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408
갈치가 산을 오른다
명협도인  

갈치가 산을 오른다

 

 

갈치가 산을 오른다

자반고등어가 산을 오른다

꽁치가 산을 오른다

초겨울 오후 생선장수 트럭 확성기에서 미끈 빠져나온

갈치와 자반고등어와 꽁치가 악, 악, 악을 쓰며 산을 오른다

 

벌써 눈 덮인 산, 산 너머 농가도 몇 채 없는데, 무모한 산행일 텐데,

달콤한 낮잠 깨어 창 너머로 바라보니,

좁고 미끄러운 산길을 꼬리지느러미로 탁, 탁, 탁, 치며 오른다

저러다 은회색비늘 시퍼런 등비늘 다 벗겨질라

볕 곱고 하늘 파란 오늘 같은 날, 누구는 죽기 좋은 날이라고 하더라만

저 악산(嶽山) 능선이 설마 굽이치는 파도로 보였을까. 파란만장, 파란만장의 끝이 악, 악, 악산일까

 

화들짝!

잠이 깨어 바라보는 창에 희뿌옇게 물기 어릴 때, 물고기 떼 감쪽같이 사라졌다

산은 문득 적막에 싸이고

하늘은 푸른 멍 보태어 더 새파랗다



(미발표)

                       

차창룡 2011.01.15. 9:01 pm 

치악산에 오른 갈치와 고등어와 꽁치, 모두 그냥 하산한 듯싶네요. 선생님 댁에 묵어간 물고기들은 없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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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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