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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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 經
詩牧  
 

  食 經



  아열대의 우람한 나무들 사이 뻥 뚫린 길 위로 조개탄 연기 깔려 매캐하다

  이른 아침 산책하다 들른 길 끝 집 짜이 가게,

  컴컴한 헛간 같은 가게 속, 어, 사람이 안 보인다 어딜 갔노? 꽃미남 크리슈나 신과 이름이 같은, 텁석부리 주인 사내.


  아무도 없는 게 아니었군.

  짜이 끓이는 등근 화덕, 조개탄 벌겋게 피고 있는 화덕 옆에

  갈색 점박이 염소 한 마리가 네모 난 종이 박스를 와작와작 씹고 있다 힐끗

  날 쳐다보고도 조반상을 물릴 기색은 없어 보인다

 

  장난기가 일어 주머니 속에 꾸겨져 있던, 마하트마 간디의 초상이 그려진, 5루피 짜리 지폐를

  놈의 주둥이에 가까이 대자, 킁킁 냄새를 맡더니 덥석 지폐를 물고 단숨에 씹어 삼킨다 그리고 다시 씹다 만 종이박스로 고개를 돌리더니 와작와작 마저 작살낸다 잠시 후,

  돌아온 주인 사내의 사나운 발길에 놈의 엉덩이가 금세 벌겋게 물든다


  왕성한 식욕이 궁핍이 쫓겨난 자리, 구멍이 휑하다 내 앞에 化身한 꽃미남 크리슈나의 훤한 얼굴도 그 구멍 다 매우지 못한다 와작와작 환청만 남아 되새김질하고 있을 뿐!


  난 화덕의 짜이가 끓길 기다리며, 땡기는 시장기를 참으며, 문득 신의 머리 꼭대기에라도 올려놓아야 할 식욕에 대해 묵상한다 草食, 놈이 사라지고 나니 심심했던 것이다





(미발표)

                       

김애리자 2010.08.01. 1:09 am 

저도 같이 가볼 걸 그랬어요. 아침 형이 아니라서 산책을 못 해봤어요. 저도 소가 쓰레기더미에서 말라버린 꽃을 먹는 것을 보았어요. 초식동물의 궁핍된 식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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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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