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400
꽃 먹는 소/고진하 인도시집
詩牧  

꽃 먹는 소

고진하 저 | 문예중앙

한 잎 고통과 한 잎 황홀이 포개지는 방랑의 문장

『꽃 먹는 소』는 자연 사물에 깃들인 신성(神聖)을 탐구하는 시세계를 펼쳐온 고진하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인도 시편’이다. 고진하 시인은 지난 10년이란 세월 동안 매년 인도를 여행하며 길어 올린 “한 잎 고통과 또 한 잎 황홀이 포개지던 방랑의 긴 문장”을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냈다.

이번 시집에서 고진하 시인은 기독교, 불교, 도교 등을 아우르는 해박한 신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대상과 사물의 내면과 깊이를 흡입하여 형이상학적 사유를 작품 곳곳에 부려놓는다. 인도에 대한 단편적인 관심이나 체험기가 아닌, ‘인도적인 것’을 넘어선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사유를 ‘인도’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 속, 일상의 견고한 질서에 금이 가버리는 어떤 한순간의 체험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과 어떤 심연을 발견하여, 이를 자각하고 성찰해나간다.

이 시집은, 진정한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인도에서의 특별한 체험의 기록들로 가득하다. 그 체험은 “땡볕”과 “소나기” 같은 시간 속에서, 일상의 견고한 질서에 금이 가버린 어느 한 순간이며, 이 순간은 시인의 깊은 사유와 성찰을 통해 빼어난 시편으로 탄생한다.

시와 꽃과 예술과 하나님 낭비하기를 좋아하고, 작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영혼의 젊음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즐긴다. 자유혼 예수, 노자, 장자, 조르바를 영혼의 길동무 삼아 강원도 원주 근교의 산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몇 년 동안 낡은 전통한옥에 세 들어 살면서 불편한 시골생활에 익숙해지고, 이제는 꽃과 새와 나무 같은 대자연의 벗들이 자기를 기꺼이 받아주는 것 같다며 고마워한다. 최근에는 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 노동과 수도, 예술과 영성이 하나 되는 예수명상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매주 일요일이면 시내의 작은 밥집 공간에서 뜻을 같이하는 젊은 도반들과 마음공부 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는 겸임교수를 역임한 뒤 요즘에는 대학, 도서관, 인문학카페, 교회 등에서 가끔씩 부르면 마다 않고 달려가, 그가 좋아하는 시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설교집》, 인도 경전 《우파니샤드》 같은 책들을 중심으로 삶의 지혜에 목마른 대중들 속에 인문학적, 종교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강의를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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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 이발소
집시의 뜰에서
먼, 야무나 강
자연
흑소
푸줏간 앞에서
물지게
석불의 맨발에 입 맞추다
님나무
적멸의 문장
귀신을 볼 나이에 소를 보다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꽃 먹는 소
모자
새점
아루나찰라의 잔돌들
가없습니다
그리운 나타라자
사두
소똥 다라니
노천카페
하늘 도공의 솜씨
소똥
이끼부처
빈 배
꽃燈
우물
태양의 선물
간디
검정개
태양사원
퐁디셰리의 사이클론
뉘실꼬?
꽃 공양
알몸의 광휘는 사라지지 않는다
너도 똥 누고 뒷물했니?

차도르
붉은 깃발
Ganga
폭염 속에서
물의 장례
죽음이 털기 전에
하리잔
무료한 갱년
벵골의 딸
벵골의 개들
식경(食經)
네 부재의 향기를 하모니카로 불다
최후의 성모

해설 땡볕과 소나기_김춘식

뱃전을 때리는 사원의 종소리가 멀다
돌아올 생을 가늠하지 않고
잔물결 헤적이는 노 젓는 소리가 저승처럼 멀다
문득, 어린 뱃사공의 목젖이
끓는 강물을 들이켠 듯 뜨겁게 떨린다
저 어린 것이
흐느끼는 강의 눈물샘에
저를 빠뜨린 신들린 소리꾼일 줄이야
불을 토해내는 저 혓바닥은
이글거리는
이글거리는 태양신을 쏙 빼닮았다
닮은 것이라야 닮은 것에
찬가를 바칠 수 있는 것일까
끓는 강물을 더 끓어오르게 하는
가야트리 만트라
귓전을 때리는 어린 사원의 종소리가 멀다
돌아갈 생을 가늠하지 않고
잔물결 헤적이는 노 젓는 소리가 저승처럼 멀다
---「먼, 야무나 강」 전물


하늘 우물도 말라붙었는지
은총의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영혼의 건기(乾期),
언제쯤 건기는 끝나게 될까
농부는
물통의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 시선에서 점점 멀어져가네
찰랑찰랑
흔들리는 물지게가
물결나비의 날갯짓처럼 보일 때까지
---「물지게」 부분

빼빼 마른 소녀의 나뭇가지 같은 손엔
꽃등이 타고 있었네
저녁 어스름 때, 타는 꽃등이
미소 짓는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네

저녁 어스름 때,
꽃등만이 어스름 강물 위에 떠
... 펼처보기 ---「꽃燈」 전문

한 잎 고통과 한 잎 황홀이 포개지는 방랑의 문장

자연 사물에 깃들인 신성(神聖)을 탐구하는 시세계를 펼쳐온 고진하 시인의 신작 시집 『꽃 먹는 소』(문예중앙시선 028)가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인도 시편’이다. 고진하 시인은 지난 10년이란 세월 동안 매년 인도를 여행하며 길어 올린 “한 잎 고통과 또 한 잎 황홀이 포개지던 방랑의 긴 문장”(「시인의 말」)을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냈다. 시인이면서 목사이기도 한 그는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신이 부재한 시대의 신성을 발견”하는 시세계를 펼쳐 보이며 “종교적 사유와 생태적 사유의 결합”(유성호 문학평론가)을 추구해왔다.

이번 시집에서 고진하 시인은 기독교, 불교, 도교 등을 아우르는 해박한 신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대상과 사물의 내면과 깊이를 흡입하여 형이상학적 사유를 작품 곳곳에 부려놓는다. 인도에 대한 단편적인 관심이나 체험기가 아닌, ‘인도적인 것’을 넘어선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사유를 ‘인도’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땡볕”과 “소나기”(「집시의 뜰」) 같은 시간 속, 일상의 견고한 질서에 금이 가버리는 어떤 한순간의 체험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과 어떤 심연을 발견하여, 이를 자각하고 성찰해나간다. 그는 그 방랑의 10년간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아열대의 태양 아래/삶과 죽음이 뜨겁게 끓어오르던/어느 날의 새벽 강/흐느끼는 강의 눈물샘에/저를 빠뜨린 채 울부짖던 신들린 어린 소리꾼이/왜 그토록 오래 잊히지 않는지//모르겠네!”
―「시인의 말」 중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과 영혼의 자각

손님을 기다리는 일에 이골이 났다
오후 들어 야채카레 한 접시를 비운 뒤
지나가던 열풍의 긴 꽁지머리를 뭉텅― 잘라준 기억밖에 없다
비리 몇 모금 빨고 나서
빈 나무의자 깊숙이 늙은 몸을 눕힌다
얕은 꿈결에
면도날 같은 시퍼런 문장이 지나가며
오랜 그리움의 새 별자리를 보여주었지만
문맹이라 받아 적지 못했다
―「노천 이발소―뉴델리에서」 전문

서시 「노천 이발소―뉴델리에서」는 시인이 인도 뉴델리에서 본 어느 늙은 이발사에 대한 기록이지만, 인도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이 인도에서 길어 올린 것은 단순히 인도의 풍광과 인정만이 아니다.) 위의 시에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늙은 이발사가 등장한다. 그날은 손님이 별로 없었던지 한가하게 무더운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점심으로 야채카레를 먹고, 담배 몇 모금을 피운 뒤, 긴 나무의자에 누워 낮잠을 잔다. 그런데 그 얕은 꿈결에 “면도날 같은 시퍼런 문장이 지나가며/오랜 그리움의 새 별자리를 보여주었지만” 늙은 이발사는 “문맹이라 받아 적지” 못한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면도날 같은 시퍼런 문장이 지나”가는 순간, 자기 생의 진정한 가치와 간절했던 이상향이 그려진 “오랜 그리움의 새 별자리”를 떠올리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받아 적지 못하”는 운명의 굴레 속을 살아간다. 그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과 운명의 굴레를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집은, 진정한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인도에서의 특별한 체험의 기록들로 가득하다. 그 체험은 “땡볕”과 “소나기” 같은 시간 속에서, 일상의 견고한 질서에 금이 가버린 어느 한 순간이며, 이 순간은 시인의 깊은 사유와 성찰을 통해 빼어난 시편으로 탄생한다.

뱃전을 때리는 사원의 종소리가 멀다
돌아올 생을 가늠하지 않고
잔물결 헤적이는 노 젓는 소리가 저승처럼 멀다
문득, 어린 뱃사공의 목젖이
끓는 강물을 들이켠 듯 뜨겁게 떨린다
저 어린 것이
흐느끼는 강의 눈물샘에
저를 빠뜨린 신들린 소리꾼일 줄이야
(…)
끓는 강물을 더 끓어오르게 하는
가야트리 만트라
귓전을 때리는 어린 사원의 종소리가 멀다
돌아갈 생을 가늠하지 않고
잔물결 헤적이는 노 젓는 소리가 저승처럼 멀다
―「먼, 야무나 강」 부분

위의 시에서 가야트리 만트라를 부르는 어린 뱃사공의 소리에는 어떤 간절함이 묻어 있다. “아열대의 태양 아래/삶과 죽음 뜨겁게 끓어오르던/어느 날의 새벽 강”(「시인의 말」) 위에서 노래하는 “신들린 소리꾼”을 보며 시인은 자신의 초상을 발견한다. 그 간절한 것에 대한 그리움은 한없이 ‘먼 것’이어서 어린 뱃사공은 절절히 “불을 토해”내는 것일 테다. 시인은 자주 “멀다”고 표현한다. 가까이 느낄 수 있지만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것, 가까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아득한 것들. 이 시집 곳곳에서 드러나는 “오랜 그리움”(「노천 이발소」)과 지극한 “떨림”(「집시의 뜰에서」), 그리고 신과 인간의 거리와 삶의 죽음의 거리도 그저 ‘먼 것’이다. 시인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기원과 자기 정체성, 그리고 존재의 심연에 대한 구도의 열망으로 갈증을 느낀다. 그러나 그조차도 멀 뿐이다. “영혼의 건기(乾期),/언제쯤 건기는 끝나게 될까”(「물지게」)라고 자문하는 시인에게 어쩌면 그 자체가 구도의 길일 테다.

“가벼운 행낭으로/가없는 지평이 가없는/저 시간의 공포 바깥”(「시인의 말」)으로 걸어 나가는 구도의 길에서 시인은 “아무 빌 소원도 없는/삶을 살 수 있기를/내 목숨의 꽃등 꺼지기까지/빌 소원도 없이//이 어두운 강을 건널 수 있기를”(「꽃燈」) 바란다. 욕망을 버리고 깨달음의 과정으로 걸어가는 구도의 과정이 곧 삶이라는 듯이.

시인이 쓰는 시론

어떤 시적 관념이 육화되는 순간의 융융한 희열이 시 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에네르기이다. 그 희열은 물론 고통을 내포한 희열이지만, 그 순간 나는 내 존재 바깥으로 나가 나를 응시할 수 있으므로 창작의 고통도 잊을 수 있다.
어느 사상가의 말처럼 ‘특별한 빛의 성유(聖油)’로 칠해져 있는 그 순간에 몰입해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창조의 샘에서 선업(善業)―시―의 문장을 길어 올릴 수 있다. 뮤즈의 신, 어떤 ‘다른 목소리’가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정주하지 않는 방랑의 문법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문예중앙)

                       

두루미 2014.07.02. 6:34 pm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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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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