거기에서 직접적으로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문제는 이러한 권력의 특성에 대한 권력의 이해가 바로 ‘저항’의 문제와 맞물린다는데 있다. 푸코는 저항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저항은 권력에 외재적인 것이 아니다. 또 권력관계는 다양한 저항점들과의 관련 아래서만 존재하여 이 저항점들은 권력망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들은 권력관계의 전략 영역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저항 자체가 권력의 한 속성이기 때문에 저항이 과연 전복적인 힘을 갖고 있는가 하는 데서는 의구심이 간다. 일련의 목적과 대상 없이 행사되는 권력이란 없다. 

 

  사람들은 일하고, 사랑하고, 죽는다.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저항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고통은 집단적인 경험으로, 즉 모든 사람의 경험으로 나타난다. 고통이 순전히 집단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저항은 불가피하게 개인적인 것이 된다. 보편적 상황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역사의 능력은 함축적으로 부정되기 때문에 저항은 혁명과 날카롭게 구별되는 것이다.

 

  사르트르와 까뮈 사이의 그 유명한 참여 논쟁은 이로부터 촉발된다. 사르트르는 까뮈가 역사적 고통에 대해 명백히 저항하면서도 그 고통을 종식시키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충족적인 입장, 다시 말해서 영원한 불의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저항을 찾아내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르트르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어떤 궁극적인 개인적 진실에 도달하려면 혁명을 수용해야 하고 그 다음엔 정치적 리얼리즘을 수용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폭력까지 수용해야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까뮈는 반항과 혁명 사이의 구분을 계속 고집했으며 혁명을 진실한 긴장의 붕괴로 보았다. 한 사람이 비극적 휴머니스트가 되고 또 다른 사람이 비극적 혁명주의자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좌파 사회주의 학자 레이먼드 윌리암스는 혁명을 깊은 비극적 무질서의 필연적인 극복으로 보고 혁명이 필요한 사회는 실제 근본적인 관계 형태의 변화 없이는 전체적 인간 존재들로서의 그 구성원 모두의 통합이 불가능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렇기 때문에 혁명은 어떤 유형이든지 억눌리거나 차별 받는 소수자가 있는 모든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며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돌이켜보면 이 땅 위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가, 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수모를 감수해야 하는가. 자기 길을 간다는 것, 그 길에서 구도자나 순례자처럼 끊임없이 생의 어떤 지점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여 있으면 썩는다. 머물러 있으면 죽기 마련이다. 머물지 못하는 여행자, 채희준을 생각하면 그래서인지 먼저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간 몇몇 여행자들이 떠오른다. 김두수나 이무하, 박동률, 이성원과 백창우 그리고 이원재, 곽성삼, 김병덕 같은 이들이다.

 

  혹자는 그들을 가리켜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진 생명력이 짧은 음악인으로 매도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의 길을 간 예인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하나의 구원이자 종교였지 돈이나 취미가 아니었다. 음악 그 자체가 종교가 될 수 있을 때 이 세상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기표들은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건지도 모르지만 그 자신으로부터는 승리한 이들이다. 누가 그들을 감히 인생의 패배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천상의 새 알바트로스, 지금은 천상에서 쫓겨나 더럽고 냄새나는 지상에서 거칠고 우악스러운 선원들의 손에 의해 온갖 모욕과 수모를 겪어야하는 그 신천옹을 누가 감히 저주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고귀한 것은 진창에서 빛난다.

 

  채희준에 의하면 그것은 ‘날 수 있다고 자유로운 것’도 아니며 ‘이 세상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왕관보다 더 큰 슬픔으로 날아다니며 이 세상 모든 바람으로 살을 벗는 나비 한 마리’이며 ‘해도 달도 곪은 세월에도 시들지 않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나무’이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너와 내가 죽어서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선가 뜰 무지개’이다. 나는 그가 지치지 말고 체념하지도 달관하지도 말고 쉽게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도 말고 그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길은 소외와 저항의 벽을 넘어 영구 혁명의 진정한 연대로 나아가는 새 길이리라.


(94매)




(대중음악 정론지 <가슴> 200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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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 극작가. 2001년 서울시무대지원사업 선정작 <봄날은 간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이여, 고마워요』 가 있다. 제38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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