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691
그대 나날의 삶이 성소(聖所)인 것을
명협도인  

 

그대 나날의 삶이 성소(聖所)인 것을

 

 

봄이 그리웠다. 봄의 전령인 매화꽃이 보고 싶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을 견뎌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겨울은 항간에 떠도는 풍문처럼 빙하기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몹시 추웠다. 그렇게 봄을 그리워하던 어느 날, 나는 곁님을 꼬드겼다.

“꽃 보러 갑시다!”

겨울을 나며 온몸에 찬바람이 쏙쏙 파고든다며 추위를 못 견뎌 하던 곁님의 눈이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순처럼 빛났다.

“꽃? 좋지요. 그런데 어디로?”

“남녘으로!”

마침 입춘 무렵이었다. 우리는 남녘땅으로 봄 마중을 나갔다. 지리산 자락, 전라도 담양 땅으로! 하지만 봄의 문턱을 밟아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날짜를 잡아 떠났는데도 지리산 자락에는 하얀 잔설이 덮여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매화나무엔 앙증맞은 꽃망울이 하나둘씩 맺히고 있었다. 향기를 탐하는 나비처럼 꽃망울에 코를 대보아도 아무런 향기도 느낄 수 없었다.

아쉬웠지만 꽃망울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푸른 대나무 숲이 서걱서걱 울을 두르고 있는 고풍스런 정자들을 돌아본 뒤,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맘이 왠지 허전했다. 좀 피곤하기도 해서 차창에 기대어 끄덕끄덕 졸고 있었던가.

문득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렸다. 후배 K시인이었다.

“선배님, 놀라지 마세요!”

“무슨 일인데?”

“C형이 출가한데요.”

그가 말하는 C형 역시 내 후배 시인이었다. 느닷없는 소식에 내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출가라고?”

“네, 스님이 되려고 하신데요.”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머리가 띵했다. C시인은 촉망받는 중견시인이고,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고 어쩌면 곧 교수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는 친구였다. 동서양의 종교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서, 이따금 만나면 영적인 삶에 대해 서로 깊은 속내를 털어놓고 지내온 사이였다.

그런데 출가라니? 가출이 아니고 출가란 말이지? 나는 끄덕끄덕 졸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창 밖에는 저녁놀이 물들고 있었다. 순간, 분홍빛 노을 속에 박박 머리를 깎은 C시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출가’란 말이 문득 싱싱하게 살아왔다. 출가란 말이 그처럼 싱싱하게 가슴에 맺혀온 건 또 처음이었다.

출가가 무엇이던가. 자기보다 큰 것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행위가 아닌가. 더 이상 ‘나’ 혹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을 끊고 대아(大我)에 이르는 것. 이것이 곧 출가의 정신이 아니던가.

그 동안 나는 ‘출가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해 왔다. 가정을 버리고 속세를 버리는 출가를 하지 못하더라도,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물질과 세속적 가치에 대한 집착을 훌훌 떨쳐버려야 한다고! 속된 욕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큰 뜻을 품고 살자고!

우리의 스승 예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실제로 당신 자신도 복음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 가족을 버리는 출가를 결행하셨고, 당신의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출가의 필요성을 역설하시지 않았던가.

어느 날 베드로가 자신이 가족과 일터를 버리고 출가한 사실을 상기시키자, 예수는 출가의 중요성을 이렇게 다시 설파하셨다.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위대한 사명을 위하여,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는 숱한 어려움을 겪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생을 얻으리라.”(마가복음 10장)

하지만 우리 모두가 현실적으로 이런 ‘버림’의 권고를 따를 수는 없다. 특별한 소명에 이끌려 곧이곧대로 ‘출가’를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재가자(在家者)로 살면서도 출가자의 마음으로 하늘나라를 넓히는 일에 진력하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출가자 가운데는 속인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속세에 몸을 두고 살면서도 출가자 못지않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출가’냐 ‘재가’냐가 아니다. 자기 영혼의 중심축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 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도 그 중심축을 하나님에게 두고 산다면, 거룩한 처소에 몸을 두고 사느냐 세속에 몸을 두고 사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예수회 신부인 앤소니 드 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자. 어느 수도원에서 순례의 길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수도원장인 노스승이 말했다.

“이 쓴 조롱박을 가지고 가거라. 그리고 이 쓴 조롱박을 반드시 거룩한 강에 담그고, 모든 거룩한 성전에 가지고 들어가도록 하여라.”

순례를 떠난 제자들은 노스승이 말한 대로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은 순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노스승은 그들이 다시 가지고 돌아온 쓴 조롱박을 삶아서 신성한 음식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노스승은 그 맛을 보고 난 후 제자들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상도 하지? 거룩한 물과 성전들도 이 쓴 조롱박을 달게 만들지 못했군!”

그렇다. 성스러운 공간이 우리를 성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성스러운 삶이 우리가 머무는 공간을 성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예언자>를 쓴 시인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우리 ‘나날의 삶이 하나님을 모신 성소’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어디 특정한 공간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 심장보다 더 내 가까이 계신 분이 아니던가.

유대의 위대한 랍비였던 아브라함 하임은 요리사이며 여인숙 주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감화를 주었다. 그의 명성을 듣고 뭔가를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식기들을 깨끗하게 닦는 것이고, 여인숙을 찾아오는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이라오.”

그러니까 아브라함 하임은 식기들을 깨끗하게 닦는 시간이 곧 자기 영혼을 정화하는 시간이었고, 나그네를 대접할 때마다 하나님을 모시듯 했다.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설거지는 곧 묵상이 되고,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성사(聖事)가 되는 법이다. 랍비는 영적인 교훈이나 말로서 가르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단순한 행위에서 영적인 감화를 얻곤 했던 것이다.

이 랍비처럼 일상 속에서 깨어서 산다면, 나는 그것이 곧 ‘출가의 정신’과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C시인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 하지만 나는 C시인 때문에 이 세상 속에 살며 ‘나보다 크신 분’, ‘내 존재의 뿌리 되신 분’과 사귀며 사는 것이 무언인가를 깊이 묵상할 수 있었다. 고맙소, C시인!



(가이드포스트 4월호)

                       

은기사 2010.03.23. 11:32 pm 

  번다한 세속의 일상을 돌아보게 됩니다. 정말 좋은 글이에요, 선생님.

명협도인 2010.03.24. 10:44 pm 

최근에 이사를 했는데, 왠 짐이 그리 많은지요? 이사 하면서 세상짐 다 버리거나 나눠주고 떠난 차시인 생각이 많이 났지요!

조명 2010.05.01. 3:42 pm 

어휴~~~!! 그게 그렇군요. 저는 제 자리에서 식기를 닦고 지나가는 손님을 대접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열중해보겠습니다. 참 감사한 선생님.

명협도인 2010.05.09. 9:48 am 

긴 가출, 좋은 시가 쏟아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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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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