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397
태양 사원
詩牧  

태양 사원

 

 

저 어마어마한 석벽에 새겨진,

그러나 끝없는 마모가 진행 중인

꽃미남 신들의

자태에서

꽃미희 악사들의

노래와 춤에서

무슨 향기가 전혀 안 나는 건 아니다

 

이글거리는

아열대의 태양

저 불멸의 거대한 지우개 앞에서

꽃분홍의 살과 살이 닿아

샅과 샅이 닿아

꿈틀거리던 애욕의 형상들

서서히 지워지면서도

무슨 향기가 전혀 안 나는 건 아니다

 

토박이들처럼 시커멓게 그을어가는

순례도 막바지

퇴락한 사원을 휘휘 돌아 나오며, 문득

닳아버린 샌들 같은

겸손이란 말이 떠오르고

이지러진 그믐달 같은

소멸이란 말이 욱신거린다

 

아, 아까 들어갈 때 누가 목에 걸어준

꽃목걸이, 그새

시들시들해진 꽃에 코를 박으며

향기란 말도 벌떼에 쏘인 것처럼 욱신거린다



(미발표)

                       

두루미 2013.01.27. 4:47 pm 

선생님, 그해 여름 태양사원은 더욱 특별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뭉클한 마음으로 시 잘 읽었습니다.
태양사원 안에서 앙상하고 마른 팔로 종일 빗자루질을 하던 인도여인이 떠오릅니다.
평안하세요.~

詩牧 2013.01.30. 11:27 pm 

오늘도 인도 다녀온 친구와 태양사원 얘기 했느디, 이 시는 지난번 남인도 여행 때 꽃목걸이의 기억이 강렬해 태야사원과 버무려 본 거디요. 아, 그런데 여신을 한 번 보고 싶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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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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