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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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눈의 꼭두새벽을 기다리며
詩牧  

숫눈의 꼭두새벽을 기다리며

       

 

하루 한두 번씩 범종이 울리는 사원 아래엔

아직 살아서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시인들의 시비(詩碑)가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살얼음 낀 개여울 옆으로는

앙상한 나무들이 살쾡이 울음소리를 지르고

시베리아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보이지 않았으나

새파란 하늘엔

전쟁의 소문을 퍼뜨리는

흰 띠의 긴 비행운(飛行雲)이 나지막이 떠 있었다

 

아직 가벼운 깃을 달지 못한

창조의 열정은 솟아오르다 자주 곤두박질쳤고

유일한 도반(道伴)인 바람은

무거운 내 배낭을 찢어놓을 듯 사팔뜨기 눈을 흘겼다

 

오래된 사원을 뒤로 하고 살얼음 낀 개여울을

따라 내려오는 길,

오늘밤 일기장에 써넣을 경배목록에는

시비에 새겨진 문장도 덧없는 명성도 황금부처도 아니고

 

마른 여울목 모래톱에 참배객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무명의 돌탑들이,

숫눈의 꼭두새벽을 기다리고 있는 듯싶었다



(현대시학 3월호)

                       

차창룡 2011.01.01. 7:10 pm 

선생님 계시는(계셨던) 곳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새해 첫날 잘 보내셨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명협도인 2011.01.01. 8:43 pm 

백담사 언저리 풍경이 내 안으로 스몄겠지라. 어느 새 퇴끼가 빨간 눈을 떴어라. 동명 스님에게도 올 한해가 풍성한 지혜로 그득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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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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