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근의 "세계음악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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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09월) . . . 박은옥, 흔들림 없는 서정 그 서늘한 아름다움
보물섬  

 길 위에 서면 나는 또 하나의 길이 된다

  - 박은옥, 흔들림 없는 서정 그 서늘한 아름다움



  지상에 한 길이 있다. 길과 길 사이에 또 다른 길이 놓여있다. 길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없이 펼쳐져 있다. 길은 길로 통한다. 길과 길은 서로 만나거나 또 어긋난다. 길 위에 서면 나는 또 하나의 길이 된다. 한 점에서 시작된 길의 운명은 다른 한 점으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된다. 길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그래서 매번 바뀌지만 돌아보면 늘 같은 자리이다. 인간은 길 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길 위에서 죽는다. 집은 길과 길 사이를 연결하는 일종의 통로이다. 처음의 집, 어머니의 자궁에서 최후의 집, 대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간은 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집을 나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 위를 헤매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와 너는 흘러가는 것이다. 길 위의 인생 길 위의 사람들 그리고 길 위의 집. 길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지표는 그것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연전에 노회한 신문기자이자 탁월한 에세이스트인 김성우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어느 글에선가 길은 가고 싶고 집은 있고 싶다고 그의 날렵한 문체를 빌어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길은 떠나고 싶고 집은 머물고 싶다. 집은 길을 위해 서 있고 길은 집을 위해 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나고 길을 떠나기 위해 집에 돌아온다. 인생이란 하루의 일과처럼 출가와 귀가의 영원한 순환인 셈이다. 그의 말을 다시 빌려 길에 관한 명상을 마무리 짓자면 머물러야 할 것인가 가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일 따름이다. 이제 길은 쉬고 싶고 집은 걷고 싶다.

 

 

  * 가난한 영혼을 위로하는 길 위의 노래


  박은옥의 노래는 궁극적으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일대기이다. 그 떠남의 장소는 일정치가 않다. ‘해 지고 노을 물드는 바닷가’의 ‘물새들의 울음소리 저 멀리 들리는 고요한 섬마을’일 수도 있고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 그리하여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가는 ‘또 다른 나루’이기도 하며 ‘고행의 수도승’이나 ‘사색의 시인’들이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 허위허위 달려가면 당도할 수 있는 ‘시인의 마을’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노래에 등장하는 뭇 사람들은 ‘떠나가는 배’를 타고 ‘나그네’가 되어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기약도 없이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긴’ 채 흘러가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당쟁과 모함, 살육으로 얼룩진 이 땅의 정치판을 박차고 나와 죽장에 삿갓 쓰고 괴나리봇짐 하나만 달랑 맨 채 삼천리 조선팔도를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유유히 떠돌던 천하의 가객 김병연처럼 정처 없이 길을 나서는 것이다.

 

  그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 위에는 노래를 부른 박은옥 자신의 모습도 투영돼 있지만 곡의 가사를 직접 써 붙였던 정태춘의 젊은 시절 고뇌에 찬 모습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다. 그가 온몸을 던져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하며 괴로워했던 것은 시대적 아픔이라기보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명제였을 것이다. 가수 생활 어언 이십 년간을 노래하는 동반자 혹은 동지로서 그 숱한 고해를 거쳐 동고동락하며 오늘에 이른 이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자리에서 섣불리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아픔이 한 개인의 실존적 명제보다 앞선다거나 혹은 그 반대의 어떤 단정적인 진술로 때로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대중음악계의 판도 내에서도 아주 드물고 그래서 희귀하기조차 한 그들 부부의 가치를 어림짐작으로나마 저울질해보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 내외의 빛나는 음악적 성취도에 대해서는 나 말고도 이 분야의 전문적인 평자들의 입에 의해 여러 차례 상찬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엄밀히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이지 음악을 비평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음악세계에 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입장은 못 된다. 아니, 그런 자격이 처음부터 없다고 하는 쪽이 맞는 말일 것이다.

 

  다만 이 부부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음악활동을 하게 된다면 듀엣으로 음반을 내는 일은 물론이려니와 가끔, 아주 가끔은 한 개인의 이름으로도 솔로 앨범을 발표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품게 된다. 나는 그 어떤 시보다도 정결하고 품격이 높았던 한 가수의 서늘한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그 서정적인 노래를 통해 세속의 먼지에 찌든 나 자신의 남루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박은옥은 노래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거짓에서 참으로, 악한 것에서 선한 것으로, 추한 것에서 고상한 것으로 이끌고 가는 신비스러운 힘이 깃들여있다. 그것은 도저히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상의 범주에서 저만치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힘이지만 그러하기에 그 힘은 성스럽고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일상의 노래가 일상적이지 않게 들린다면 그건 성가나 예불가에 해당하는 경지와 진배없는 것은 아닐까.

 

  가령, 우리는 이적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어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지명도 잘 모르는 어떤 장소를 지나치게 된다. 그러다가 불현듯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공간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이끌림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인간의 언어로는 뭐라고 딱 부러지게 해명하기 곤란한 그 나름의 어떤 고유함, 그런 고유함에는 반드시 신성한 숨결 같은 비물질적인 요소가 따라붙는다. 슬픔이나 기쁨, 노여움이나 반가움들은 그러하기에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의 발산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다분히 무한한 자연의 일부분, 살아 숨쉬는 생명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치 공기 속에 숨어있는 정령의 영혼을 감촉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박은옥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일단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편안함은 거리의 여기저기를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우연히 교회나 성당 앞을 지나치게 됐을 때 건물 안에서 새어나오는 찬송가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그 앞에 서 있게 되는 경우나 한적한 절집의 경내로 들어섰을 때 잔잔하게 밀려오던 풍경 소리와 함께 저절로 내 마음이 숙연해지던 종교적 체험과 다를 바 없다.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처럼 나는 박은옥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세상일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내 마음의 언저리를 보이지 않는 어떤 이의 손길에 의해 부드럽게 치유 받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는 무신론자다. 무신론자인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적인 어떤 힘, 불가사의한 자연의 치유능력은 믿고 있다. 신은 믿지 않는데 신적인 어떤 힘은 믿는다니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그건 마치 시인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시적인 것은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터무니없는 믿음과도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가치체계의 신봉자다. 자연의 힘은 그만큼 놀랍고 신비롭다. 우주의 어떤 차원에 이르는 자연의 위대함은 중심을 갈구하는 나바호 인디언의 노래에서도 전해진다. “내 앞도 아름답고, 내 뒤도 아름답고, 내 오른편도 아름답고, 내 왼편도 아름답고, 내 위도 아름답고, 내 아래도 아름답다.” 박은옥의 노래는 내게 어떤 종교의 교리보다 더 강하고 진실한 ‘종교적’인 믿음의 실체가 인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이 다름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매번 일깨워주는 것이다.



  * 떠나가는 자, 다시 돌아오는 자 그리고

 

  ‘정옥’이라는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한 여자의 딸이자 또 한 남자의 어머니이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낚시도구를 챙기며 며칠간 바람을 쐬고 오겠다는 말만을 남긴 채. 남편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와는 연락이 두절된 채 사건은 점점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몇 해 전 정옥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친정어머니와 함께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 일행은 누군가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 그 무덤에 머리를 누이게 될 어떤 사람의 가묘가 있는 공동묘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 인간의 타고난 숙명이 그러하듯 미래에는 죽게 되어 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자, 그는 누구인가. 그는 정옥의 남편인가, 그녀의 어머니인가 아니면 그 여자의 하나 뿐인 아들인가 정옥 그녀 자신인가. 모든 것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뿌연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녀는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꿈속의 길을 가듯 꿈길에서 하냥 헤매고 있는 것일까.

 

  오정희의 <별사(別辭)>는 텍스트 자체가 겹겹이 싸인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가듯 자못 신비롭기조차 하다. 비밀의 베일에 감춰진 의문부호로 가득 찬 그 밀실의 행방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때는 망자의 날인 백중, 한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친정으로 향한다. 거기서 늙은 어머니를 만나 그와 함께 가묘를 보러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 소설은 그러한 하루 동안의 여정의 기록이다. 줄거리는 미미할 정도로 아주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줄거리 사이사이에 남편의 기본적인 신상정보가 삽입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고 섬세하게 읽어 내려간 독자들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자기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질문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의문이다. 소설 속에서 사라진 남편은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정말 죽었는가, 그가 죽었다면 그 죽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인가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타살인가. 정옥 일행이 더운 여름날 찾아가는 공원묘지에 묻히게 될 사람은 누구인가. 가묘란 죽음에 대비해 미리 만들어 놓는 텅 빈 무덤이다. 그렇다면 누가 죽어가고 있는가, 앞으로 죽을 것인가, 벌써 죽은 것인가.

 

  이 이야기는 결국 오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 여자가 집으로부터 벗어나 길 위에 선다. 길 위에서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에 대한 체취와 기억, 그 시간과 공간이 한데 어우러져 마구 뒤엉킨 이상한 체험을 더듬어간다. 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누구인가. 그에 대한 희미하면서도 선명한 이중적 이미지를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간추려 그 뼈대를 세우자면 그는 실은 이 세상에 없다. 그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는 잊혀진 존재다. 그는 영원한 타자이다. 영원한 타자가 된 그이지만 여자는 차마 버릴 수가 없어 그를 찾아 나선다. 그랬더니 그녀의 상상 속에서야 겨우겨우 그의 자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그는 이미 죽어있다. 그는, 다시, 없다. 아니, 없는 거나 다름없다. 결국은 그를 찾아 나선 자리에 그녀만 우두커니 남아있는 형국이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반복되는 수수께끼의 한 양상. 그는 정녕 누구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중심 플롯엔 그가 자리 잡고 있는가, 그를 찾아가는 한 여자의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이 자리하고 있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의 꼬리표를 잠시 접은 채 작가의 육성에 직접 귀를 기울여보면 그는 또 다른 작품에서 이렇게 암시를 주고 있다. “꿈에는 늘 같은 길을 간다. 이제는 잊혀지고 버려진 옛 성벽처럼 퇴락하고 이끼 낀 돌담이 끝없이 이어지고 돌담을 따라 걸으며 혜자는 꿈속에서도 여기가 어디던가, 그전에도 왔었는데, 하며 너무도 익숙한 분위기에 친근하게 중얼거리곤 했다. 돌담을 따라 한없이 가다가 어디쯤에서 닳아지고 부서진 돌 틈에 손을 넣으면 틀림없이 그 언젠가 약속과 맹세의 뜻으로 넣어둔 작고 예쁜 단추알, 비밀의 표지, 조그맣게 접힌 종이쪽지 따위를 찾아내리라는 예감과 확신으로 하냥 걷다가 꿈은 깨이곤 했다. 꿈은 시작도 끝도 종잡을 수 없는 하나의 길, 헤매임이었을 뿐이었지만 꿈을 깨임이란 또 역시 줄곧 따라다니던 길의 잃음에  다름 아니어서 혜자는 잠을 깬 후에도 미아처럼 막막하고 안타까운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하곤 했던 것이다 . . . 돌담길, 꿈에는 그리도 익숙하게 자주 가는 길, 길이 끝나는 곳에는 꿈 깨인 쓸쓸한 현실이 있을 뿐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면서도 혜자는 꽃처럼 피어나는 취기가 영원히 그 길을 이어주리라는 기대로 더 깊은 어둠을 향해 한 걸음씩 옮겨놓았다. <순례자의 노래>”

 

  상황이 이쯤에 이르고 나면 이제 비교적 자명해진다. <별사(別辭)>에 등장하는 그가 누군지는 여전히 알 길 없지만 그는 분명히 꿈과 현실 사이에 존재한다. 꿈과 현실은 집과 길로 대치될 수 있고 집과 길은 사랑과 인생이라는 또 다른 은유 내지 환유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별사 - 이별의 인사란 두 심연과 심연 사이에 갇힌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연민의 손길이었단 말인가.

 

 

  * 길 위에서 길 밖으로 또 다른 집을 찾아서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내밀하게 감춰진 상처 입은 마음과 훼손된 꿈의 흔적을 일깨우고 그러한 일상의 사소하고 자잘한 스침들이 엮어내는 남루하고 무상함, 환멸조차도 실은 우리 생의 찬연한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다는 무섭고도 두려운 통찰을 매번 그는 그의 작품에 올올이 담아내고 있다.” 이 말은 오정희가 후배작가 전경린의 글에 대해 붙여준 수식어지만 그 수식어는 그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그리고 그러한 오정희의 세계관은 박은옥이 그의 노래를 통해 일관되게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내용과 많이 닮아있다. [행복의 충격]이나 [바람을 담은 집]과 같은 산문집이나 알베르 까뮈와 일련의 프랑스 현대소설의 유려한 번역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살아있는 글, 산문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이 시대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비평가인 김화영 선생의 지적처럼 오정희의 글엔 그래서 ‘어스름의 미학’이나 ‘박명(薄明)의 현상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박은옥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그의 노래는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 무렵에 고즈넉하게 흐를 때 그 진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노래엔 그가 오페라를 전공하는 성악가수도 아니고 그저 대중가요를 부르는 한 사람의 음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러한 클래식의 세계가 추구하는 고급함과 격조를 훨씬 능가하는 고고한 품격이나 기품 같은 것이 잔잔하게 녹아있다. 박은옥의 노래가 오래도록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까닭은 정태춘의 작곡과가사에도 힘입은 바 크지만 바로 그녀 자신의 음색에 깃든 변함없이 고결한 서정성 때문이리라. 그 서정성은 시에서 느껴지는 순결하고 정제된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최근에 현역 시인이나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박은옥은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를 때 본연의 시가 지닌 멋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그 맛을 되살려 자기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바로 앞 세대에 이러한 고품격의 노래를 만인에게 들려준 이는 양희은이었다. 그러나 양희은의 목소리가 가수 자신의 삶의 연륜에 따라 조금씩 더 깊어지고 짙어진다면 박은옥의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래서 나는 박은옥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 이 가수는 도무지 나이를 먹지 않는구나!’ 하는 착각 아닌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흔들림 없는 서늘한 아름다움이 정태춘의 시정어린 가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 폭의 잔잔하고 아련한 수채화를 그려 보인다고나 할까.        

 

  <바람>은 박은옥 자신의 첫 독집 앨범인 [회상](1978, 서라벌 레코드)과 정태춘과 함께 낸 동반 앨범 [북한강에서/바람](1985, 지구 레코드)에 동시에 수록돼 있다. 앨범을 발표한지 벌써 이십 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매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떤 정경 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화인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낯익은 그림. 지친 눈으로 그림 속을 들여다보면 한 아이가 젊은 여자의 등에 업혀 늙은 여자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칠흑처럼 어두운, 캄캄한 밤이었다. 아니, 먼동이 서서히 터 오는 새벽녘이었을까. 사위는 물먹은 솜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고 들리는 건 그들 일행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 뿐. 그리고 어디선가 저 멀리서 낮고 길게 기차의 기적 소리가 울렸다. 젊은 여자가 늙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얘가 춥겠어요, 엄마. 옷을 더 입혀 나올 것 그랬나 봐요. 늙은 여자는 말이 없다. 그저 까만 어둠 속에서 하얀 입김과 함께 건너오는 무겁고 긴 한숨 뿐. 천년보다 더 길고 아득했던 그 침묵의 끝에 늙은 여자는 입을 열었다. 아직, 멀었나? 얼마나 더 가야 되노? 아이는 아직 어리고 어려 혼곤한 잠에 취해 누워있었지만 잠결에 그 말을 다 듣고 있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떠밀려가면서 늙은 여자의 등이 따스했다는 느낌만 간직한 채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하염없이 흘러가던 그 막막하고 무서운 밤.

 

  그날, 그림 속의 그 가난한 일행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그날, 젊은 여자의 품에 안겨 까무룩한 잠의 늪으로 가없이 빠져들던 그 어리숙하고 순한 아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그림 속엔 이십 오 년 전의 나의 모습이 녹아있다. 내 유년 시절의 어두운 초상이 조그맣게 숨쉬고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기억할 수밖에 없는. 훌훌 털어내고 싶지만 끝끝내 떨쳐버릴 수 없는. 고무지우개로 말갛게 지우고 싶어도 그러고 나면 나는, 나의 남은 생은 아예 텅텅 비어버릴 것만 같은.       

 

  그렇게 박은옥의 <바람>은 그 뜨거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초가을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이제는 얼굴도 까맣게 잊어버린 먼 기억 속의 옛 친구처럼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내 가슴속으로 촉촉하게 스며들어 한참동안이나 아프게 한다. 나는 턴테이블에 그의 노래를 걸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바닥에 누워 서서히 다가오는 저녁의 어둠을 맞이한다. 함석집 지붕을 세차게 때리던 빗줄기,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수를 세며 오지 않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던 아이. 진공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5분극 [김삿갓 방랑기]를 들으며 혼자 뒹굴던 그 좁고 허름한 방. 이층의 안쪽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여자들의 비명소리와 부랑자들의 설익은 욕설들, 이층으로 올라가던 그 목조 계단의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 새 같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울던 그때 그곳에서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높은 산이 무서웠다. 산에서 쏟아지는 물들은 다들 집으로 흘러들고 그 집에서 까만 사람들을 보며 살던 때. 나도 그 때 새까만 아이였다. 나도 그때 가난한 아이였다. 가난한 자들에게 바치는 가난한 사랑 노래. <바람>은 부석부석한 내 기억의 창고로 그렇게 불어온다.  

 

  “눈을 감고 잠잠히 기도 드리라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에는 받아가질 안식을 더하려고 반드시 도움의 손이 그대 위해 펼쳐지리 그러나 길은 다하고 날 저무는가 애처로운 인생이여 애꿎은 노래만 우네 멍에는 괴롭고 짐은 무거워도 두드리던 문은 머지않아 네게 열릴지니 가슴에 품고 있는 명멸의 그 등잔을 부드런 예지의 기름으로 채우고 또 채우라 살음을 감사하는 높다란 가지 신앙의 고운 잔디 그대 영혼 감싸리 . . .”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그들의 1집 앨범에서 첫 선을 보였던 <기도>와 박은옥의 <바람>은 그러하기에 이 세상 모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들의 병든 가슴을 똑같은 어조로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다.

 

  “이제는 사랑하게 하소서 여기 마음 가난한 사람들 길목마다 어둠이 내리고 벌써 문이 닫혀요 자 돌아서지 말아요 오늘밤의 꿈을 받아요 홀로 맞을 긴 밤새에 포근하게 잠든 새에 당신 곁을 스쳐갈 나는 바람이어요 이제 곧 어두운 골목길에도 발자국 소리 그치면 어둠처럼 고이고이 당신 곁에 갈테요 밤하늘 구름 저 너머 당신 꿈을 펼치고 못다 한 사랑 이야길랑 내게 말해 주세요 고운 사랑 전해줄 나는 바람이어요 . . .”

 

 

  *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길 위의 여행, 길 밖의 여행


  사랑과 인생이라는 다소 거창하고 추상적인 명제를 집과 길, 길과 집이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상적인 명제로 전환 할 때 우리가 손쉽게 환기할 수 있는 것은 건축이라는 예술의 한 분야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지오 폰티는 자신의 저서 <건축 예찬>의 첫머리를 이렇게 장식하고 있다. “건축은 낮과 밤, 해와 달, 청명한 하늘과 구름 낀 하늘, 바람과 비 그리고 폭풍과 눈이 차례로 연출되는 극장이다.” 그의 말처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그 무수한 건축가들은 심지어 탐험가나 여행가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길 위에서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와 가치관이 반영된 구조물, 집을 만들어 나갔다.

 

  그들이 이제껏 길이라는 공간 위에 시간의 축조물인 집의 탑을 쌓기 시작한 이래 인간의 기본적인 주거공간인 그 집에 붙여진 이름들은 자연의 집, 물위의 집, 시의 집, 수의 집, 생명의 집 같은 것이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전쟁과 평화, 창조와 파괴, 지혜와 광기, 젊음과 늙음이 역사의 무대이자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길 위에서 반복됐다면 집은 그 죽음의 공간, 신의 공간, 삶의 공간, 인간의 공간을 생활의 공간으로 바꾸어 나간다. 길은 집의 타자화 된 공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내가 ‘집’을 찾아가는 ‘길’ 위의 인생을 노래한 박은옥의 <바람>을 들으면서 연상하게 되는 것은 팔라디오나 보로미니, 꼬르뷔지에와 라이트, 안토니오 가우디 같은 외국의 유수한 건축가들이나 김수근이나 김중업, 김 원과 김석철 같은 국내의 내노라하는 건축가의 이름이 아니라 이 척박한 불모의 땅 위에서 예술의 집을 짓기 위해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로 성큼 들어섰던 두 사람의 화가, 그들의 친근한 얼굴이다. 박수근과 오지호가 바로 그들이다.

 

  ‘한국의 밀레’ 라고도 불렸으며 박완서의 소설 <나목(裸木)>에 등장하는 가난한 초상화가의 실제 모델이기도 했던 박수근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왈가왈부하는 자체가 어쩌면 벌써 진부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살아생전에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늘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지 않는 날이 없다가 사후에서야 그의 그림 세계가 활발하게 재조명된 그 기구하고 비극적인 삶까지도 철저하게 진짜배기 예술가의 기질과 닮아있었던 화가 중의 화가. 머리 위에 함지박을 이고 가는 여인네들, 어린애를 업은 여염집 아낙네들, 무언가를 팔기 위해 시장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행상들, 나무 그늘에 담뱃대를 물고 앉아 담소하고 있는 노인들, 낡은 시골 예배당, 다 쓰러져 가는 산 밑의 초가, 그리고 벌거벗은 나무들. 이 모든 것이 그의 작품에 드러난 박수근의 소박하고 서민적인 체취를 말해주고 있다. 그는 모두 진실하게 열심히 사는 가난한 이웃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화가 자신의 마음의 초상이기도 했으리라. 단순하고 따뜻한 인생의 정경, 그 속에 고독하지만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묵묵하게 일구어나가는 애정 어린 인간상. 박수근이 꿈꾸었던 세계는 그리고 그가 자신의 화폭 속에 그토록 옮기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런 생활 주변의 사소한 기록들이었을 것이다.

 

  화가 박수근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저 궁핍하던 50년대 창신동 뒷골목과 산동네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그리고 그 계단 위에 줄줄이 늘어선 판잣집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저녁노을이 발갛게 낙산의 등허리를 물들일 무렵이면 그의 아이들과 아내는 일 나간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며 집 앞에 나와 서산의 해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하나 둘 먼저 가무룩하게 잠이 들고 아내는 그 아이들을 방안에 재우고 난 뒤 혼자 다시 마당으로 나와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밤이 늦도록 기다리는 남편은 돌아올 줄 모르고 달그림자만 점점 더 짙어진다. 이윽고 저 멀리서 비틀거리며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아내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이윽고 사립문을 열고 예의 그 함박꽃처럼 맑고 선한 웃음과 함께 마당으로 들어서는 무능력한 가장.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화가의 아내. 일이 없는 날이면 박수근은 손수 집안의 허드렛일들도 도맡아 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듯 모든 언어에도 저마다의 향기와 무늬와 빛깔이 있다. 시인 장석남은 그 언어의 향기와 무늬와 빛깔을 가지고 이러한 박수근의 선량한 모습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있다. “그러나 또한 참으로 궁금한 것은 그 커다란 손등 위에서 같이 꼼지락거렸을 햇빛들이며는 그가 죽은 후에 그를 쫓아갔는가 아니면 이승에 아직 남아서 어느 그러한 장엄한 손길 위에 다시 떠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마른빨래를 하며 개며 들었을지 모르는 뻐꾹새 소리 같은 것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궁금한 일들은 그러한 궁금한 일들입니다. 그가 가지고 갔을 가난이며 그리움 같은 것은 다 무엇이 되어 오는지... 저녁이 되어 오는지... 가을이 되어 오는지... 궁금한 일들은 다 슬픈 일들입니다. <궁금한 일 - 박수근의 그림에서>”

 

  장석남보다 한 세대 위 연배의 시인 허만하는 <길 - 박수근의 그림>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에서 화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내기도 한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걸었던 바람 부는 길을 이젤처럼 둘러메고 양구를 떠났습니다. 나는 겨레의 향내가 되고 싶습니다. 가야 토기의 살갗같이 우울한 듯 안으로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의 살결같이 거칠고도 푸근한 어머니의 손등을 그리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가 끓이시던 시래깃국 맛을 그리겠습니다. 어머니, 나를 잡아끌던 어머니의 손이 탯줄인 것을 나는 압니다. 잎 진 가지 끝에 바람 부는 겨울 그립습니다.” 그의 그림에 유난히 길과 집에 관련된 작품이 많은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까.

 

  <귀로>, <초가집>, <고목과 여인>, <들길>, <행인>, <달구지>, <귀가> 같은 작품들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대로 인간은 피투성의 존재, 길 위에 던져진 세계-내-존재임을 여지없이 일깨운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 속에 이미 있는 존재, 세계-내-존재란 인간 개개인이 밖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창문처럼 이 세계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가리킨다. 인간은 누구나 현존재, 존재자이면서 존재자의 신분을 떠나 존재 자체의 의미를 캐묻고 탐색한다. 그것은 이 세계가 주관과 객관, 인간과 자연으로 분리되기 이전의 존재방식이자 생활양식이었다. 그리고 인간 본연의 통합된 그 양상을 하이데거는 언어에서 찾았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도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인간은 언어라는 거처에서 거주하고 사유하는 철학자와 시를 짓는 시인은 이 거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 언어로의 여행을 떠났지만 그리하여 결국 존재는 무라는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였지만 가브리엘 마르셀의 ‘여행하는 인간(Home Viator)'이라는 개념을 빌려온다면 인간은 그저 길 위에서 태어나 어딘가에 있을 그 무엇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인간에 다름 아니다. “여행을 하고 있는데, 그 목적지가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 때, 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여행 그 자체임을 순간적으로 깨닫게 된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직시한 카를프리트 그라프 뒤르크하임의 말이야말로 실은 박수근의 작품에 무수히 등장하는 길 떠남의 이미지와 부합하며 그 의미를 명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노시인의 혜안처럼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 데도 없다. <바다>”

 

  부두였다. 낮인지 밤인지,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별할 수 없는 까마득함. 단지 파도의 검푸른 일렁임만이 철 지난 바다의 흉물스러운 외곽을 끊임없이 때리고 있었을 뿐. 그것은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격렬함이었다. 선험적인 공포. 한 아이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그를 데려가던 여자의 치맛자락을 어느 순간 놓치고 . . .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여자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반복되는 선연한 이미지. 꿈에서 깨어난 아이는 어느새 기차에 몸을 싣고 있고 . . . 아이의 옆에는 늙은 여자가 앉아 있다.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가 저녁이면 어김없이 새까맣게 변하는 곳. 하늘도 까맣고 산도 까맣고 집도 까맣고 그 집으로 흘러드는 물도 까맣고 모든 것이 새까만 곳.

 

  그곳에서 . . . 기차를 타고 바다로 가고 있었다. 육십 년대식 비둘기호 완행열차. 굴을 지난다. 기차는 몇 개의 굴을 지나 얼만큼 달릴 수 있을까. 그 기차에서 창밖으로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을 보며 아이는 늙은 여자와 삶은 달걀을 소금에 찍어 입에 넣었다. 고단하고 노곤한 여행. 고달픈 하루. 저 멀리 마을의 불빛은 왜 그리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아스라하던 간이역의 지명들. 도경, 미로, 신기, 상정, 하정, 고사리, 마차리 . . . 바다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짐작할 수조차 없는 허기, 그래도 기차는 어두운 기억 속을 헤집고 떠난다.           

 

  그리고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집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이나 성경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모두 세상의 길 위를 부초처럼 떠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일생을 담고 있다. 그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귀환하는 집은 오지호의 <남향집>처럼 포근하고 아늑했으면 좋겠다. 박수근의 <귀로>가 언제 보아도 물리지 않는 일상적인 편안함으로 다가오듯이 오지호의 <남향집> 역시 고향의 집을 찾아온 듯한 친밀감 때문에 두고두고 뇌리에 남아있었던 작품이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이란! 눈앞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는 듯했고 난 한참 동안이나 그림 앞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집 앞 나뭇가지 위엔  겨우내 채 녹지 않은 잔설이 남아있고 그 옆의 처마 밑 양지 바른 쪽에선 삽살개 한 마리가 졸고 있다. 멀리 사립문 안쪽엔 순박한 시골 소녀가 밖을 내다보고 있다. 추억과 연민이 뒤섞여 있는 가슴이 텅 빈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돌아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기대고 싶은 곳. 작가 오지호는 자신의 그림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을 나는 이다지도 사랑한다. 이 집 뒤로는 초록으로 덮인 조그만 동산이 있고 저 앞으로는 열매들이 발갛게 홍옥처럼 반짝이는 앵도원과 바로 그 옆으로는 넓은 채마밭이 있고 그것들의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이 가없기 때문이다. 지금 오월을 맞이한 이 집의 주위는 영롱한 신록이 바야흐로 무르녹아 가고 있다.”

 

  오지호의 작품 중엔 <초추(初秋)>, <가을 풍경>, <추정(秋情)>, <추광(秋光)>, <만추(晩秋)>처럼 가을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이 많지만 <남향집>은 오히려 만물이 소생하는 싱그러운 봄을 시공간으로 하고 있다. 사과꽃 향기가 아슴아슴한 봄날의 어느 오후, 그 밑을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꿈길을 가듯 걸어보는 그 황홀한 광경을 누군들 한번은 꿈꾸지 않았으랴. 그 화사하고 환한 시절, ‘천치처럼 중얼거리며 다가오는’ 속절없는 그 봄 앞에서 한 아이는 남향집의 툇마루에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지랄 맞은 봄을 앓듯 오래오래 천식을 앓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눈이 부시도록 어두운 봄날. 그러나 결국 아이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얼굴을 모르는 그에게선 아무 소식이 없었고 집을 나간 여자도 돌아올 기약이 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난 아이는 그 후로 말 대신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침묵의 검은 숲 속으로 끝없이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저 홀로 배회하는 미아가 되었다. 마치 희망 없는 세상에서 길을 잃은 고아처럼. 그것이 이 낯선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자 또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 인생, 사랑의 새로운 시작과 그 사랑의 완성


  세계와 자아, 자연의 불꽃과 내면의 영혼이 조화롭게 화해하는 시대를 갈구하던 저 헝가리의 저명한 미학자이자 사상가인 게오르그 루카치의 말대로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하였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환하게 밝혀주던 시대는 또 얼마나 행복하였던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전망 없는 시대의 캄캄한 길을 밝혀줄 등불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기에 한 세기 전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이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향해 ‘우리는 행복도, 고향도, 이별도 체험할 수 없는 세대’라는 비극적인 운명의 파산선고를 하지 않았던가.

 

  우리 세대가 세상에서 추방당한 깊이를 잃은 단절된 세대임을 자인한 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다. 어느 시인의 짤막한 아포리즘처럼 “희미한 등불이 마침내 꺼질 듯 꺼질 듯 하였다 그러나 결코 꺼지지 않았다.” 여전히 보석 같은 희망의 불빛은 유효한 것이고 우리는 그 불빛을 등대 삼아 길을 가야한다. 가다가다 보면 저 멀리 집이 보일 것이다. 그 집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의 집’이자 빌 어거스트의 ‘영혼의 집’이다. 기형도의 ‘바람의 집’이자 이윤학의 ‘먼지의 집’이고 동시에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이다. 그리고 그 집은 궁극적으로 방현석의 ‘내일을 여는 집’이다. 이성복은 ‘시는 집으로 가는 길’이며 가난한 시대는 ‘길’이 ‘집’인 줄로 착각한다고 했다. 릴케는 그의 시 <가을날>의 마지막 행을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어떤 집도 짓지 못하리.”로 끝맺으며 마음이 안식할 수 있는 정신적인 집의 부재에 관하여 짧게 탄식한 바 있다.    

 

  그러나 박은옥은 ‘지금 집이 없는 사람도 언젠가 다시 몸이 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간직한 채 오늘도 고단한 여로에 오른다. “텅 빈 대합실 유리창 너머 무지개를 봤지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 그 바다 위 소나기 지나간 정동진 철로 위로 화물 열차도 지나가고 파란 하늘에 일곱 빛깔로 아련한 얼굴 가슴 저미는 손짓으로 물보라 너머 꿈결처럼 무지개를 봤지 조각배 하나 넘실대는 먼 바다 위 . . .” 부부 듀엣 앨범 [정동진/건너간다](1998, 삶의 문화)를 통해 여전히 변함없는 목소리를 들려주며 남편이자 생의 든든한 동지인 정태춘과 함께 음악활동 시작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도 성황리에 마친 그는 지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수많은 집을 찾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길을 나선다.

 

  그가 나선 길 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무엇이 있어 그의 외로운 손을 잡아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줄 것인가. 아무도 그 진지한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해줄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래도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가 가는 길은 풀벌레 소리 지천에 가득한 저물녘의 호젓한 산길일 수도 있지만 천둥 번개 휘번득거리는 무시무시한 황톳길이자 척박한 현실과 궁핍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험난한 가시밭길이기 십상이다. 그 길은 아예 끊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춤과 시와 예술을 사랑했던 백제인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닮은 그 자신의 노래처럼 박은옥이 그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 나간다면 그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미치도록 황홀하고 아름다운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노래가 뿜어내는 향기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의 삶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임을 함성보다 더 큰 울림으로 고즈넉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데리고 펠리니의 [길]이 그랬고 이만희의 [삼포 가는 길]이 그랬던 것처럼 그 길 위에 ‘소리 없이 흰눈이 내리고' 공후와 해금의 미세한 음률이 안개의 입자처럼 서서히 퍼져나갈 때 사랑보다 더 길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제 떠나가서 다시 돌아오려는 이들을 위한 따뜻한 숨소리와 소리 없는 설레임이 행복의 충격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먼 곳의 그리움처럼, 그 그리움이 머물던 아득한 자리처럼 그 길 위에서 <북한강에서>의 노래가사에도 나오듯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리‘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그리하여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비로소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길이 다하는 곳에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이 타오르는 꽃불처럼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병들고 지친 나그네의 여수를 달래줄 것이다. 저녁노을의 염혼 속으로 망자의 혼을 달래주듯 느리고 느리게 천천히 번져갈 것이다.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 박정만, <작은 연가(戀歌)> 전문 -   

 

  (96매)




(대중음악 정론지 <서브> 199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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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 극작가. 2001년 서울시무대지원사업 선정작 <봄날은 간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이여, 고마워요』 가 있다. 제38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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