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산전수전"

567
낡은 허물을 벗은 매미처럼
명협도인  

낡은 허물을 벗은 매미처럼


  가을하늘이 깊고 푸르다. 나는 가을빛을 마중하러 어린 삽사리를 앞세워 산책길에 나섰다. 그런데 눈부신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나는 생뚱맞게도 ‘죽기 좋은 날’이라고 한 어느 인디언의 말이 떠올라 빙그레 웃었다. 그래, 이런 날 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길가 논배미에는 따가운 볕을 받고 여물어가는 벼들이 찰랑찰랑 황금빛으로 일렁이고, 먼 산자락의 나뭇잎들도 울긋불긋 가을빛이 완연해진다. 이제 곧 추수하는 농부님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리라.

  나는 명봉산 중턱에 있는 저수지 쪽을 향해 걷다가 숨이 차 잠시 큰 나무 그늘 아래 들어 가쁜 숨을 고른다. 마른 풀섶을 골라 엉덩이를 붙이는데, 메뚜기 두어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논배미 속으로 폴짝 뛰어 달아난다. 어릴 적 소주병이나 주전자 같은 걸 들고 나와 또래 아이들과 메뚜기를 잡아 병 속에 집어넣던 기억이 아련하다. 다시 엉덩이에 묻은 먼지와 마른 풀잎을 털고 일어서는데, 축 늘어진 나뭇잎에 붙은 무슨 껍질 같은 것이 이마에 툭 닿는다. 나뭇잎을 뜯어 자세히 보니, 매미 허물이다. 어두운 땅 속에서 굼벵이로 살던 매미 성충이 기어 나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뭇잎에 허물만 쏙 벗어놓고 여름 하늘로 훨훨 날아갔으리라.

  반투명의 갈색 허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미의 형상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툭 튀어나온 눈 모양이며 주름투성이의 뱃가죽까지 산 매미를 쏙 빼 닮았다. 하지만 허물은 그냥 허물일 뿐. 허물은 이제 한여름 날 나뭇가지에 앉아 서늘한 울음을 토하며 울던 매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건 매미의 죽은 과거일 뿐이다. 나는 그 허물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매미처럼 낡은 허물을 벗은 적이 있니? 지금도 여전히 낡은 허물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사는 건 아니니?’

  어느 무명 성직자의 시 한 편이 문득 떠오른다. 이 시는 영국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묻힌 한 성공회 주교의 시로 전해지고 있다.

  “ 내가 젊고 자유로워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시도로 내 가족을 변화시켜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먼저 변화되었을 것을./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전문)

  이 시는 자못 통렬하다. 구도자로서 잘못 살아온 자신의 한살이에 대한 회한과 깨달음이 내 뺨마저 붉게 물들인다. 그래, 나 역시 이 성직자처럼 나 자신의 허물을 벗고 새 존재로 거듭날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타인과 세상을 바꾸겠다고 거들먹거린 적이 있었지. 아, 얼마나 어리석은가.  

  물론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내가 속한 사회와 교회, 혹은 가정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이상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관심과 열정마저 없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밥만 축내는 사람일 것이다. 만일 어떤 젊은이가 그런 열정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애늙은이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갖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 변화의 표적을 바깥으로만 투사할 뿐 자기 내부를 겨냥하지 않는다. 미숙하기 때문이다. 남의 눈에 든 티는 보지만,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는 먼저 네 눈의 들보부터 치우라고 당부하신 것이리라. 그런 당부의 속내는 무엇일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을 들어보자.

  “사랑은 우선 홀로 성숙하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사랑에는 단계가 있다는 말이다. 먼저 홀로 성숙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한 사랑의 땔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존재의 성숙을 이룰 수 있을까. 숱한 시련과 역경이 가로놓인 생을 통과하며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안목을 넓혀야 하리라. 이해에 기초하지 않는 사랑이나 세계 변혁의 의지는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타인과 세상의 변화를 도모한다며 덤벙대지 않는다. 섣부르게 누구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저 가을 들녘의 벼이삭처럼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고요히 여물어갈 뿐이다. 그리하여 이삭 하나하나가 알알이 여물어갈 때 들녘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처럼 성숙한 이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저절로 세상의 어둠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성공회 신학자인 매튜 폭스는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가장 깊은 속사람(deepest self)과 끊임없이 대면하는 사람의 의식은 힘이 넘친다. 그러한 사람만이 만물을 하나님에게로 되돌릴 수 있다. 그러한 사람만이 신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가장 깊은 속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우리 존재의 원천인 하나님이 아니면 누구시겠는가. 우리가 그분과 깊이 대면하며 살아갈 때 낡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날마다 거듭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고 현재의 하나님이 아니시던가.

  자연은 큰 경전이다. 산책길에 손에 넣은 매미 허물을 가지고 돌아와 책꽂이 여백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매미처럼 낡은 허물을 벗고 믿음의 날개를 지녀 날마다 새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아멘! 

  

 










(가이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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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시인.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등이 있으며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아주 특별한 1분」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등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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