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409
오리무중
詩牧  

오리무중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오리를 가고 나면 또 오리가 무중이다

답답한 마음 달래려 호숫가를 걷다가

물속을 자맥질하고

또 자맥질하는 오리들을 본다

쬐고만 창자를 채워줄 물속도

물속 시계(視界)도 오리무중인 모양이다

그래도 또 자맥질하길 그치지 않는

잔잔한 수면에 이는 파문이 뭉클하다

파문당한 어떤 생의 헛발질처럼

쉴새없이 헤적이는 갈퀴발질이 생생하다

물의 심장처럼 두근두근 떠 있다가

저녁놀 머금고 날아오르는 오리들처럼

생생한 물음 머금고 그냥 가야 할 모양이다

한 모롱이 두 모롱이 감돌아 오리를 가고

또 오리를 가도 오리무중인

아득한 하늘 길을 너도 가고 나도 가고

그렇게 하루가 캄캄하게 갔다

어디 방점 한 점 찍을 데 없는 하루가

그렇게 가볍게 갔다



(문학세계 여름호 발표)

                       

차창룡 2011.02.02. 7:31 am 

좋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캄캄하게 갔다"는 말이 "그렇게 가볍게 갔다"와 어우러져 '그렇게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오늘도 "저녁놀 머금고 날아오르느 오리들처럼/생생한 물음 머금고 그냥 가야 할 모양"입니다. 이제 음력으로도 그렇게 한 해가 가비얍게 갑니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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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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