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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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詩牧  

모자

 

 

황혼 무렵, 시장이 열렸다

갑자기 쏟아지던 장대비 뚝, 그친 뒤 이슬람 재래시장으로 모자 하나 사러 흘러 흘러 들어갔다

 

여기저기 호객의 아우성 소리 드높은 난전,

난전 가운데로, 비단결로 흐르는 실개천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生老病死를 휘어감고 있었다

아, 시궁창 유치원, 팽개쳐진 벌거벗은 아이들이, 시궁창 물을 뒤집어쓴 채, 벌써 생로병사의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다

 

딱히 맘에 들진 않지만, 모자를 몇 개 골랐다

 

지폐를 내미는데 거기 벌거벗은 마하트마 간디의 얼굴이 펄럭이고 있었다 거스름돈을 받는데

거기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묻힌 치욕이 펄럭이고 있었다

 

인산인해 붐비는 시장을 겨우 비집고 빠져나오면서 문득 돌아보니, 시궁창 유치원, 노을수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여전히 먹구렁이처럼 꿈틀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삐죽, 삐죽 터져 나오는

 

울음…… 나는 모자를 두 개씩이나 후다닥 덮어썼다!



(미발표)

                       

두루미 2012.02.22. 6:38 pm 

왜 그렇게 모자를 보는대로 사시나 했더니...터지는 울음 참으시느라고....

詩牧 2012.02.22. 7:05 pm 

모자는 사실 지난해 여름 인도 델리에서의 경험이 바탕이 됐죠. ㅎㅎㅎ, 난 모자 중독증이 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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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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