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468
소똥 다라니
詩牧  
 

소똥 다라니

 -오르차에서



망각의 두께만큼 그리움을 불러내는 건 바람이다

물에서 막 올라온 검은 물소 떼가

때 아닌 돌풍을 일으키며

폐허의 사원 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잠자던 내 안의 야성도 문득 깨어나

없는 뿔을 흔들며 흔들며

검은 물소 떼를 쫓았다

하지만, 

녹슨 자물쇠로 굳게 잠긴 사원 문 앞에 당도했을 때

검은 물소 떼는 환영인 양 사라지고,

피 흘리는 노을을 제물 삼아

저녁기도를 바치는

없는 영혼의 의자가 눈에 띌 뿐.

나는 그 의자에

간신히 엉덩이 걸치고 앉아

마른 소똥들이 중얼거리는 다라니를 들었다.






(미발표)

                       

김애리자 2010.08.01. 12:40 am 

그 몸 속에서 나온 소똥이야말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다라니? ㅋ '없는 영혼의 의자'~ 그 의자에 선생님의 영혼이 묻어납니다. 아주 맑은..^^

명협도인 2010.08.05. 2:06 pm 

하두 더워서 열었는디...애리자 님의 댓글을 일그니 감자기 찬바람이....요새 나 아주 바람을 그리워한다요..귀ㅣ신을 볼 나이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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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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