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480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서
詩牧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서

 

 

나는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서

꽝꽝 얼어붙은 개울가를 홀로 걷는데

뺨과 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야청청

푸르던 낙락장송 숲

설해(雪害)를 입은 가지들이 뚝뚝 꺾이고

그 우듬지를 들고나며 우짖던

흔한 텃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아직도 덧없는 허명에 집착하고

속물의 삶을 그럴 듯하게 미화하길 밥 먹듯 하는

나는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목숨 걸 일이 따로 없어

처마 끝에 걸린 고드름 같은 시 따위에 목숨을 걸면

나는 지구별에서 멸종을 모면한

생물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혹한에 몹쓸 역병으로

수 만 마리 소떼가 얼음구덩이 속에서 냉동되는 밤,

나는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서

가장 독한 화주(火酒)로 얼어붙는 시의 갈피를 적시며…



(시와 환상 여름호)

                       

차창룡 2010.12.30. 2:41 pm 

선생님, 비장합니다. 새해에는 독한 시가 쏟아져나올 것 같은 예감입니다. 외로운 심심산천에서 건강 잘 관리하시고, 설악산 정기 받으시어 좋은 작품 생산해오시기 바랍니다.

명협도인 2010.12.31. 8:27 pm 

이렇게라도 동명 스님과 소통할 수 있으니 참 좋소. 나는 오늘 만해마을을 나왔답니다. 새핸 얼굴 한 번 봅시다.

차창룡 2011.01.01. 8:19 am 

예, 선생님, 3월 되기 전에 꼭 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유 빈 2010.12.30. 5:24 pm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랫동안 못 뵈었네요. 인도 결혼식장에서 춤추시던 그 신명으로 좋은 글, 열정적인 글 많이 쏟아내세요.

명협도인 2010.12.31. 8:26 pm 

유빈님도요. 그런 춤판있으면 또 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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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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