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596
에그 모닝
명협도인  

에그 모닝(Egg Morning)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

매일 아침마다 알을 낳은 암탉 두 마리가 알을 낳았다고 보내는 신호다. 나는 곧 플라스틱 바가지로 사료를 퍼가지고 닭장 안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 사료통에 먹이를 부어주고 나서 둥근 짚둥우리에 놓인 알을 꺼내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부엌문을 열고 밥을 짓는 아내에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알을 건네주며 인사한다.

 

“에그 모닝!”(Egg Morning)

 

알을 낳는 닭 때문에 생긴 우리 부부의 새 인사법이다. 처음엔 내 인사를 듣고 어리둥절해하며 깔깔거리더니, 이젠 재미있다는 투로 ‘에그 모닝’하고 인사를 받는다. 나이가 들며 무덤덤해진 하루하루가 닭 때문에 생기가 돌고 우리의 얼굴엔 상큼한 미소가 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닭장 안을 들여다보니 암탉 두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여보, 닭들이 안 보이네.”

 

아내가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한다.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닭들이 짚둥우리에 들어가 며칠째 나오질 않고 저러고 있어요. 먹이도 거의 안 먹고요.”

 

닭장 안으로 들어가 횃대 옆에 있는 짚둥우리를 들여다보니 암탉 두 마리가 꼼짝 않고 앉아 있다. 나는 무슨 일이 닭들에게 생긴 것인지 곧 짐작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닭이 지금 병아리를 까려고 알을 품고 있는 거요.”

 

“알도 없는데, 알을 품다니요?”

 

“이를테면, 없는 알을 품고 있는 거지요.”

 

아내는 기가 막힌 듯 깔깔대고 한참 웃더니 말한다.

 

“그래서 ‘닭대가리!’라고 하는 거군요.”

 

‘닭대가리’란 말을 듣고 나도 배꼽을 잡고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웃다가 생각하니 문득 웃을 일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저 암탉들처럼 뾰족한 착상의 알도 없으면서 창조의 새 생명[詩]을 낳으려고 의자에 눌러 붙어 앉아 낑낑거린 적이 있지 않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저 암탉들은 자기 생명의 본성에 충실한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온종일 사료나 물도 먹지 않으면서-전혀 안 먹는 것은 아니고 하루 한두 번 정도 나와서 먹는다-알도 없는 짚둥우리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 인간에게는 어리석음으로 여겨지지만, 그래서 ‘닭대가리’라는 빈정거림을 당하지만, 새 생명[병아리]을 깔 때를 자기 몸으로 알고 자기 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닭들이야말로 얼마나 생명의 본성에 충실한 것인가. 그렇다면 비록 닭이 없는 알을 품고 앉아 있다 하더라도 저런 행위 때문에 ‘닭대가리’라고 닭을 비하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 가당치 않고말고!

오늘날 우리 인간은 얼마나 생명의 본성을 거스르고 사는가. 자본의 노예가 된 우리들은 살아 있는 생명조차 돈으로 환산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당장 굶어죽을 지경이 아닌데도,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조국의 산하가 송두리째 유린당하는 것을 망연자실 지켜보면서 인간이 자기 생명의 본성을 상실하면 저지르지 못할 일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섬찟해지기도 한다. 성서가 말하는 인간의 타락이 무엇이던가.

 

“정신없이 물질로 뛰어드는 것, 그것이 타락이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은밀하고 거룩한 존재의 현시이건만, 그러한 사실을 놓쳐버린 채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 그것이 타락이다.”(비겐 구로얀)

 

물질문명의 새콤달콤한 맛에 폭 빠진 이들이 그 미각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돌아설 수 있을까.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명찰을 단 이들은 어떤가. 돈은 없어도 살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못살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정신없이 물질에 뛰어’든 이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하나님이 안중에나 있을까.

비겐 구료얀 식으로 말한다면, 타락은 다른 것이 아니다. 생명의 바탕인 하나님의 현존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하나님을 모신 삶을 행복이라 여기지 않고 불어난 사물, 곧 행복의 위조품에 집착하는 것. 나보다 큰 생명의 질서를 망각하고 강물처럼 흐르는 생명의 신성한 흐름에서 이탈하는 것. 거대한 우주생명의 옷감을 짠 위대한 사랑의 부름을 듣지 못하는 것….

다시 닭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없는 알을 품고 있는 암탉들을 보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어느 날 그는 예루살렘 도성을 내려다보며 탄식한다.

 

“암탉이 제 새끼들을 품듯이 내가 너희를 품으려 한 것이 몇 번이더냐?”

 

그래, 그랬다. 예수는 생명의 본성에서 멀어진 이들을 당신의 너그러운 품을 벌려 품어 안으려 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풍성하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명의 수행을 위해 그는 죽음마저 피하지 않았다. 세상의 뭇 어미들이 제 자식들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예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뭇 생명들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것은 곧 거룩한 하나님의 새 생명을 낳는 일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새 생명을 낳고자 하는 산고(産苦)를 우리는 십자가 수난이라고 부르거니와, 예수는 그런 산고를 통해서 태어난 생명들이 하나님과 친해지고 마침내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로 탈바꿈하기를 바랐다. 예수의 이런 삶의 모습에서 눈 밝은 이들은 거룩한 신의 모성(母性)을 읽기도 하는데, 나는 오늘도 짚둥우리에서 없는 알을 품고 있는 암탉들에게서 생명의 본성을 상실하고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읽었다.

 

고맙다, 닭들아. 하지만 이제 하지가 지나 폭염이 몰려오는데, 헉헉거리며 짚둥우리를 떠나지 않는 너희들이 안쓰럽기만 하구나. 어서 산기(産期)가 끝나 평상시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삐약삐약거리는 병아리 소리는 못 들어도 내가 다시 싱그러운 아침 인사를 건넬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에그 모닝!”



(가이드포스트 8월호)

                       

천수호 2010.07.16. 1:42 pm 

닭의 상상임신? 에그 모닝! 멋진 인사네요^^

김애리자 2010.07.24. 2:51 pm 

닭의 본성이긴 하지만 쓸데 없는 에너지 낭비 아닌가요? 바로 인간이 그것을 닮았군요.ㅋ
에그 모닝, 신조어 멋있네요 ^*^


홈 목록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48
2014.08.27.
척박한 고원, 수행자보다 거룩한 야크의 ‘공생’
한겨레신문
207
47
2013.09.08.
꽃 먹는 소/고진하 인도시집 [1]
문예중앙
389
46
2012.03.15.
너 부재의 향기를 하모니카로 불다 [3]
미발표
416
45
2012.02.25.
태양 사원 [2]
미발표
382
44
2012.02.22.
퐁디쉐리의 사이클론 [2]
미발표
403
43
2012.02.20.
모자 [2]
미발표
373
42
2012.02.19.
뉘실꼬? [5]
미발표
369
41
2012.02.10.
우물 [2]
356
40
2012.01.25.
꽃 공양 [9]
미발표
414
39
2012.01.12.
꽃 먹는 소 [4]
미발표
450
38
2011.07.28.
대문 [3]
문상사상 8월호
434
37
2011.06.25.
폭염 속에서 [6]
미발표
398
36
2011.03.28.
봄의 첫 문장 [3]
서정시학 여름호 발표
438
35
2011.03.20.
흑소 [1]
402
34
2011.02.02.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6]
현대문학 6월호 발표
516
33
2011.02.01.
오리무중 [1]
문학세계 여름호 발표
394
32
2011.01.20.
새한테 욕먹다 [4]
482
31
2011.01.15.
갈치가 산을 오른다 [1]
미발표
418
30
2011.01.07.
첫 눈의 시 [1]
시와 환상 여름호 발표
451
29
2011.01.05.
코딱지 [4]
시집 <거룩한 낭비> 수록
408
28
2010.12.31.
숫눈의 꼭두새벽을 기다리며 [2]
현대시학 3월호
434
27
2010.12.30.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서 [5]
시와 환상 여름호
458
26
2010.12.07.
황금방석 [5]
시와 환상 여름호 발표
479
25
2010.12.04.
불멸의 조각 [2]
유심 1-2월호 발표
435
24
2010.10.19.
시인의 영혼을 믿어야 한다 [1]
미발표
416
23
2010.10.06.
죽기 좋은 날 [1]
469
22
2010.10.06.
허수아비 [6]
382
21
2010.10.05.
자귀나무 [1]
미발표
388
20
2010.09.11.
닭의 하안거 [2]
현대시학 3월호
460
19
2010.09.11.
낡은 허물을 벗은 매미처럼
가이그포스트
552
18
2010.09.09.
노천카페 [5]
미발표
483
17
2010.08.26.
부들 [2]
문학사상
547
16
2010.08.07.
차도르 [2]
강원작가 2010년호
468
15
2010.08.06.
귀신을 볼 나이에 소를 보다 [4]
강원작가 2010년호
514
14
2010.08.06.
노천 이발소 [4]
문학세계 여름호 발표
474
13
2010.08.03.
석불의 맨발에 입 맞추다 [7]
유심 1-2월호 발표
488
12
2010.08.03.
Neem-님나무 [2]
미발표
620
11
2010.08.02.
붉은 깃발 [1]
미발표
485
10
2010.08.01.
먼, 야무나 강 [5]
유심 1-2월호 발표
538
9
2010.07.31.
食 經 [1]
미발표
456
8
2010.07.31.
그리운 나타라자 [5]
미빌표
569
7
2010.07.31.
소똥 다라니 [2]
미발표
489
2010.07.15.
에그 모닝 [2]
가이드포스트 8월호
597
5
2010.03.22.
그대 나날의 삶이 성소(聖所)인 것을 [4]
가이드포스트 4월호
657
4
2010.02.20.
Neem [5]
미발표
632
3
2010.02.17.
그대 영혼의 산정(山頂)이 까마득해도 [2]
가이드포스트 2010. 2.
677
2
2010.02.17.
책, 자유로운 정신의 돛 [2]
문학사상 2010. 1.
673
1
2010.02.17.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을 누리라 [6]
가이드포스트 2010. 1.
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