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근의 "세계음악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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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순례]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들(10월) . . . 한영애, 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마법의 노래
보물섬  

죽음보다 더 깊은 생의 비의(悲儀)를 찾아서   

  - 한영애, 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마법의 노래


  아아, 그때의 빛이여. 빛 주위로 뭉치는 어둠이여. 서편 하늘 가득 실신한 청동의 구름떼여. 목책 안으로 툭툭 떨어져 내리던 무엄한 새들이여.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나오던 미친 꽃들이여.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여 너희들을 기다리리. 내 속의 모든 움직임이 그치고 탐욕을 향한 덩굴손에서 방황의 물기가 빠질 때까지.

  밤은 그렇게 왔다. 포도 압착실 앞 커다란 등받이 의자에 붙어 한 잎 식물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둠은 화염처럼 고요해지고 언제나 내 눈물을 불러내는 저 깊은 공중(空中)들. 기억하느냐, 그해 가을 그 낯선 저녁 옻나무 그림자 속을 홀연히 스쳐가던 천사의 검은 옷자락과 아아, 더욱 높이 흔들리던 그 머나먼 주인의 임종. 종자(從者)여, 네가 격정을 사로잡지 못하여 죽음을 환난과 비교한다면 침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네가 울리는 낮은 종소리는 어찌 저 놀라운 노을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 저 공중의 욕망은 어둠을 지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종교는 아직도 지상에서 헤맨다. 묻지 말라,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신(神)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밤은 그렇게 왔다. 비로소 너희가 전 생애의 쾌락을 슬픔에 걸 듯이 믿음은 부재(不在) 속에서 싹트고 다시 그 믿음은 부재의 씨방 속으로 돌아가 영원히 쉴 것이니, 골짜기는 정적에 싸이고 우리가 그 정적을 사모하듯이 어찌 비밀을 숭배하는 무리가 많지 않으랴. 밤은 그렇게 노여움을 가장한 모습으로 찾아와 어두운 실내의 램프불을 돋우고 우리의 후회들로 빚어진 주인의 말씀은 정신의 헛된 식욕처럼 아름답다. 듣느냐, 이 세상 끝 간 곳엔 한 자락 바람도 일지 않았더라. 어떠한 슬픔도 그 끝에 이르면 짓궂은 변증의 쾌락으로 치우침을 네가 아느냐. 밤들어 새앙쥐를 물어뜯는 더러운 달빛 따라가며 휘파람 부는 작은 풀벌레들의 그 고요한 입술을 보았느냐. 햇빛은 또 다른 고통을 위하여 빛나는 나무의 알을 잉태하느니 종자(從者)여, 그 놀라운 보편을 진실로 네가 믿느냐.

- <포도밭 묘지 2> 전문 -


 

  여기 한 젊은 시인이 있다.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긴 채 그는 세상을 등졌다. 그의 죽음은 여러 가지 유형의 풍문을 남긴다. 그의 죽음이 남긴 풍문은 발 없는 말이 되어 천리를 가거나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허공중을 배회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지나치게 운이 없다고. 살아서 무명시인이었던 그가 죽어서야 겨우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됐다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행운아라고. 살아서 잊혀지느니 죽어서 기억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느냐고. 그의 요절은 그의 시를 한층 더 빛나게 한다고.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니, 그는 그냥 죽은 자가 아니라 이 모질고 험한 지상에서 비애에 가득 찬 젊음의 한때를 소진하고 간 한 사람의 시인이었다. 세상의 오욕과 더러움에 몸을 섞다간 불행한 시인이었다. 시인이었기 때문에 더 한층 불행했던 젊은이였다.

 

  하늘 위에 떠있는 풍문은 어디까지나 풍문일 따름이다. 그 풍문은 진원지가 밝혀지지 않은 지진의 여파와 같이 맹목적이다. 맹목적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그 풍문은 시인의 진실을 은폐하거나 때로는 과장하기도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허무한 메아리와도 같은 풍문은 그러나 시효가 다하면 곧 사라지고 말 신기루와도 같다. 풍문을 단순한 풍문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풍문이 시인의 진실을 왜곡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살아남은 자들은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근거 없는 풍문을 근거 있는 사실로 바꾸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것이 여기, 이 땅에 살아남은 자가 그와는 운명을 달리한 죽은 이에 대해 가져야 하는 소박한 예의이자 죽은 자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살아있음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이자 그 생존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는 길이다.

 

  불꽃을 뿜어 올리는 치열함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조리 소진한 채 열정적인 삶을 살다간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유명한 고백처럼 죽은 자를 단순히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 일이다. 산 자가 있는 한 죽은 자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산 자의 곁에서,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살아있기 때문이다. 강렬한 색채, 형태의 의도적인 왜곡, 춤추는 듯한 굴곡이 심한 선의 질감으로 인간의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죽음과 병, 고통의 순간을 여과 없이 표현한 에드바르드 뭉크는 다가오는 생의 끝에서 죽음을 그리려 하였다. 우리가 진정으로 삶을 원할 때 죽음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건 어렵지 않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사는 일’ 이라고 일찍이 러시아의 젊은 시인 마야꼬프스키가 스스로 목을 매어 그 짧은 생을 마감한 선배 시인 예세닌을 추도하는 자리에서 절규했듯이 죽음의 반대편에 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하고도 끈질긴 삶의 욕망이 뜨거운 용암처럼 펄 펄 펄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기형도는 절망뿐인 이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절망 너머에 있는 희망의 기미를 찾기 위해서 그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자신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수행해 나갔던가! 그가 남긴 검은 상복을 입은 시편들은 그러한 고뇌와 사투의 산물일 뿐이다. 그는 끊임없이 죽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렬하게 살고자 하였다.

 

  말 많은 호사가들에 의해 지적 허영과 자기기만으로 심하게 위장되고 얼룩진 신화 속의 한 시인의 초상은 그러므로 그의 본 모습이 아니다. 그러한 호들갑스러움은 시인의 진정한 아우라(aura)를 훼손하여 이미 생물학적으로 목숨이 끊어진 그를 다시 한번 죽이는 길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또 한번의 죽음, 그러한 사회적 죽음은 그의 생물학적 죽음보다 오히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시인은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세상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약간의 주저함과 또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더욱이 그 대상이 시인이나 작가의 경우라면 글을 쓰는 손끝으로 부딪쳐오는 당혹감의 부피와 깊이를 감당해내기란 여간 어렵지가 않다. 그것은 좀처럼 견디기 힘든 짓눌림의 무게에 다름 아니다.

 

  시인이나 작가의 존재란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과는 다른 의미에서 한 시대와 그 사회가 요구하는 목적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하고 간섭하고 화답한다. 때로는 그것이 예언자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지사의 음성일 수도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담지자의 노릇이 처음부터 의도된 바가 아니라 마치 물이 스펀지에 스미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담지자를 상대로 정신적 교감을 누리는 대상을 일반 독자로 규정할 때 담지자의 침묵은 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한편 불안한 인내를 강요하게끔 유도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던 담지자의 죽음이 몰고 오는 물리적 파장은 당연하게도 크고 오래갈 수밖에 없다.

 

  기형도는 그러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무수한 잠언의 내용과는 달리 예언자나 지사 풍의 시인이 아니다. 그러한 잠언들의 성격은 하나 같이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것들이며 외면적인 울림이기보다는 내면적인 육성에 더 다가가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한용운이나 이육사 같은 시인이 아니라 오히려 김소월이나 윤동주와 같은 수줍은 현자로서의 고백형의 시인에 더 가깝다. 그가 고백하는 시의 내용은 주로 유년시절의 가난과 가족들 그리고 비정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각각의 소외된 개인들이다. 그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있는가, 또 얼마나 다른 것인가.

 

  시인의 시에서 우리는 ‘내 속에 숨어있는 나’를 본다. 나의 실체를, 한 일그러진 자의 초상을 들여다본다. 괴물을 만난다. 나는 ‘그’이면서 ‘또 다른 나’이다. 굶주린 나, 불행한 나, 무기력한 나, 욕망하는 나, 그러한 나의 총체성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그에게, 그의 페르소나(persona)를 간직한 시인에게 동화되고 공감하는 것이다.

 

 

  기형도가 80년대, 그 폭압과 광란의 시대를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상상력의 힘으로 질주했던 저 화려하고 현란한 낭만주의자들인 ‘시운동’ 동인의 마지막 정신적 버팀목이었다면 ‘21세기 전망’ 동인들은 또 하나의 재능 있는 아까운 시인을 90년대 초에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그가 바로 진이정이다. 유 하가 자신의 첫 시집 [무림 일기]를 그의 이름으로 헌정했던 그 진이정이고 지금은 고고학을 공부하러 독일에 가 있는 시인 허수경이 [모래도시]라는 장편소설에서 그의 시 <등대지기>를 인용하며 그가 떠난 빈자리를 두고두고 아쉬워한 그 진이정이다.

 

  유 하가 [무림일기]라는 연작시로 90년대라는 세기말적 증후군을 대변하는 주목받는 신예시인으로 그 이름을 알리기 전의 아직은 무명이었던 시절 진이정과 가졌던 가난한 문청(文靑)으로서의 교우 그 면면들은 실로 눈물겹다. 그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을 유 하는 진이정의 유고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의 발문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유 하가 그의 시집을 진이정에게 바쳤듯이 진이정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을 유 하에게 바쳤다. 그만큼 그들의 사이는 각별했던 것이리라.

 

  ‘시운동’ 동인들이 그들이 그토록 아끼던 먼저 간 동료 기형도를 위하여 그가 사망한 지 1주기가 되던 해 그를 추모하고 그가 남긴 시들을 영원히 지인들의 가슴에 묻는 시집 화형식을 퍼포먼스라는 다소 즉흥적인 이름으로 성대하게 열었다면 ‘21세기 전망’ 동인들은 그들의 4집 동인지를 진이정의 넋을 위로하는 한 권의 추모집으로 꾸몄다. 그 추모집 [거꾸로 선 꿈의 세상에서]엔 진이정 자신의 대표시와 시론 그리고 생전에 그를 아끼고 사랑하던 동인들, 유 하를 비롯하여 윤제림, 박용하, 차창룡, 허수경의 추모 시편과 함성호가 쓴 시인론, 새로 진이정의 유고시들을 분석한 정과리와 이광호의 작품론이 실려 있다.

 

  진이정의 죽음이 동시대의 요절 시인이나 작가들의 경우처럼 자살인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그가 오랫동안 폐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만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단지 그는 ‘죽음의 골짜기로 스미는 착한 물의 잠처럼 그대는 찾아왔네’<제목 없는 유행가>라고 읊조리거나 ‘내겐 추억 없다 찰나 찰나 연소할 뿐 하얀 절망의 재도 한땐 창창한 나의 추억이었으리라’<추억 거지> 혹은 ‘난 왜 그리움 따위에만 허기를 느끼는 것일까’<엘 살롱 드 멕시코> 또는 ‘그래 그냥 사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마음 털리며’<생일>로 시집 곳곳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 그 고통은 삶의 비애라는 차원을 넘어서 죽음의 손길이 내미는 유혹의 언저리까지 맴돌고 있다. ‘아아 나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어, 이봐 우리 머나먼 내생의 땡볕 아래서 파아란 곰팡이로나 만나자꾸나’<사람, 노릇, 하기란, 너무, 힘들어>나 ‘약 냄새, 돈은 슬퍼라, 어린 육체보다 더 슬픈 십 원짜리 지폐, . . . 죽으면 그렇다 . . .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아트만의 나날들>, ‘그럼 죽음이란 돌이킬 수 없도록 다시 어려지는 것인가’<케이크 위의 ‘축 생일’> 같은 시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시시각각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숨 가쁜 가난과 경제적 궁핍, 그리고 그러한 가난이 몰고 온 병마와 싸우며 육체적인 목마름뿐만 아니라 늘 허기진 정신의 갈증에 시달려야 했다. 도무지 주체할 길 없는 그토록 강렬하고도 음습하기까지 한 욕망은 그의 몸과 마음을 소진시킬 대로 소진시킨 채 생각보다 일찍 그의 영혼을 이 세상에서 거두어가 버렸다.

 

  ‘나는 헛읽었다; 나는 헛살았다 . . . 어머니, 난 굶고 있답니다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하대요 난 창백해져가고 있어요 난 고기가 필요하대요 고기가 부족하니까, 내 몸이 에이즈 걸린 것처럼 비틀대는군요 아, 알았어요, 육식도 섹스의 일종인가 봐요 난 섹스가 부족해요 그럴 밖에, 채식주의의 섹스니까요 새벽 세 시의 섹스가 고파요 섹스에 굶주리기 때문에 나는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건가요 하지만 난 섹스 결핍이랍니다 철 지난 키스는 지겨워요 제철의 사랑을 하고 싶어요 철 지난 연애가 날 늙게 한다구요’<새벽 세 시의 냉장고>와 ‘아이야 나의 희망엔 아직 차도가 없구나, 나의 눈물도 이별도 사랑도 아직 아직 차도가 없어, . . . 난 부드러운 것이 좋아, 희망처럼 부드러운 애를 희망의 자궁을 빌려 낳고 싶어, 또는 너의 몸을 빌려 희망의 포르노를 찍고 싶어, . . . 인간이란 참 불쌍한 존재야, 알을 낳은 뒤 힘겹게 바닷가로 기어가는 어미 거북처럼, 우린 단 한번 섹스의 대가로 물레방아의 인생을 돌아야 하지, 그래도 난 인생이 좋아, 난 시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이미 저승에 가 버린 시인들의 목소리가, 소주 냄새에 섞여 퍼져가는 그들의 육성을,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인 걸, 불쌍한 나의 희망이여, 난 너를 위해 해줄 게 아무 것도 없다, 어쩌면 좋지, 나의 희망엔 아직 그 흔한 차도조차 없구나, 난 외로워, 난 희망보다는 말벗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지,’<나의 희망엔 아직 차도가 없다> 그리고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연작에 등장하는 내성적인 독백들, 이를테면 ‘눈물도 없이 나는 운다 울었다 너무 팔아먹을 것이 없었으므로 거꾸로 선 꿈의 세상에서, 가끔 나는 바로 선다 / 누가 내 몸 안에서 섹스를 하나 봐 헐떡이는 소리, 세 살 이후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 . . 결혼식장이 어물전 같아 비리지 않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 기고 싶다, 비비고 싶다, 까고 싶다 . . . 몽정의 나날이여, 꿈의 정액이여; 어디 마땅한 질을 찾아가거라 비단 같은, 비로드 같은, 총구멍 같은, 융단 같은 너의 질 . . . 그래 자살도 못하는 것이다 / 나는 게릴라처럼 침만 삼키며 하루를 버틴다 장미 같은 그녀의 성기를 연상하면 침이 고여 . . . 기계로 쓴 시를 읽는 사람들, 뜬소문처럼 우주에 떠 있네 / 몸에 음식이 들어가면 왜 마음이 방자해질까 / 어느 새 밥이 꺼졌다 내 인생도 꺼져 있었다 . . . 나는 여태까지 참기만 해왔어 그게 인생이란다; 개 같은 / 어머니, 절 꼭 잡으세요, 누가 지구를 팽이 돌려요 . . . 내 인생은 엇박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용은 사라지고 리듬만 남은 삶이여 / 진리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 . . 눈물의 성분엔 미량이나마 진리가 들어 있는 듯해 울고 나면 천국에 들어온 느낌 / 어머니, 당신은 왜 여자입니까 여자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만을 받는 나날들 . . . 어머니, 얘가 바로 내 정부예요 나는 며느리를 데려올 능력은 없어 농촌 총각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시 총각인 것이다 온 세상의 처녀들이 두려워하는 시 총각! . . . 창포로 머리 감은 처녀와 하루만 살고 싶다 . . . 나는 상상할 수 없어 공자님의 섹스를 말야 . . . 문명이라는 이름의 등잔에는 심지가 없네 그런데도 언제나 휘황하지 . . . 냄새 때문에 난 윤회하는 것이다’를 접하게 되면 공감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마치 타인의 입을 통해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는 나와 같은 허기짐에 배고파하는 수많은 중생들을 잠시나마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간 언어의 순교자인가.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가슴 아프다. 진이정, 그 스스로가 자신을 ‘연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진창의 아들’<진창>이나 ‘칼날 위를 거닐어야 밥이 나오는 차력사의 아들’<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7>로 비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고도 시인이다 또는 그러니까 시인’<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6>이었던 맑은 눈과 선한 웃음의 착하고 여린 심성을 가진 이 땅 위의 순박한 한 사내였다. 그 자신이 한 때 굿패의 일원이었던 진이정은 우리의 소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노래는 소외받은 자들의 한과 원을 풀어버리고 모든 이의 상생을 축원하는 해원굿, 일종의 비나리에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는 그의 짧았던 생을 시라는 형식의 노래로 풀어버린다. 그의 시에는 유난히 노래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제목 없는 유행가>가 그렇고 <애수의 소야곡>이 그렇고 <이태리 품바>가 그렇고 <환상, 굿,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애수의 소야곡>에서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남인수와 고복수의 팬이던 아버지는 내 사춘기의 송창식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나는 또 누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 . . 가부장의 달빛만 괴괴한, 이 이승의 쓸쓸한 밤에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왜 이리 두려운 일인지 잃어버린 그의 꿈이 왜 이리 버거운 짐인지’ 라고 자신의 속 좁음을 자책하며 아버지의 맨 얼굴과 정직하게 대면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정신적 순결성은 <환상, 굿,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나는 왜 잃어버린 사랑을 생각했을까 어찌하여 나의 사랑엔, 슬픔이란 쌍둥이 자매가 줄창 붙어 다니고 있었던 것일까’ 라는 슬픈 독백과도 같은 자각으로 이어진다.

 

  나는 삶과 죽음이 본래 하나이고 그것은 변화하는 것이며 오고 가는 것이며 돌고 도는 것이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 진리 안에 겸허하게 순종시키려 했던 한 명민한 시인이 남긴 시들을 읽으며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느 해거름>이나 <눈물의 일생>, <옛집 앞 전봇대> 같은 시들을 읽으며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내 삶의 안팎을 되돌아볼 것이다. 그리고 내내 부끄러워하리라.

 

  그는 그의 용모만큼이나 참으로 아름다운 시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에서 또 이렇게 쓰고 있다. ‘흐르는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꽃이라고 별이라고 그대라고 명명해도 좋을까요 그대가 흘러갑니다 꽃이 흘러갑니다 흘러흘러 별이 떠내려갑니다 모두가 그대의 향기 질질 흘리며 떠내려갑니다 . . . 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꽃 별 그대 잎 눈 풀씨 허나 그러나 나도 세간 사람들처럼 당신을 시간이라 불러봅니다 꽃이 별이 아니 시간이 흐릅니다 나도 저만치 휩싸여 어디론가 떠내려갑니다 아아 무량겁 후에 단지 한 줄기 미소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그대와 나의 시간,’이라고. 그에 관한 사연이 이럴진대 시집 첫머리의 서시는 당연히 다음과 같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인이여, 토씨 하나 찾아 천지를 돈다 / 시인이 먹는 밥, 비웃지 마라 / 병이 나으면 시인도 사라지리라’<시인>

                 

                   

  아, 이제 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명제의 끝에 한영애라는 도저한 어떤 카리스마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주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언젠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차례로 돌아가며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댄 적이 있었다.

 

  강산에, 김광석, 김목경, 김영동, 김정호, 김현식, 낯선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 마을, 따로 또 같이, 동물원, 들국화, 박광현, 박춘삼, 봄 여름 가을 겨울, 빛과 소금, 사랑과 평화, 산울림, 송창식, 시인과 촌장, 신중현, 신촌 블루스, 안치환, 양희은, 어떤날, 유재하, 윤복희, 이병우, 이상은, 이원재, 장사익, 장필순, 정원영, 정태춘/박은옥, 조동진, 조용필, 트윈폴리오, 한대수, 해바라기, 햇빛촌 심지어 패티김과 이미자, 심수봉, 임희숙, 노사연에 이르기까지 참 여러 명의 음악인이 불려나왔는데 내 순서가 됐을 때 나는 서슴없이 한영애라고 대답한 기억이 난다. 물론 가수 한영애에게 쏟아지는 찬사나 경탄은 비단 내게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지닌 그녀만의 특별한 매력 때문에 한영애라는 이름의 노래로 만든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할말을 잊어버리고 그녀의 세계로 깊숙하게 빠져들게 된다. 그만큼 한영애에게는 여느 가수들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있는 ‘끼’가 존재한다.

 

  그 범접하기 힘든 광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미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수식어처럼 ‘미지의, 알 수 없는, 어떤, 주술적인 힘’에 가까운 그 무엇이리라. 그것은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영적인 힘일 수도 있고 인간 내면의 정신적 감응을 외부의 실재적인 현상으로 전환하는 마성의 성질을 띤 자력일 수도 있으리라.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그 힘은 그리하여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교통하고 매개하고 접붙인다. 산 자를 죽이고 죽은 자를 다시 되살린다. 그 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락가락한다. 그 경계 어디선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힘은 비활성의 무정형에 가까운 사물에게조차도 이 우주를 변화시키는 무한한 생명력의 원천으로 작용하여 따뜻한 숨과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는 한마디로 신성과 인성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노래하는 샤먼이다. 퉁구스 만주어로 ‘아는 사람’이라는 뜻의 샤먼은 시베리아인들 사이에서 병자를 고치고 저 세상과 의사를 소통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어지는 인물이다. 그는 병을 고치는 치유가이자 공동의 제사를 주관하는 사제이며 죽은 자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샤먼에 해당하는 우리의 무당은 본래 영적 존재에게 경도되어 신비적인 일들을 들추어내는 예언이나 말을 하는 여자를 일컫는다. 무당에서의 ‘무’란 ‘신명을 다해 춤추는 사람’이다.

 

  한영애는 신 내림을 받은 무당처럼 신명을 다해 노래하는 사람이다. 대기 속을 떠도는 혼령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는 샤먼이지만 그러나 그 샤먼은 앞을 볼 수 없다. 눈이 먼 샤먼이다. 비정상적인 불구의 몸이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눈을 뜨고 있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세계이다. 그 세계로 그가 침전하면 침전할수록 그를 보러 온 사람들, 그의 노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한 샤먼의 모습을, 그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의 영원함을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그 자신을 옭아매는 그 모든 멍에와 굴레로부터 놓여날 때 그의 노래를 체감하고 호흡하는 관객들 역시 자유로워진다. 그가 그 자신에게로 한없이 낮고 깊숙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가라앉아 무아의 경지로 접어들 때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훨씬 더 부드럽고 평화로워진다. 그는 노래라는 무기로 자신의 몸을 버리고 그 대신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온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그때부터 마음은 몸과 함께 하는 마음의 몸, 아니 몸의 마음이다. 마음은 저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몸의 일부분으로 몸의 든든한 육체를 물려받는다.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서서 그 발로 걸어 다닌다. 몸 안에 마음이 이미 숨어있다. 몸속에 마음의 우주가 숨쉬고 있다.

 

  한영애는 자신의 몸속에 숨어있는 마음의 숨결을 끄집어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노래라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빌어 나누어주고 있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골고루 아주 평등하게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행복한 포만감에 젖어들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러한 포만감이 던져주는 삶의 환희와 기쁨이 그 자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면에 배어있는 죽음의 의미까지 성찰해볼 수 있도록. 거기까지 나아갔다면 이제 한영애의 삶과 노래는 삶 따로 노래 따로가 아니다. 삶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곧 삶이다. 그리고 어느 새 그 삶과 노래 사이에 죽음의 기미가 슬며시 끼어든다. 죽음의 먼지는 삶의 곳곳에 묻어있다. 삶과 죽음 사이엔 경계가 따로 없다. 오직 그 사이를 노래가 흐르고 있을 뿐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상은이 수잔 베가나 트레이시 체프먼에 가깝고 박은옥이 나나무스꾸리나 존 바에즈에 다가서 있다면 한영애는 맨발로 무대에 서서 온몸으로 <여러분>을 열창했던 윤복희처럼 에디뜨 삐아프를 닮았다. 머리에 붉은 꽃을 꽂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에디뜨 삐아프의 '장밋빛 인생'을 열창하는 한영애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가 그 노래가 뿜어내는 여리면서도 강인한 그러면서도 슬픔과 우수에 가득 찬 정서와 꼭 들어맞는 뮤지션임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실제로 한영애는 어느 콘서트에선가 가수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는 자리에서 프랑크 시나트라가 ‘마이 웨이’를 부르듯 ‘장밋빛 인생’을 부른 적이 있었다. 나는 한영애의 장밋빛 인생을 들으며 반세기 전 무수한 에피소드를 남기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샹송 가수를 떠올렸고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 속에서 시인이며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쟝 꼭도가 그녀의 관에 바쳤던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기억했고 그리고 그러한 연상의 끝에 한영애 자신의 노래 ‘여울목’을 생각해 냈다.

 

  장밋빛 인생을 부르는 한영애의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오듯이 여울목을 부르는 한영애 역시 내게는 퍽이나 익숙하다. 한영애의 노래 중에서 내가 제일 처음으로 좋아했던 곡이 바로 그녀의 1집 앨범에 실려 있는 이 <여울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곡을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여울목은 가수 자신의 자화상과 같은 노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한영애 하면 여울목이 맨 먼저 떠오른다.

 

  <완행열차>는 대학방송 시절 추석 무렵이면 어김없이 틀곤 하던 곡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나 자신의 외로운 심사를 달래곤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가을에는 첫사랑의 가슴 시린 경험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가슴 깊은 곳에 그대로를>과 김현식 추모앨범 [하나로]에 실린 <사랑할 수 없어>를 번갈아가며 들었고 눈이 오는 겨울엔 <호호호>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지난겨울의 짧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했었다.

 

  <바라본다>라는 곡은 한 가수가 내지르는 소리의 음역, 그 진폭의 너비와 울림의 두께가 어느 선까지 내달릴 수 있는 지 매번 감탄하며 친구와 즐겨 듣던 노래였다.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나면 온몸에 있던 기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한마디로 소름 끼치는 곡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는 <누구 없소>나 <코뿔소> 그리고 <조율>처럼 삶의 싱싱한 활력이 넘쳐나는 곡들도 좋아했지만 그보다는 죽음의 아련한 향기가 묻어있는 <이별 못한 이별>이나 <건널 수 없는 강>, <루씰>, <불어오라 바람아>, <상사꽃>, <여인 3> 같은 노래들에 더 애착이 가고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인 3>과 같은 노래는 스튜디오 녹음 당시의 가수 자신의 숨소리 하나까지 생생하게 감지되는 매우 독특한 곡이다.

 

  감정몰입의 극한점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는 그 숨소리엔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한 여자의 이룰 수 없는 꿈과 소망과 기원, 바램이 절절하게 녹아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나는 이 곡이 담고 있는 기묘한 정서의 울림, 그 소리의 기원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연유하는지를 심층 심리학의 개념에 의지하여 정신분석학적으로 낱낱이 분석, 해부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감출 수가 없다. 아니, 그것은 일종의 분석이라기보다는 그 노래가 함유하고 있는 매혹적인 세계를 슬며시 들여다보고 싶다는 그리하여 그 세계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충동에 다름 아닐 것이다. 베르그송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의 노래를 ‘분석’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온몸으로 느끼고 그 느낌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이상하게도 그 노래 속에 삶과 죽음, 그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 명제가 항상 같이 병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가 연극배우 출신이기 때문일까. 그는 이병복과 김정옥이 이끄는 극단 [자유]에서 한때 박정자, 윤여정 등과 함께 연기생활을 했었다. 나는 실지로 그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안민수가 연출한 <초혼>에 그녀가 출연하여 거의 한 시간 반 동안 무대 위에서 곡만 하다가 내려왔다는 유명한 일화를 알고 있다. 모르긴 해도 ‘아이고, 아이고’ 하는 한영애의 호곡성(號哭聲)엔 분명 어떤 충만한 기운이 넘쳐흘러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의 가슴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서늘한 기운은 삶 쪽에도 그렇다고 죽음 쪽에도 기울지 않고 그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결합시키는 거멀못 역할을 했으리라.

 

  나는 한영애의 음악세계를 슬금슬금 엿보며 이적지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남도의 한 섬으로 배낭을 꾸려 무작정 떠난다. 그 섬은 삶과 죽음의 비리고 습한 기운이 마구 뒤섞여 있는 지도상의 작은 섬이다. 씻김굿으로 유명한 그 섬엔 여전히 망자의 혼백을 달래는 소리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산 자의 입을 통해 섬 전체에 메아리친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남도 들노래의 명창 조공례의 소리를 나는 우연히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 라디오의 전파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구슬픈 만가였다. 노동요가 만가처럼 들린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십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어머니를 대신하여 그가 나를 먹이고 입히며 키웠다. 그는 내게 육친의 정을 일깨워준 유일한 혈육이었고 나는 그의 품에서 잠시나마 세상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던 한 마리 가엾은 짐승이었다. 어쩌면 그는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잠시 잠깐 왔다 간 어느 별에서 온 손님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까운 도시의 학교 근처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임종을 지켜볼 수 없었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집으로 달려왔을 때 그의 육신은 이미 관속으로 들어간 직후였다. 상여가 나가던 날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진실로 어리고 어렸었던가. 그리고 시간은 또 흘렀다.

 

  조공례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벌써 십여 년도 더 된 그 옛날, 나의 친어머니나 다름없던 한 늙은 여자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별안간 그전에는 별 관심도 없던 그 소리가 내 가슴을 세차게 치기 시작했다. 그 두드림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어서 그 순간 나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 동안이나 훌쩍거리며 흐느꼈다. 내가 어린아이였다면 주위의 시선엔 아랑곳없이 엉엉 소리 내어 울었을 것이다. 십여 년 전에 내 곁을 떠난 그이가 실은 내 가슴속에 살아있었던 것이다. 상여소리는 나를 내가 지금은 떠나온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의 세계로 데려간다. 진도는 그렇게 떠난 자와 남은 자를 명확하게 각인시킨다. 살아남은 자와 죽어서 흙이나 바람이나 물이나 불로 화한 자들을 들쑤셔 다시 불러온다. 한영애의 노래에 내가 그토록 목매는 까닭은 어쩌면 그의 노래에서 내가 조공례의 소리에서와 똑같은 육친의 정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애>를 들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 역시 그와 다를 바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영애 2집 [바라본다]에 실려 있는 그 곡은 생전에 그와 친분이 있었던 동료 음악인 유재하를 기리며 그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꿈결처럼 오가던 그때의 그 이야기들 지금은 어디에 마음의 벽 가린다 해도 순간으로 좋았던 그때의 그 추억들 지금은 어디에 기나긴 한숨의 세월은 그댈 사랑한 벌인가요 흘러내린 눈물은 어제도 오늘도 이 밤을 뒤덮어 구슬피 우는 빗물소리 내 마음을 아는 듯 어깨 위로 싸늘하게 젖어 들어온다.’ 사랑하던 사람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슬픔과 비애에 젖어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려보는 가슴 절절한 가사의 내용처럼 한영애는 그만이 지닌 우수 어린 독특한 목소리로 이 노래의 느낌을 완벽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1987년 11월 1일 꽃다운 젊은 나이에 자신의 재능을 맘껏 피워보지도 못한 채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 유재하. 그를 그리워하며 만든 추모앨범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가 그가 죽은 지 만 십 년 만인 1997년 김현철을 위시한 가까운 동료 음악인들의 손에 의해  발표됐었다. 그 옴니버스 앨범에선 한영애의 뒤를 이어 엉클의 멤버인 한동준과 권혁진이 이 곡을 부르고 있다. 조용필, 이문세, 송홍섭, 박성식,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조동진 . . . 그와의 짧지만 소중했던 한때를 회상하는 선후배 가수들. 그 중에서도 한영애는 생전의 그를 늘 목이 춥고 허전했던 사내로 추억하고 있다.

 

  깊은 밤, 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감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 사내가 아파트 베란다에 서 있다. 그의 입술은 굳게 닫혀있고 그 눈은 한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다. 그의 눈길은 허공 속 그 어딘가 정처 없이 아득한 곳을 향하여 휑하게 열려있고 그 눈길이 가 닿는 자리는 왠지 모르게 위태롭다. 어둠 속으로 서서히 하나의 영상이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다. 짧은 찰나, 바람이 밀려온다. 한 순간 촛불이 훅, 하고 꺼진다. 타다 만 촛불의 검은 심지는 가늘게 바스라진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한 여자가 서 있다. 사내와 여자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른다. 사내는 여자를 향해 손을 내민다. 할머니, 저 찬댑니다. 어서 제 손을 잡으세요. 여자는 말이 없다. 한시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어요, 할머니. 그 동안 어딜 다녀오셨어요. 그래도 여자는 말이 없다. 당신 손자가 이렇게 커서 이제 어른이 됐어요, 할머니도 기쁘시죠. 여자는 어둠 속에서 말없이 웃고 있다. 저랑 같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할머니.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여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사내는 어둠 속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어느새 그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이가 있던 자리에 까만 빗물이 주룩주룩 쏟아진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사내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뒤돌아선다. 사내의 등뒤로 거센 빗소리만이 가득하게 여울진다. 그의 입속에서 무언가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는 낮게 중얼거린다. 할머니, 이 추운 날 당신은 어디 계셔요.

 


  한 세기를 마감하는 해라서 그런지 올해는 연초부터 유난히 굵직굵직한 대형 전시회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책에서만 보던 우리나라의 대표적 근, 현대 화가들의 작품들이 개인전의 형식으로 줄줄이 미술관이나 화랑의 벽에 내 걸렸었고 또 그때마다 예외 없이 그를 관람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한산하기만 하던 전시장 주변의 거리가 한동안 술렁거렸었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일반 관객에게 외면 받던 화랑가에도 춥고 배고픈 시절은 다 지나가고 바야흐로 꽃 피고 새 우는 따뜻한 봄이 도래하였는가, 아니면 소비가 곧 미덕이고 문화와 예술도 상품인 이 유치찬란한 자본 독점의 시대 막강한 여론 장악력을 지닌 각종 대중매체의 바람몰이에 의해 조작된 한번 타올랐다가 곧 스러지고 마는 일시적인 붐에 불과한 것인가.

 

 아무튼 예전에는 좀처럼 보기 드물었던 이러한 다소 뜻밖의 진풍경에 미술계에 종사하는 관계자들도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이중섭, 변관식, 이응노, 김환기, 남 관, 장욱진, 박수근 등 이름만 들어도 얼른 그 화가의 얼굴이 기억되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 그러나 최근에 미술관이나 화랑에 전시된 최영림의 그림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신문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접한 기억도 없다. 나는 환상과 꿈, 몽환적인 즐거움으로 보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그 그림을 오로지 화집으로만 힐끔힐끔 훔쳐볼 수 있었을 뿐이다. 

 

 둥글둥글한 선으로 그려진 순진무구한 여체를 처음으로 내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충격이란 참으로 기묘하고도 야릇한 것이었다. 관능미 넘치지만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이상향의 여인! 과장된 가슴과 기이하게 큰 얼굴을 한 벌거벗은 여체들이 황토색의 전통적 질감 아래 자유로이 놀고 있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종류의 그림을 그렸던 화가가 다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최영림의 그림은 유별나게 독특했다. 그 독특함은 우리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중섭이나 박수근, 김환기 같은 화가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최영림 자신만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고유함이었다. 마치 한 세기 전 유럽과 온 세계의 미술계를 풍미했던 초현실주의 화가들, 이를테면 살바도르 달리나 마르크 샤갈의 그림을 우리 식의 토착적인 것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입체감이나 원근감을 무시한 채 오로지 선의 묘사만으로 작품 속 대상을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로 이끄는 마력과도 같은 힘! 그 속에는 하늘과 땅, 바다 그리고 인간의 심층에서 끓어오르는 온갖 화려하고 현란한 전설과 정령신앙이 깃들여 있었다. <화중(花中)여인>, <환상의 고향>, <모자(母子)>, <연등>, <만개(晩開)>, <극락도>, <남과 여>, <두 여인>, <태모(胎母)>, <모정> 등 그 수많은 그림 중에서도 나는 특히 <꽃밭에서>와 <추억>, <우화> 그리고 <포도밭의 사연>과 <봄날>을 광적일 정도로 사랑하고 아꼈다. 최영림의 그림을 가리켜 한 미술평론가는 ‘건강한 에로티시즘의 축제’ 라는 레테르를 붙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 싱싱하고 충만한 둥근 선에서 인간의 육체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묘한 슬픔을 맛보았다. 그것은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죽음의 알싸한 향취에 다름 아니었다. 코끝을 싸하게 자극하는 그 이상한 냄새가 그의 그림을 본 후로 줄곧 내 뒤를 따라다녔다.  

 

  고대의 신앙체계중 하나인 정령론과 물활론에서 생명은 죽음에 의해 테두리 지워지고 죽음에 의해 규정받기 때문에 죽을 수 없는 것, 죽지 않는 것은 살수도 없는 것이었다. 생명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기간이기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다 언젠가는 그 목숨을 다하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른다는 논리. 그런가 하면 근대의 여명을 알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장 파괴적인 충동이 ‘죽음을 원하는 충동’이고 삶은 궁극적으로 이 죽음충동에 의해 욕망의 원동력을 얻게 된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죽음이론을 전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자크 라캉은 인간은 결국 ‘죽음을 향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맞대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죽음만이 모든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쾌락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평생을 반사회적인 성향이 짙은 금기의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일관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 바타이유는 ‘에로티시즘(eroticism)’을 가리켜 ‘죽음까지 파고드는 지독한 삶’이라고 정의 내렸다. 굳이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생물학적 성행위에서 비롯되는 감정 의지나 행동방식 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랑과 관능적 쾌락, 성적 욕망,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친밀성을 두루 포괄하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요소를 의미하는 에로티시즘이라는 용어 속엔 열정적이고 풍요로움으로 꽉 찬 삶의 욕구와 파괴적인 살해 혹은 사멸을 향한 죽음의 욕구가 공존한다. 마치 삶과 죽음이 교대로 순환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바타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동물성에 기초한 금기를 위반하는 섹스야말로 사람의 사물화(死物化)를 최대한으로 막아준다고도 하였다. 프로이트는 이를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다. 에로스는 성적인 욕구 뿐 아니라 생명을 위한 욕구, 생명의 보존이나 향상을 위한 욕구 일체를 포함한 삶의 본능을 말하고 타나토스는 그 반대의 개념, 즉 죽음을 향한 충동이나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려는 죽음의 본능을 일컫는데 바로 이 두 가지 기초적이고 대극적인 본능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나는 최영림의 그림에서 나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와 같은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을 들여다본다. 비단 최영림의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언젠가 [갤러리 현대]에서 본 천경자의 그림에서도 나는 이와 아주 유사한 감정의 양가성, 그것이 빚어내는 전이와 투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유난히 꽃과 나비, 그리고 무리를 지어 모여 있는 뱀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희망과 불안, 환희와 고독으로 얼룩진 작가 자신의 삶을 상징하는 그의 분신의 현현일 것이지만 그 속에도 어김없이 삶과 죽음의 그림자가 서로 각자의 꼬리와 꼬리를 물고 동시에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생태>나 <길례 언니>, <나비와 여인> 그리고 <사군도(蛇群圖)>와 같은 그의 대표작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 자신 심미주의에 깊이 빠져있던 천하의 딜레탕트이자 보헤미안이었고 그러면서도 향토색과 설화에 기반을 둔 인상주의적 작품을 많이 남겼던 한국 근대회화사의 기린아 이인성의 <가을의 어느 날>이나 <경주의 산곡(山谷)에서>, <사과나무>, <해당화>, <한정(閑情)> 같은 작품에서도, 80년대 초 혜성처럼 나타나 구미 화단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곧 바로 세상을 떠난 최욱경의 폭발할 듯이 화사한 색채의 향연 속에서도 실은 삶의 밝은 외연에 덧입혀진 죽음의 속살, 그 기미를 엿볼 수가 있었다.

 

                        

  90년대 한 시기를 풍미했던 죽음의 징후를 분석한 글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정끝별은 여러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생각을 정리하여 죽음은 삶의 이면이자 또 다른 이름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대로 죽음은 늘 우리들 가까이서 은밀하게 말을 걸어오는 설레임 혹은 속삭임 같은 것이다. 죽음은 비리고 난폭한 경련이자 충동이기도 하지만 생에 대한 따뜻한 어룽거림이자 웅얼거림일 수도 있다. 죽음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이 흘러가고 비우고 던져버리는 가뿐한 생략이자 침묵이다.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며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영원한 과거 혹은 순수한 미래다. 죽음은 잃어버린 존재를 찾아서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탐색하는 고독한 순례자의 기나긴 여행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특히 젊은 영웅의 죽음은 한 시기의 종말을 예고한다. 우리는 담지자의 죽음을 확인하며  빛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 어두운 감옥 안에서 순교해야 한다.

 

 죽음은 밤의 딸이자 잠의 누이이다. 죽음은 휴식과 황홀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그 모든 죽음에 관한 명제에 앞서 무엇보다 죽음은 삶 속에 편재한 본능이다. 삶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구심적 본능이자 삶의 끝을 확인하려는 원심적 본능이다. 운명적 나르시스로서의 죽음은 감출 수 없는 욕망이다.

 

 일찍이 <악의 꽃>의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가 “죽음, 그것은’이라는 시에서 “오! 살아가게 하는 것도 죽음, 그것도 위안을 주는 것. 인생의 목표, 그것도 유일한 희망”이라고 고백했듯이 시인은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다. 아니,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자다. 그리고 그 심연으로 시나브로 끌려드는 자다. 죽음과 부재에 관한 명징한 사유를 펼친 바 있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모리스 블랑쇼는 시인이란 죽을 수 있기 위하여 글을 쓰는 자, 이미 앞당겨진 죽음과의 관계로부터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자라고 했다.

 

  살기 위해 집착하는 모습은 추하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건 중요하다. 더구나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숭고하게까지 보인다. 죽음 역시 아름답게 미화할 수 있다. 죽음에서 눈을 돌리면 삶을 실감할 수 없기에.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죽음이란 달콤한 잠과 같아서 육체에 따라붙는 온갖 고통과 번뇌를 잊을 수 있겠지만 그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떤 건지 알 수 없기에 괴로운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노라 탄식하였고 바이런은 그래서 ‘죽지 못하는 자, 죽을 용기도 없다’고 했지만 그러나 오히려 죽음을 조정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닐까. 그보다 삶을 조정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그의 저서 [죽어가는 자의 고독]에서 죽음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학적 문제로 규정하고 현대의 죽음은 때 이른 죽음으로 임종의 순간이나 장례와 묘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흔적을 환기시키는 모든 것들에 대한 꺼림과 회피 속에서 일어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하기에 저 도저한 근대의 정신적 니힐리스트 니체조차도 ‘비극적 본성을 가진 자들의 파멸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동경하면서도 그것을 웃어버릴 수 있는 힘은 신성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로 천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에게 죽음이란 이미 탄생에서 결정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므로 탄생의 첫날이 죽음의 첫날이고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라고 밝히지 않았던가. 원효가 그의 제자였던 사복의 어머니를 장사 지내며 ‘태어나지 말라, 죽는 것이 괴롭다. 죽지 말라, 태어나는 것도 괴롭다.’고 한 것도 다 그러한 까닭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삶에 대한 힘이자 또한 삶에 대한 욕망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상정하고 스스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창조하여 행동을 통한 새로운 삶의 형성과 그러한 생의 적극적 긍정을 열렬하게 갈구했던 니체는 그런 의미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비합리주의 철학의 선구자라기보다는 죽음에서 삶의 근원을 찾으려 했던 생의 철학자이자 실존주의의 선구자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 열망의 강도가 얼마나 순수했기에 그는 열정은 미래를 여는 희망이라고까지 천명할 수가 있었던 것일까.  

 

  최근 5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그녀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해오던 음악 세계에 조그마한 변화를 예고한 한영애는 언젠가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연은 왔다 가고 갔다 오는 거지 같이 머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생활덕목에 대해선 정직함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정직함이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엔 정직한 것이란 더도 덜도 아니고 가진 것 만큼에 대한 것이자 넘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삶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짤막한 언급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비록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말이었지만 그 말속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원숙하고 여유로운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주어진 삶 속에서 성실할 것이다, 그저 오는 그대로. 그러나 미리 견제하고 막아낼 수 있는 정도의 노력은 할 것이다. 하지만 병이 오면 아플 것이고 고통이 오면 쓰라릴 것이고 기쁨이 오면 기뻐할 것이다. 주어진 대로 살 것이지만 조금은 노력할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죽음을 넘어서는 삶의 비의, 그 숙연함에 대해 가슴 절절하게 노래했던 두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한 시인은 몇 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졌고 한 시인은 여전히 이 풍진 세상 속에서 몸을 섞으며 고통과 괴로움을 마주하고 있다. 조락의 계절 가을, 보들레르의 표현에 의하면 ‘썩고 풍성한’ 시월 이맘때쯤이면 그들의 시가 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온 맘을 흔들어 놓고 도무지 떠날 줄을 모르는 것이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하게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새순 돋거니

  흔들리며 가자 내 상한 영혼이여 흔들리며 흔들리며

  흔들리며 가자 고통에게로 고통에게로

  부평잎이어도 물 고이면 뿌리 없이 흔들리며 꽃은 피거니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나 등불 켜지듯

  고통이여 가자 오오 내 고통이여 살 맞대고 살 맞대고

  살 맞대고 가자 어딘들 못 가랴 어딘들 못 가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전문 -

 


  올 때쯤이면 오겠지요 그렇지요

  생사람으로 아니 온다면 죽은 사람으로 오겠지요 그렇지요

  이 땅에 남는 길은, 이 땅에 남는 길은 삶과 죽음, 삶과 죽음

  삶과 죽음 한꺼번에, 삶과 죽음 한꺼번에 있으니 살아 있으면

  보겠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죽어도 이 땅에만, 죽어도 이 땅에만 묻힌다면, 묻힌다면

  무덤으로 이 산 저 산, 무덤으로 이 산 저 산 바라보며 서로 만나

  보겠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더구나 살아가고, 더구나 살아가고 있다면야, 있다면야

  이 사연 저 사연, 이 사연 저 사연 가슴으로 나눌 날이

  오겠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 하종오, <그렇지요> 전문 -            

 

  (125매)




(대중음악 정론지 <서브> 1999년 10월호)

                       

은기사 2009.11.02. 3:39 am 

좋은 글이네요. 한영애의 노래를 듣고 싶게 만드는데요.^^

차창룡 2009.11.03. 12:03 pm 

잘 읽었습니다. 125매, 긴 글이네요.

이용임 2009.11.20. 3:05 pm 

시나 노래나.. 결국 '부대낌'이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읽게 해주어 고마워요, 선배. 힘들 때 선배의 글은 늘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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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 극작가. 2001년 서울시무대지원사업 선정작 <봄날은 간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2월 이야기> <13월의 길목>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인생이여, 고마워요』 가 있다. 제38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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