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392
꽃 공양
詩牧  

꽃 공양

인도 시편

 

어슴새벽, 샤이클론이 휩쓸고 지나간

벵골만 퐁디쉐리 바닷가로 나갔지. 아직도

으르렁

으르렁거리는 파도가

사나운 눈알을 부라리며 흰 이빨을 까고 있었어.

 

그런데 웬 까무잡잡한 젊은 사내 방파제에 서서

검은 비닐봉지에서 꺼낸 꽃을,

으르렁거리는 파도를 향해 던지고 또 던졌어.

잠시 후 천천히 올라오는 사내에게

시방 뭘 했느냐고 물었지.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꽃을 던졌다고 했어.

 

오 시절이 어느 땐데,

이런 이쁜 친구가 다 있담?

이쁘고 이쁜 친구를 그냥 보낼 수 없어

다짜고짜 끌어안고 그의 볼에 내 볼을 부볐지.

아쉬운 눈빛으로 헤어지며 그는

봉지에 남아 있는 꽃을 나에게 넘겨주었지.

 

아, 나도 꽃을 한 움큼씩 꺼내 던지고 또 던졌어.

아직도 무슨 분노가 덜 풀렸는지

으르렁

으르렁거리며

흰 이빨을 까고 있는 신들에게-

 

 

 



(미발표)

                       

두루미 2012.01.27. 1:23 pm 

  선생님 글도 사진도 잘 봤습니다.
꽃을 바다에 던지던 사내도, 파도도, 꽃도 인도에선 신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이라 하셨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헌데 흰 이빨을 까고 있는 저 신들을 보니 저도 불현듯 못 마시는
소주라도 한 병 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요...

詩牧 2012.01.27. 7:50 pm 

  그날 새벽 바닷가에서 소주가 없어 아쉬웠는데, 하여간 나중에 만나면 까봅시다래...

김애리자 2012.02.01. 12:10 am 

  킥킥킥~~ 좋지요. 소맥은 어떨까요..

김태형 2012.02.02. 4:20 am 

소맥~ 이라면... 달려가겠슴다.

정숙인 2012.01.31. 3:04 pm 

선생님, 신들은 정말 꽃을 좋아하는걸까요? 아니면 못내 부족한 마음을 꽃이 대신하는걸까요?
암튼 인도에서, 꽃은 밥 보다 위에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언제든 소주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詩牧 2012.02.01. 5:06 pm 

숙인, 애리자 언님, 언제 소주도 꽃도 다시 까보자구요.....

김태형 2012.02.02. 4:19 am 

쌤~ 신들과 맞짱 뜨고 오셨네요. ㅋ

박선주 2012.02.17. 11:23 pm 

다짜고짜 끌어안고 볼을 부비는 선생님, 봉지에 남아 있는 꽃을 척 넘겨주는 그 친구... 그렇게 통하는 것이겠죠?

詩牧 2012.02.20. 12:12 am 

다짜고짜 통했죠. 그,친구 보고 싶네요. 선주님, 그날 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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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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