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472
대문
詩牧  

대문

                               고  진  하

 

백년이 훨씬 넘었다는 폐가에 가까운 한옥

하지만 솟을대문은 여직 젊디젊어서

삐그덕- 고성(高聲)을 지르며 열릴 때마다

내 귀를 파릇파릇하게 하네

 

대문이 대문이 아니고

저 깊고 푸른 숲의 아름드리 나무였을 적,

햇살과 바람, 비와 눈, 낮과 밤,

하여간 저 사계의 족적이

여직 또렷하게 대문(大紋)으로 새겨진 대문의

저런 아름다운 무늬를 나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문장을 짓는 사람,

없는 빗장을 열고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저 파릇파릇한 말씀을 받아 적을 수 있을까

서까래만한 큰 붓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대문장을 휘갈길 수 있을까

 

자, 나 오늘 저 집으로 들어가련다

이리 오너라, 소리쳐도

열어줄 문지기도 빗장도 없지만

백년이 훨씬 넘었어도

그 소리만은 짱짱한 우주의 명창인 대문을 열고

 

                                        



(문상사상 8월호)

                       

김애리자 2011.07.30. 8:54 pm 

정말 공감이 가네요~~ 그 대문에 저도 발 한짝 걸쳐 놓을 수 있을런지요...ㅋ

詩牧 2011.08.03. 2:22 am 

물론입니다요. 그날 목소리만 듣고 와 무척 이쉬웠지요. 언제 곡차 한 잔 혀야 헐 틴디...

김애리자 2011.08.05. 12:26 am 

팔월 모임 때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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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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