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선의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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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구나 (The Three Gunas) 이야기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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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구나(The Three Gunas) 이야기

                                              
             


    고층 아파트 베란다 유리창이 깨질 정도의 위력으로 태풍이 지나간 아침, 엔 리오 모리 꼬네 특유의 심금을 울리는 선율을 들으며 ‘세 가지 구나’(The Three Gunas)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단 시간에 인간의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는 태풍이라는 현상은 어둠의 정체성을 가진 타마스적 현상일까요. 흥분하는 운동성을 지닌 라자스적 현상일까요. 너무 익어 과즙이 흐르다 못해 과육의 색이 누렇게 변한 복숭아와 몰 약처럼 진한 커피 한 잔으로 대신한 내 아침식사는 어느 쪽에 가까운 걸까요. 
    요가철학에서 물질은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즉, 선한성질, 악한 성질, 그리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성질. 이를 산스크리스트어로는 '구나(Guna)’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사트바(Sattva순수성)', '라자스,(Rajas,행동, 감정, 변화과정)' '타마스(Tamas,어둠, 정체성)'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단 에너지가 형체를 갖게 되면 이 세 가지 특성 중 그 하나가 지배적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과일이 알맞게 익으면 사트바 적이고, 익는 과정이면 라자스적이고, 너무 익어 오래되면 타마스적인 것이지요. 사과가 익기 시작하면 어떤 한 부분은 이미 썩기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어느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는 과정이며 따라서 이 세상에 물질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세 가지 성질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예를 들자면 선한 인간, 악한 인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인간이 ‘요가’를 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꾸준한 수련, 즉 다스림을 통해 궁극에는 본디 존재하는 사트바적 자아를 찾게 된다는 이론이라 멋대로 해석해 봅니다.
    그러니 요가수행자라면 당연히 ‘사트바적’ 에너지의 음식을 섭취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트바적 음식만을 섭취한다고 사트바적 인간이 되는 걸까요. 필자는 꽤 오랫동안 채식위주의(Vegetarian) 식생활을 고수하다가 일체의 동물성 식품과 제품 사용을 하지 않는 (Vegan)식 생활방식을 택한 지 1년6개월을 넘기고 있습니다.
    시인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고 쓰다 만 미완의 시에 매달려 있을 때 나를 품어주는 적막의 중심, 검은 밤의 얼굴은 타마스적입니다. 나는 그 타마스의 중심에서 라자스적으로 춤을 춥니다. 그 춤의 황홀경에서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동이 터옵니다. 자정의 종이 치면 유리 구두 한 쪽을 흘리고 허둥지둥 사라져야 했던 그이처럼 라자스적 타마스적 기질 위로 동이 터옵니다.
    요가실 가득 ‘가야트리 만트라’로 채우고 태양신을 기다릴 때 비로소 사트바적 에너지가 들어차, 순수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수련생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 속 세 가지의 다른 얼굴, 명백하게 공존하는 세 가지 구나(The Three Gunas)입니다.  
    그러니 ‘사트바적 음식만을 섭취한다고 사트바적 인간이 되는 걸까요?’의 물음의 답은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는 얘기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비건 식을 하면 할수록 내면의 사트바적 에너지가 각성하는 느낌을 섬세하게 감지한다는 것입니다. 3년여의 한국에서의 요가지도자 생활은 여러 계층의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중에는 평생 함께 갈 소중한 친구도 있습니다.
내게서 위로와 평화를 얻고 행복한 에너지를 느낀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심 당혹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내 성정은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소심하고 편협하고 집착이 강할 뿐 아니라, 불같은 화도 품고 있어 그런 평가를 들을 때면 스스로 가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위축되지 않는 현재의 필자는 이제 어느 정도 사트바적 인간으로 진화해가고 있지 않나 자평 해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비건(Vegan)식과 요가수련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상처 받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 누군가에게 억울함과 함께 미움과 화가 동시에 일어났었습니다. 그 상처는 다름 아닌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건만 어리석게도 타인에게서 그 상처의 까닭을 찾으려 했습니다.
    비건 식과 요가수련으로 차오르는 명상의 힘은 날마다 자신을 점검하고 반성하게 해줍니다. 사트바적 순수함과 빛, 선한 에너지에 집중하게 됩니다. 라자스와 타마스의 검은 그늘 속에 머물다가도 금세 다시 사트바적 환한 그늘로 옮겨 앉습니다.

 어쩌면 시를 쓰지 않고 배길 수 없었던 내 시의 출발점은 사트바적 이라기보다는 라자스와 타마스에 가까운 어둡고 비판적이며 냉소적이기까지 한 기질에 기인했다 볼 수 있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동료시인은 이런 사고의 전환이 시 쓰기와 멀어지게 만들지는 않을까 살며시 우려를 표한 적도 있습니다.
   당초 시인이었지만 해 바뀌고 변변한 시 한 편 발표하지 못한 지금은 요가지도자로서의 삶에 더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요가지도자이지만 이 땅에서 특별히 알고 지내는 요가지도자도 없으니 시인에 더 가깝기도 합니다. 애초부터 세 가지 구나의 충돌과 균형을 숙제로 안고 출발한 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지금이 좋습니다.
  어느 한 쪽에 함몰하지 않고 뭐가 되겠다는 걱정없이 쓸 수 있는 자유가  좋습니다.
  날마다 환해지는 내가 참 좋습니다.
  사트바적인 생활방식을 선택한 비건 시인, 요가지도자로서의 삶이 괜찮게 느껴집니다.
  지나치게 라자스적이고 타마스적인 생활방식 속에서 회의가 느껴져,
  혹 동참하고 싶은 의향이 있다면 조건 없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신 안의 사트바적 에너지에 경배 드립니다.
  나마스떼  _()_

   
    



(미발표)

                       

보물섬 2010.09.05. 3:12 am 

  윤선 쌤. 저희 극단 제비꽃에서 8월말에 막 끝낸 [바가바드기타] 낭독 시간에 배우들과 함께 세가지 구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했었는데 김 선생님 통해서 다시 그 내용을 복습하게 되네요. ^0^
저 역시 아직은 라자스적인 인간에 머무르고 있지 않나 싶을 때가 많아요. 사트바적인 성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되겠지요. ^^

두루미 2010.09.07. 11:33 am 

  보물섬 쌤, 반갑습니다. 첫 덧글 다신 기념으로 맛있는 파란사과 선물 :)
늘 좋은 공연 올리시는데 언제고 직접 볼 날이 오리라 생각해요..집중적으로 공부하셨으면 저도 창근쌤에게 복습 받고 싶어지네요..바람이 서늘, 가을 느낌 나네요..행복한 오늘 되시길 바라며 샨티!! ^^*

김태형 2010.09.10. 3:12 pm 

일찍 잠들었는데, 너무 깊이 적막의 중심에 들어갔나봐요. 이제야 좀 정신이 차려지네요. 약속 못 지켜서 정말 죄송해요. 빈집에 혼자 있으니 아무도 안 깨우네요. 다음에 사죄 겸 채식식당에서 저녁 함께 먹어요. 모시러 갈게요.

두루미 2010.09.11. 4:36 pm 

  적막의 중심에 들어 시를 쓰셨다니 도리어 부럽네요..
걱정 반,기다림 반이었지만 벗과 행복한 시간 보내고 왔는걸요.. ^^
하여간 동네 이웃사촌이시니 편할 때 비건 카페 함께 가시자구요~ 회장님

은기사 2010.10.01. 5:51 am 

새벽에 좋은 글, 향기로운 글 읽고 갑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김애리자 2011.02.06. 8:34 pm 

난 요즘 동명스님께서 추천하신 인도영화에 푹 빠져 있답니다~ 인도여행을 한 후로 인도에 관한 것이면 왠지 마음이 쏠리게 되네요..혹시 전생이 인디아? 윤선시인님의 요가나 사상또한 한번쯤 배워볼 마음도 생기는군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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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선 - 시인.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6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상구」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The Yoga Company 요가지도자 과정과 숀콘 빈야사 요가 워크샵 및 Intro to Meditation 시리즈를 마치고 요가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시집으로 『가만히 오래오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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