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440
폭염 속에서
詩牧  

폭염 속에서

 

 

섭씨 40도가 웃도는 뉴델리,

냉방이 싫어 세미나실을 나와

님나무 그늘에서 폭염을 피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졌다

님나무 그늘 아래 씨앗들이 사방 흩어져 있었다

씨앗 몇 톨을 주워 가방에 담으며

조금 전 세미나 때 눈 맑은 인도 여성시인

룩미니 나이르가 한 말을 기억해내곤

역시 마음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 속에 있다

  -무자비한 시간 속에서 위안을 주는 것이 시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가 한 말보다

흑요석 같은 그녀의 맑은 눈에 더 끌렸다

오래 전 어느 꽃사슴농장 앞을 지나다

스무 마리쯤 되는 꽃사슴들이 일제히 날 응시하던

눈빛들이 떠올랐다 그 겹의 

황홀한 기억으로 잠깐,

무자비한 시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가

땀에 젖어 다시 세미나실로 발걸음을 떼는데

정원사인 듯한 허름한 사내가

폭염으로 말라가는 나무에 물을 주려는지

작은 분수대 쪽에서 긴 고무호스를 질질 끌어오고 있었다



(미발표)

                       

詩牧 2011.06.25. 12:47 am 

벌써 1년 가까이 되어가는 기억을 더듬어 썼는데, 그 시인 이름이 맞는지 모르것네. 혹 내 기억이 틀리면 누가 정정해 주시길.

보물섬 2011.07.01. 8:04 am 

아, 선생님. 오랜만에 작품 올리셨네요. ^0^
흑요석 같은 맑은 눈을 가진 그녀의 정확한 이름은 '룩미니 나이르'예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대학교수이기도 한가 봐요.
선생님 시를 읽고 있자니 작년 이맘때 생각이 나네요.
2010년 7월 3일 인도 뉴델리 인디아 인터내셔널 센터!!!

詩牧 2011.07.02. 12:50 am 

창근씨, 아, 그렇군요. 왜국인들 이름은 잘 외워지지 않아서요. 요새 들어 인도가 그리워져요, 그래서 생각나서 쓴 것인디, 최근에는 글쓰는 분들이 거의 없군요, 좀 자기를 드러내도 좋을 텐데, 너무 자기를 드러내는데 인색한 건 아닌지. 물론 인생모가 꼴리는 데로 뭘 하는데지만!

김애리자 2011.07.11. 12:45 am 

선생님, 저도 인도가 자주 생각이 납니다~ 위에 시를 보니 그 때가 그리워지는 군요. ^^

詩牧 2011.07.11. 3:35 pm 

애리자 언님, 오랜만이네요. 보고 싶은디, 언제 보죠?

김애리자 2011.07.13. 10:29 pm 

건강하시죠? 모임 때 뵙길 바래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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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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