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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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
명협도인  
 부들

 

 

  시퍼런 부들, 내 키를 훌쩍 넘은 부들이 

  오래된 한옥 옆 도랑에서 어제보다도 더 자란 키를 우쭐, 우쭐댄다.  


  치매 앓는 구순의 어머니 방에서 나온 요강의 오줌을 도랑에 쏟아 붓고 나서

  물에 섞여 흘러가는 맑은 오줌 빛깔을 보며 무심코 중얼거린다.

  울 엄마, 백수는 문제없으실 것 같아…  


  그 느닷없는, 늙지도 않는 오줌 세례를 받은 부들이, 백수인 부들이

  악취에 조금 진저리를 치는 듯싶지만 사실 저렇게 부들부들 떠는 건

  부들의 타고난 천성 탓일 것.  


  천성? 그래, 모오든 살아 꿈틀대는 것들의 연륜만큼이나 오래된, 삶을 

  편드는 천성. 시퍼렇게 솟구치는 천성. 하지 무렵부터 긴 타원형의, 소시지 모양의,

  말좆 모양의 꽃대를 쑥쑥 밀어올리는, 

  가끔씩 건들바람이 불어와 귀두를 슬쩍 건드리면

  뿌우연 갈색의 꽃가루를 천지사방 흩날리는,   


  부들,   


  부들,   


  늦가을, 저것들 썩썩 베어 자리 매면 첫날밤 신혼의 금침으로 손색이 없겠다.  


                                    -『문학사상』(2010년 8월호) -





(문학사상)

                       

김애리자 2010.08.27. 12:54 am 

정말 말대로 부들부들한 금침이 될까요? 돌아가고 싶네요.그때 그 시절로~~ㅋ

명협도인 2010.08.27. 9:46 am 

가을에 부들 썩썩 베어 금침 만들어볼텐께, 어디 멋진 신방 한 번 차려 보시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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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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